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악기를 들고 연주하면서 행진하는 뺀드부는 정말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뺀드부의 인기는 최고였고, 너나 나나 들어가기를 염원하는 곳이
뺀드부였다.
하지만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 때에 뺀드부 단원은 조금인데
들어가고 싶어하는 학생들은 너무나 많아서
뺀드부에 들어갔다는 것은 너무나 자랑할만한 일이였다
내가 동호초등학교 3학년 때 뺀드부 단원을 뽑게 되었다.
나는 월등히 공부를 잘하지도, 음악에 소질이 없었지만, 키가 커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뺀드부에 뽑혔다
난 너무나 기뻐 엄마 아빠께 자랑하고 싶었으나 요즘처럼
전화가 없으니 전화를 할 수도 없고 어서 수업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수업을 마치자마자 집으로 달려가 엄마 아빠께 자랑했다.
엄마, 아빠. 나 뺀드부 되었어요.
나 뺀드부 되어 열심히 해서 연주하는 것 보여줄께요하면서 자랑했다.
그래? 그럼 열심히 해 보거라.
하고 아빠가 말씀하셨다.
그래서 뺀드부 단복을 맞추고 신이 나서 학교에 다녔다.
드디어 뺀드부에서 각 학생마다 악기 배정이 있었다.
나도 큰북이나 작은북을 연주하고 싶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리 될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애들에게 다 돌아가 버리고 내 차례가 되니까 큰북도 없고,
작은 북도 없다.
남아있는 악기는 큰 냄비뚜껑 같은 심벌즈뿐이었다.
뺀드부 들어갔다고 좋아해서 엄마 아빠께 자랑하고 기뻐서 학교에 다녔는데
그 좋은 큰북이나 작은 북이 아니고 생전 보지도 못한 노랗고 큰 냄비 뚜껑 같은 것을
주면서 연주하라고 하니 그냥 뺀드부를 그만 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야 안한다고 하면 선생님한테 혼날 것이고, 집에서 뺀드부 단복도
맞추었는데 정말 야단났다.
혼날 것이 두려워 마지못해 심벌즈를 하게 되었다.
큰북이나 작은 북 등 다른 악기는 신나게 연주하는데
심벌즈는 가만히 있다가 (실은 큰북이나 작은 북의 리듬을 따라해야 한다) 중간에
한번씩만 꽈~앙 하고 때리고
손을 들어 허공에다 뱅그르 돌리면서 춤을 추어야만 하였다.
그러다가 잘못하여 심벌즈가 땅에라도 떨어지면 선생님이
야! 심벌즈, 너 나와 하면서 꾸지람을 있는 대로 하시곤 하였다.
이건 뺀드부 들어갔다고 신나는 게 아니라 고역이었다.
행진하면서 연주할 때에도 큰북 뒤에 따라가면서 그 북 리듬에 맞추어서 하다가
꽈~앙 하고 때리니 어쩔 때는 박자가 안 맞아서 틀리게 때리기도 하였다.
그러면 바로 선생님이 야. 너. 심벌즈하고 소리를 질러대셨다.
그러면 하늘이 노랗고 온 몸이 떨려서
그냥 심벌즈를 버려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드디어 운동회 날이 다가왔다.
집에서는 아빠가 어디 보자. 우리 효례가 뺀드부 잘 하는가 가서 보자 하신다.
난 뺀드부 한다고는 해 놓았지만 창피해서 아빠가 학교에 오시질 아니했으면
좋으련만 그래도 딸이 뺀드부 연주한다고 학교 운동회에 오셔서
보신다고 하니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혹시라도 실수나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
다른 애들은 큰북이나 작은 북을 신나게 두들기면서 행진하는데 나는
노란 큰 냄비뚜껑 같은 것을 들고만 가는 모습을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지는 아니했다.
하지만 아빠를 못 오시게 할 수는 없고, 걱정으로 몸이 떨리고 땀이 비 오듯 하였다.
하지만 운명의 운동회는 열렸다.
그리고 드디어 뺀드부 행진이 있었다.
나는 긴장해서 온 몸이 떨렸지만 그래도 입술을 앙당 물면서 잘 해야지 결심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온 신경을 곤두세워 행진하면서 꼭 두 번 꽈~앙 하고 치고
손을 위로 뻗으며 뱅그르 돌리면서 손으로 추는 허공 춤을 추곤 하였다.
틀리지는 아니하여 선생님한테 혼나지는 아니하여
휴 ~ 하고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다가오더니만
얘, 아가야! 니가 제일 재미있겠다. 노란 냄비뚜껑만 들고 있으면 되니까하신다
아이고! 이런.
나는 온 신경을 곤두세워 연주하였는데
어떤 아저씨가 친절하게도 일부러 찾아 와 니가 제일 재미있겠다니?
그리고 냄비 뚜껑만 들고 있다니?
정말 남의 속도 모르고 울고 싶었다.
운동회가 어떻게 끝난 지도 모르게 끝났다.
심벌즈 연주 때문에 긴장해서인지 나는 녹초가 되어 있었다.
겨우 집에 와서 저녁을 먹을려고 하니 아빠께서 한 말씀 하신다.
아니 우리 효례는 밴드부 한다고 하던디 무슨 냄비 뚜껑만 들고 있다가
어찌다 한번씩 때리데. 그것이 밴드부이디아?하신다
그렇지 안 해도 힘이 빠져 녹초가 되어있는데 아빠까지 실망하시어 그런
말씀을 하시니 난 내일이라도 당장 밴드부를 때려치우고 싶었다.
하지만 때려치우지 못하고 6학년 때까지 노랗고 큰 냄비 뚜껑은
계속 나의 차지가 되었다.
효례의 추억은 그 노랗고 큰 냄비뚜껑이 엄청 큰 비중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그 큰 노오란 냄비 뚜껑은 뺀드부 양쪽에서 연주해야 되기 때문에
나 말고도 또 한명이 있었다.
최근에 만난 그 친구도 자기도 뺀드부 한다고 엄청 자랑하고 기대를 했는데
노오랗고 큰 냄비뚜껑 같은 것을 들고 가라고 해서 엄청 창피하였고,
더구나 자기 냄비뚜껑은 금까지 가서 소리도 이상하게 나서 더 창피하여
치고 싶지도 아니했다고 한다.
그래서 서로 신나게 웃은 적이 있고,
그 냄비뚜껑을 연주하게 한 그 선생님이 아직도 밉다고 하면서
우리의 뺀드부 생활을 추억해 보았다.
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기억난다..콰~~~~~앙
용기야~~난 초등학교때 뺀드부만 생각하면 아직도 떨리고 억울하다.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