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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의 서시 : 1편
1. 시편 1편의 특징
시편은 하나님(야웨 또는 여호와)1)의 벡성이 모든 종류의 경험 속에서 그를 찾았음을 보여주는 고대 이스라엘의 찬송가였다. 시편에서 1편은 시편 150편 전체의 서시로서 이 세상에서의 인간의 바른 삶의 자세에 대한 가장 원론적인 교훈을 제시한다. 하지만 시편 2편도 시편의 핵심 주제들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면서 1편과 더불어 시편 전체의 서론으로 편집되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2) 회겐하벤(Hφgenhaben 2001: 179)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시 1편은 의인들이 야웨의 율법을 즐거워하지 않는 악인들의 반대편에 있다고 보며,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기대한다. 그리고 시 2편에서 우리의 시야는 다가올 메시야 시대의 위대한 드라마를 포함할 정도로 확대된다. 지상의 왕들은 반항적인 태도로 야웨께 적대 감정을 드러냄에도 불구하고 그를 섬기게 될 것이요, 야웨께서 시온 위에 세우신 그의 아들, 곧 기름부음 받은 자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입을 맞출 것이다. 시편 1편과 2편이 다루고 있는 중심 문제는 하나님의 정의에 관한 문제로 볼 수 있을 것이다.”밀러(Miller) 또한 시편의 처음 두 개의 노래는 시편 전체의 서론에 해당한다며, 시편 1편은 율법(토라) 아래 있는 삶의 선결 조건에 대해서 진술하며, 2편은 여호와 하나님을 만물을 통치하시는 왕으로 묘사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메이스(Mays)도 같은 생각에서“하나님의 통치라는 주제야말로 시편 전체를 하나로 묶는 신학의 핵심이다. 나머지 모든 것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하나님의 통치 주권과 연결되어 있거나 그것에 의존하고 있다”는 견해를 가졌다.
시편 전체의 서시에 해당하는 시편 1편은 모두 6절인 비교적 짧은 구절이지만, 내용상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ㆍ1:1-3 / 복 있는 사람
ㆍ1:4-5 / 악인
ㆍ1:6 / 의인과 악인의 결말
2. 시편 1편 해설
2-1. 복 있는 사람 / 1:1-3
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1:1의 첫 마디 ‘복 있는’의 뜻은‘행복’,‘축복’으로, ‘곧다’,‘똑바로 가다’란 일차적 의미에서‘번영하다’,‘성공하다’란 파생적 의미까지 가는 단어인데, 뒤따르는 ‘사람’의 연계형으로 쓰여 문자적으로는 ‘행복하도다 … 하는 사람은’이라는 의미가 된다. 본 구절에서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삶의 길을 따라 똑바로 따라 사는 것에서 행복에 있는 참된 기쁨을 느끼는 삶을 겪는 것이다(Miller). 행복의 길은 악인과 의인의 대조를 통하여 제시된다. 행복의 길에 있는 첫 번째 구덩이는 죄로 이끄는 악인들의 꾀이다. 두 번째 위험은 죄인들이 발로 밟아 잘 다져진 길에 설 때 찾아온다.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경건한 삶을 웃음거리로 여기는 오만한 자들의 태도를 본받게 된다. 이 삼중적인 점층법을 사용함으로써 의인의 잠재적인 행복을 파괴하려고 위협하는 자들의 불경건한 태도를 점점 강하게 표현할 뿐 아니라(악인-죄인-오만한 자), 의인이 그들과 점점 더 많이 접촉하게 되면서(꾀-길-자리) 그들의 영향을 받아 점점 더 적게 움직이게 됨(따름-섬- 앉음)을 분명하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행복은 단순히 이를 피함으로써 얻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받아들임으로써 얻는 것이다. 이것은 2절에서‘여호와의 율법’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가르침에 있음을 말해 준다.
2-2. 악인/ 1:4-5
4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4-5절은 악인과 그들이 받을 화에 대하여 말씀해 주시고 있는데, 이는 1-3절의 복 있는 사람인 의인과의 대립된 관계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두 가지의 대조적인 직유법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설득력 있게 만든다(Gitay). 의인은 물줄기 옆에 심겨진 까닭에 열매를 많이 맺는 나무로 묘사되는데,3) 의인을 대표하는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고 진술한다. 그러나 잘 심겨진 나무와는 달리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그러한 악인은 열매를 맺는 대신에 텅 빈 껍데기와도 같다.4) 그것은 시 2편이 언급하는 보편적인 심판과도 연결된다. 겨의 이미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악인이 하나님 앞에서 안전하게 거하는 의인과는 대조적으로 뿌리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이다(Crenshaw).
그에 따라서 5절은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한다”는 것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견디다’(stand)는 자신을 잘 지키는 것을 뜻한다. 죄인들과 함께 서는 자들(1:1)은 각 사람을 정확하게 판단하시는 심판관이신 하나님 앞에 서 있지 못할 것이다(weiser).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자들의 모임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 종말론적인 심판에서 “죄인들은 의인들의 모임에 합류하지 못할 것이다.” 이렇듯이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은 항상 분리되어 있으며, 의인은 이러한 분리를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장차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궁극적인 분리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Hφgenhaben, craigie).
2-3. 의인과 악인의 결말 / 1:6
6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의인과 악인 사이의 대립 관계를 요약한 시인은 시편 1편의 마지막 구절인 6절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시 1편은 의인들이“하나님께 알려져 있고 하나님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악인들은 하나님의 길로부터 떠난 자기들의 삶의 길이 파멸로 나아가는 일방로인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기에 행복은 하나님의 토라에 서술되어 있는 풍성한 그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이다.
3. 시편 1편 이해
시편 기자는 시편 1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1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4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5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 6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3-1. 의인과 악인에 대한 이해
시편 1편은 ‘의인과 악인’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있다. 여기서의 의인은 ‘복 있는 사람’이며, 악인은 ‘화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에서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신약성경에서 ‘의인’이 뜻하는 기본 뜻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이다. 구약성경 시편에서는 ‘의인’을 자주 언급하는데 장차 하나님께서 보내실 메시야 – 그리스도 - 를 의존하는 믿음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 된 특징을 말씀하시는 것에서 하신다. 시편 1편은 하나님의 백성된 특징이 무엇에 있는가를 알려 주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의 관계에서 말해지고 있다.
3-2. 복 있는 사람인 의인
시편 첫 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의인’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다. 이들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으니 악한 일을 계획하며 악한 일을 꾸미는 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며 악한 일을 함께 따르지 않는다. 그리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니 (죄인들을 본받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으며, 죄인들의 길을 걷지 않는다. 또한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으니 조소하고 조롱하는 자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는 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의 마음과 생각은 온통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함에 있어서 여기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리스도를 유일한 낙으로 삼고 그분을 바라봄에 있는 기쁨에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들을 “인정하신다”라고 말씀하신다. 의인이 유일하게 즐거워하는 낙에 있는 대로 그들은 그 낙을 봄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음에 있는 자가 될 것이다.
신약성경은 이것을 ‘믿음에 의한 하나님의 의’로 말씀한다. 이런 이들이 참으로 복 있는 자임을 시냇가에 심겨 놓은 나무 같아서 계절 따라 과실을 맺고 그 잎사귀는 나날이 푸르러 번성하는 것에서 알게 해주시고 있다.
3-3. 저주의 화가 약속된 악인
믿음에 의한 하나님의 의를 입음에 있음으로써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에 있는 것과 반대로 이 은혜를 입지 못하고 악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어떤지도 하나님은 말씀해 주신다. 하나님의 율법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어떤 마음도 생각도 없는 이들 은“악인의 꾀를 좇고, 죄인의 길에 서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서” 온갖 못된 짓만 일삼으로 제 잘난 맛에 산다. 여호와이신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그리스도가 없는 자들은 오직 ‘육체’뿐이어서 여기에서 나오는 마음에 따른 악한 생각을 좇아 단지 그 욕망을 이루는 것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비참한지를 “바람에 힘없이 흩날려 없어져 버리는 겨와 같다”는 것으로 알게 해 주신다. 이들의 흔적조차 남겨 놓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엄중한 저주의 화가 약속되고 있는 것이다.
3-4. 복 있는 사람인 의인과 화 있는 사람인 악인의 대조가 주는 교훈
복 있는 자인 의인, 화 있는 자인 악인의 대조에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또는 자녀)들에게 그들이 복 있음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를 알게 해주시고 있다, 즉 그들이 복 있음에 있는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이다. 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주가 되어 주심에 의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에 나타내 주시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이신 메시야 -그리스도 - 를 주야로 묵상함에 있는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복에 있다.
3-5.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복을 선포하시다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하나님의 뜻인 그리스도의 묵상에 있어 온 제자들에게 그리스도이신 예수께서는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산 위에 오르시어 그들에게 시편 1편에서 말씀하신 의인에게 약속된 복을 선포하셨다(마 5:3-10). 그것은 모두 여덟 번에 걸쳐 되어졌다.
첫 번째 복 선언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두 번째 복 선언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세 번째 복 선언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네 번째 복 선언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다섯 번째 복 선언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여섯 번째 복 선언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일곱 번째 복 선언 :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여덟 번째 복 선언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복의 선포를 해 주시는 것에서 복을 베푸는 수여자가 제자들과 함께 하신 그들의 주님이신 자신이심을 드러내시면서, 그들이 주님이신 예수님을 따르며 함께 하는 것에서 받게 되는 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알게 해 주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을 따르며 함께하는 것에서 여덟 가지로 표현된 제자된 하나님 나라의 특성 – 품성 – 에 있게 될 것이다. 그런 그들은 심령이 가난함에 있으며, 애통함에 있으며, 온유함에 있으며, 의에 주리고 목마름에 있으며, 긍휼히 여김에 있으며, 마음이 청결함에 있으며, 화평하게 함에 있으며,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음에 있어 참으로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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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약성경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여호와이시다. 그러므로 여호와이신 하나님으로 불린다. 이 신명에 대한 발음의 표기에 대해서는 ‘야웨/야훼’로 또는 ‘예호와/예호봐(여호와)’불리는데, 본 글에서는 ‘하나님’으로 통일시킨다. 그러나 인용 글에서는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신명 그대로 표기할 것이다.
2)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은 Howard, Kuntz 이다. 그러나 Murphy는 이에 반대한다.
3) 크리치(Creach)는 시 1:3과 겔47:12 사이에 있는 언어의 유사성이 의인을 견고하게 뿌리가 박힌 나무로, 그리고 성전 안에 견고하게 심겨진 탓에 성전 물줄기에 의해 안전하게 보호되는 나무로 묘사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시1편에서는 토라가 의인의 주요 묵상 대상이요 그의 삶을 안전하게 하는 기초로 소개된다.
4) 사 17:13; 4:15, 호 13;3, 스 2:2은 종말론적인 심판의 맥락 안에서 겨의 은유를 사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