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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나들길 스크랩 강화 나들길 제 2코스(호국돈대길)
왕마구리 추천 0 조회 17 10.12.08 21:4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강화 나들길 제 2코스(호국돈대길) ▶  

 

▲ 강화 해안가에 정박중인 소형 어선들 

 

 

 

【  걷기일자 】 2010년 2월 13일(토)

【  걷기코스 】강화역사관→더리미장어구이마을 입구→용진진→쉼터정자→용당둔대→화도돈대→오두돈대→광성보입구/┬자삼거리→광성보(광성돈대-쌍충비각-신미순의총-순돌목돈대-용두돈대-광성포대)→정자쉼터→덕진진(남장포대-덕진돈대/경고비)→온수천입구/2차선포장도로(해안도로)→첫번째다리/사거리→두번째다리/┬자삼거리→'전등사입구'/4차선포장도로→온수사거리

【 코스거리 】 약 15.00km

【 소요시간 】 총  7시간 15분 소요(휴식 및 중식: 3시간 18분 포함)/실제 걷기 시간 : 3시간 57분 소요

【 날    씨 】 맑 음(전날 눈이 내려 눈길)

【 교 통 편 】 대중교통 이용

<< 갈 때 >> 제부천시외버스터미널 '소풍'(08:00)→#33번 시외버스/\3,700)→강화 '청소년수련원' 버스정류장앞(09:07)-(도보로 접근)→강화역사관/주차장(09:12)

<< 올 때 >> '온수리'버스정류장(16:53~17:16)-(군내순환버스)→강화시외버스터미널(17:40~18:30)-(#33번 시외버스)→부천시외버스터미널 '소?'(20:00)

 

▷ 대중교통편 안내  

  

* 부천'소풍'시외버스터미널↔강화시외버스터미널 #33번 시외버스(요금:\3,700)

      ①부천발 강화행=>06:20, 08:00, 08:50, 10:40, 12:00, 13:15, 14:30, 16:10, 17:15, 18:35, 20:30, 22:00

      ②강화발 부천행=>04:40, 06:10, 06:40, 08:25, 10:10, 11:25, 12:35, 14:25, 15:15, 16:30, 18:30, 20:00

      <참고> 2010년 2월 19일부터는 시내버스로 전환되어 경기, 인천, 서울 대중교통편과 환승.

  

* 온수 버스정류장→강화시외버스터미널 : 군내버스 수시 운행

 

 

[ 코스탐방 】

이번 강화나들길은 강화지맥을 종주하면서 강화나들길이 지나는 길정저수지 끝의 '고려왕릉길'이란 이정표를 보고 알게 되었으며, 강화군청 홈페이지에서 이를 검색하고 강화나들길을 찾게 되었다.

또한 강화군청 강화관광개발사업소에서 운영하는 Daum 카페 '강화나들길'을 방문하여 구정연휴 첫날 제 2코스 걷기(역사관~초지진)를 한다는 공지를 보고 우선 제 2코스를 먼저 탐방하기로 하였다. 카페 동우회원들은 역사관~덕진진~초지진 코스를 걷게 되지만 덕진진 지나 온수천 입구에서 초지진으로 향하는 동우회원들과 작별하고 제 2코스 정규코스인 온수천을 따라 온수사거리로 향하였다.

이번 코스는 제 1코스의 연미정에서부터 초지진까지 해안을 따라 약 23km에 걸쳐있는 강화외성인 뚝방길을 덕진진까지 걷게 되고, 이후로는 지방2급 하천인 온수천을 따라 길상면 소재지인 온수사거리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번 코스에는 강화외성을 따라 걷게 되어 해안지역에 방어 목적으로 설치해 둔 시설물들인 돈대(용당, 화도, 오두), 포대 그리고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한 성터인 강화 12진보 중 용진진, 광성보, 덕진진 등 3곳을 차례로 지나게 되는 호국돈대의 길이었다.

 

 

 

▲ 강화역사관

 

09:12~09:38=>강화역사관/주차장

     강화역사관 매표소 우측에 제 2코스 안내도와 이정표가 있다.

강화역사관 입구 매표소 앞에서 강화나들길 '안내도'와 '여권'을 받고 강화군청 강화관광개발사업소에서 운영하는 Daum 카페 '강화나들길'의 회원들 정기 걷기에 동참을 하기로 하고, 주차장에서 자판기 커피 한 잔으로 잠시간의 여유를 가지며 오늘 진행할 코스를 안내도를 보며 검토를 해 본다.

구정 연휴 첫 날인데도 인천, 일산, 부천 등 인접 지역에서 온 회원 등 총 15명이 제 2코스 나들길 걷기에 들어갔다.

 

▲ 강화역사관 매표소 옆의 나들길 이정표와 제2코스 안내도

▲ 강화역사관 주차장 끝의 제2코스 나들길 들머리

 

주차장 끝 우측으로 대형 '강화군 관광안내도'가 있는 들머리에서 녹색 철망팬스를 따라 2차선 포장도로인 해안도로로 나가 좌측으로 도로를 따르며 걷기를 시작한다. 도로 우측에 대형 도로 이정표(초지진 13km, 덕진진 11km, 광성보 9km, 신원사지 3km)가 보이는데 이번 '강화나들길' 회원들은 이곳부터 초지진까지 진행을 하기로 되어 있어 끝까지는 함께 하지 못하고 덕진진을 지나 온수천 입구에서 정규코스인 온수사거리까지 가기 위해 이들과 헤어져야만 한다.

 

▲ 해안순환도로를 따라서...

 

도로를 잠시 따르다 좌측 '강화외성' 안내푯말이 있는 곳에서 도로 갓길을 버리고 바닷가를 따라 이어지는 강회외성 뚝방길을 따른다.

 

▲ 강화외성 유적지위로 나있는 뚝방길을 따라서...

▲ 나들길인 뚝방길에서 한강 건너로 조망된 김포 문수산

 

♧ 강화외성(江華外城)

강화외성은 해안방어를 목적으로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축조된 성으로 강화읍 월곳리 연미정(강화나들길 제1코스)에서 길상면 초지진까지 약 23km에 걸쳐 매장되어 있는 상태이다.

강화나들길 제2코스는 이 강화외성이 매장된 강변 뚝방길을 따라 덕진진까지 진행하고, 온수천 입구에서 이 강화외성길을 버리고 온수천을 따라 길상면사무소가 있는 온수사거리까지 이어가게 된다.

 

좌측으로 한강과 철망팬스를 두고 우측으로 해안도로 포장도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뚝방길을 따르면 첫번째 쉼터(09:52~09:55)를 지나 다시 해안도로에 이르게 되는데 길 건너 커다란 입간판이 있는 '더리미장어구이마을'이 있다.

 

▲ 더리미 장어구이마을

 

09:59=>더리미장어구이마을 입구/해안도로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르다 다시 좌측 바닷가를 따라 이어지는 강화외성 뚝방길(10:06)로 들어 이를 진행하고 해안도로에 도착하면 도로 건너로 용진진이 있다.

 

▲ 용진진으로 가는 눈덮인 강회외성 뚝방길

▲ 나들길 표시판이 있는 강변의 갈대밭을 따라서...

▲ 강변의 갈대밭, 한강 그리고 강 건너 조망되는 문수산

▲ 뒤돌아본 갈대밭 사이의 지나온 나들길

 

10:30~10:42=>용진진

♧ 용진진(龍津鎭)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42호

*소재지: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215번지

 

 

 

역사관에서 해안순환도로를 따라 달리다보면 좌측으로 누각을 하나 만날 수 있는데 이것이 용진진이다.

강화군청에서 용진진 문루와 좌강돈을 복원하였으며, 이 문루 남서쪽 10여 가구가 있는 고을이 진터로 추정이 된다.

숙종42년에 설치되었다하며 3개의 돈대를 관장하였습니다. 조선 효종 7년(1656)에 축조된 진으로 본래 병마만호의 관리하에 있었고 군관 24명, 사병 59명, 진군 18명 도합 102명의 병력이 주둔하였으며 포좌 4문, 총좌 26개소의 시설물의 있었다고 한다. 이 진에서는 가리산 돈대, 좌강돈대, 용당돈대 등 3개돈대를 관리하였다. 석축 대부분이 없어지고 홍예 2문만이 남아 있던 것을 1999년 문루를 복원하였다 좌측홍예의 높이는 2.57m, 폭은 4.15m, 두께는 60cm-61cm, 우측 홍예의 높이는 2.14m, 폭은 4.80m, 두께는 50cm-60cm의 규모이며 석재는 대리석이다.

 

     용진진 성벽을 올라 문루와 좌강돈대 등 유적지를 잠시 둘러보고 다시 도로를 건너 해안을 따라 진행을 한다.

 

 

▲ 용진진의 나들길 이정표 

 

▲ 쉼터정자의 나들길 이정표 

 

▲ 해안순환도로 옆 쉼터정자

 

 

▲ 정자쉼터와 용당돈대 사이의 숲길

 

'정자쉼터' 이정푯말과 주차장이 있는 도로변 정자에서 휴식(10:47~10:58)을 취하고 도로를 따르다 KTF 이동통신 기지국이 있는 곳에서 좌측 도로 절개지를 따라 나있는 숲길로 들어 용당돈대로 향한다.

11:08~11:19=>용당돈대

     돈대 중앙에 큰 나무 1그루가 인상적인 돈대이다. 돈대 위에 서면 강 건너로 김포C.C.가 조망이 된다.

 

▲ 용당돈대 중앙의 인상적인 큰 나무 1그루

▲ 용당돈대에서 강 건너로 조망된 김포C.C.

 

♧ 용당돈대

 

 

조선 숙종5년(1679) 강화도 해안 방어를 목적으로 쌓은 49개 돈대중의 하나로 가리산돈대, 좌강돈대와 함께 용진진에 소속되어 있다.

평면 형태로 타원형이며 북서와 남동방향은 강화외성과 연결되어 있었다. 이 돈대는 4개의 포좌가 설치되었으며 내부에는 건물지가 남아 있다.

 

돈대 문을 빠져 나와 좌측의 계단길을 내려서서 잠시 오르면 다시 2차선 해안순환도로에 이르게 된다. 도로를 따라 150여m를 내려가 '강화외성' 안내푯말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강화외성 뚝방길로 향한다.

 

▲ 뚝방길 따라...

▲ 뒤돌아본 지나온 강화외성 뚝방길

 

뚝방길이 끝이 나면 2~3단의 석축 형태만 복원된 넓은 옛 돈대 터가 나타나는데 화도돈대이다.

11:45~11:52=>화도돈대

     화도돈대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내려서면 해안순환도로가 지나고 있는데 도로가에 '불은면' 경계 표지판과 지방2급 하천인 상동암천이 한강과 만나는 함수점에 '화도수문'이 있다.

 

♧ 화도돈대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7호

*소재지: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연리 54

 

▲ 화도돈대

  

  

 

이 돈대는 숙종 5년 (1679)에 유수 윤이제가 해안방어를 튼튼히 하고자 축조한 돈대이다.

화도돈은 경작지가 되어 있어서 원형 추정이 불가능하고 성벽의 석축은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성벽의 뿌리는 어느 정도 남아 있다. 돈대 주위로 외성이 축조되어 있었다. 이 돈대는 석벽터를 기준으로 볼 때 방형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해안 절벽쪽으로 장축을 기대고 있는 면의 길이가 35m이고 다른 면은 32m로 한 면이 약간 짧은 방형에 가까운 형태이다. 서쪽에는 새로이 쌓은 이질적인 석축이 있는데, 이것은 원래의 돈대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돈대지 남쪽 아래에는 고려외성을 가로지르는 물길을 건너는 화도수문과 화도수문개축비가 있다. 과거에는 이 수문을 통하여 큰 배가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2002년 육군박물관에 의뢰하여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복원, 정비되었다.

 

 

▲ 화도수문 

 

▲ 화도수문개축기사비 

 

▷화도수문개축기사비(花島水門改築記事碑)

순조3년(1803)에 세워진 비석으로 화도수문의 개축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조복양(1609~1671)이 석문을 설치하여 조수를 막았고, 영조대에 외성을 축조하면서 다시 수문을 쌓았다는 기사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어 강화도 간척사업과 강화외성의 축조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화도수문 배수장 옆으로 '화도수문개축기사비'가 있으며, 입구에 바랑개비가 설치된 뚝방길을 다시 따른다.

 

▲ 바랑개비가 있는 뚝방길

▲ 오두돈대 직전 뒤돌아본 뚝방길

▲ 오두돈대가는 길

 

12:03~12:11=>오두돈대 

♧ 오두돈대(鰲頭墩臺)

*소재지: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오두리 산1

 

▲ 오두돈대

 

외적의 침입이나 척후활동을 사전에 관찰하고 대비할 목적으로 접경지역 또는 해안지역에 흙이나 돌로 쌓은 소규모의 방어 시설물을 돈대라고 한다.

강화지역에는 숙종5년(1679) 강화 전 해안을 하나의 방위체재하에 운영하고자 돈대를 설치, 운영하게 되었다.

오두돈대는 지형 이름에서 나타나듯이 자라의 머리와 같은 지형에 설치되어 있으며 평면 형태는 원형으로 지름이 32m에 달한다.

돈대 동남쪽으로는 오두정지와 강화전성이 위치한다.

 

     화장실까지 설치되어 있는 입구에서 화장실 좌측의 돌계단길을 올라 잠시 돈대를 둘러보고 직진의 내리막을 내려서면 해안순환도로에 이르게 되고 도로를 따라 200여m를 내려가면 도로가에 쉼터가 있는 소공원이 있다. 소공원 맞은 편에는 도로이정표(초지진 5km, 덕진진 3km, 광성보 2km)가 보인다.

 

▲ 도로가 소공원

▲ 소공원 건너편의 도로 이정표

 

도로 건너에는 몇 개의 단층건물이 있는데 '오두리 국수나라'란 식당이 있어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로 한다.

칼국수로 점심식사(12:14~13:02)를 마치고 도로를 따르다, 좌측 해안가로 빠져나가 축대가 쌓여진 해안가 강화외성 뚝방길을 따른다.

 

 

 

바랑개비가 설치된 곳을 지나면 커다란 송전탑 2개가 연거퍼 나타나고, 이를 지나면(13:18) 잠시 후 돌 축대의 뚝길이 끝(13:23)이 나며 우측으로 갈대가 이어지는 뚝방길이 이어진다.

 

 

정면으로 '바다산책' 모텔이 보이고, 한강이 수로와 만나는 합수점에서 우측으로 수로를 따라 2차선 포장도로로 나가면 '덕성리광성마을'이란 표석과 쉼터가 있는 ┬자 삼거리인 광성보 입구이다.

 

 

▲ 광성보입구 도로삼거리와 이정표

 

13:19~13:32=>광성보입구/도로삼거리

     좌측의 도로를 100여m 정도 따르면 광성보주차장이 나타나고, 매표소를 지나 잠시 오르면 광성보이다.

13:34~14:45=>광성보

    정면으로 성문위 '안해루' 현판이 붙은 누각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광성돈대가 있다.

 

♧ 광성보(廣城堡)

*사적 제227호

*소재지: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33

 

 

강화해협을 지키는 자연 지형이 험한 요새로 강화 12진보의 하나이다. 고려가 몽골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강화로 천도한 후에 돌과 흙을 섞어 해협을 따라 길게 쌓은 성터이다. 불은면 덕성리 해반에 소재하고 있으며, 강화해협과 김포와 마주보고 있다. 화장실 위치가 무기고였다고 전한다. 과거에는 감나무 아래 기와가 수북하였다.

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이곳을 경작하다가 대포탄환을 무더기로 발견하기도 했다고 한다.

광성보는 강화에 여러 진이 설치되기 시작한 1658년에 설치되었는데 1679년 돈대를 쌓을 때 화도돈·오두돈·광성돈이 함께 축조되었다. 1745년(영조 21)에 성을 석성으로 개축하면서 성문을 건립하였는데, 이를 안해루라 하였다.

그후 1679년에 완전한 석성으로 축조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로 통상을 요구하며 강화해협을 거슬러 올라오는 미국 로즈함대를 덕진진, 초지진, 덕포진 등의 포대에서 일제히 사격을 가하여 물리쳤다. 그러나 4월 23일 미국 해병대가 초지진에 상륙하고, 24일에는 덕진진을 점령한 뒤, 여세를 몰아 광성보로 쳐들어왔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어재연 장군을 중심으로 용감히 항전하였으나 열세한 무기로 분전하다가 포로되기를 거부하여 몇 명의 중상자를 제외하고 순국하였다. 이때 어재연 장군과 휘하 전수비군은 용감히 싸우다 장렬히 순국하였는데, 전사한 어재연 장군과 쌍충비와 51명의 순국영령들을 기리기 위한 신미순의총이 광성보에 있다.

 

 

▷ 광성돈대(廣城墩臺)

광성보에 소속된 3곳의 돈대(광성, 용두, 순돌목)중의 하나로 숙종5년(1679) 함경도, 황해도, 강원도의 승군 8,000명과 어영군 4,300명이 40일만에 완공하였다고 한다.

1977년 포좌 4개소와 포 3문이 복원 설치되었다.

대포는 홍이포라고도 하며, 사정거리 700m로서 포알은 화약의 폭발하는 힘으로 날아가나 포알 자체는 폭발하지 않아 위력은 약하다. 병자호란때 사용하였다고 전한다. 소포는 사정거리 300m로서 포알은 대포와 같다. 대포는 조준이 안되나 소포는 조준이 된다. 작은 것은 불랑기라 하며 프랑스군이 쓰던 것이라 한다.

  

 

 

 

 

 

 

 

 

 

 

 

 

▷ 쌍충비(雙忠碑)

1871년 신미양요 때 광성보전투에서 순절한 중군 어재연(1823~1871)외 59명의 순절비이다.

1기는 '광성파수순절비'로 비의 규모는 높이 168cm, 너비 62cm, 두께 25cm의 양면비로 1873년 건립한 것이다.

다른 1기는 어재연과 어재순(1826~1871) 순절비인데 높이 177cm, 너비 58cm, 두께 26.5cm의 양면비로 역시 1873년에 건립되었다. 고종 때부터 제사를 지내왔으며, 1970년부터는 어재연의 후손들이 제사를 올려 충절의 유업을 추모하고 있다.

 

 

 

 

 

 

 

 

 

 

 

▷ 신미순의총(辛未殉義塚)

이곳은 고종8년(1871) 신미양요때 광성보 일대에서 미 해군과 격전하다가 전사한 묘가 있는 곳이다.

당시 중군 어재연 장군과 그의 아우 재순을 비롯하여 군관, 사졸 53인의 전사자중 어재연 형제는 고향인 충북 음성군 대소면 성본리에 안장하고, 남은 군졸 51인은 신원을 분별할 수 없어 7기의 분묘에 합장하여 그 순절을 기리고 있는 것이다.

광성보 전투에서 조선군은 최후의 한명까지도 포로되기를 거부하고 비겁하게 물러서지 않았으니, 외침에 대항하여 나라를 지키려는 우리 민족의 살신호국 정신을 보여준 곳이다.

 

  

 

▲ 광성보 입구에서 용두와 손돌목돈대로 가는 나들길인 송림숲길

 

우측으로 숲길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쌍충비각'과 '신미순의총'을 지나 손돌목돈대와 용두돈대 갈림길에 이르게 된다.

우측의 손돌목돈대에 올라 참석자들이 시낭송 시간을 가지며 역사 현장 체험과 더불어 문화 체험까지 경험하게 된다.

용두돈대와 광성포대 갈림길에서 직진의 길을 따라 복원된 성벽을 따라 용두돈대에서 손돌목에 얼킨 전설을 회상하며 강화 광성보와 김포 덕포진 사이의 조수의 흐름이 가장 빠르다는 손돌목 해변을 바라본다.

 

 

▷ 손돌목돈대

손돌목돈대는 조선 숙종5년(1679)에 축조된 돈대로 원래 중앙에 3칸의 무기고가 있었고, 포좌 3개가 있었다.

돈대 넓이는 778㎡에 성곽길이는 108m이다.

고종8년(1871) 신미양요 때 미국 해군과 치열한 백병전이 벌어졌던 현장이다.

 

 

(손돌목의 유래) 강화도는 한강 입구에 있는 섬이다. 그러나 여는 섬과는 달리 육지와의 사이를 흐르는 물길이 빠르고 또한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심해서 여간 숙련되지 않은 뱃사공은 이 물길을 함부로 건너지 못했다.

인조5년(1627) 후금(후에 청)이 쳐들어 왔을 때 임금이 서둘러 강화도 피난길에 나섰을 때 손돌이 길 안내를 맡았다. 그러나 강화도로 가는 뱃길은 험하여 급한 물살과 그에 따라 뒤집힐 것 같은 배는 임금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나 손돌은 태연하게 노를 저어 점점 더 험한 물살의 가운데로 배를 몰아 갔다.

임금은 속으로 '이 뱃사공이 나를 죽이기 위해 배를 이곳으로 모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손돌을 죽이라고 명을 내렸다.

손돌은 죽기전에 "제가 띄우는 바가지가 흘러가는 곳으로 배를 몰고 가십시오. 그러면 안전하게 강화도에 도착할 것입니다."라 말하였다. 손돌은 죽었고 바가지가 흘러가는 곳을 따라 가던 배는 강화도에 도착을 했고, 임금이 강화에 발을 내딛자 바람이 세차게 불었고 물길은 더욱 험해졌다.

임금은 "으음 내가 손돌을 의심하였구나. 나의 잘못이다. 손돌의 시신을 잘 거두어 후하게 장사를 지내도록 하라" 말하였다. 지금 강화도의 광성보에서 마주 보이는 김포의 덕포진(대곶면 신안리)에 선돌의 무덤이 있다.

사람들은 이 물길을 손돌의 목을 벤 곳이라 하여 '손돌목'이라 부른다. 손돌이 죽은 음력 10월 20일에는 큰 바람이 분다고 한다.

이를 손돌의 한숨, 손돌바람, 손돌추위라 한다.

 

▲ ↖용두돈대와 ↗손돌목돈대가는 갈림길

▲ 용두돈대가는 길 

 

▷ 용두돈대(龍頭墩臺)

용두돈대는 강화해협을 지키던 천연요새로서 손돌목돈대에 속해 있는 외곽 초소겸 포대이다.

고종8년(1871) 포대가 설치되면서 정비된 곳으로 1977년 강화 전적지 정화보수사업을 하면서 용두돈대라 부르게 되었다.

병인, 신미양요 때 치열한 포격전이 벌어졌던 현장이며, 1977년 성곽을 복원하면서 강화 전적지 정화기념비를 세웠다.

 

▲ 용두돈대에서 뒤돌아본 전경

▲ ↑용두돈대와 →광성포대, 덕진진가는 갈림길

 

 

 

 

 

 

 

 

▷ 광성포대

광성포대는 조선 후기 강화도 해안수비를 위해 설치된 방어시설 가운데 하나이다.

국방 강화책으로 숙종(1675~1725)은 강화도내에 내성, 외성, 12진보, 53돈대 등을 축조하여 요새화를 이루었으나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거치면서 화력을 증가시키는 일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함에 따라 고종11년(1874) 용진진,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에 포대를 설치하였다.

광성포대는 손돌목돈대 주변 3곳에 설치되었으며, 각각 9좌, 4좌, 3좌의 포좌를 갖추고 있었으며, 이중 규모가 큰 중앙포대는 길이 80m, 포좌의 크기 약 6m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1875년 운양호 사건을 계기로 외세에 문호를 개방함에 따라 파괴되었던 것을 2004년 발굴조사를 실시, 유적이 확인되어 복원, 정비하였다.

 

 

 

▲ 용두돈대와 광성포대 갈림길의 이정표와 안내도 

 

▲ 광성포대 입구의 이정표 

 

'→덕진진'이란 강화나들길 이정표가 설치된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광성포대 위의 나들길을 따라 덕진진으로 향한다.

 

▲ 해안선의 성곽과 포대들

▲ 광성포대위 나들길

 

▲ 덕진진으로 이어지는 숲길

 

숲길을 빠져 나가면 우측으로 녹색 철망팬스가 나타나는 넓은 임도를 완만하게 내려가 다시 2차선 포장도로인 해안순환도로에 이른다.

 

 

▲ 숲속의 나들길 표식기 

 

▲ 전신주의 나들길 안내표식 

 

14:56=>해안순환도로

     좌측으로 눈덮인 자전거전용도로를 약 2분 정도를 따라 내려가다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해안변의 나들길을 이어가면 정면 1시 방향으로 해안순환도로변에 위치한 자동차 모형의 집이 보이는 곳에 정자쉼터(15:16~15:28)가 있다.

 

 

▲ 갈대밭이 펼쳐지는 갯벌 옆 뚝방 나들길을 따라서...

▲ 나들길에서 바라본 갈대밭, 한강 그리고 초지대교

▲ 뒤돌아본 지나온 갈대밭 사이의 나들길

▲ 정자쉼터

▲ 정자쉼터에서 조망된 해안순환도로가의 자동차 모형의 집

▲ 정자쉼터 아래 강가 전경

 

커피 한 잔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약 7분여를 더 해안길을 따르면 덕진진에 이르게 된다.

15:35~15:38=>덕진진 

 

 

 

 

 

 

 

 

 

 

♧ 덕진진(德津鎭)

*사적 제226호

*소재지: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46

조선시대 강화해협을 지키는 요충지로 원래는 수영에 속한 진이었다.

덕진돈, 남장포대 등이 모두 덕진진에 소속되어 있었으며, 숙종5년(1679)에 설치되었다.

병인양요(1866) 때는 양현수 장군의 부대가 밤을 틈타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에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였다. 덕진진의 성문인 공조루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만 남아 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했다.

 

 

 

 

 

 

 

 

 

 

 

 

 

 

 

▷ 남장포대(南障砲臺)

덕진진에 소속된 포대로 강화의 8개 포대중 하나이며 대포 10문이 설치되어 있었으며 고종8년(1871) 신미양요 때 덕진포대와 함께 미국 아세아 함대와 맹렬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던 곳이다.

성첩과 시설물들은 이때 모두 파괴되었는데 1977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 덕진돈대(德津墩臺)

덕진돈대는 덕진진에 소속된 2개 돈대중 하나이다.

북쪽의 광성보와 남쪽의 초지진 중간에 위치하여 강화 수로의 가장 중요한 요새지이기도 하다.

신미양요(1871) 당시 미국 함대와 48시간 동안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였는데 이 때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였다.

  

▷ 경고비(警告碑)

*향토유적 제9호

조선 고종4년(1876)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강화 덕진첨사가 건립한 것으로 개화기에 외국선박의 출입을 통제하겠다는 척화의 의지를 담고 있는 비이다.

비의 크기는 높이 147cm, 너비 54.5cm, 두께 28cm로 정면에는 '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해수방수타국선신물과)'라고 각인되어 있다.

 

 

 

▲ 남장포대에 설치된 대포 

 

▲ 경고비 

 

▲ 덕진돈대에서 바라다본 남장포대

 

     덕진진내 남장포대를 지나 덕진돈대(15:44~15:47)에 오르면 돈대 아래 해안가 절벽위에 '경고비'가 보인다.

 

 

▲ 온수천이 한강과 만나는 두물머리

▲ 온수천과 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갯벌

 

돈대 지나 경고비 푯말 옆 내리막을 내려가면 온수천과 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인 갯벌에 이르게 되는데 좌측에 지방 2급하천인 온수천 수로를 두고 넓은 길을 따라 나가면 해안순환도로인 2차선 포장도로에 이르게 된다.

 

▲ 온수천 표지판이 있는 해안순환도로

▲ 온수천을 따라 진행하게 되는 ├자 갈림길

▲ 온수천갈림길의 이정표와 강화나들길 안내도

 

15:56~16:00=>해안순환도로/온수천 입구

     도로 좌측으로 온수천위 다리를 건너 포장도로를 잠시 따르면 초지진으로 향하는 나들길이 이어지는 해안 뚝방길 방향인 좌측으로 갈라지는 ┤자 갈림길. 이곳에서 초지진으로 향하는 동우회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정규 제 2코스인 온수천을 따르기 위해 도로를 건너 ├자 갈림길로 간다. 

 

 

 

▲ 온수천 옆을 끼고 진행하는 나들길

 

입구에 이정표와 제 2코스 안내도가 있다. 눈이 내려 빙판을 이루는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는 온수천을 우측에 두고 진행을 한다.

 

▲ 첫번째 다리가 지나는 사거리

16:11=>첫번째 온수천다리가 지나는 사거리 

▲ 두번째 다리가 지나는 삼거리

 

16:34~16:36=>두번째 온수천다리가 지나는 ┬자 삼거리

     온수천과 또 다른 개천이 만나는 함수점이다. 이곳에서 좌측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약 150m여를 따르면 우측으로 시멘트 다리가 보이면서 개천과 이별을 고한다. 직진의 도로를 따르면 도로삼거리(16:42). 우측의 '길상로'를 따르면 좌측으로 저층 아파트가 나타나며 정면으로 온수리 시가지가 가까이로 성큼 다가와 선다.

온수 중앙감리교회가 있는 Y자 갈림길(16:48)에서 우측의 마을길을 내려가면 '전등사입구' 도로 이정표와 신호등이 설치된 횡단보도가 있는 4차선 포장도로에 이르게 된다.(16:50)

 

 

▲ '전등사입구' 도로 이정표가 있는 4차선 포장도로

 

횡단보도를 건너 골목길을 빠져 나가면 2차선 포장도로 길 건너 농협 길상지점이 보이고 그 옆으로 옛 터미널 자리였던 커다란 공터가 보인다.

우측으로 잠시 도로를 따르면 제 2코스 종착지임을 알리는 나들길 이정표가 있고, 버스 정류장이 나타난다. 우측으로 오늘의 종착지임을 알 수 있는 사거리에 '온수사거리' 도로 이정표가 보인다.

 

 

▲ 온수사거리

 

16:53~17:16=>온수사거리

     제 2코스 종착지 완주도장을 받기 위해 버스 정류장 건너 훼미리마트에 둘러 여권에 도장을 찍으려 하니 제 2코스 완주도장은 없고, 제 3코스 출발도장만 보관을 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포기를 하고 버스정류장에서 대기를 하고 있다 강화터미널행 순환버스에 오르며 제 2코스 첫 강화나들길 탐방을 마무리 한다.

 

 

 ▲ 버스정류장

 

▲ 제2코스 종착지인 온수사거리의 이정표 

 

강화버스터미널에서 부천행 버스를 기다리다 관광안내소에 둘러 제 2코스 완주도장을 지정된 장소에서 찍을 수 없었음을 확인해 보지만 직원은 연휴라 없고 대신 공익요원이 근무중이라 제대로 알지를 못해 이곳 관광안내소에 보관중인 제 5코스 완주도장으로 이를 대신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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