한국의 女性名詩를 찾아서,
여성 시인들
김명순 김오남 김일엽 나혜석 백국희 오신혜 장정심 주수원
初期 現代詩史에 등장하는 여성시인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창조』에 김명순, 『폐허』에 나혜석이 가담 함으로서
여성 시의 부상을 예고하고 있다.
그 중
노천명(盧天命, 1911~1957),
모윤숙(毛允淑, 1910~1990)은 본격적인 문학 활동과
그에 상응한 업적을 쌓아 올린 바 있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여성 시인(詩人)들은
문학적 생애가 길지 못한 미완(未完)의 시인들이지만
예시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같이 만만치 않은 저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을 한자리에 모음으로써 우리들의 따듯한 관심을 기대해 본다.
김명순(金明淳)은
여성 시의 첫 장을 끊은 시인이다.
1905년 평남 평양 출생으로 호는 탄실(彈實)이다.
단편소설 「의심의 소녀」(청춘.1917.11)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창조(創造)』 동인이었으며 첫 시집으로 『생명의 과실』이 있다.
단편소설로는 「칠면조」를 비롯하여 「돌아 볼 때」
「탄실이와 주영이」 등을 발표하였다.
개방적인 신여성으로 동시대 작가들의 소설에
모델로 등장하기도 하는 등 화제의 인물이었다.
시는 단순 명쾌한 대층 구조로서 심정적인 전달력이 강하다.
꽃보다 고우 려고
그대같이 아름다우 려고
하늘에 땅에 기도를 했답니다
산보다 거룩 하려고
그대같이 순결 하려고
바다에서 산에서 노래했답니다
그리하여 맑고 고운 내 노래는
모두 다 그대에게 드렸으니
온 세상은 태평하옵니다
―김명순 「거룩한 노래」
김오남(金午男)은
1906년 경기도 연천에서 출생하여,
동경 일본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32년부터 「시조 13수」 등의 시조(時調)를 발표하기 시작하였고,
시조집으로 『성동공업인쇄소』 『심영(心影)』 『여정(旅情)』 등이 있다.
시의 시선은 비교적 세밀하나 인생 전반에 걸친 감상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1
부유가 저리 많이 떠돌아 노닐어도
오늘 해 못다 가서 죽을 게 아니겠오
살았단 이 한나절을 즐겨보나 보외다.
2
靑春이 어제런 듯 白髮이 희었고나
얼마만 지난다면 白骨만 남을 人生
한나절 살고서 죽는 부유에다 비기리.
―김오남 「하루살이」
김일엽(金一葉)은
1896년 평남 용강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원주(元周)다.
이화여자전문학교 및 일본 에이와(英和)학교를 졸업하였다.
잡지 『신여자』를 창간하여 신문학 운동과 여성 운동을 전개하였다.
30세 이후에는 불교(佛敎)에 귀의(歸依)하여 예산 修德寺에 입산하였으며,
1971년 사망하였다.
저서로는 수필집
『어느 수도인의 세상』 『청춘을 불사르고』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 등이 있다.
시는 심정적인 비유로 일관하되 개인적인 사랑, 좌절감 같은 쪽에 많이 기울어 있다.
나는 노래를 부릅니다
듣는 이만 행복될 님이 가르치신
그 노래를 부릅니다
뭇사람이 욕심 때문에 울부짖는
거리에서 나 홀로 목청껏 부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떠드는 잡소리에
눌린 나의 노래는 흐린 날에
연기처럼 엉기다가 스러집니다
더구나 세속에 맞지 않는 나의 노래가
그들의 반향(反響)을 어떻게 바라겠읍니까
밑빠진 항아리에 물 길어 붓는 여인과도 같이
그래도 피나게 부를 뿐입니다
영겁(永劫)에 흐르는 빗물이 땅을 적시고도
남아 바다를 채우듯이
세세생생(世世生生)에 끊임없이 부르는 나의 노래는
대기에 차고도 남아
삼천대천세계(三千大千世界)에 넘칠 테지요
그때 나의 노래는 막는 귀틈으로까지
스스로 스며들게 될 테지요.
―김일엽 「나의 노래」
나혜석(羅惠錫)은
1892년 경기도 수원(水原)에서 출생하였다.
일본 도쿄 여자미술전문학교 유화과를 졸업한 후
화가이며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한국 화가로서는 최초로 개인전을 열었으며
파리에서 수학하기도 한 20년대 선구적인 여성이다
.
시 「냇물」 「사(砂)」를 『폐허』 2호(1921.1)에 발표하며
문단에 진출하였고 이후 『폐허』 동인으로 활약하였다.
작품으로 시에 「아껴 무엇하리 청춘을」,
소설에 「경희」 「정순」 「원한」 「현숙」 등이 있으며
희곡으로는 「백결선생에게 답함」이 있다.
시 「노라」는
입센의 『인형의 집』 여주인공 ‘노라’의 이름을 차용한 것으로
여성해방을 주창하는 도전적이며 계몽적인 자세이다.
가부장적(家父長的)인 가정과 남권중심의 사회에 대한
비판과 저항정신이 잘 드러나고 있다. 1948년에 사망하였다.
나는 人形이었네
아버지 딸인 人形으로
남편의 안핸 人形으로
그네의 노리개이었네
노라를 놓아라
순순히 놓아 다고
높은 墻壁을 헐고
깊은 閨門을 열고
自由의 大氣中에
노라를 놓아라
나는 사람이라네
拘束이 이미 끊쳤도다
自由의 길이 열렸도다
天賦의 힘은 넘치네
아아 小女들이여
깨어서 뒤를 따라 오라
일어나 힘을 發하여라
새 날의 光明이 비쳤네
―나혜석 「노라」
백국희(白菊姬)는
1915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이화여전 문과를 졸업하였다.
『신가정』지에 시 「밤」 「코스모스」
「녹음」 「비오던 그날」 등을 발표했다.
1940년에 사망하였다.시는 관념적이지만 비교적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꿈은 事實이 될 수 있어도 事實은 꿈이 아니다……
곰팡내 나는 空氣 속에
아득한 理想이 呼吸하고
말 없이 타는 다리아의 가슴은
얼어 붙을 듯 초조하다
오늘의 바다는 제멋대로 딩굴려니와
마음 한 복판엔 배 지나간 뒤 같이
한 줄기 흰 길이 남았을 뿐
바람 함께 뿌리는 비는
가슴 속 숨은 感銘에 등불을 켠다
겁 없이 떨던 心琴의 줄을 더듬어 보기도 하나
마음은
廢墟의 골목 같이 그저 호젓만 하다
―백국희 「비 오던 그 날」
오신혜(吳信惠)는
1913년 함남 단천(端川)에서 출생하였다.
이화여전 2년 수료 및 국제대학 국문학과를 졸업하였다.
시조 「수양버들」 (문장.1939.5) 등을 발표하여 등단하였고,
시조집으로 『망양정(望洋亭)』이 있다.
3장 연시조 「오해」는 인간의 내면심리를 다룬 작품으로
안경, 얼음, 가시 등의 직유를 통하여 사랑의 위력을 말하고 있다.
오해는 오만한 오색 가지 안경인가
고운 것도 밉게 보고 흰 것도 검다 하네
그 안경 벗겨내기는 겸손한 이 손길이네
오해는 가슴 속에 얼어붙는 얼음인가
그 입김 싸늘하여 삼복에도 서리치네
그 얼음 녹여내기는 참사랑의 햇빛 뿐
오해는 가슴 속에 돋아나는 가시인가
그 말끝 말끝마다 가시인양 찌르네
그 가시 태울 불길은 참사랑의 불꽃 뿐
―오신혜 「오해」
장정심(張貞心)은
1898년 경기도 개성(開城)에서 출생하였다.
호수돈여고를 졸업 후 이화여전 유치사범과와 협성여자신학교를 졸업하였다.
시 「기도실」 「주의 궁궐」 「아버지 분묘」 등을 발표했으며
시집으로 『주의 승리』, 유고집으로 『금선(琴線)』 등을 간행했다.
호소력 있는 청원형의 구어체로 종교와 윤리를 노래하였다.
당신에게 노래를 청할 수 있다면
들릴락 말락 은은한 소리로
우리집 창 밖에 홀로 와서
내 귀에 가만히 속삭여 주세요
당신에게 웃음을 청할 수 있다면
꿈인 듯 생신 듯 연연한 음조로
봉오리 꽃 같이 고운 웃음
괴롭든 즐겁든 늘 웃어 주세요
당신에게 침묵을 청할 수 있다면
우리가 전일 화원에 앉아서
말 없이 즐겁게 침묵하던
그 침묵 또 다시 보내어 주세요
당신에게 무엇을 청할지라도
거절 안하실 터이오니
사랑의 그 마음 고이 싸서
만나는 그 날에 그대로 주세요
―장정심 「당신에게」
주수원(朱壽元)은
1909년 경남 창원(昌原)에서 출생하였다.
이화여전 문과를 졸업하였다.
시 「편물」 「저울질하는 맘이여」 「무너진 탑」
「내 맘은 나에게 왕국이외다」 등을 발표하였다.
시는 대체로 심정적인 서술에 기울어 있다.
가진 것 하나 없어
사람이 비웃어도
내 마음 한결 같이 편안합니다
내 맘은 나에게 왕국이외다
태산이 앞을 가려
갈 길이 아득해도
이 마음 구름 같이
거침 없이 넘어가니
피곤한 내 몸도
괴로움을 다 잊은 듯
내 맘은 나에게 왕국이외다
誤解의 물결이 치밀려 와도
그 물결 내 마음 범치 못하고
아지 못할 壓力이 답답하게 눌러도
내 마음 한결 같이 자유로워요
내 맘은 나에게 왕국이외다
나의 도피성!
나의 왕국!
아 이 마음 병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한 사람
―주수원 「내 맘은 나에게 왕국이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