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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농어촌사랑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기성농어촌사랑선교회
얼마 전 KBS 사극 ‘대왕 세종’이 막을 내렸다. 이 드라마에서 세종은 훈민정음 창제 과정에서 과로로 자주 앓아눕고, 눈이 흐려지다 말미에선 결국 실명(失明)하게 된다. 이는 드라마상의 설정이 아니라 사실이다.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한 “한 사람의 눈먼 자가 만인의 눈을 뜨게 하였다”는 대사는 시청자에게 감동을 안겨주었다. 드라마는 한글 창제를 위한 열정적인 노력 때문에 세종의 눈이 멀었다고 미화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껏 세종의 실명 원인으로 지목된 질환은 과로로 인한 소갈증, 즉 당뇨병이었다. 당뇨병이 심해지면 합병증으로 망막병증이 생기고 결국 실명에 이르기 때문에 이 같은 유추가 가능하다. 하지만 ‘세종실록’에 나타난 기록을 보면 세종의 눈을 멀게 한 정확한 병명은 강직성 척추염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강직성 척추염은 척추관절뼈의 인대와 건(힘줄)이 유연성을 잃고 딱딱하게 굳으면서 운동성이 제한된다고 해서 붙여진 병명. 류머티즘과 유사하며 보통 청년기 남성에게 발병하는 자가면역성 질병이자 인체의 조직과 기관, 조직과 조직 사이를 이어주는 결합조직에 잘 생기는 전신성 염증 질환이다. 대부분 척추관절을 중심으로 질환이 나타나지만 다른 결합조직에 침범하기도 한다. 눈에 공막염, 포도막염, 홍채염을 유발하며 이외에 근막통증증후군, 천장관절염(고관절염과 유사)도 생긴다. 강직성 척추염의 말기에는 드물지만 마미증후군(요통과 감각이상, 운동마비, 대소변 구별 못함)이 나타나기도 한다. 하지의 저림, 무력증, 발기불능, 요실금 등을 호소하기도 한다. ‘세종실록’의 증거들 세종실록에는 세종이 앓았던 질병명이 기록되어 있다. 풍질, 풍습, 안질, 소갈, 임질, 종기가 대표적인 병명이다. 그중 풍질 풍습은 그가 가장 고통스러워한 질환이다. 풍질은 언뜻 중풍과 관련이 있어 보이지만 세종 24년의 기록에 따르면 건습(蹇濕)으로 표현했다. 건은 절름발이를 뜻하고 습은 관절염의 증후를 가리킨다. 일종의 고관절염에 가깝다. 동의보감에서 풍습은 “뼈마디가 안타깝게 아프거나 오그라들면서 어루만지면 몹시 아프다” 라고 정의했는데 양방으로 말하면 류머티스 관절염과 유사하다. 세종 13년 8월18일 왕은 김종서를 불러들여 자신의 풍질에 대해 설명한다. “내가 풍질을 앓은 까닭을 경은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저번에 경복궁에 있을 적에 이층 창문 앞에서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두 어깨 사이가 찌르는 듯 아팠다. 이튿날 회복되었다가 4,5일을 지나서 또 찌르는 듯이 아프고 지금까지 끊이지 아니하여 드디어 묵은 병이 되었다. 그 아픔으로 30세 전에 매던 띠가 모두 헐거워졌다.” 이 증상은 반복해 나타나므로 일시적인 신경통과 구별되며 강직성 척추염의 근막증후군에 해당한다. 세종 17년, 그는 전형적인 강직성 척추염의 증상을 호소하는데 이 때문에 중국에서 온 사신의 전별연에 불참한다. “내가 궁중에 있을 때는 조금 불편하기는 하나 예(禮)는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지금 등이 굳고 꼿꼿해 굽혔다 폈다 하기가 어렵다.” 세종 21년에 이르러서는 “내가 비록 앓는 병은 없으나 젊을 때부터 근력이 미약하고 또 풍질(蹇濕)로 인한 질환으로 서무를 보기 힘들다”라고 토로하는데 건(蹇)이 절름발이인 점을 감안하면 강직성 척추염의 후유증으로 천장 관절염(고관절염과 유사)이 발병했음을 알 수 있다. 세종은 그해 7월 들어 강직성 척추염의 후유증으로 드디어 눈병이 나게 되고, 그 후부터는 오래 문서를 보는 것을 힘겨워한다. 세종 24년에는 “온정(溫井)에서 목욕을 한 이후 눈병이 더욱 심해졌다”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후 이천과 온양 등지의 온천에서 병을 치료했지만 안질은 더욱 심해지고 눈은 점점 어두워져간다. 세종이 앓은 질병 중에서 안질을 유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질환은 소갈증이다. 세종 21년 “소갈병을 앓아서 하루에 마시는 물이 어찌 한 동이만 되겠는가” 라고 말한다. 소갈증은 현대적 병명으로 당뇨병이다. 당뇨병으로 유발되는 안질은 신생혈관 망막증. 이 질환은 통증 없이 눈이 머는 병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안질과는 다르다. 강직성 척추염으로 생기는 안질 중에는 공막염과 포도막염, 홍채염이 있는데 이들 질병은 통증을 동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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