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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아트 매거진-아띠마 원문보기 글쓴이: 아트 매거진
민병완 소설가
---제45회 인터넷문학상 수상 특집
---[문학사랑] 2012년 겨울호 수록
∙ 1952년 충북 진천에서 태어났으며, 《주간종교》에서 창간 1주년 기념으로 공모한 중편소설에 『열망의 강』이 입선되면서 문학과 인연을 맺었다. 그 이후 《카톨릭시보》의 중편소설 현상공모에서 『생명의 여울』로 입선되고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풍화기』가 입선되었다. 또한 단편소설 『닫힌 밤 열린 꿈』으로 계간 《우리문학》의 신인 추천을 받았고, 월간 《문학세계》에서 『비석』으로 신인 문학상에 당선되었다. 중·단편 소설을 묶어 『그림자 그리고 아내의 괴벽』이라는 책을 냈고, 장편소설 『잠든 자의 하늘에는 별이 뜨지 않는다』로 두 번째 책을, 장편소설 『기러기가 그린 수채화』로 세 번째 책을, 장편소설 『우상의 그림자』로 네 번째 책을 냈다.
*수상소감
상(賞)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과거 공적에 대한 찬사와 보답을 통해 수상자를 격려하고 그 공적을 널리 알려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도록 함으로써 좋은 일을 확산시킨다는 점입니다. 둘째는 비록 내세울 만한 큰 공적은 없으나 앞으로 더 열심히 하여 나이에 걸맞는 역할을 하라는 당부와 채찍의 의미입니다. 나의 경우는 후자가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 소감이 민망하고 부끄럽습니다.
정보통신의 시대답게 우리는 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우리 생활 곳곳에 들어와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에 문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피할 수 없다면 잘 활용하는 게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들의 책무라고 믿습니다.
아무쪼록 이번 기회에 문학이 인터넷과 연계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완벽한 촉매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부족한 사람에게 상을 주신 리헌석 회장님과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리며 문학사랑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 자선 대표작--수필
=====진달래=====
내가 산행을 통해 보고 생각하며 느끼기 위하여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지가 이제 한 달이 되었다.
4월 16일. 오늘 일정으로 잡은 백두대간 구간은 작점고개(경북 김천과 충북 영동을 잇는 고갯길)에서 큰재(경북 상주 소재)까지 9.4㎞의 구간이다. 이 구간은 국수봉(763m)과 용문산(710m)을 빼고는 동네 뒷산의 능선 같은 구간이다. 부담 없이 나섰는데 계절이 계절인지라 갖가지 야생화까지 나를 편안하게 맞아 준다. 노루귀, 양지꽃, 제비꽃, 할미꽃, 현호색, 생강나무꽃 등등. 같이 간 옆지기는 이런 꽃들이 신기하다고 연신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내게 가장 반가운 건 진달래였다. 이는 아마도 거기 얽힌 몇 가지 사연 때문이리라.
다 아는 대로, 우리나라 산야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 진달래다. 가난한 내 어릴 적에 진달래는 봄이 지천으로 번지고 있음을 알려주는 전령사요 허기진 배를 어루만져주는 간식이었다. 걷움질 일손이 달리는 가을이야 부지깽이조차 들판으로 내몰릴 처지지만, 진달래가 피는 시기는 농사철이 시작되기 직전이라 초등학생인 내가 할 일이라고는 산자락 밭에서 농사 준비하시는 어른들의 마실 물을 주전자에 담아 나르는 게 고작이었다. 물을 전해 드리고는 여기저기 피어난 진달래를 따라 온 산을 쏘다닌 날 저녁에는 입술이 엷은 보랏빛으로 물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진달래를 보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지금이야 농촌은 물론이고 첩첩산중 두메까지 액화가스가 공급되는 시절이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는 아궁이에 땔감을 때서 난방과 취사를 해결해야 됐다. 그러다보니 땔감을 마련하는 일은 식량을 마련하는 일만큼 중요했다. 형님은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겨우내 논둑 밭둑의 풀을 깎는가 하면 심지어는 십여 리 밖의 국유림으로 나무를 하러 다녔다. 국유림은 뒷동산보다 훨씬 크고 높아 흔히 ‘큰산’이라고 불렸다. 큰산으로 땔감을 하러 갈 때는 동이 트기 전에 집을 출발하여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돌아오는 게 정해진 수순이었다.
땔감을 마련하는 일은 농한기인 겨울 한 철로 끝나는 게 아니라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농사 준비 틈틈이 이어졌는데, 진달래가 피는 이즈음에 큰산을 다녀오는 형님의 나뭇짐에는 꼭 진달래가 한웅큼 꽂혀 있었다. 집에 도착한 형님은 땀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씻기도 전에 나뭇짐에 꽂힌 진달래를 뽑아 내 손에 쥐어주고는 했었다. 땔감을 하는 곳에서 꺾은 진달래라면 집에 오는 동안 다 시들었을 텐데 형님이 전해주는 진달래가 싱싱했던 걸 보면 오는 길에 꺾은 게 분명했다. 무거운 나뭇짐을 지고 오면서도 동생을 잊지 않았던 형님의 애틋한 정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려온다.
진달래라면 연상되는 게 또 있다. 색깔이 빨강도 하양도 아닌 둘이 섞인 분홍이라서다. 우리는 참 오랜 기간 내 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二分法的) 사고 속에서 살아왔다. 이건 우리 핏줄에 흐르는 역사의 영향이라고 믿는다. 왕정시대에는 권력과 파벌에 따라 충신 아니면 역적을 양산했고 이는 내 편 아니면 적이 되어야 했던 필연의 과정이었다. 조선시대에 나타난 4대 ‘사림의 화’도 따지고 보면 이런 연장선 위에서 일어난 일이다. 36년간의 일제 강점기에도 독립파와 친일파로 나뉘었고, 6․25라는 참화과정에서도 줄서기는 강요된 상황이었다.
이와 유사한 일은 현재에도 우리 주변에 흔히 나타난다. 지연·학연·혈연을 따지는 건 친목 도모와 정서 교류를 넘는 끼리끼리의 문화가 남아있기 때문이고, 이런 연고주의(緣故主義) 바탕 이면에는 피아(彼我) 구분을 통해 우리 편 끼리만의 상부상조를 당연하게 여기는 풍조가 있는 거라고 믿는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매사를 너무 편향적으로 보는 거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흑백논리는 결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내 것이 중요한 것만큼 상대의 것도 존중해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로마나 몽골이 그처럼 광대한 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역과 인종의 장점을 받아들이는 포용정책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걸 생각하면 나와 다른 상대를 배려하는 것은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 마치 빨강과 하양이 섞여 분홍을 만들 듯 다양성을 확보하는 계기도 된다. 다양성을 잃은 자연은 멸망하는 것이 생태계의 일관된 흐름임을 감안하면 두 색이 섞인 분홍의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
내게 분홍의 의미는 그것만이 아니다. 진달래 색깔이야말로 이 땅의 장삼이사(張三李四)가 가진 사랑의 빛깔이라는 점이다. 흔히 빨강은 정열을 상징하고 하양은 순결을 표시한다. 평범한 우리는, 하나의 사랑에 오직 하나의 목숨을 기꺼이 바칠 수 있을 만큼의 붉은 열정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그 마음은 온갖 유혹에도 고고함을 지닐 수 있을 만큼 순결하지는 않지만 때 묻지 않은 순수를 지향한다.
어쩌면 오다가다 만난 사람에게 느낀 연정으로 밤이면 달을 보며 가슴앓이를 하고, 낮이면 햇살에 들킬세라 꼭꼭 묻어두던 우리의 가슴 아린 사연이 만들어낸 색깔이 있다면 분명 분홍이었으리라!
백두대간을 걸으며 진달래 꽃빛으로 물든 분홍빛 산에서 그처럼 안온하고 행복했던 이유는 먼 옛날 이웃집 아가씨에게 느꼈던 연정이, 학창시절 오고가는 길에 마주친 학생 때문에 잠을 설쳤던 추억이, 직장에서 마주칠 때마다 가슴 설레게 했던 동료가 결코 부끄러워할 만큼 음험하지 않아서일 거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옆지기와 나는 봄빛 묻어나는 나무와 풀을 보면서 즐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용문산을 지나 국수봉 못 미쳐 안부 진달래 나무 밑에서 싸온 도시락을 폈다. 차갑게 식은 밥을 넘기기가 쉽지 않아 물을 부으니 밥그릇에까지 분홍색이 넘쳐났다. 훌쩍, 물에 말은 밥을 넘기자 가슴까지 분홍으로 물이 들며 아련한 기억에 묻혔던 그리운 얼굴이 되살아났다. 그래서 나는 마주 앉아 숟가락질을 하는 옆지기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당신을 죽자살자 쫓아다니던 그 남자는 지금 당신 없어도 행복하겠지?”
그러자 옆지기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아무래도 나보다야 더 행복하겠어?”
고개를 들어 산 아래 세상을 바라보는 옆지기 얼굴에 미소가 한 자락 번지는 걸 보면 분명 분홍색 추억 속에 잠기는 게 틀림없으리라.
이래저래 오늘은 진달래에 취해 추억을 다시 한번 더듬으며 행복했던 백두대간 길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소망 하나를 가슴에 얹었다. 빨강과 하양의 장점을 살리는 분홍처럼 다양성을 인정하는 세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백두대간을 지나는 모든 이들이 나처럼 아련한 행복과 그리움을 가슴에 가득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소망 말이다.
=====세월=====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한 뒤 한 달에 두세 번 시간 나는 대로 길을 나서지만 늘 염려스러운 게 무릎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무릎은 고장이 잦고, 특히 힘에 부친 산행은 무릎에 독약이라는 말을 종종 들은 탓이다.
그런데 우려했던 상황이 실제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릎이 힘이 든다고 통증을 호소하기 시작한 거였다. 지난해 12월 초부터였다. 처음에는 산행에 나서는 동안만 통증이 왔다. 무시해도 좋을 만큼의 심하지 않은 정도였다. 그런데 통증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더니 연말에는 집에 가만히 있을 때도 불쑥불쑥 무릎을 어루만져야 할 지경이 되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병원을 찾아가 의사와 상담을 했더니 당분간 산행을 쉬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주었다. 진통제를 준비해서라도 가겠다고 하자 의사 말이 이랬다.
“약을 먹으면서까지 산행을 하는 건 답이 아닙니다.”
고집을 피울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 가야할 구간인 강원도에 눈이 수북하게 쌓여 산행이 쉽지 않을 거라는 핑계를 스스로 만들어 봄까지 쉬기로 했다. 마음이야 내일이라도 당장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고 싶지만 그건 내 희망사항이고 몸은 언제 다시 배낭을 메고 산행에 나설 걸 허락할지 예측이 어렵다.
백두대간 종주가 비록 거북이처럼 느리기는 하지만 시작한 지 열 달이 넘었다. 지난해 7월에 잠시 해외를 다녀오느라 한 달여를 쉰 걸 제외하면 거의 매주 산행을 나섰었다. 그동안 걸은 거리만도 490㎞로 전체 구간의 70%를 넘겼다. 그런데 여기서 잠시 쉰다고 생각하니 여간 속이 상한 게 아니었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몸 때문이라니! 몸도 기계처럼 오래 쓰면 낡고 망가지는 게 당연한 일이지만 그 당사자가 바로 나라는 것에 언짢고 마음이 무거웠다. 다리가 아프다는 건 단순히 신체의 기능 문제일 수도 있지만 더 멀게는 노화의 한 징조가 아니겠는가!
요즈음 나이 먹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99팔팔 23사’다. 술자리에서 잔을 부딪치고 나서 외치는 것도 바로 그 소리다. 풀어 쓰면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 2∼3일 앓다 죽자는 이야기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공통된 바람일 수 있는 일이다. 천 년 만 년 살자는 게 아니라 사는 동안 건강하게 살다 조용히 그리고 편안하게 죽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안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세월이 흐르면 생명은 죽음을 맞는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다. 신하들을 풀어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도 죽었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부처님도 돌아가셨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예수님께서도 결국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통해 영생을 가르쳐주셨고, 예수님께서는 부활의 신앙으로 죽음 너머를 일깨워 주셨지만 죽음 자체를 피해가지는 못하셨다.
곰곰 생각해 보면 죽음은 자연계를 유지시키는 필연의 과정이다. 우리가 자리를 비워주지 않는다면 인간 세상은 어떻게 될까? 지구는 포화상태로 아비규환을 맞게 되지 않을까? 그게 어디 인간뿐이랴. 나무도, 곤충도, 짐승도 마찬가지이다. 살 자리가 모자라는 것만이 아니다. 천 년을 살 수 있다 해도 생존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가 매일 먹는 밥은 벼의 태어남과 죽음의 결과이다. 새로운 씨가 뿌려지고 거기서 싹이 돋고 열매를 맺는다. 그게 우리의 식량이다. 김치도, 과일도, 생선도 마찬가지다. 이 땅의 모두는, 남의 태어나고 죽는 과정을 통해 생존을 의지한다.
죽음이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동식물은 죽음으로써 남아 있는 생물의 번식을 지원한다. 부패 과정을 통해 영양을 공급하는 이 순환이야말로 세상의 끝없는 이어짐에 이바지하는 핵심의 하나다. 낳고 죽는 일은 바로 세상을 이어 가는 기본이다. 삶과 죽음은 생태계의 안정과 순환을 위해 꼭 있어야 한다. 자연의 지혜에 다시 한번 고개가 숙여진다. 죽음의 시작인 노화가 온다는 건 그래서 새로움도 슬픔도 아니다.
죽음은 나를 넘는 더 큰 세상을 위해 꼭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도 강하게 오래 살기를 바란다. 앞서 사신 현자들께서는 이 욕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평화의 삶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가르쳐 주셨다. 그럼에도 그 길로 선뜻 나서지 못하는 건 부질없는 집착 때문이다.
다리가 아프긴 하지만 신년 초를 그냥 보낼 수가 없어 옆지기와 나는 1월 5일에 백두대간 구간 종주에 나섰다. 새해맞이 겸 잠시 쉰다는 신고를 산에 해야 하지 않겠느냐면서. 눈 덮인 산하는 너무 아름다웠다. 그 추위에도 꿋꿋하게 모진 바람을 이기고 서있는 모습이 가상했다. 봄이 오면 나뭇가지에는 새 순이 피어나겠지. 보이는 모든 걸 찬찬히 살폈다. 백두대간을 어머니로 하여 살아가는 모든 것, 이를테면 풀과 나무, 꽃과 이슬, 시냇물과 물고기, 바람과 구름에 이르기까지 눈으로 보고 감탄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건 행복이다. 내 발로, 내 삶으로 이를 안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이는 내가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하다. 비록 시련과 슬픔이 일상의 갈피에 더러 끼어있다 하더라도 삶은 축복이다. 삶이 축복이라면 죽음도 축복이어야 한다.
언젠가 세월은 나를 데리고 경외스러운 미지의 세계, 죽음이라 이름 붙인 문턱을 넘어가겠지만, 비록 그렇다 해도 이 땅에 왔다 갔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자각했다. 그렇다면 노화현상도, 그보다 더 큰 슬픔도 의연하고 당당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여기에 욕심을 얹는다면 그게 바로 어리석음이 아니겠는가!
백두대간의 이름 없는 산봉우리에서 서쪽으로 넘어가는 하늘을 보며 내 마지막을 상상했다. 세월이 삶이 다했음을 알려줄 때는 홍시물을 칠한 듯한 붉은 노을이 산하를 아름답게 꾸며주는 저녁이었으면 좋겠다고. 그 날, 내가 보고 함께 했던 모든 것을 기쁘게 되돌아보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을 잡고 아무 후회도 없이 저 세상으로 건너간다면 참으로 멋진 마지막일 거라고.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사랑하는 당신들이 있어 더욱 삶이 고왔다며 잘 살라는 한 마디 나즈막히 남긴다면 더더욱 좋으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욕심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백두대간에 둥지를 트는 어느 새도 후손까지 먹을 먹이를 쌓아놓지 않는다. 어떤 나무도 미래의 안정을 위해 현실에 위해(危害)를 가하지 않는다. 많이 가질 게 아니라 알맞게 갖고, 오래 살게 아니라 잘 살고, 많이 알게 아니라 많이 실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백두대간의 자연은 그걸 가르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세월 앞에 겸허하게 무릎 꿇고 자신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반성해야 한다. 무엇이 자신을 위하고 후손들을 위하고, 이 땅의 모든 것이 더불어 사는 방법인지 확인해서 고칠 것은 고치고 바로 잡을 건 바로 잡아야 한다. 멈추지 않는 세월은 우리에게 시간이 넉넉하지 않음을 일깨워 준다. 죽음은 무엇도 영원하지 않음을 강조하지 않는가. 그럼에도 누리는 삶에 무언가 덧붙이고 쌓아놓는 일은 어리석은 짓이다. 오히려 우리는 나를 있게 한 자연의 모든 것들에게 나를 되돌려 주는 올바른 방법이 무엇인가에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내가 무릎이 회복되어 다시 백두대간을 밟으면 세월이 자연을 통해 가르쳐준 진리를 더욱 명료하게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걸 어머니인 백두대간에 말씀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교육에 대한 단상=====
이런 저런 기회에, 어떤 직업이 좋을까 하는 이야기가 나오면 저는 그 첫 번째 자리에 교직을 놓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평생 사람을 가르치고 기르는 일에 헌신하고 계시는 선생님을 직업인의 범주에 넣는 것 자체가 그분들의 숭고한 가치와 존엄을 훼손하는 짓이라고 믿을 만큼 저는 교직을 신성하게 여깁니다.
광물질의 우주가 아무리 무변광대(無邊廣大) 할지라도 생명보다 가치 있을 수 없으며, 생명을 가진 동식물이 아무리 넘쳐난다 해도 사람보다 고귀할 수 없습니다. 의미로 따진다면, 아무리 비천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한의 우주보다 더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렇게 귀한 사람을 올바르게 자라도록 돕고, 그를 통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터전을 닦는 게 바로 교육입니다.
그런 교육이기 때문에 교육이 현재보다 더 나은 길로 가기 위한 수많은 방안이 연구되고 여러 의견이 쏟아지고 있는데, 교육에 헌신하시는 선생님들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거기에 감히 제 한 마디를 더하여 사족(蛇足)을 그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야 하겠습니다.
서울대학교 합격자 숫자로 명문 학교의 순위를 매기는 우리의 현실이, 인성(人性)의 함양이나 덕행의 실천이라는 교육 고유의 항목은 팽개치고 오직 높은 점수만을 강조하는 사회 풍조가 어찌 학교만의 문제이겠습니까!
학교 교육보다 더 중요한 게 가정교육이요 사회교육임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훌륭한 학교 교육을 위해서 교육 환경의 개선을 비롯하여 당장 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교육과 관련하여 바라는 몇 가지를 적겠습니다.
1. 교육 현장에 대하여
결론부터 말씀드린다면 교직사회에 민주적 풍토를 확산시켜 주시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자라나는 학생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고유한 개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는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열려있어야 합니다. 선생님들께서 그런 사고와 행동을 하시도록 교육 풍토를 조성해야 하는데 그 첩경이 바로 교직사회를 민주적으로 바꿔 나가는 일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거창한 사업이나 막대한 돈보다 우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공중 질서를 지키고, 어려운 이웃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인지, 사회 공동체 구성원들이 무엇을 해야 되는지를 우리는 너무도 잘 압니다.
그러나 사회는 우리의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는 것이 실천되지 않아서입니다. 실천은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가능하고 그 훈련의 한 몫을 교육이 담당해야 합니다. 학생은 선생님께서 보여주시는 모범을 통해 배웁니다. 지식을 전수받을 뿐만 아니라 삶의 모습도 선생님 따라 변합니다. 오죽하면 헨리 아담스는 ‘선생님은 영원한 영향력을 안겨주는 사람’이라고 했겠습니까!
때문에, 민주적 풍토에서 생활한 선생님은 학생들이 민주사회의 일원으로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합니다. 민주적이지 않은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민주적인 사고와 행동을 몸으로 가르치시기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직사회는 답답할 만큼 관료적입니다. 그것은 선생님들과 학생들 모두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교직사회가 관료적이라고 표현하면 펄쩍 뛸 분이 한두 분이 아니겠지만, 한 가지만 사례로 든다면, 학교 운영이 지나치게 교장 선생님 중심이라는 점입니다. 어느 자리이던 책임과 권한이 따르게 마련인데 교장 선생님에게는 책임은 적고 권한은 많습니다. 학교 폭력이 그렇게 오래도록 학부모의 걱정거리가 되고 있음에도 어떤 교장 선생님이던 그 문제에 책임을 지고 교직을 떠나셨다는 이야기를 저는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교직 사회도 사람 사는 세상이라서 극히 일부의, 교장 교감을 양보한 일명 ‘교양교사’가 아니라면, 승진에의 욕구를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데 승진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 교장 선생님의 근무성적 평정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그 막강한 권한을 배경으로 학교 내의 건전하고 합당한 지휘권 외에 상하 관계를 조성하고 있음은 흔히 보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장’의 방침은 여과되지 않고 그대로 학교 안에 전달되어 학생에까지 이릅니다.
학생 자신은 원하지도 않는데, 학교장 방침이라는 이유로 특정 분야에 재능이 있는 학생이 각종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연습을 강요당하는 현실은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인지 되짚어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길들여진 선생님이, 학생이, 바람직한 교육 풍토를 만들어간다고는 믿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관료적 행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민주적 제도가 필요합니다.
2. 교육 내용에 대하여
우리가 누리는 눈부신 문명의 혜택은 창의력에서 비롯됩니다. 변화와 경쟁으로 요약되는 미래사회에서 창의력은 더욱 절실한 현실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정보통신·생명공학·에너지·문화 산업 등 모든 나라가 국가적 명운을 걸고 개발하고자 하는 분야마다 창의력과 관계없는 것은 찾을 수가 없습니다. 창의력은 공동체 번영의 원동력이요, 핵심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창의력도 사람이 가진 여러 능력 중의 하나인지라 교육을 통해 더욱 향상될 수 있음은 뻔한 이치입니다.
따라서 학교 교육 과정에 학생들의 창의력을 개발하고 신장시킬 있는 방안이 폭 넓게 연구되고 관련 분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창의력은 개성과 연관되고 차별화와도 맥이 통합니다. 주입식이나 사지선다형의 교육에서는 꽃을 피우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교육 현실은 학생들의 창의력에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이는, 빠르면 십 년 늦으면 평생을 통해 성과가 나타기를 기대해야 하는 막연한 투자보다는 한두 해 뒤의 진학 성적표가 더 달콤한 결과를 주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정치하는 사람들이 길 넓히고, 다리 놓고, 공장을 짓는 데는 열심이면서도 교육 분야에 관심을 적게 쏟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저는 믿습니다. 정치인이 임기 중에 나타나는 성과만을 의식한 투자를 탓하는 교직사회에서 비슷한 사례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저는 선생님들께서 학생들의 창의력 향상에 지금보다 훨씬 많은 관심을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수업 방법도 보완해야 하고, 교육 프로그램도 일부 바꿔야 할 것이며, 학교 환경도 개선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예산도 필요하겠지만 우선 할 수 있는 분야에서부터 시작해 주신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에 더욱 큰 희망을 가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3. 선생님들에 대하여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의 시련과 전쟁의 비극을 극복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발전을 이룩한 데에는 교육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습니다.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이처럼 큰 역할을 한 교육임에도 교육에 대한 우려가 아직 많고, 교육 현장의 여건은 여전히 열악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교육의 미래에 대해 무한한 신뢰와 희망을 갖고 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선생님들의 역량을 믿기 때문입니다.
교육에 헌신하고 계시는 선생님들께, 주마가편(走馬加鞭)의 심정으로 한 가지만 덧붙인다면 용암과도 같은 뜨거운 열정으로 무장된 사명감을 가슴에 품어주시길 바라는 점입니다. 사명감은 어디에서 생겨나겠습니까? 학생들을 사랑하면서, 그들을 통해 그리려는 미래의 꿈이 있어야 하며 자신의 행동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이 확립되어야 가능합니다.
열정으로 무장된 사명감이 있으면 어려움을 극복하는 힘도 솟고, 지혜도 생깁니다. 굶을 정도의 봉급을 주는 것도 아니고, 승진이 교직의 전부도 아니며, 열악한 교육 환경이 당장 교육을 포기해야 할 정도가 아니라면 능히 뛰어넘을 수 있는 한계입니다. 나라를 빼앗겼던 시절, 저 낯설고 물 설은 만주 벌판에서 허기를 두려워 않고 죽음까지 각오하며 독립운동에 나설 수 있었던 우리 조상님들의 고귀한 희생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겠습니까?
학생들에게 있어서 선생님은, 어두운 밤바다에서 안전하게 배를 인도하는 등대이며, 가슴에 새기고 따르는 사표입니다. 사회적으로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짊어지고 나가는 개척자입니다.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교권(敎權)이 땅에 떨어진 마당에 무슨 사명감이냐고 하실 분도 있겠지만, 교권 확립은 교직사회가 먼저 나서야 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선생님들께서 스스로도 해내지 못한 권위의 확립을 학부모가 해주길 바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한 분 한 분이 뜨거운 사명감으로 스승으로서의 역할과 본분을 다해주실 때 교권은 확립되고 사회는 선생님을 우러러 보게 될 것입니다.
제가 다시 태어난다면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의 학교 선생님이 꼭 되고 싶다는 말씀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첫댓글 주신 소감 잘 듣고 갑니다,
교육에 대한 좋은 지적에 공감을 하면서 이 나라의 미래성의 암울함에 깊이 한숨 내어 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