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공정”의 산실
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센터를 찾아서...
오늘 북경은 뿌옇게 흐린 하늘이 앞을 가리는 날씨입니다. 며칠 동안 계속되던 한낮의 무더위도 이제는 한풀 꺾이고, 조금은 쌀쌀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고 있습니다. 탁한 공기 때문인지 칼칼해진 목을 축이기 위해 우리 블로그 부부는 지금 따뜻한 차를 한 잔 마시고 있습니다.
지난 주 일요일, 우리 블로그 부부는 오랜만에 북경 시내 나들이를 다녀왔습니다.
우리 동네 바로 앞에서 정차하는 시내버스를 타고, 동직문(東直門) 전철역에서 내려 다시 지하철로 갈아타고 왕부정(王府井) 전철역에서 하차를 하였습니다. 바로 “동북공정”의 산실인 중국사회과학원(中國社會科學院) 변강사지연구센터(邊疆史地硏究中心)로 찾아가기 위함이었지요.
중국사회과학원은 1977년에 건립된 중국 국무원 산하의 학술연구기관으로, 현재 32개의 연구소와 3개의 연구센터 등으로 나뉘어져 있답니다. 정부의 전액 지원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3,000여 명에 달하는 전문 연구원들이 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개별적인 연구 활동과 자료 수집, 학술 교류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문 연구원들의 연구 성과와 학술 관점은 국가의 정책 결정에 있어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당수의 연구원들이 국가 정책 자문위원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고 하네요.
한편, 중국사회과학원 산하에 연구생원(硏究生院 - 대학원)을 별도로 두어 연구생들의 교육을 주로 담당하며, 미래의 전문 연구 인력을 배양하는 데에 힘쓰고 있답니다.
이 연구 기관은 각 분야별로 연구소가 분리되어 있고, 심지어 각기 다른 장소에 분산이 되어 있답니다. 그리고 북경 외에도 각 지방마다 그 지방 정부 관할의 사회과학원이 설치되어 있어, 전국적으로 사회과학원의 네트워크가 상당히 발달되어 있지요.
각 각의 연구소에는 그 분야의 전문 서적들을 모아둔 도서관들이 산재해 있답니다. 그러다 최근 건국문(建國門)에 위치한 중국사회과학원 중앙청사 옆에 종합도서관을 신축하여 그동안 흩어져 있던 자료들을 옮겨와 통합하는 과정 중에 있다고 합니다. 소장하고 있는 도서가 자그마치 500만 여 권이나 된다고 하네요. 그 중에서 역사와 문학, 철학 방면의 희귀본 고서(古書)들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하니, 그 분야의 연구자들이 환영할 만한 연구 공간과 환경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참고로, 중국사회과학원은 북경 건국문(建國門) 지역에 중앙청사를 가지고 있으며, 연구생원은 왕징(望京) 지역에 위치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각 각의 연구 기관들은 북경의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어, “변강사지연구센터(邊疆史地硏究中心)”를 찾아가기 위해 우리 블로그 부부는 왕푸징(王府井) 의 어느 골목을 헤매고 다녔지요. 그러다 마침 공사 중인 커다란 건물 옆으로 조그맣게 나있는 “똥창후통(東廠胡同 - 왕푸징 부근의 어느 골목 이름)”으로 들어가서야 지금 한창 한국과 중국 간에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동북공정”의 산실인 “변강사지연구센터(邊疆史地硏究中心)”를 발견할 수가 있었답니다.
1983년에 설립된 “변강사지연구센터(邊疆史地硏究中心)”는 중국사회과학원 산하 3개 연구센터 중의 하나로, 현재 “고구려 역사 왜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 - 동북 프로젝트)”을 주도하는 연구기관입니다.
“동북공정(東北工程)”의 정식 명칭은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으로, 동북 변방 지역의 역사와 현황을 연구하는 5년 계획의 대형 프로젝트를 말합니다. 2002년 2월에 정식으로 출범한 “동북공정”은 중국사회과학원의 주도로 흑룡강성(黑龍江省), 요녕성(遼寧省), 길림성(吉林省) 등 동북 3성(省)의 지방정부와 사회과학원, 그리고 고등 교육기관 등이 함께 참여하여 자료 수집, 번역, 연구 등 세 가지 과제로 나누어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동북지방사(東北地方史) 연구, 동북민족사(東北民族史) 연구, 고조선ㆍ고구려ㆍ발해사 연구, 중조관계사(中朝關係史) 연구, 동북 변방지역의 사회 안정 전략 연구, 한반도 형세 변화 및 그것이 동북 변방지역 안정에 미치는 영향 연구 등 상당수가 한반도와 접경한 동북 변방지역 연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항간에서는 한반도의 통일에 대비하여 동북 3성 조선족 자치구의 중국 분리 운동을 조기에 차단하려는 중국 정부의 장기 전략 중의 하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한 가지 예를 들자면, 티베트와 신강(新疆) 위구르 자치구의 격렬한 독립 분리 운동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 정부는 “동북공정”에 앞서 이미 “서북공정”과 “서남공정” 등을 실행한 바가 있습니다. 당시에도 그 지역의 역사, 고고학 연구를 우선으로 역사 유적지의 관광지화, 유전(油田)개발, 철도 개통 등의 대대적인 국책 사업을 진행해온 바가 있답니다. 그래서 이번 “동북공정”은 위의 선례(先例)를 이어받은 제 3 의 프로젝트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고구려 역사 왜곡"과 "백두산 관광지 개발" 등의 사업 역시 위의 과정을 밟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한국과 중국 간의 “동북공정”에 관한 각기 다른 입장이 학계와 정계는 물론, 많은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한국의 학계에서는 정확한 역사와 고고학 자료를 근거로 하여 중국식의 “정책화된 학술 연구”가 아닌 정치적인 색채를 배제한 순수 학술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과 정계에서는 국가 간의 외교문제가 걸려있는 민감한 사안(事案)인지라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고 있으며, 국민들은 언론에 의해 형성된 애국주의 여론으로 한창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그럼, 중국에서는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요?
중국 언론의 공식적인 보도에 의하면, 현재 중국사회과학원에서 주도하고 있는 “동북공정”은 정치성이 배제된 순수 학술 연구 프로젝트이며, 만약 본 프로젝트로 인해 주변국과의 외교 문제에 있어 마찰이 생긴다면 신중하게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답니다.
하지만 “변강사지연구센터(邊疆史地硏究中心)”가 공식 사이트를 통해 밝힌 “동북공정”의 취지와 태도, 그리고 연구 방향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반된 견해를 피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동북공정”을 수행함에 있어서 “역사 문제의 학술화”와 “학술 문제의 정치화”를 피해야 하고, 학술 연구가 정책 결정의 기초는 될 수 있을지언정 학술 연구 자체가 국가의 정책이 될 수는 없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 통일과 민족 단결을 위한 정치 의식을 가지고 현재 동북아 지역의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여 앞으로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전략적인 연구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는 점에서는 모순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중국 네티즌들의 반응 역시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자국의 역사를 보호하고 국익을 챙기자는 관점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단오절”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 문제를 둘러싸고 한국과 벌였던 분쟁을 잊어서는 안 되며, 한국 사람들의 자국문화 보호의식과 애국심을 본받아야 한다는 각성의 목소리도 들려옵니다. 그래서 최근 한국에서 방영 중에 있는 “주몽” 역사 드라마를 예로 들면서, 한국에서는 고구려에 관한 역사의식 고취를 위해 대중문화 영역에서도 노력하고 있다고 자성하기도 합니다.
오늘도 서두가 너무 길었네요.
그럼, “동북공정”의 산실인 “변강사지연구센터(邊疆史地硏究中心)”로 한 번 들어가 보실까요?

“변강사지연구센터(邊疆史地硏究中心)”가 위치한 “똥창후통(東廠胡同 - 왕푸징 부근의 어느 골목 이름)” 입구의 표지판.
이 골목으로 100 미터 정도 들어가면 오른쪽에 연구센터 팻말이 걸려 있는 입구를 쉽게 발견할 수 있지요.

입구 오른쪽에는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近代史) 연구소" 팻말이, 왼쪽에는 "세계역사(世界歷史) 연구소"와 “변강사지연구센터(邊疆史地硏究中心)” 팻말이 걸려 있네요. 고고학 연구소도 이곳에 있지요.

“변강사지연구센터(邊疆史地硏究中心)”라는 팻말을 보고 입구로 들어서니, 정작 연구센터는 보이지 않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문들이 잠겨 있더군요. 입구의 경비원에게 물어보니, 연구센터는 밖으로 나가 옆 골목 안으로 다시 들어가야 한다더군요.

“변강사지연구센터(邊疆史地硏究中心)” 입구 표지판 앞에는 중국 CCTV (중앙방송국)에서 촬영 나온 취재 차량이 마침 진을 치고 있더군요. 중국에서도 이슈가 되는 문제인지, 방송국이나 언론에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나 봅니다. 하지만 의외로 썰렁한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이분은 운전 기사이신 것 같은데, 느긋하게 자리 잡고 앉아 신문을 보고 있습니다. 차안에 각종 생필품이 있는 것으로 보아 혹 이곳에서 계속 진을 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게 합니다.
모르죠? 혹 "동북공정"과 관련하여 큰 특종을 잡을지...

연구소 입구 왼쪽으로 작은 골목이 있는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변강사지연구센터(邊疆史地硏究中心)”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없네요. 골목 입구에는 “베이징 야스쥐 짜오따이쑤오(北京雅士居招待所)”라는 간판만 커다랗게 눈에 띄네요.
참고로, 초대소(招待所)란 관공서나 공장, 학교 등에 속한 숙박 시설을 말하지요. 이 초대소는 이름처럼 “품위 있는 신사가 거주하는 곳”인가 봅니다. 하하~

사실, 우리 블로그 부부 역시 굉장한 기대를 하고 “변강사지연구센터(邊疆史地硏究中心)”를 찾아갔습니다. 하지만 주말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들리는 소문대로 “동북공정”을 주도하는 연구원들이 모두 동북 지역으로 출장을 떠나서 그런지 의외로 한적하고 조용했답니다.
지금 한창 한국과 중국에서 이슈가 되는 1,500 만 위안(약 20 억 원)의 예산으로 진행되는 대형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을 진행하고 있는 장소라고 생각하기에는 좀 초라한 느낌마저 들 정도였답니다.

입구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가 왠지 쓸쓸해 보이네요.
주말이어서 그런지 문이 닫혀 있었지만, 입구를 지키는 경비원 할아버지께 말씀을 드리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할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연구원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 출근을 한다고 합니다.


“변강사지연구센터(邊疆史地硏究中心)” 내부 전경.
내부는 중국 전통 가옥 양식으로 꾸며져 있네요. 한 쪽에는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이 있고, 2층으로 올라서면 “동북공정” 사무실이 다른 분야의 연구 사무실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계단을 올라가서 바로 왼편으로 보이는 사무실이 “똥베이꽁청 빤꽁스(東北工程辦公室)”입니다. 이곳에서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진행되나 봅니다.
최근 언론매체에 의하면 노무현 대통령과 후진타오 주석이 회담을 나누었고, 그 여파인지 “동북공정”이 완료되었다는 이야기가 항간에 들리곤 합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앞으로 어떠한 형식의 연구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밖으로 나오니, 주변에는 역사가 오래된 좁은 골목들이 미로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2008년 북경 올림픽을 맞이하여 도시 정비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공사들이 골목에 들어서 있는 오래된 집과 담장들을 허물고 있습니다.

중국의 어떤 예술가는 위의 사진 속에서 보이는 담장에 쓰여 있는 “차이(拆 - 뜯다. 해체하다. 헐다)”라는 단어를 중국의 영문 표현인 "차이나(China)"에 빗대어, 현재 북경의 여기저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해체(解體)의 현장"을 격렬하게 비판하기도 했지요. 주변의 거주 환경뿐만 아니라 오랜 역사적 전통에 기반을 두고 있는 정신 문화까지 갈기갈기 해체되어 가는 중국의 현실을 가슴아파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