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아이들 모아 줄테니 일본 가볼래요? 시작은 이랬다. 네 좋죠. 그래서 참교육학부모회 울산지부장님의 제안에 회원자녀 6명이 올 겨울 5박6일 일정으로 삿포로에 갔다. 보통 여행을 가면 인솔자가 다 해결한다. 먹는 것부터 관광일정까지. 하지만 인생 또한 인솔자가 살아주는 것은 아니다. 최소한의 일정은 잡되 아이들이 스스로 해 나가는 계획을 세웠다. 중학생 여자 6명 사전모임 3차례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과 삿포로 일정잡기 일본에 대해 알아보기를 했다. 사실 여행은 준비과정이 더 즐거운데 의외로 아이들이 아직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준비물을 스스로 짜보았다. 부모님에게도 짐을 꾸릴 때 스스로 할 것을 부탁하였고, 모임 때 삿포로 여행책을 바탕으로 삿포로 지도그리기를 통해 지명익히기와 가고 싶은 곳을 표현하기를 하였다. 그리고 입국신고서 작성까지 하나씩 준비를 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늘 인생을 완벽할 수는 없겠지. 현지에서도 해결 가능하니까 꼭 필요한 것만 서로 공유했다.
1월 13일 드디어 일본으로 출발! 숙소로 사용할 곳은 2년전 에스페란토를 배워 신세를 졌던 에스페란토 사용자인 나오토씨 집. 그는 일본의 활동가다. 일본에 도착하자 말자 삿포로 치토세 공항에 마중 나온 나오토씨, 역시 일본사람들은 친절하다. 숙소 도착 후 저녁은 유명한 삿포로 라면. 나오토씨가 안내하여 라면을 먹고 나서 잠시 숙소 근처을 구경했다. “차가 거꾸로 간다. 택시색깔이 노란색, 빨간색도 있다. 여기 택시는 문이 자동으로 열린다. 비싸지만 ㅋ” 모든 것이 신기한가보다.
다음날 본격적인 일본 여행을 간다. 삿포로 역에서 관광안내소 찾아가서 지도를 구한다. 미리 삿포로 지도도 그렸지만 실제로 잘 찾아갈까? 그래도 삿포로는 바둑판처럼 되어있으니 잘 할거라 믿으며 2명씩 짝을 맞추어 자유롭게 돌아다니다 홋가이도 대학 박물관을 찾아오라고 했다. 약속시간 오후 3시까지. 한 팀만 오고 나머지는 오지 않는다. 슬슬 걱정되기도 하지만 아마도 홋가이도 대학 식물원에 있는 박물관에 갔다보다 하고 8시까지 숙소로 오라고 하였다. 숙소로 가니 미리 도착한 2팀. “박물관에 갔는데 문이 닫혔어요. 그런데 우리끼리 잘 놀다 왔어요. 여기 저기 재미있는데 눈이 많아서 걷기 힘들었어요.”나머지 1팀은 숙소로 오다가 일본사람에게 아사부 가는 길을 물어보아야하는데 오타루로 착각해서 물어보았단다. “당황하지 말고 일본사람에게 물어서 아사부로 와라”조금 있으니 나오토씨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가지고 간 나오토씨 명함을 보고 일본사람이 전화를 하고 돌아오는 전철은 무료패스 끊어주었단다. 10시쯤 되어서야 다시 전화 온다. “아사부역인데 집을 못 찾겠어요”아사부에서 숙소 찾기는 정말 쉬운데 피곤했는가보다. 화내기보다는 고생했다고 다독여주었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해결방법을 스스로 찾는 것이 중요하다. 기성세대는 그 문제를 다 해결해 줄려고 한다. 아마도 그녀들은 멋진 경험을 했을 것이다.
삼일 째 오타루로 갔다. 유리구슬 장식품과 오르골, 그리고 영화 세트장 같은 예쁜 도시를 나오토씨의 친구인 사이키(아나키스트, 와세다대학 출신의 엔지니어, 자칭 글쓰는이, 그의 명함에는 규칙을 뒤엎어라! 그러면 좀더 자유로울 것이다라고 적혀있다)랑 함께 갔다. 일본에 왔으니 일본친구와 친해져야겠지. 사이키에게 여행 경비(차비정도 5000엔)를 주었으나 한사코 받지 않는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일본의 시민단체에 기부하라고 주니 감사히 받는다. 사이키와 간간히 안 되는 몸짓 발짓 다해가며 이야기도 나누면서 돌아다녔다. 오타루의 운하와 오르골당을 둘러본 후 아이들에게 자유 시간을 준다. 여행의 재미는 자신이 원하는 곳을 다녀보는 것이리라. 한 시간 후에 역에서 보자. 하지만 약속시간이 훨씬 지나도 나타나지 않는다. 사이키가 조급해한다. 약속시간 내에 오지 않으면 먼저 간다고 했는데도 나타나지 않는 아이들. 조금 더 있으니 헐레벌떡 뛰어오는 녀석들을 보자 장난기가 발동한다. 잠시 숨어서 어떻게 하나 지켜보기로 하였다. 전혀 당황하지 않고 태연하게 차표를 끊는다. 우리를 보자 미안해하면서도 웃는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도 따라 웃고..
나오토가 한국인 강제 징용을 당해 죽었던 사람들을 위한 조형물을 세웠는데 가보자고 한다. 당연 좋지. 한국번역물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가자고 한다. 나오토 친구와 함께 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이동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조형물 윗부분만 남고 사방이 다 눈이다. 긴 장화를 신은 나오토와 친구가 눈길을 즉석에서 만든 다음 모두 함께 묵념을 하였다. 다시는 강제로 끌려오거나 죽는 사람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일본사람들은 다 나쁘다고 생각하였는데 이렇게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는 사람도 있다는 것이 놀랍다고 한다. 삿포로의 어떤 활동가는 지금까지 한국인 강제징용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고 비석을 세우거나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이누민족의 박물관을 본 후 온천을 하였다. 일본친구들은 모두 30분만에 나오고 우리들은 1시간 20분이 되어서야 나온다. “여기 물 참 좋아요. 야외 온천도 너무 좋아요.” 역시 목욕이 피로를 푸는데 제격이지. 나오토가 저녁으로 쓰시(초밥)을 쏜다니까 무척 좋아한다. 초밥뿐만이 아니라 아이들이 좋아하는 계란, 돈까스 형 초밥에다가 아이스크림까지 정신없이 먹는다. 역시 여행은 먹는 즐거움인가보다.
마지막으로 삿포로 시내 여행. 2명씩 짝을 지어 미션을 준다. 삿포로 팩토리, 오도리공원 TV탑 전망대, 니조시장, 그리고 가고 싶은 곳 한곳을 가서 2명 모두 나온 사진을 찍어오기. 아침을 먹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하세요. 평소보다 더 빨리 아이들이 서두른다. 모르는 길을 물어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을려면 부탁도 해야한다. 자연스럽게 모르는 일본사람과 접촉하기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사용한 돈의 출처를 정확히 적어올 것. 8시까지 오라고 했는데 7시쯤 모두 무사히 숙소로 잘 도착했다.“니조 시장 정말 좋아요. 사람들이 친절하게 사진도 찍어주고 몸짓으로 막 이야기도 나누었어요. 일본이 딱 제 체질인데요. 계속 살고 싶어요” 짜여진 일정에 모든 것이 준비된 여행보다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고 직접 찾아가야하는 여행에서 다른 이들의 삶을 보고 자신을 알아가는 여행이 되었으리라.
한국에 돌아온 후 부모님을 모시고 삿포로 기행 발표회를 했다. 아이들이 직접 사진을 보여주고 설명하고 어떤 친구는 글을 써서 발표하였다. 여행 갔다 온 후에 변화된 것이 뭐냐고 물으니 한 부모님은 이렇게 답을 한다. 예전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안했는데 이제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막 이야기를 한단다. 여행은 지식을 얻기 위한 것 보다는 다름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것이다. 자신을 잘 표현하는 방법을 깨닫기 위해 떠난 삿포로 여행은 끝이 아니라 인생의 여행의 과정 중에 하나로, 즐거운 추억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힘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이야기한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 네가 마음먹은 만큼”
-강제노동에 끌려와 죽거나 다친 한국인을 추모하기위해 세운 조형물앞에서 , 맨 왼쪽이 나오토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