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연안부두 ~ 백령도 길을 포기하게 된 사유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인천항 여객터미널에서 옹진군청에 들러 옹진군지(甕津郡誌 상하)를 기증받았습니다.
옹진군 해안 길은 부득이 군지를 통해 걷기로 한 것이지요.
전국의 해안로 일반국도 번호는 77번입니다.
아암대로와 겹쳐 있는 해안대로를 따라서 옥련IC, 아암도 해상공원, 호수공원, 송도3교,
송도IC, 송도2교, 송도1교 입구를 지났습니다.
그 사이에 도로는 제3경인고속화도로로 변하여 고잔TG를 통과하고 남동대교를 통해서
인천을 빠져나가 정왕IC를 지나갑니다.
보행자는 고잔TG 앞에서 이탈하여 긴 소래포구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인천 고잔동과 시흥 월곶을 잇는 한화교가 있으나 이 일대가 한국화약의 땅임을 뜻하는
사교(私橋)로 사용 금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양쪽 모두 한화가 아파트 단지로 개발)
소래포구에는 소래어시장 ~ 월곶의 옛 수인선 소래철교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여주일대의 질 좋은 곡물 운반을 목적으로 한 수여선과 소래지역의 고품질 소금 운반을
위한 수인선 등은 일제가 수탈을 극대화 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요.
곧 송도 ~ 오이도 간이 시민의 교통수단으로 거듭나게 된답니다.
소래대교는 인천과 시흥을 연결하는 다리입니다.
월곶포구로, 월곶대교를 통과하고 서해안로에 합류해 정왕TG 교차로를 지나 옥구공원
산정의 팔각정에 올라서면 서해가 발아래입니다.
군자염전 지역이 모두 매립되어 군자개발구역으로 변했는데 제발 후세에 욕된 조상이
되지 않도록 충실하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동차의 위협으로부터 해방되었을 뿐 아니라 망망한 서해를 끼고 뚝길을 따라 오이도,
시화방조제를 걸을 때는 행복이 뭉텅이로 안겨오는 듯 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깝기도 했습니다.
이베리아 반도인은 빈 공간을 남겨두지 않을 정도로 낙서광입니다.
이해하려면 특단의 노력이 필요할 만큼 은유적이고 추상적인 그림이 주를 이룹니다.
반도인의 특성인지 한반도인도 낙서족입니다.
다르다면 아무나 바로 알아차리도록 직설적이고 저질적 글 일색이라는 것이지요.
낙서문화의 상이인가요 차이일까요.
오이도의 3층 등대 안에 빼곡히 쓰인 글들이 수치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해안도로를 내면서 일부 산을 마구 동강낸 사실입니다.
해안에 교각을 박으면 산이 더욱 미려하고 더 많이 공헌하련만 왜 그랬을까요.
이유라는 것이 너무 가소로워 더욱 가슴 아프게 합니다.
대부도 입구 4거리에서 301번 지방도로가 된 12.7km 시화방조제의 반을 지나면 시흥시
오이도를 뒤로 하고 안산시 대부도에 들어서게 됩니다.
갓길 없는 위험천만 차로를 걸어야 하지만 운이 좋으면 탄도항에서 누에섬까지 홍해의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갈라진 바닷길을 걸어 무인도 누에섬 정상에 올라 반짝 등산도 했습니다.
탄도방조제를 산책하듯 걸으며 요트항인 전곡항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사이에 화성시
서신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뀝니다.
"곰탕은 음식이 아닌 보약입니다'
식당주의 기발한 유객 수법임을 알면서도 끌려가 주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까요.
서신면소재지에서 궁평항까지의 위태로운 도로가 끝나면 천하태평의 9.8km화성(궁평)
방조제를 마음 편히 걷게 됩니다.
남양방조제를 통해 평택으로 넘어와 해군제2함대사령부에 들르면 천안함과 연평해전
등 안보 견학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견학은 저를 후회막급하게 하고 있습니다.
연속된 참담한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우리 해군에 대한 신뢰는 변함 없었는데 견학하는
중에 그 신뢰가 깨져버렸기 때문입니다.(그 까닭은 다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평택항을 지나고 서해고속도로의 서해대교 밑을 통과해 경기도 평택과 충남도 아산을
가르는 아산방조제를 걸은 후 긴 해안뚝을 걸으면 삽교방조제 앞이 됩니다.
삽교방조제의 준공기념탑 앞에서는 문득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내가 씨이저를 덜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고, 내가 로오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쥴리어스 씨이저'에서 부루터스의 말)
삽교방조제를 통해서 당진땅으로 갔습니다.
당진에는 송산면과 석문면을 연결하는 10.5km 석문방조제가 있습니다.
탈출로가 없기 때문에 6.25동란때 인공군도 머물기를 꺼려했다는 지역이었건만 지금은
전국의 기초단체중 지방세수 1위 지역이랍니다.(자세한 내용은 후에 올리겠습니다)
궁평항에서 지호지간으로 보이던 당진화력발전소의 외모는 마치 아파트 단지같습니다.
서해에서 해가 떠서 서해로 해가 지는 유일한 곳이라는 왜목에 있습니다.
당진과 서산의 바닷길을 육로로 만든 대호방조제를 통해 서산으로 갔습니다.
늙었지만 걸어야 할 길이 아직 많이 남아있는 제게 서산의 도로는 벅찬 상대였습니다.
해변은 공단으로 막혀있고 좁은 도로의 무법자인 중장비를 비롯한 대형 차량들은 함평
교통사고의 기억을 되살려 내어 공포를 느끼게 했으니까요.
팔봉산을 휘돌아 태안으로 내려감으로서 일단 안심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동서남북 정(正)4방위는 정동(方位와 同名), 만리포, 장흥, 중강진이랍니다.
정서쪽 땅끝(만리포)을 경유해 태안반도를 걸었습니다.
몽산포에서 안면도 꽃지까지 해변 모래길과 송림과 산길을 걸었으며 태안반도 최남단
영목항에서는 아직은 걸을 길이 없습니다.
영목항~원산도~대천항에 연육교와 해저터널 건설 계획이 있다지만.
대천항 아침배를 타려면 한밤을 대기해야 했는데 늙은이가 묵을 곳이 있을 리 없읍니다.
명성있는 낚시항 답게 주말의 숙박업소가 조사(釣師)들로 만원사례였으니끼요.
부득이 널따란 비닐 호텔을 이용했지요.
주인의 허락을 받을 길이 없으므로 정결하게 사용하는 수칙을 준수하며.
대간 정맥에서 한 때 즐겨 쓴 이후 실로 1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서남동 길은 곧 대천항에서 이어갈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의 많은 인연 이야기는 장정이 끝난 후에 하겠습니다.
다만, 길에서 길(道)을 새삼 발견하며 걷고 있습니다.
대간 정맥과 무수한 산, 십대로와 무한한 길, 이베리아 반도의 2.000km가 넘는 순례길
등에서 발견하지 못한, 참으로 인내심을 요구하는 길이지만 눈부신 금맥의 길입니다.
첫댓글 저는 날씨 덕분에 2박 3일 백령도 잘 다녀왔습니다.
이 양극현상을 어떻게 이해하죠?
정부의 고육책이겠지요. 어떻게 하든 섬에 주민이 살도록 당근을 제시해야하니 육지인 세금으로 복지를....실제로 백령도에 주민 수 가 늘었습니다. 육지인 중에 건설공사 등 직원들이 헤택이 많으니까 전입신고를 한답니다.
단방에 명중시키신 님과 난발에도 소득이 전무한 저의 양극현상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