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백씨
수원 백씨(水原 白氏)
관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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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백우경 |
주요 중시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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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집성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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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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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2000년) |
316,5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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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백씨는 대한민국의 성씨의 하나이다.
780년, 수원 백씨의 첫 세거지는 경주이다. 당시에는 경주라는 이름은 없었고, 금성, 계림, 서라벌이라는 지명이 있었다. 백우경의 후손 백휘(白揮)는 고려 목종(재위, 997∼1009) 때 대사마대장군으로 수원군에 봉해졌다. 백우경이 780년도 귀화한후 후손들은 다양한 지역에 세거하거나 군, 백에 봉해져 많은 본관으로 생겨나게 되었고, 현재에는 수원 백씨을 대종으로 하고 나누어졌던 본관을 통합하였다.
연원
중국 백씨 대봉보 백씨문헌비고 따르면 기원전 6세기 인물 승(勝), 또는 초한세가에 따르면 기원전 4세기 승(勝)이라는 사람이 백공에 봉하져 백(白)을 성으로 하였다고 한다. 승(勝)의 후손 백거이는 당나라 때 시인이며, 그의 사촌 백계반의 아들 백우경은 당나라 조정에서 참소을 입고 신라에 동래하였다. 당나라 후기에는 정치적 변동이 많아서 대륙을 떠나 한반도로 피난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때 들어온 사람들은 중국과 인접한 인천과 당시 신라 수도였던 경주에 정착하였다.
시조
수원 백씨의 시조는 당나라 덕종 때 첨의사(僉議事) 이부상서(吏部尙書)을 지낸 송계공 백우경(白宇經)으로, 당나라 신하들의 세력다툼으로 모함을 받게 되자, 당나라 덕종(779~805), 신라 선덕왕(780∼785) 때 신라에 동래하여 금성(현- 경주)의 금오산 아래 정착하여, 신라 좌복야사공 대사도(출-송계공 망단비), 또는 위지대상(位至大相, 출-영락보)을 관작하였다. 이후 백우경의 후손 백휘(白揮)는 고려 목종(재위, 997∼1009) 때 대사마대장군으로 수원군에 봉해지므로, 수원 백씨가 창본되었다고 한다. 당나라 황제는 송계공 백우경에게 여러 차례 환국을 권했으나, 신라에 관작한 후 학문을 이르키고 제자 양성등 다양한 국정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거절하였다. 백우경의 묘(墓)는 경주 옥산(玉山) 남쪽 기슭에 있다. 후손들은 신라 경명왕 때 중랑장을 지낸 백창직(白昌稷)을 중시조(1세조)로 하고 있다. 인구수는 2000년 기준 316,535명이다.
분 파
- 중시조 백창직(白昌稷)에게는 길(吉), 탁(卓)의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길(吉)의 후손이 28개 파(派)를 차지하고 탁(卓)의 후손은 문간공파 하나뿐이다. 백길(白吉)의 후손에서도 5세조 백간미(白簡美)의 후손이 25개 파(派)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 11세조 백인관(白仁寬)의 후손이 선정공파, 12세조 백역(白繹)의 후손이 인주공파, 13세조 백계영(白桂英)의 후손이 오산군파, 13세조 백유(白維)의 후손이 장단공파이며 10세조 백문보(白文寶)의 후손이 담암공파이다.
- 백간미(白簡美)의 셋째 아들인 6세조 백무신(白武臣)의 후손이 양곡공파, 넷째 아들인 백가신(白可臣)의 후손이 태사공파이다. 9세조인 백천장(白天藏)의 후손은 모두 17개 파(派)로 분파되었다.
- 12세조인 백장(白莊)의후손이 정신재공파이고 14세조 백사순(白思純)의 후손이좌랑공파, 16세조 백인현(白仁賢)의 후손이 훈정공파, 백인영(白仁英)의 후손이 도승지공파, 백인웅(白仁雄)의후손이 참봉공파, 백인호(白仁豪)의 후손이 별좌공파, 백인걸(白仁傑)의 후손이 문경공파이다.
- 13세조인 백효옹(白效雍)의 후손이 청산공파, 백효연(白效淵)의 후손이 산음공파, 백효약(白效若)의 후손이 임파공파이다.
- 11세조 백인석(白仁碩)의 후손이 봉익대부공파(奉翊大夫公派)이고 13세조 백운실(白雲實)의 후손이 보공장군공파(保功將軍公派), 12세조 백수희(白受禧)의 후손이 부사공파, 백수(白粹)의 후손이 금릉부원군파이고, 18세조인 백응상(白應祥)의 후손이 함판공파, 20세조인 백흥남(白興男)의 후손이 절체공파이다. 그리고 백천장(白天藏)의 여섯째 아들 백거(白琚)의 후손이 중랑장(中郞將) 수의부위공파이니, 이상이 백천장(白天藏)의 후손 17개 파(派)이다.
- 백천장(白天藏)의 동생인 백지장(白地藏)의 후손이 동림공파이고, 5세조인 백행미의 후손이 시랑공파, 백가미(白可美)의 후손이 사전공파, 백채(白採)의 손자인 6세조 백영신(白英臣)의 후손이 부여군파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세조 백창직의 둘째 아들 탁(卓)의 후손이 단계(單係)로 이어져 그 5세손인 백문절(白文節)의 후손이 문간공파이다. 이상에서 언급된 29개 파는 그 후손에 이르러 다시 몇몇 소파(小派)로 분파되기도 하였다.
역사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