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의 눈물
- '콘트라바스'를 읽고
미 선
좁은 방에 세워 두기엔 자신을 삼켜버릴 만큼 커서
지워버리고 싶은 그림자처럼 누군가의 따뜻한 눈길을 기다리는 일은
드러내야 하는 건지 드러내면 안 되는 건지,
당신을 옮기는 백지는 별 앞에 어두울 수밖에 없는 밤하늘이 됩니다
꿈꾼 적 없고 정한 적 없이 흘러든 하류라 생각하지만
콘트라바스는 생명의 대지처럼 오케스트라의 모든 소리를 받쳐
묵직하게 멀리까지 울림을 준다고 당신이 그랬습니다
레코드판에 올려 준 브람스를 듣습니다
눈에 띄는 어둠
삐걱대며 땅에 끌 듯 메고 가는 게 악기인지 삶인지
동굴 같은 자리에서 끌어올리는 아픈 짐승의 신음이 심연을 찾아옵니다
어둠을 볼 수 없다면 별들은 보일 것이며
하류가 사라진다면 저 경쾌한 물소리는 무슨 의미일까요
이러한 말들이 오늘 밤 연미복인지 작업복인지를 입고 나간 당
신에게 또 무슨 의미일까 싶지만
스스로를 시시한 연주자라 하듯 시시한 수신자인 나는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최선을 다해 당신을 듣습니다
수없이 쓰지만 아무도 모르게 사라지는
읽혀지고 싶은 편지
무량 어두워야 하는 나의 백지는 쓸 때마다 실패해서
꿈꾼 적 없고 정한 적 없이 바다로 흘러갑니다
콘트라-E음* 보다 낮은 피치카토
한 번도 연주된 적 없는 깊은 저음을 만나러 갑니다
* 콘트라바스가 내는 가장 낮은 음
[전남문학 2024년 가을호에 수록]
첫댓글 좋은 시가 전남문학 가을호에 게재된 것을 축하드립니다.
덕분에 감상 잘 했습니다.
좋은 시를 감상하도록 기회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우리 부회장님께 이렇게 수고를 해 주셨네요~너무 감사드리고😅 회장님께세 응원 댓글 주셔서 가을 햇살처럼 마음이 따사롭습니다🤗 두 분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