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동(佳川洞), 내(川)가 아름다운 마을
개관
가천동은 수성구 고산2동의 법정동이다. 대덕산(大德山)에서 북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솔정 고개(삼성라이온즈파크 인근)를 지나 천을산(天乙山·130m)을 만든 후 금호강 앞에서 멈춘다. 이 천을산 북쪽 산자락에 자리한 마을이 가천동이다. 가천동은 아름다운 강마을로 마을 북쪽으로 금호강7)이 동에서 서로 휘어져 흐른다. 가천은 금호강이 만든 비옥한 충적평야를 중심으로 주로 논농사가 발달했다. 그래서 예로부터 고산지역에는 ‘1가천 2매호’, “가천 땅 한 평은 노변 땅 열 평하고도 안 바꾼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7)금호강을 경산읍지에는 ‘황율천(黃栗川)’으로 기록하고 있다.
가천동은 고모동 남동쪽에 있다. 마을 북쪽에는 금호강, 경부선, 고속철, 동쪽에는 기차 화물터미널인 가천역과 대구·부산고속도로, 남쪽에는 군부대가 있어 마을이 고립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마을과 군부대 사이에 고모로가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가천동은 조선시대 이래로 아산 장씨(牙山蔣氏)가 많이 거주했다.
지명 유래
가천동에는 여러 지명 유래가 있다. 금호강의 맑은 물과 주변 경치가 아름다워 ‘가천동(佳川洞)’이 됐다는 설8), 옛날 장뚝못(장태못)9) 골짜기에서 시작된 시냇물이 맑고 좋아 가천동이 됐다는 설10), 여러 갈래로 내가 흘러 ‘가리내리’, ‘가내리’로 불렀다는 설 등이다.11) 또 마을 동쪽 선창바위에서 바라보는 금호강 풍경이 아름다워 가천동이 됐다는 설도 있다.12)
8)김광순, 한국구비문학Ⅰ, 국학자료원, 2001, 170쪽.
9)수성구 가천동 569. 고산농협 창고와 가천마을 사이 고모로 서쪽에 있는 못.
10)2001년도 고산전화번호부, 180쪽.
11)수성구립 고산도서관, 고산, 비밀의 성산(城山), 2022, 76쪽.
12)지리연구소, 지명조사철, 1959.
가천동은 경산현읍지(1785)에는 가리내리(加里乃里)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에는 가천리(可川里), 가리내리(可里乃里), 가천(加川), 가내(加乃)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가천(佳川)이란 마을 이름은 「지방지도」(1872)에 처음 나타난다. 원래 마을 이름인 가리내리(加里乃里)의 ‘가리내’는 ‘갈라지는 내’를 표기한 것이다. 마을이 남천과 금호강이 합수(合水)해 물길이 갈라지는 곳에 있어 붙인 이름이라 할 수 있다. 또 마을이 금호강변에 있어 우리말 ‘냇가’를 표기한 냇가(乃可), 천가(川可)의 앞뒤 글자를 바꿔 가천동(可川洞)이라 했다가, 나중에 가(可) 자를 좀 더 좋은 의미를 지닌 아름다울 가(佳)로 바꿔 가천동(佳川洞)이 됐다고도 볼 수 있다.
개답
가천동 북서쪽에 있는 금호강 하천변 들로 개흙13)으로 된 들이다.
13)갯바닥이나 늪 바닥에 있는 거무스름하고 미끈미끈한 고운 흙. 유기물이 뒤섞여 있어 거름으로도 쓴다. '개펄'은 '갯가의 개흙 깔린 벌판'을 이르는 말이고, '갯벌'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모래톱 또는 그 주변의 넓은 땅'을 이르는 말이다(표준국어대사전).
광역사(廣域沙)
광역사는 가천동의 지명으로 지금의 가천역 부근으로 추정된다. 옛날 이곳에 커다란 못이 있었고 못에 살던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지금은 메워져 못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이곳은 남천과 금호강이 합수하는 지역으로 두 강의 범람으로 인해 모래가 넓게 쌓여 ‘넓은 모래밭’(廣域沙)이란 뜻에서 붙은 지명이다. 이 지역에 경부선이 부설되고 금호강 제방이 만들어지면서 광역사는 논으로 활용됐다가, 지금은 가천역과 철도부지 및 수성구민 운동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1980년대 지도에는 광역사 지역을 철로를 기준으로 북쪽을 ‘가천갯벌’, 남쪽을 ‘듬밑에들’로 표기하고 있다. 한편 토박이 구술에 의하면 마을 북서쪽 들판 가운데 작은 못이 있었고, 그 주변 들을 광역사라 불렀다고도 한다. 1980-90년대 지도에는 광역사는 밭과 과수원, 듬밑에들은 과수원으로 표시하고 있다.
너븐등
마을 남동쪽에 있는 넓은 등성으로 가천동과 증심사 사이 산등성이다. 천을산 정상 서쪽 등성으로 해발 100-120m 정도 된다.
당골
마을 서쪽 당산나무가 있었던 골짜기로 지금은 군수사령부 영내에 있다. 옛날에는 정월대보름에 당산나무에서 당제를 지냈다고 한다. 1954년 항공사진에 나무가 우거진 당숲과 당골이 보인다. 군수사령부 안쪽인데 현 주소로는 수성구 가천동 778번지로 추정된다.
뚝밭
마을 북쪽으로 흐르는 금호강 제방과 마을 사이에 있는 밭이다.
말미골
말미골은 가천동의 자연부락으로 마을 서쪽 끝부분 수양버들 숲이 있었던 곳이다. 옛날에 원님이 살면서 말을 묶고 먹이를 먹이던 곳이라고 전한다. 또 다른 설로는 산골짜기 끝(말미)에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도 한다. 1954년 항공사진에도 가천동 서쪽 들판 가운데에 북동쪽에서 남서쪽으로 길쭉하게 늘어져 있는 숲이 보인다. 지금의 수성구 가천동 619번지로 추정되며, 지금의 지번 역시 북동에서 남동으로 길쭉하게 되어 있다. 지금은 군수사령부 영내이며 수양버들 숲은 사라지고 없다.
선창바위·선창바우·이기둠·여기암
선창바우는 가천마을 동쪽 산자락 끝에 있는 바위 절벽으로 금호강 쪽으로 돌출해 있다. 이 바위 아래에 배를 띄우던 선창이 있어 선창바위라 불렀다고 한다. 선창바위는 수십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넓어 길손이나 마을 사람들이 바위에 앉아 휴식을 취하곤 했다. 선창바위에서 바라보는 금호강 풍경이 아름다워 이 동네를 가천동이라 불렀다는 지명유래도 전한다.14) 다른 말로 ‘이기둠’ 또는 ‘여기암’으로도 불렀다.
14) 지리연구소, 지명조사철, 1959..
시전곡·장터골·사정고개
가천 마을 남쪽에서 시지동으로 넘어 다니던 고개로 지금은 대구·부산고속도로와 고모로가 통과하고 있다. 마을에서 장뚝못(장태못·가천소류지)까지를 장터골·시전골이라 불렀고, 장뚝못에서 지금의 달구벌대로까지를 사정고개라고 불렀다.
원당골
원당골은 가천동 자연부락으로 옛날 원님이 살았던 곳이라고 전한다. 가천동 제일 북쪽에 있었는데 지금의 안성사 북쪽이다. 원당골(員堂谷)은 원당골(元堂谷)의 잘못된 표기로 보이며, 처음 마을이 형성된 곳이기 때문에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천을산(天乙山)·광대산
가천동에 있는 산으로 해발 고도는 121m다. 천을산의 천을(天乙)은 천일(天一)과 통하는데, 북극성 근처 별 중 하나인 천일성(天一星)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현재 천을산은 소나무 군락이 형성되어 있으며 접근성이 좋아 자연 체험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대구광역시는 2017년 국토통상부 개발제한구역 환경문화사업에 공모해 5억 원을 받아 천을산에 ‘해맞이 동산’을 조성했다. 수성구청은 매년 1월 1일 천을산 정상에서 해맞이 행사를 개최한다. 이때 판소리, 사물놀이를 시작으로 만사형통을 기리는 대북 타고와 기원무 공연 등이 열린다. 신년 축하 메시지와 소원지를 풍선에 실어 날리는 소원 성취 퍼포먼스 등도 실시한다.15) 옛날 가천동 주민들은 천을산을 ‘광대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15) 네이버 지식백과, 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