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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1> 교감이 여교사에게 교장에게 술을 받았으니 교장에게 따르는 건?
A초등학교 3학년 교사들은 회식에 교장과 교감 고지식(가명)씨를 초대했다. 회식 자리에는 여교사 3명을 포함해 총 9명이 함께하게 됐다. 술병을 건네받은 교장은 여자 교사들에겐 소주잔에 맥주를, 남자 교사들에게는 소주를 따라 주었다. 3학년 부장교사가 건배를 제의하자 남자들은 잔을 비웠으나 여교사들은 입술만 댄 채 잔을 내려놓았다.
그때였다. "여선생님들, 잔 비우고 교장 선생님께 한 잔씩 따라 드리세요." 교감 고씨는 여교사들을 재촉했다. 눈치를 보던 남교사들이 한 명씩 교장에게 술을 권했으나 여교사들은 술잔을 비우지 않았다. 고씨는 또다시 "여선생님들 한 잔씩 따라 드리지 않고"라고 채근했다.
이에 여교사 2명은 마지못해 교장에게 술을 따르게 됐다.
술을 따르지 않은 나머지 여교사 한 명이 성희롱을 당했다며 진정을 냈다.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현재는 업무가 국가인권위원회로 이관)는 "여교사에게 술을 따르라고 한 교감의 행위는 성희롱"이라고 결정했다.
그러자 고 교감은 "술을 받은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답례로 술을 권하는 것은 예의 아니냐"고 반발하며 행정소송을 냈다. 법원의 성희롱 판단 기준을 살펴보자.
어떠한 행위가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쌍방 당사자의 연령이나 관계, 장소 및 상황, 성적 동기나 의도의 유무, 행위에 대한 상대방의 명시적 또는 추정적인 반응의 내용, 행위의 내용 및 정도, 행위가 일회적 또는 단기간의 것인지 아니면 계속적인 것인지 여부 등의 구체적 사정을 종합해, 그것이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용인될 수 있는 정도의 것인지 여부, 즉 선량한 풍속 또는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것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대법원 1998. 2. 10. 선고 95다39533 판결 등)
이어지는 법원의 설명이다. "성희롱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행위자에게 반드시 성적 동기나 의도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방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는 이유만으로 성희롱이 성립될 수는 없다." 즉, 성희롱은 "일반적이고도 평균적인 사람"의 시각으로 봐야지 주관적인 기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의 판례다. (서울고등법원 2005. 5. 26. 선고 2004누4286 판결, 대법원 2007. 6. 14. 선고 2005두6461 판결)
법원은 고 교감의 발언에 대해 "여자 교사들이 (유흥 또는 주흥을 위해) 교장에게 술을 따라야 한다는 성적 의도보다는 술을 받았으면 상사에게 술을 권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또한 두 명의 여교사가 불쾌하게는 생각했으나 성적 굴욕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고 진술한 점 등을 들어 선량한 풍속 또는 사회질서에 위반되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면서 성희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까지 같은 결론을 내자 여성단체는 "법원이 성희롱의 객관적 기준만을 강조한 나머지 피해자의 감정을 외면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술잔을 돌리고 술을 주고받는 게 직장생활에서 미덕인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그 미덕이 강요라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 고 교감의 행동이 성희롱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선량한 풍속'으로 권장할 만한 일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쨌거나 대법원의 입장을 정리해 본다. 성희롱은 (당사자의 감정이 아닌) 객관적인 시각으로 판단해야 한다. 그래서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다면 행위자에게 성적 의도가 없었더라도 성희롱이 될 수 있다.
**출처 : 김용국의 『생활법률 해법사전』 [집필자 김용국은 서울중앙지법, 동부지법, 가정법원, 고양지원 등에서 법원공무원으로 10년 넘게 일하고 있다. 2009년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라는 글을 연재, 20회 만에 조회수 100만을 훌쩍 넘길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으며, 그 해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선정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다. 그의 책 『생활법률 해법사전』(명위즈덤하우스)은 법을 바르게 알고 제대로 판단하게 돕는 친절한 법률 안내서. 평소 궁금하지만 어딘가 물어볼 곳이 없어 답답했던 법률 지식부터, 감추기 급급했던 민감한 사안들까지 생생하고 재밌는 사례들로 알차게 구성했다. 복잡한 판례도 알기 쉽게 소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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