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기자봉사단은 2024. 4. 23일 최제우선생님의 유허지에 가기로 했다.
최제우란 이름은 많이 들어서 알지만 이곳 울산에 그가 머물렀다는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놀랐고 한편으로는 기뻤다.
누구나 동학을 모르는 사람이 없고 천도교를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태어난 곳이 경주란 것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가까운 곳에 그가 머물고 명상 수련한 유허지가 있다고 하니 가보지 않을 수가 있으랴
우리 모두는 잠시나마 시간을 내어서 울산시와 후손들이 건설 조성한 이곳을 꼭 와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소식을 전합니다.
위치는 울산광역시 중구 원유곡길 106-1 (수운 최제우 유허지, 동학관) 으로 많은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직접 와 보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정말 좋았다.
울산광역시는 이곳일대를 1997년 역사문화보존지구로 고시하고 기념물 12호로 지정하였다 그 다음해 1998년에는 최제우의 종현손녀인 천도교인 최말란의 기부채납으로 유허비가 건립되었으며, 1999년 비각건립, 2004년 초가⦁ 초당복원공사를 완료했으며, 2015년에는 진입도로 정비도 하고 생활공원으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수운 최제우선생님이 이곳 울산 여시바윗골(유곡동)에 머물러 수행한 계기는 아마도 처가가 울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최제우선생님은 1824년에 태어났다 그러니 올해로 딱 200년이 되었다 이 시점에 이런 글을 쓰게 된 것이 과연 우연인가 필연인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올해가 2024년이니 기억하기 쉽다 1864년에 돌아가셨으니 40년을 살았다.
짧다면 짧은 인생이다. 지금 우리 입장에서는 너무 일찍 가셨기에 아쉽다. 지금은 나날이 수명이 늘어나 80살 90살이상 살고 있어니 얼마나 짧은 생인가 싶다 하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기리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새로운 사상을 만든 것이다.
아마도 영웅 위대한 사람은 어릴때부터 나름 큰 뜻을 품은 사람이라 느껴졌다. 석가도 그렇고 최제우도 그렇다. 자기안위만 생각해서는 이렇게 하지 못한다. 뭇 다른 사람들까지 잘 살기를 바라고 어떻게 하면 그리 될까라는 선근이 깊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보통의 사람들은 자기 이익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에 이런 일을 하지 못한다.
해설을 열심히 해 주신 정의필 선생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그런데 여기 최제우란 이름의 뜻도 알게 되었습니다. 으례 그려려니 하고 있었는데 해설해 주신 선생님께서 수많은 어리석은 중생들을 계몽하기 위해 즉, 제도하기 위해 개명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 신라 시대 원효는 자기를 아래하 보다 못한 미천한 자로 칭하며 복성거사라 했다. 한자 아래 하에서 위의 날 일자를 지우면 복자가 된다. 이렇듯 높이 깨우친 사람일수록 겸손하여 자기를 낮추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길을 제시한 것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
처음 1855년 선생님은 금강산 유점사에서 왔다는 분으로부터 이곳 여싯골에서 천서라는 신비한 책을 받았는데 이때가 을묘년이란 을묘천서라 부른다. 그가 처음 깨달은 내용은 '기도하라'(시천주)였다고 전해진다.
특히 천성산에서 49일기도를 하며 구도를 하였고 마침내 1860년 4월 5일에 첫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해진다.
'오심즉여심' 하느님마음이 사람의 마음과 같다는 말씀.
그 후 그는 고향인 경주 용담정으로 가서 계속 수련한 끝에 동학을 만들었다.
최제우선생님이 동학을 만들어 특히 강조한 것은 마음속에 있는 한울님을 잘 발현시키고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을 통해 지식과 기술을 익히고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마음을 밝히고 회복하자는데 그 뜻을 두었다. 즉, 각자가 하느님마음을 잘 간직하고 산다면 행복한 사람과 좋은 국가가 될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는 처음 하늘로부터 시천주를 들었다고 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마음에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생각이다. 가난하든 몸이 아프든 허드레일을 하든 나이가 어떠하든 관계없고 양반 상놈도 떠나 누구나 마음속에 귀한 하느님이 있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이것을 보더라도 그는 분명 예수 석가처럼 평등을 강조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계급사회 신분사회 물질적 차이와 권력의 불평등 사회에서 그는 과감히 모두 존엄하기에 똑같이 대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말을 한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결국 좌도난정의 죄명으로 참형을 당하여 죽게 된다. 이것은 어찌보면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비슷한 케이스가 아닌가 생각된다.
동학은 후에 천도교로 바뀌며 최제우로부터 2대교주 최시형 3대 손병희 4대 박인호로 이어졌다. 경주에는 천도교 용담성지라고 불리는 용담정이 있기에 다음에 시간을 내어서 한번 가보고자 한다.
최제우로부터 시작하는 동학의 정신은 모두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모두가 한울이고 존엄하다.
그래서 먼저 자기 자신을 자신이 스스로 존엄하게 생각해야 하며, 그 다음에는 남도 똑같이 존엄하게 서로 존중하며 공생을 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결국 손병희선생님에 의해 인내천으로 발전되었다.
손병희 선생님은 사람이 바로 하늘이다. 누구나 다 하늘이기에 똑같이 존중되어야 하며 그런 사회와 국가를 이루기 위해 힘썼다. 고려대의 전신인 보성전문학교와 동덕여대도 관리하는 등...국가 사회를 위해 많은 일을 한 것으로 볼 때
이 동학 천도교는 지금도 유효한 우리의 귀중한 고유사상이자 문화유산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이번 취재를 통해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인간존엄사상을 어린이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켜 어린이의 날을 정하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 방정환선생님이 손병희선생님의 사위였다는 사실을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다시 기억이 나게끔 하였다.
동학은 사후세계보다는 현세를 더 중시여겼고, 이 세상을 억압과 차별 그리고 고통과 불평등이 없는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였다. 죽음을 그들은 다시 돌아간다는 의미로 환원이라고 했다. 지상천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생명들이 다 함께 더불어 잘 살아야 하기에 다시 개벽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정신이라 여겨져서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2024.4.24 감사합니다.
첫댓글 기사가 훌륭합니다.
별 말씀을요
그냥 막 적었어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