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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의 회복
창13:1-6
이전에 뿌리깊은나무란 책에 실린 글입니다
어느 한 마을에 극심한 가뭄이 닥쳤습니다.
시냇물은 모두 말랐고 논밭은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시냇물이 마른지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시냇가에 있는 나무들도 여기 저기 말라 죽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나무들이 있었습니다
그 나무들은 동네 뒷산에 높은 곳에 있는 나무들이었습니다
동네 뒷산 높은 곳에 있는 나무들은
그 극심한 가뭄속에서도 도리어 그 잎이 더 푸르고 싱싱하더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높은 산의 나무들은 평소에도 수분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나무들은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었기에
가뭄에도 여전히 푸르름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냇가의 나무들은
평소에는 시냇물 옆이라---뿌리를 깊이 내릴 이유도 필요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면의 겉 표면에만 뿌리를 박고 있어도
수분을 얻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가
갑자기 가뭄이 들어 시냇물이 말라버리자
나무도 같이 말라 죽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살아가다보면
우리가 알 수 없는 환란이나--고난을 당합니다
이것은 누가 원하지도 않았고---바래지도 않았고--소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 사는 동안에--
고난이 있고 환란이 있습니다
이런 고난과 환란이 우리의 인생에--신앙에 마이너스입니까?
뿌리깊은 나무는 그것이 손해가 아니라
도리어 더 깊은 신앙의 뿌리 믿음의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란과 고난은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 있을 수 있습니까?--
결코 하나님의 허락이 없이는 어떤 고난도 우리에게 닥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고난을 허락하시는 걸까요?
성경 ---벧전1:6-7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간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에게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고 시험을 주시느냐
그것은 금보다 귀한 믿음---순수한 믿음을 얻게하기 위함이요
신앙의 깊은 뿌리를 하나님께 내리고 또 내려서
세상의 어떤 환란이나 고난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변색되지 않는--참 믿음을 얻게하기 위해
시련도 연단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시련과 시험을 이기고 나면--무슨 역사가 있습니까?
예수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이 말은 우리가 이땅의 삶을 마감하고 예수를 만날 때--그 말이쟎아요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그날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하려함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세상속에서 사람들로부터도
칭찬을 받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영광을 받고--존귀함을 받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받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서---그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을 받고---영광스러운 자리에 않고--존귀함을 얻게하려 함입니다-=---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시는 것은
더 좋은 믿음--순수하고 깨끗한 믿음을 가지라는 연단이요
하나님의 은혜에 깊은 뿌리를 박으라는
하나님의 뜻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주에 말씀을 받았듯이
아브람은 첫 번 째 시험에서 실패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기근이라는 시험을 이기지 못하여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가지 말아야 하는
세상의 상징인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거기다--자기 아내의 미모 때문에---
진실해야할 아브람이--진실하지도 정직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시간에 신앙생활에 실패에 대해서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신앙에 실수하고--실패한 아브람을
하나님이 버리셨느냐---
아브람을 버리신 하나님이 아니시라
그 시험에서 벗어나게 하셨고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결국은 신앙을 회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더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받아야 하는 교훈이 있습니다
아브람이 위대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아브람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가 문제가 있을 때--시험에 들었듯이
아브람도--기근이 있으니 시험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의 역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선택한 백성은 버리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그 실패한 자기 백성을 일깨워서 깨닫게 하시고---
돌아서게 하시고--회개하게 하셨어
다시 하나님의 사람---믿음의 사람됨을 회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아브람의 회복에 대해서 성경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아브람이 어떤 회복을 하였는지를
말씀을 통하여 몇가지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아브람의 신앙회복은 예배의 회복입니다
12:8절을 먼저 다같이 읽어 봅니다
“벧엘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것은 무엇을 뜻하는지 아세요?
예배를 드리고 기도했더라는 겁니다---맞아요 틀려요?----맞습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리던 아브람이
창12:10이하에서 애굽에 들어가서 잃어버린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예배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잃어버린 예배를 다시 회복한 것이 13:4절의 말씀인 것입니다
3-4절을 다같이 읽습니다
3절에 어디에 이르며---벧엘
이전에 단을 쌓았더 벧엘에서 누구의 이름을 불렀더라----여호와의 이름
이 말씀은 다시 아브라함이 예배를 회복하였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면서 또 말씀을 들으면서
아브람이 애굽에 내려가서 신앙에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 실패의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애굽은 아브람이 마음 놓고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 겁니다
출애굽기에 모세가 바로를 찾아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달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인데---하나님의 백성이기에
광야로 나가서 절기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로 나가서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한 것은
다르게 표현을 하면 430년의 종살이 동안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였고---절기를 지키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애굽이라는 나라에서
국무총리를 지낸 요셉의 후손들도 절기를 지키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지 못하였다면
아브람이라고 그 나라에 들어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까?---없습니다
아브람이 예배를 드릴 수 없는 나라에 들어갔다는 것은
결국은 수치스러운 흔적을 남길 수 밖에 없는 곳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신앙의 제1 바탕이 무엇입니까? ----예배입니다
진짜 은혜받고 예수를 만나면요
성도에게 나타나는 현상이 뭔지 아십니까?
그것은 예배를 귀중히 여기고--
예배를 드리고 싶어서 마음에 불이 붙는다는 것입니다
제가 76년도에 교통사고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내 마음에 불이 붙었습니다
어떤 불이 붙었느냐---예배를 드리고 싶은 불이 붙은 것입니다
예배시간이 얼마나 기다려지는지요
일주일이 한달--두달같이 느껴지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하는 말이--주일이 너무 빨리 닥친다고 합니다
벌써 또 주일이냐---또 예배를 드려야하냐---라고 합니다
그런데 은혜를 받아보십시오
일주일이 빨리가지를 않습니다
빨리가야--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데--얼마나 답답한지요
수요일은 가고 싶어도 직장인이라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제가 부산의 삼립식품 빵공장에 다녔는데요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그때는 2교대를 했습니다
아침-7-8시에 출근을 하면--저녁 7-8시에 퇴근을 하니까
저녁시간에 퇴근을 해서 교회까지 가면 이미 늣어요
그러니 수요일 못가니까--자연히--일주일에 한번인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전도한 분에게 물었습니다
교회는 왜 주일--수요일 예배밖에 없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새벽기도도 있다는 것입니다
새벽기도는 언제 드리느냐고 하니까?
새벽 4-5시에 교회마다 조금씩 틀리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제가 논공에서 여기까지 와도---자가용이 있으니 별문제가 없습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시동을 걸고 오면 한시간이면 옵니다
그런데 그때는 자가용이 없었습니다
대중교통도 지금처럼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새벽기도는 아예 꿈을 못꾸는 것입니다
그래도 새벽기도를 하고 싶어서---어느날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찾아가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새벽기도를 하고 싶어서--교회를 옮기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목사님께서 처음에는 당황하시더라구요
그렇쟎아요--개척교회 청년한명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러나 제 입장을 밝히고---옮기겠다고 하니까
목사님께서 혹시 그 교회가 마음에 안들거든
다시 돌아 오라고 하시고 허락을 해주셨습니다
그 때 제 나이가 얼만지 아십니까?
18살입니다---고등학교 2학년 정도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고등학교를 다닐 때---전 새벽기도를 다녔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대학준비를 하고 있을 때
전 하나님의 대학을 다니고 있었던 것입니다---아멘입니까?
은혜를 받아보십시오
18살도 새벽기도 자원해서 갑니다
18살만 아닙니다
그보다 더 어려도 은혜 받으면 새벽기도 합니다
청년도 은혜받고 하나님을 만나면 새벽기도하고요
장년도 은혜 받으면 새벽기도하고
연세가 많이 들어도 은혜받고 하나님을 만나면
예배를 드리고 싶어 새벽기도에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교회 집사님들은 각오해야 합니다
주일 오전예배만 드리고 가셔서 안됩니다
오후예배도 수요일 저녁예배도--새벽기도도 나오도록 힘써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집사직분을 받은 것--하챦게 생각해서 안됩니다
사람이 주신 것이 아니라---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거기에 맞는 신앙인이 되셔야 합니다
신앙의 제1바탕--그것이 예배이기에---예배에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스폴전 목사님은
성도가 은혜가 식어지면--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면--예배를 무시한다고 했습니다
즉 예배를 얼마나 귀중히 여기는가를 보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정말 공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은 사람은 절대로 에배를 멀리하지 않습니다
예배 시간마다 다 참석합니다
주일도--오후도--수요일도--새벽기도도
저는 우리 제2동부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은 성도
예배에 생명을 걸고--예배에 성공하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아브람의 회복은 자신을 통하여 복의 근원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람에게 가축과 은과 금이 풍부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브람만 복은 누리는 것이 아니라
5-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었는데
6절에 그 땅이 그들이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다는 겁니다
여기 그들이란--아브람과 롯의 가정입니다
왜 동거하기에 넉넉하지 못하였습니까?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아브람은 고향에서--
그리고 애굽 왕으로부터 받은 것이 있었기에---많은 것은 알수 있지만
롯은 어떻게 이런 많은 복을 누릴 수 있는가 궁금하쟎아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아브람이 조카 롯에게 많은 재물을 나누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롯의 축복은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도의 삶의 모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고요--은혜를 받으면요
나혼자 잘 살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전의 아브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내야 죽든지 말든지---아내야 어떻게 되든지
자기만 살면되고--무사하면 되고--잘되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애굽에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고 나니
이것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변했습니다
자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자신의 소유를 롯에게 나누어 준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받아서 합니다
롯은 / 아브람 때문에 / 팔자 고쳤다
성도는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도 나만 잘 먹고 잘 살고--편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복을 받게해야하고--잘살게해야하고
다른 사람의 팔자를 고쳐주는 주인공이 되어야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받은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언젠가 방송에서 중고등부 청소년들에게 조사를 했는데
부모님으로 제일 많이 듣고----듣기 싫은 것
첫 번째가----뭔지 아세요?----공부해라
두 번째가 -------------------밥먹어라
그래서 학생시절에는 누구든지
“왜 내가 공부를 해야만 하나
왜 우리는 부모는 공부해라고 날 괴롭히나”라는 질문을 한번씩은 해봅니다
이때 어른들의 답변은 한결 같습니다
“공부해서 남 주냐? 너 하나 잘먹고 잘 살라고 뼈 빠지게 벌어서
부모인 우리는 먹지도 않고 쓰지도 않고
고생고생하면서 너 공부시키고 있쟎아”라고 합니다
이 결과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들이 자라서 정치를 해도 나만 잘사는 정치를 하고
기업을 해도 노동자나, 고객의 입장은 생각지 아니하고
내 기업의 덩치만 키우는 ------기업가만 되는 거요
이러다보니 우리 사회가 전체가 대립과 분열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나는 살고 너는 죽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성도들은 자녀들에게 공부하는 목적을 달리 가르쳐야 합니다
“아들아 너 공부하지 않아도 성실히만 살면 밥은 먹고 살 수 있단다
그러나 평생에 너 하나 밥 먹고살고 끝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니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다른 사람에게 줄 것이 있는 사람이 되는 거야
네가 공부한 것만큼 남을 도울 수가 있고
너 때문에 좋아지는 사람이 많아지고
사회가 행복한 사회로 변한다면---결국은 나라가 잘되는 거야
아들아 남 주려고 공부를 하고 돈 벌어서 남 주어라”
앞으로는 자녀를 가르치되----이런 자녀로 가르치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주인공으로 살아 보십시오
결국은 자신이 잘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대부분의 사고는 남에게 덕보고 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든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덕을 볼 수 있다면 복된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이러 사고를 바꾸어야 합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복을 받고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어느 가정의 부인이 동창회를 다녀 왔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남편이 돌아오니 남편에게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여보 내 동창 누구누구있죠?
갸는 인물이 잘났나---그렇다고 학교 다닐 때 나보다 공부를 잘했나
그런 주제에 시집 한번 잘 가더니-----남편이 사업이 날마다 잘되어서
이번에 신형 체어맨을 빼서는 기사까지 대동하고 나타나서
기사가 사모님 사모님하는 모습을 보면서
난 웃으면서 잘가라고 인사하고---돌아서 오는데
내 신세사 얼마 청량하고 불쌍한지 울음이 쏟아지더라구요-----”라고 한탄을 합니다
이 말을 들은 남편도 이렇게 말 합니다
“내 동창 누구누구 알지---갸는 덩치가 좋길 하나 공부를 잘했나
그렇다고 성격이 좋긴하나---그런데 갸가 진짜 장가한번 잘 갔거든
장가를 가자말자 장인의 기업을 물려 받더니-----
글쎄 지금은 낮에는 골프를 치고----밤에는 술집에만 다녀도
잘먹고 잘 살기만 하데--
내 인생에는 그런 복은 없다고 치자
내 친구 누구누구를 봐----갸도 연애결혼해서 단칸방에서 시작하였는데
그 마누라가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세일즈를 하는데---승진하고 승진하더니
자신은 남편을 잘 만나서 일도 잘된다고
남편에게 떡하니 자가용한데 뽑아 줬다네
그런데 난 봐----어쩌다 너 같은 것 만나 가지고는 언제 내 인생이 바뀔지---”
이 모두가 누가 중심입니까?
나 중심입니다---너 때문에 내가 복을 못받고---너 때문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성는 너 중심에서 나 중심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나 잘 만나 너가 복을 받고
나 잘 만나 너가 잘되게 하고
나 잘 만나 너가 행복한 나 중심으로 바꾸는 저와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받아서 합니다
나 때문에 남편이 행복하고 / 나 때문에 아내가 행복하고
나 때문에 상사가 잘되게 하고 / 나 때문에 아래 사람이 잘되게 하자
오늘 아브람이 그런 사람이요
아브람 때문에 롯의 가정이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람 때문에 롯의 가정에 행복이 넘치는 가정이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디에 들어가든지
여러분 때문에 잘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복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회사에 들어가면 여러분 때문에 회사가 잘되는 역사가 일어나야하고
가정에 들어가면 여러분 때문에 가정이 잘되는 역사가 일어나야하고
교회에 들어오면 여러분 때문에 교회가 잘되는 역사를 일으키는 주인공이 되어야 합0
안되게하고 망하게 하는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이런 성도들이 되게해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우리 성도들이 머물고 있는 이 세상이라는 자리를 떠나는 날
제2동부교회의 성도들을 만난 모든 사람들이
동부교회 성도--누구누구를 만난 것이 복이었고---행복이었고----
그 집사님의 영향을 받아서 오늘의 내가 있다고
눈물로 감사할 수 있는 그런 성도들이 되게 해주옵소서---”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러분 때문에 다른 사람이 잘되고 행복해하고 감사할 수 있는
복의 근원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