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중동의 파리라고 여겨지던 레바논은 1975년 내전으로 분열되면서 여행자들의 지도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는 레바논 여행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혼란스러움도 놀랄 만큼 많이 없어졌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레바논은 수수한 크기 안에 고대 도시들이나 로마 유적, 고급스런 스키 휴양지, 목가적인 매력과 이슬람교의 건축물을 시작으로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레바논은 매우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나라의 단일 문화주의자들은 레바논의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다양성이 사회적인 몰락을 촉진할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불행히도 레바논은 이 주장이 틀린 것이라는 것을 주장할 만한 상황이 아니다. 현재 레바논을 방문하는 여행자들은 주로 부유한 단체 여행객들이다. 개별적인 여행자들은 아직 드물지만 역시 환영받는다. 레바논인들은 이방인에게 순수한 환대를 내비치며 전혀 수줍어하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도 초대하기도 한다. 이 지역의 역사나 레바논이 현재 어떻게 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알려면 지금이 가장 좋은 시기이다.
국명 : 레바논 공화국(Republic of Lebanon) 면적 : 10,452 sq km 인구 : 대략 300만 명 수도 : 베이루트(Beirut, 인구 1,500,000) 인종 : 아랍인, 팔레스타인인, 쿠르드인, 아르메니아인 언어 : 아랍어, 프랑스어(둘 다 공식언어), 영어, 아르메니아어 종교 : 이슬람, 기독교 정체 : 공화제 대통령 : 에밀 라후드(Emile Lahoud) 수상 : 셀림 알호스(Selim al-Hoss)
레바논은 지중해의 동부 해안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과 서쪽의 시리아, 남쪽의 이스라엘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이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중 하나로 대충 남북으로 180km, 동서로는 50km정도 크기이다. 수수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는 완벽히 다른 지리학적 지역들이 있다. 매우좁고 울퉁불퉁한 해안에는 이 나라의 주요 도시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내륙에는 레바논 산맥이 가파르게 솟아올라 극적인 정상과 능선을 연출하며 가장 높은 코르넷 아스사다(Qornet as-Sawda)는 3000m가 넘는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능선은 150km 길이의 베카아(Bekaa) 계곡으로 험하게 떨어져 내리며 이곳에서 1000m 고도를 유지하면서 해안과 평행하게 달린다. 베카아는 주요 포도주 산지로 최근까지 마리화나의 산지이기도 했다. 레바논 산맥 반대는 베카아 계곡 동쪽에서 완전히 메마른 중앙 산맥을 이루어 자연스럽게 시리아와 경계를 형성하고 있다. 레바논에서 가장 유명한 식물은 삼나무로 현재는 겨우 몇몇 산 정상, 그 중에서도 쵸우프(Chouf) 산맥의 브챠레(Bcharre)와 바룩(Barouk) 근처에서만 발견된다. 이들 몇몇 숲들만이 성경이 쓰여질 당시에는 이 나라를 덮고 있던 레바논의 위대한 삼나무 숲 중 남은 전부이다. 그러나 레바논은 중동에서 아직도 가장 나무가 많은 나라이며 여러 종류의 소나무가 산에서 자라고 많은 연안 지역에는 과일 나무들이 경작되고 있다.레바논의 산악 지역은 맹금류들의 고향으로 에덴(Ehden) 자연 보호구역에는 여러 종의 독수리와 대머리 수리, 빨간 수리, 보넬리 독수리, 사르디안 휘파람새, 스코프 올빼미 등이 산다. 철새이건 상주하는 새이건 바닷새들도 트리폴리 연안 앞의 팜(Palm)섬 공원에서 볼 수 있다. 바다거북이와 지중해 바다표범들도 공원 주위의 물에서 산다. 레바논의 거친 육상 포유동물로는 특이한 고슴도치 이상 재미있는 동물이 없다. 레바논의 생태학은 내전과 산업화의 진행으로 크게 위협받고 있다. 전쟁동안 오염물질이나 쓰레기가 바다와 강에 마구 버려지고 무계획적인 건물들이 여기저기 들어섰다. 정부의 통치력 부재는 곧 여러 산악 지역에서 불법적인 채석이나 벌채가 이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현재 여러 자연보호 기관이 이러한 피해를 고치고 법을 통해 자연 환경과 금렵지역을 보호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다양한 지형을 가지고 있으므로 기후가 지역마다 크게 변화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넓게 이야기해 레바논은 세 가지 다른 기후 지대를 가지고 있다 - 연안지역과 산악지역, 베카아 계곡이 그것들이다. 연안지역은 시원하고 비가 많은 겨울과 덥고 때로는 숨이 막힐 듯한 지중해성 여름을 가지고 있다. 산악지역은 전형적인 고산 기후이다. 많은 사람들이 답답한 베이루트의 여름을 피해 고원으로 모여들며 겨울에는 눈을 찾아 다시 온다. 베카아 계곡은 뜨겁고 건조한 여름과 춥고 건조하며 눈, 서리, 거센 바람을 동반한 겨울로 대비된다.
레바논은 성경에 나오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정복자들은 이곳의 풍부한 자연 자원과 안전한연안 정박장, 그리고 높은 산들의 방어 가능성에 매력을 느껴왔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이 나라의 역사는 침략자, 약탈자, 유명한 사람들의 명사록이 되었다. 레바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BC 10,000년경의 일로 BC 3,000년 전에 이르러서는 각 마을들이 전형적인 도시로 발전했다. BC 2,500년경에 연안은 지중해에서 가장 위대한 초기 문명 중 하나를 일으킨 페니키아인들이 나중에 들어와 이곳을 식민지화했다. 페니키아인들은 정치적으로 전혀 통일된 적이 없으며 각각의 독립된 도시 국가들에서 나오는 사업과 지적인 노력의 결과를 통해 이곳을 지배했다. 훌륭한 장인들이었던 그들은 월등히 발전된 배와 항해 기술을 통해 바다를 지배했고 최초의 알파벳을 발명하였다 이 발명은 초기 그리스 문화의 문학적 걸작을 낳게 하는 주목할만한 발전이다.BC 9세기에 앗시리아인들이 들어와 페니키아의 배타적인 지중해 무역 지배를 깨뜨렸다. 그들은 신바빌로니아인들에게 굴복하였고 다시 페르시아인들(페니키아인들에게는 해방자로 여겨졌다)들이 이곳을 지배했다. 페니키아인들은 BC 4세기 알렉산더 대제가 중동을 휩쓸면서 마침내 쇠퇴하였고 서서히 그리스화되었다. BC 64년 폼페이대제가 페니키아를 정복하고 로마제국의 시리아 주의 일부로 만들었다. 베이루트는 헤롯왕 치하에서 중요한 중심지로 발벡(Baalbek)에 엄청난 신전들이 건설되었다. 로마제국이 분열되면서 기독교가 힘을 얻고 레바논은 4세기에 콘스탄티노플(현재의 이스탄불)에 수도를 둔 동쪽 비잔틴 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스정교는 이곳에서 크게 세력을 얻지 못했으며 남쪽에서 이슬람이 알라의 이름으로 들어오면서 쉽게 레바논을 지배했다.최초의 이슬람 왕조인 우마이유드(Umayyuds)는 레바논을 한 세기 동안 쥐고 흔들었지만 특히 레바논 산 근처에 난민촌을 지은 시리아의 마론파를 비롯한 현지의 유태인과 기독교인들의 거센 저항에 직면하였다. 우마이유드가 750년 압바시드(Abbasids)에 무너지면서 레바논은 페르시아의 압바시드 제국에 밀려 침체하기 시작했다. 이 제국은 11세기 파티미드(Fatimid)왕조에 밀려나기 전까지 지속되었고 파티미드는 십자군 원정이 시작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십자군은 주로 예루살렘을 목표로 했지만 이 도시를 약탈하기 전에 마론파와 손을 잡고 시리아와 레바논 연안으로도 진격했다. 이슬람 아이유비드(Ayyubids)는 시리아, 이집트, 서아라비아, 예멘 일부 등을 공격하였고 나중에 13세기 말부터 300년 간 레바논을 지배한 마멜루크로 알려진 특이한 노예 군인 왕들에 의해 전복되었다. 그들은 대부분의 힘과 자원을 거세게 들이닥치는 몽고군과 싸우데 쏟아 부었다. 마멜루크는 오토만 제국의 등장으로 쇠약해졌으며 레바논의 부족 지도자들 레바논 중앙의 타누크히드 수장, 마론파, 드루제 등은 여러 제국과 복잡한 연합을 형성했다. 오토만의 술탄 셀림 I (Selim I)은 1516-17년에 정복하였고 파크 아드 딘II(Fakhr ad-Din II, 1586-1635)과 파크의 조카 아마드 마안(Ahmad Ma'an)에 의해 잠시 방해를 받았다. 아마드 마안은 1667년 수장국을 세워 현재 레바논의 핵심을 형성했다. 아마드 마안이 죽자 권력은 쉬합 가문으로 넘어가 국내의 세력 다툼과 종교적 차이가 수장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1840년까지 이 가문이 권력을 쥐었다. 1842년 오토만은 레바논산을 두 행정구역으로 나누어 하나는 드루제, 다른 하나는 마론파로 만들었다. 이들 사이의 다툼은 필연적인 것으로 나누어 지배하겠다는 정책을 펴던 오토만은 이것을 더욱 부추겼다. 1845년까지 드루제와 마론파뿐 아니라 농부와 봉건적인 통치자들 사이에서도 전쟁이 일어났다. 오토만은 유럽의 압박을 받으며 오토만 기독교 총독의 지배하에 하나의 레바논 행정부를 설립하고 봉건제를 종식시켰다. 새로운 체제는 제대로 효과가 있어서 터키 군사 지배에서 심각한 기근을 겪게 되는 1차 대전까지 안정과 경제적인 번영을 가져왔다. 1918년 연합군의 승리에 뒤이어 레바논은 프랑스의 지배하에 들어갔다.2차 대전 중 레바논은 완전히 독립하였고 주요 교역과 은행업을 발전시켰다. 레바논의 결정적인 약점은 권력이 우익 기독교 국민들에게 집중되는 동안 이슬람교인(인구의 반을 차지하는)은 실제 정부에서 배제되고 있다고 느끼는 데서 시작되었다. 많은 수의 팔레스티나인들이 들어오면서 갈등의 요소는 더욱 커져갔다. 내전이 발발한 것은 1975년으로 압도적인 이슬람 좌익 연합과 기독교 우익 군부 세력이 충돌하였다. 이후 20년 동안 정신 없이 얽힌 내전과 국제 전쟁 그리고 수많은 인질극은 이 나라에서 흔한 일이 되었다. 대충 이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시리아는 이슬람과 기독교인 사이의 불안정한 평화를 성사시키려는 레바논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개입하였고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로부터 북부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대리 군대를 설치하면서 진입해 들어왔고 UN은 기독교-이슬람교 사이의 내전 발발을 억제하기 위해 평화유지군을 보냈다. 이스라엘은 1982년 PLO를 제거한다고 발표하면서 베이루트를 포위했다. 또 이스라엘은 팔레스티나시민을 학살하는 기독교 민병대를 지원했다. PLO는 부분적으로 미국에 의해 철수되었고 미국, 서유럽 군이 합쳐진 다국적군(MNF)은 팔레스티나와 이슬람교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배치되었다. 이스라엘이 1년 남짓만에 철수하면서 드루제 이슬람 민병대와 기독교군 사이의 전투가 발발하였고 레바논 군과 이슬람 군과의 전투도 일어났다. 다국적군은 많은 인명피해를 입고 1984년 철수했다.시리아는 서서히 레바논의 이슬람 지역을 손에 넣었지만 1988년 레바논의 신 군사정부는 시리아를 몰아내려 했다. 이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싸움은 시리아와 좋은 관계에 있던 새로운 대통령인 중도 마론파의 엘리아스 히라위(Elias Hrawi)가 정권을 잡을 때까지 계속되었다. 1992년 모든 살아남은 외국 인질들이 풀려났으며 시리아 군대는 철수를 시작했다. 1992년 8월 의회 선거가 20년 만에 치러졌고 이란의 지원을 받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정당인 헤즈볼라당은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다. 라피크 하리리(Rafiq Hariri)는 새로운 수상이 되었다. 헤즈불라와 이스라엘 군인의 전투는 1993년까지 계속되어 분노의 포도 작전으로 최고점에 이르렀다 - 이스라엘은 레바논 남부의 80여개 마을에 대해 일주일간 공중, 바다, 육지의 폭격을 계속했다. 1996년 4월 이스라엘이 남부 레바논과 베이루트를 공습하면서 다시 말썽이 커졌다. 국제사회의 반응은 이스라엘을 비난하였고 UN은 정전 협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긴 전쟁으로 인해 150,000명의 레바논 인들이 죽거나 황폐화된 나라를 떠났다. 기반 산업의 피해는 수백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오늘날 국내적으로 레바논은 빠르게 회복하고 있어서 건물도 늘어가고 있고 여러 기관들도 다시 문을 열며 경제도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 레바논의 문제는 다른 중동 국가에서는 한물간 강대국 세력들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과거 몇 십년 동안 중동 문제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국가들은 레바논을 싸움터로 이용하면서 억지를 부려왔다 - 그것이 PLO이건 시리아, 이란, 이스라엘, 아니면 실제로는 UN이건 모두 마찬가지이다. 레바논의 주요 정치적 이해관계의 갈등은 현재 어느 정도 진정되어있지만 이스라엘-레바논 국경을 사이에 두고 양쪽의 총격은 종종 계속되고 있다.
GDP: US$110억 1인당 GDP: US$3000 연 성장률: 6% 인플레이션: 9% 주요 산업: 농업, 건설, 여행산업 주요 교역국: 사우디아라비아, 유럽 연합, UAE
문화
레바논은 전통적으로나 현대적으로나 활기찬 예술을 보여준다. 레바논의 춤인 답케(dabke)는 열정적인 민속 무용이다. 유명한 벨리 춤도 처녀 신부에서 육감적인 여인으로의 변신을 나타내는 의미로 결혼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나이트클럽에서도 인기있다. 전통적인 아랍 음악은 불협화음의 곡조와 복잡한 박자를 이용하며 종종 현란하고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노래가 동반된다. 이용되는 악기에는 배 모양의 현악기인 우드, 진흙이나 나무, 철제 또는 가죽 퍼커션 악기인 타블라, 끝이 뚫린 관악기이며 하나의 리드를 가지고 있는 아름답고 감미로운 음색의 나이, 적어도 81개의 뜯는 줄이 달린 편평한 사다리꼴 악기, 카눈 등이 있다. 카라칼라는 동서양의 춤과 음악이 혼합된 놀라운 중동식의 발레이다. 문학과 시는 레바논 문화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매우 대중적인 시의 형태 중 하나는 자할로 즉흥적인 시구에 의한 대화를 여러 시인들이 함께 노래한다. 가장 유명한 레바논 문학의 인물은 칼릴 지브란(Khalil Gibran)으로 19세기 시인이며 작가, 예술가인 그는 기독교의 신비주의를 다루었다. 현대 작가로는 아민 마알루프(Amin Maalouf), 에밀리 나스랄라(Emily Nasrallah), 하난 알샤이크(Hanan Al-Shaykh) 등이 있다. 레바논 인구의 60% 정도는 이슬람교인이며 40%는 기독교인이다. 가장 큰 이슬람 분파는 쉬테(쉬아)교이고 순니와 드루제가 뒤를 잇는다. 드루제는 중동의 흥미로운 종교 중 하나이다. 원래 이슬람의 분파였는데 너무 많이 주류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종교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드루제는 신이 스스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여러 번 내려왔으며 마지막 화신은 1021년 죽은 6번째 파티미드 칼리프 알하킴 비 암릴라(Al-Hakim bi Amrillah)였다고 믿는다. 그들은 환생을 믿으며 모든 실재에는 정해진 수의 영혼이 있다고 여긴다. 드루제는 목요일 저녁에 눈에 띄지 않는 강당에서 집회를 가지며 다른 사람들은 입장이 허락되지 않고 의식은 매우 비밀스럽게 진행된다. 가장 큰 기독교 분파는 마론파이며 뒤를 이어 그리스 정교, 그리스 카톨릭, 시리아 카톨릭, 칼데안, 개신교, 정교 교회 등이 있다.아랍어와 프랑스어는 공식언어이지만 아랍어가 훨씬 많이 쓰이며 영어도 비즈니스에서 점점 널리 사용되고 있다. 아랍인들은 예의를 중시하며 사람을 만나면 극진한 인사와 건강이나 자잘한 것들까지 물어보면서 시작한다. 아지나비(외국인)이기 때문에 이것저것 속속들이 알기를 기대하지 않지만 적당한 때에 적절한 표현으로 물어보면 좋은 호감을 줄 수 있다. 사실 레바논인들은 외국인이 그들의 말로 어떻게든 얘기해보려고 하면 아주 기뻐하며 발음이나 문법 따위야 어떻든 항상 웃으며 ' 아, 아랍어를 무척 잘하네요' 라며 칭찬한다. 레바논의 음식은 기쁘게도 비싸지 않다. 신선하고 향기로운 재료와 미묘한 향료를 사용해 레바논인들은 터키와 아랍 음식의 가장 좋은 점을 취하고 프랑스 풍을 가미한다. 전형적인 식사는 시금치 파이, 소스, 건조한 치즈, 피자, 속을 채운 포도나무 잎 등 여러 전채로 시작된다. 이들에 뒤를 이어 종종 쌀이나 견과류를 채운 주요리인 고기(주로 양고기)나 생선, 그리고 덧붙여 타불레나 파투쉬 같은 샐러드를 내온다. 레바논의 요리라고하면 키베를 들 수 있는데 이 요리는 얇게 썰은 양고기와 밀가루 반죽으로 때로 익히지 않은 채 내오기도 하지만 주로 파이 안에 튀기거나 구워 내온다. 식사를 대충 끝낼 때는 끈적한 바클라바 페이스트리나 다른 밀가루와 호두를 이용해 만든 디저트를 먹는다. 아랍의 커피는 매우 유명하다. 청량 음료로는 건포도로 만들어 송과와 함께 내오는 맛있는 젤랍과 요구르트 음료인 아이란이 있다. 술은 싸고 쉽게 구할 수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아락으로 물과 얼음을 섞어 마신다.
축제 및 행사
대부분의 휴일은 종교적인 것으로 레바논에는 아주 많은 종파가 있기 때문에 축하할 일도 많다. 주요한 이슬람교의 휴일은 서양 달력보다 11일 정도 적은 음력 하지라 달력과 연관되어있으므로 이슬람의 휴일은 매년 11일 정도전에 있게 된다. 주요한 행사로는 라스 아스사나(Ras as-Sana, 새해), 모하메드의 손자가 암살 당한 것을 추도하며 쉬이테 이슬람교인들이 지키는 아쵸라(Achoura), 새벽부터 황혼까지 단식하는 라마단 등이 있다. 라마단 끝은 에이드 알피트르(Eid al-Fitr)로 단식의 끝을 알리는 축제이다. 마론교의 수호 성인인 마르 마룬(Mar Maroun)은 2월 9일에 축하되며 기독교의 부활절은 서양달력으로 한번, 그리고 동방 기독교에 따라 다시 한번 열린다. 세속적인 휴일은 독립 기념일(11월 22일), 1996년 카나(Qana)에서 107명의 레바논 시민이 UN 캠프에서 이스라엘 폭탄에 의해 학살당한 것을 슬퍼하는 카나의 날(4월 18일)등이 있다. 좀더 즐거운 휴일로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매년 7월의 발벡 아트 페스티발이 4일 동안 열린다.
여행자 정보
비자: 걸프 협력 위원회(GCC)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의 국민들은 입국시 비자가 필요하다. 호주, 캐나다, 대부분의 유럽연합 국가, 뉴질랜드, 미국 국민은 입국시에 비자를 얻을 수 있다. 보건위생: 소아마비, 파상풍, 장티푸스 예방 접종을 맞는 것이 좋다 시간: 한국보다 7시간 늦다 전압: 220V, 50Hz 도량형: 미터법(도량형 환산표 참조)
경비 및 환전
통화: 레바논 파운드(lira, LL) 일반 경비: 저렴한 숙소: US$10-20 중급 호텔: US$20-40 고급 호텔: US$100 이상 저렴한 현지 식사: US$4-8 중간 가격대의 레스토랑 식사: US$10-15 최고급 레스토랑의 식사: US$3-40
레바논은 지중해나 중동 기준으로 볼 때 상당히 비싼편으로 주요 경비는 숙소이다. 그러나 신중하게 지출하면 싼 숙소와 거리 노점상에서 식사하면서 하루 US$25에서 US$30 정도에서 여행할 수 있다. 좀더 편안한 여행을 하려면 비싼 호텔 가격을 고려할 때 US$50에서 US$80까지 든다. 베이루트 밖으로는 숙소가 좀더 싸지지만 식사 가격은 레바논 전체적으로 거의 비슷하다. 펠라펠과 슈와르마를 먹으며 생활하면 식대로는 몇 달러밖에 들지 않을 것이다. 장거리 버스를 포함해 대중 교통은 거의 US$5이상 들지 않는다.대부분의 은행은 현금이건 여행자 수표이건 미국 달러나 영국 파운드만 바꾸어 주지만 레바논 전역에 퍼져 있는 환전소에서는 거의 모든 통화를 취급한다. 또한 환전소는 은행보다 좋은 환율을 쳐준다. 신문에서 환율을 확인하고 가장 좋은 곳을 찾아보자. 다른나라의 신용카드는 큰 호텔 등에서 통용되며 점점 식당과 가게에서도 받아주고 있다. 팁은 보통 서비스의 대가로 기대된다. 레바논 화폐의 하락으로 급료가 예전보다 많이 적어졌으므로 종업원들에게 팁은 수입을 보충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대부분의 식당과 유흥 장소는 16%의 서비스 차지를 계산서에 덧붙이지만 5%에서 10% 정도의 팁을 따로 주는 것이 관례이다. 레바논에서는 몇몇 정해진 가격을 제외하고는 택시 요금에서 호텔 요금까지 모든 것이 흥정의 대상이 된다. 대부분의 호텔은 3일 이상 숙박할 경우 할인을 해준다.
여행 시기
햇빛을 받으려면 6월에서 9월 중순까지 여름이 가장 레바논을 여행하기 좋다. 기후는 덥고 건조하지만 연안은 매우 다습하다. 많은 사람들에게 놀랄 만한 일이지만 레바논은 점점 겨울 스포츠 장소로 인기를 얻고 있다. 레바논 안에는 스키 휴양지가 여럿 있으며 스키 시즌은 12월에서 5월까지이다. 5월 동안에는 연안의 기후가 수영에 적합할 만큼 따뜻하며 전국이 꽃으로 수놓아진다. 운이 좋다면 스키 시즌의 마지막과 해변에서의 일광욕, 그리고 방안의 신선한 꽃을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가을도 풍경이 아름다워서 10월은 참기 힘든 더위가 물러가고 여행에 좋은 상쾌한 시기로 바뀐다.
주의사항
레바논 남부와 남동부의 끝은 UN과 이스라엘의 관할로 포성이나 폭격, 포격전, 공중 비행 등이 벌어진다. UN 안전 지대는 레바논-이스라엘 국경을 따라 1.5km 넓이의 지역에 걸쳐 있으며 여행자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이스라엘 군대는 이 지역을 점령하고 레바논 저항군과 헤즈볼라군이 운영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근처 레바논 마을에 종종 공격을 가한다. 레바논 저항군과 헤즈볼라는 폭격과 수류탄으로 응수하므로 끊임없이 이런 일들이 계속된다. 이스라엘 군은 남쪽의 점령지로 출입을 막기 위해 다른 레바논 구역에서 국경을 막고 있다. 이런 영향을 받는 마을로는 하리스(Haris), 제진(Jezzine), 카프라(Kafra), 야테르(Yater) 그리고 알마누리에(al-Manourieh) 등이 있다. 베카 서쪽 고원과 근처의 역사적인 항구 도시인 타이레(Tyre)도 공격을 받곤 한다. 이 지역과 근처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현재의 정치적 군사적인 동태를 주시할 필요가 있으며 언제든지 여행 계획을 바꿀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좋다.
베이루트(Beirut)
한때 중동의 파리로 알려졌던 베이루트는 레바논의 17년 전쟁동안 아주 많이 파괴되었다. 이 도시는 폭격과 난민의 유입에서 아직 회복되지 못했고 파괴나 재건설, 인구의 혼잡, 혼란 등은 종종 여행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기도 한다. 레바논의 지중해 연안 가운데 정면으로 위치한 베이루트는 극적인 대비를 가진 도시이다. 아름다운 건축물이 꼴사나운 콘크리트를 따라 서있는가 하면 재스민 향이 가득한 정원을 가진 전통 가옥이 현대적인 건물에 의해 초라하게 보이기도 한다. 유서깊은 좁은 골목을 돌다보면 불쑥 넓은 대로가 나오고 멋진 새 차가 노점상 손수레와 같이 경쟁하기도 한다. 비록 이곳에 더 볼 것이 남아있지 않다고 하지만 이 도시는 아직도 선명하고 매력적인 면을 가진 곳이다. 북서쪽의 함라(Hamra) 지역은 윈도쇼핑과 분위기에 젖기 딱 좋은 곳이다. 함라 북쪽의 베이루트 미국 대학은 작은 고고학 박물관을 가지고 있다(국립박물관처럼 인상적이지는 않지만 국립 박물관은 아직도 재건축 중이다). 박물관에는 페니키아 토우가 특히 흥미로운 소장품이다. 베이루트 동부의 수르속(Sursock) 박물관은 화려한 이탈리아식 양식을 한 19세기 빌라에 들어서 있다. 내부도 멋스럽고 터키의 은 세공품, 성화, 현대 레바논 미술품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작지만 흥미로운 도서관도 갖추고 있다. 시내를 가보면 전쟁 중 이 도시가 겪은 일들에 대해 잘 알게 될 것이다. 어떤 지역들은 아직도 보수 중이고 다른 곳들은 불도저로 밀어놓았으며 몇몇 곳에서는 타버린 포탄이 참사를 보여주고 있다. 시내 중심가의 순교자들의 장소(Place des Martyrs)는 거의 완전히 불도저로 밀어놓았으며(심금을 울리는 순교자 상만이 그대로 서있다) 이 도시가 이 지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만한 거대한 게시판이 세워져 있다. 대 모스크는 아직도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역사적인 건물 중 하나로 비잔틴 시대에 십자군 교회로 세워졌으며1291년 모스크로 바뀐 곳이다. 피전 바위(Pigeon Rocks)는 베이루트에서 가장 유명한 자연 경관이다. 앞바다에 위치한 이들 바위들은 베이루트의 극적인 바다 절벽의 모습을 아름답게 보충하고 있으며 현지인들은 교통 소음에서 벗어나서 황혼을 보기 위해 이곳에 모여든다. 베이루트의 연안 도로인 코르니체를 따라 걸으면서 바다 공기를 마시며 가끔 차를 개조한 노점상에서 파는 커피나 손수레에서 파는 먹거리를 먹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비블로스(Byblos)
고대 도시인 비블로스는 베이루트에서 연안을 따라 40km 정도 올라간 거리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사람들이 살아온 도시 중 하나이다. 비블로스는 7000년 전 신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BC 3000년경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교역항구가 되기 시작해 이집트로 삼나무와 기름을 보내는데 이용되었다. BC 10세기까지는 페니키아의 주요 도시가 되었고 현재 알파벳의 모태가 된 페니키아 문자를 발달시킨 곳이 되었다. 페르시아와 알렉산더 대제,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아랍 제국 등에게 차례로 침략을 당하고 마지막에 십자군이 차지하였다가 버리고 간 이후 비블로스는 서서히 잊혀져갔다.내전 이전에 비블로스는 제트기를 타고 다니며 유람하는 부유층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었으며 역사적인 항구와 아름다운 구시가는 손상되지 않고 남아 있다. 구시가 남쪽의 유적은 이 도시의 중세 성벽이 있는 십자군 성의 잔재를 지나서 입장할 수 있다. 이 안에는 BC 5000년 전의 오두막 유적도 있으며 BC 2800년 전의 바알랏 게발(Baalat Gebal) 신전, BC 2700년 전의 L 자형 신전, 두 개의 왕족 무덤, 그리고 BC 2000년 전의 신전과 로마 시대의 원형 극장 등이 있다.다른 볼거리로 레바논의 밀랍 박물관은 레바논의 역사와 문화를 다소 기괴하고 때로는 오싹한 회화로 그린 전시물을 갖추고 있다. 근처의 성 요한 교회는 십자군에 의해 세워졌다. 현지 시장은 활기 넘치며 비블로스는 몇몇 물 속에 잠긴 유적을 포함해 멋진 해변도 있다. 비블로스에는 겨우 몇 곳의 호텔밖에 없지만 식당은 충분히 있다.
트리폴리(Tripoli)
베이루트 북쪽 86km에 있는 트리폴리는 레바논에서 두 번째 큰 도시이며 주요 항구이자 북부 레바논의 교역 중심이다. 비록 다른 곳보다 현대적이기는 하지만 트리폴리의 매력은 중세 역사와 마멜룩 건축에 있다. 이곳은 다른 레바논 도시보다 내전의 피해를 덜 입어 아랍의 매력적인 분위기와 좁은 골목, 시장, 한가로운 생활과 친절한 사람들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트리폴리는 또한 레바논의 단 과자로 가장 유명해서 시내 어디를 가건 달콤하고 끈적한 과자 가게를 들르지 않고는 여행할 수 없을 지경이다.트리폴리는 두 지역으로 나뉘는데 바다를 향해 튀어나와 있는 알미나(Al-Mina, 항구 지역)와 시내가 그것이다. 중심가는 사헤트 엣탈(Sahet et-Tall)로 버스 정류장이나 숙소, 식당들을 발견할 수 있는 커다란 광장이다. 구시가는 동쪽으로 이어져 있으며 좁은 골목과 색색의 시장, 함맘, 칸, 모스크, 신학교 등이 미로처럼 들어차 있다. 이곳은 또 14세기부터 장인들이 그들의 작품을 만들어온 활기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몇몇 굉장한 마멜룩 건축물들로는 14세기의 타이날(Taynal) 모스크와 알카르타위야 마드라사(Al-Qartawiya Madrassa), 그리고 복잡한알부르타시야 모스크 & 마드라사(Al-Burtasiya Mosque & Madrassa)가 있다. 원래 십자군에 의해 1103년에 지어진 성 질(St-Gilles) 요새 탑은 트리폴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13세기에 심하게 탔으며 14세기에 부분적으로 보수되었고 이후에도 몇 번이나 보수되었지만 아직도 인상적인 기념물로 남아있다. 알미나에는 사자탑을 들러 볼만한데 이곳은 이 도시를 지키기 위해 마멜룩들이 세운 건축물들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예이다.
타이레(Tyre)
고대 타이레는 레바논 남쪽 연안에 있었으며 BC 3000년 경에 페니키아에 의해 세워졌다. 원래는 육지 지역과 섬 도시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BC 4세기에 섬을 반도로 바꾼 둑길에 의해 연결되었다. 페니키아 시대에 타이레는 자줏빛 염색과 유리 산업으로 유명했으며 로마 시대의 유적을 통해 현재에 알려졌다. 타이레의 구시가는 반도에 있으며 신도시는 조금 내륙에 위치해 있다. 더 남쪽으로가면 로마 시대의 타이레 유적으로 다다르게 된다. 로마의 유적에는 기념비적인 아치 길을 따라 이어진 잘 보존된 도로가 나온다. 한편은 수로 옆에 이어져 있으며 양쪽에는 정교하고 복잡하게 조각된 돌과 대리석 석관들이 수없이 많이 늘어서 있다. 유적의 극장은 AD2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로마시대에 가장 큰 것 중 하나로 20,000명이 앉을 수 있을 정도이다. 매년 여름이면 이 극장에서 축제가 벌어진다.타이레는 이스라엘 국경에서 북쪽으로 겨우 20km 떨어져 있으며 긴장감이 감도는 시기에는 주변 지역이 특별히 이스라엘의 포탄 공격을 많이 받는다. 따라서 긴장이 고조될 때는 이 곳을 피하는 것이 좋으며 다른 때는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브챠레(Bcharre)
브챠레와 세다스(Cedars)로 가는 여행은 트리폴리에서 내륙으로 30km 정도이며 레바논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들 중 몇 곳을 지난다. 이 길은 산의 비탈을 따라 올라가면서 점점 고도가 높아져 장대한 협곡 위를 가파르게 지나간다. 지붕에 붉은 타일을 얹은 집들이 모여 있는 마을이 고원 꼭대기에 우뚝 서있거나 믿을 수 없게 산허리에 매달려 있고 고개를 돌 때마다 올리브 과수원이나 포도 농장, 수풀이 무성한 계곡, 산꼭대기가 언뜻언뜻 보인다. 브챠레 마을은 지브란 박물관 - 이곳에서 태어나고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오래된 수도원에 묻힌 유명한 작가이자 예술가 - 이 있는 곳이다. 박물관에는 그의 유화나 스케치, 과슈, 그리고 그의 많은 원고 등을 방대하게 소장하고 있다. 수도원의 예전 예배당에 묻힌 그의 무덤도 방문할 수 있고 같은 방안에는 그가 쓰던 책상이나 의자, 다른 여러 물건들이 놓여 있다. 브챠레 위로는 길이 아르즈 아르랍(Arz Ar-rab, 신의 삼나무 숲)이라고 불리는 레바논에서 마지막 남은 성서의 삼나무 숲으로 이어진다. 한때는 레바논 전역을 덮었던 삼나무 숲은 심하게 이용되면서 이곳의 작은 숲만이 남아 있다. 여기 있는 삼나무 중 몇몇은 1500년 전의 것들이며 이 장소는 국립 유적지로 분류되어 있다. 브챠레 아래에는 장엄한 카디샤(Kadisha) 협곡에 초기 마론파 장로들의 무덤과 바위를 깎아 지은 수도원들이 있다. 이 협곡의 정상과 바닥까지 이어진 길들은 하이킹의 천국이다.
바알벡(Baalbek)
바알벡은 베이루트 북동쪽 86km 에 있으며 원래 페니키아의 신 바알의 이름에서 나왔다. 이 마을은 그리스인들에 의해 헬리오폴리스로 개명되었고 로마인들에 의해서는 주피터신의 예배 장소로 만들어졌다. 로마 제국 시대에 바알벡은 로마의 시리아 식민지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다. 최근에는 반 서양 이슬람 원리주의자인 헤즈볼라가 이곳에 본부를 만들었으며 마을은 2,3년 전부터 다시 여행자들에게 문을 열기 시작했다. 현대적인 마을은 아주 조그맣지만 로마 시대의 유적은 이 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 유적지일 것이다. 바알벡의 아크로폴리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것 중 하나이다. 이 복합구역은 300m 길이이며 아랍 시대에 지어진 주랑과 두 곳의 정원, 담이 딸린 두 곳의 신전이 있다. 주피터 신전은 AD 60년경에 완성되었고 기념비적인 계단의 꼭대기에 있는 높은 단 위에 있다. 이곳의 커다란 기둥(22m)은 겨우 여섯 개만 남아 있으며 원래 건물의 광대한 크기를 미루어 짐작케 한다. 근처에 있는 바쿠스 신전은 AD 150년 경에 지어졌으며 상당히 잘 보존되어 있다. 주요 지역 밖으로는 작고 섬세한 비너스 신전이 있으며 이 건물은 세로 홈을 판 기둥으로 지어진 거대한 원형 건물이다.
잘레(Zahle)
베이루트에서 내륙으로 40km 들어간 잘레는 아름답고 매혹적인 휴양지로 비르다우니(Birdawni) 강의 가파른 제방을 따라 위치해 있다. 마을 위쪽에는 말 그대로 수십 개의 야외 식당이 강을 따라 이어져 있다. 여름 동안에는 이 나라에서 가장 맛있는 레바논 음식을 즐기는 현지인과 베이루트 사람들로 가득하다. 잘레는 또한 레바논에서 가장 독한 술인 아락을 마시기에 적당한 곳이다. 아락은아니씨 향미의 브랜디로 포도주를 만들고 남은 찌끼를 발효해 만든다. 싸고 순수한 알코올로 매우 빨리 취하게 만들지만 다행스럽게도 숙취는 없다. 또 몇 잔 걸치고 나면 훨씬 더 마실만한 술이다.
레바논은 굉장한 트레킹을 경험하게 해줄 산들과 협곡들 가지고 있다. 보통 마을 사이는 비교적 짧은 거리이므로 원한다면 트레킹을 하면서 밤을 지샐만할 곳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스키리조트는 여섯 곳이 있으며 여러 가지 난이도의 슬로프를 가지고 있다. 장비 대여는 모든 리조트에서 가능하며 가격은 적절한 수준이다.레바논 해안에는 모래사장이 많지 않다. 대부분의 수영은 바위나 방파제에 인공적으로 만든 단에서 시작한다. 모래사장을 찾으려면 가장 좋은 곳은 레바논 남쪽 끝 타이레 바로 남쪽에서 볼 수 있다. 비블로스나 트리폴리 근처의 체카(Chekka) 근처에도 괜찮은 해변이 있다. 멱을 감을 만한 바위들 밑에 때로는 좋은 스노크링 장소가 있으며 수상 스키, 윈드서핑, 요트 등도 모두 인기 있다.
레바논으로 가는 여행은 매우 쉬워졌다. 베이루트로는 여러 항공사가 취항하며 이 도시에서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나머지 중동국가로도 자주 비행기가 뜬다. 국영 항공사인 미들이스트 에어라인은 호주와 캐나다로도 날아간다. 미국은 최근 레바논 여행 금지 조치를 철회하였고 미국에서 직접 레바논으로 가는 비행기도 가까운 시일 내에 가능해질 것이다. 이란 혁명과 레바논 내전으로 20년간 끊겼던 베이루트와 테헤란 사이의 비행기도 재개될 것이다. 베이루트 공항은 시내에서 5km 남쪽에 있다. 출국세는 이코노미 클래스가 US$33이며 비즈니스 클래스는 US$49, 퍼스트 클래스는 US$66이다. 시리아는 레바논과 육로를 개방한 유일한 나라이다 - 이스라엘과의 국경은 당분간 폐쇄되어 있을 것이다. 시리아와 레바논은 서로 비자를 발급하지 않으므로 미리 비자를 받아가야 한다. 베이루트와 다마스쿠스 사이를 오가는 버스는 하루에 몇 편이 있으며 베이루트에서 알레포(Aleppo)와 홈스(Homs), 트리폴리에서 라타키아(Lattakia)와 홈스로 가는 버스나 서비스 택시도 있다. 차를 가지고 레바논으로 가려면 국경에서 상당한 돈을 지불할 각오를 해야한다 - 나중에 떠날 때 환불해 주지만 상당한 액수를 내야한다.
레바논은 작은 나라이므로 한쪽에서 다른 끝까지 가는데 세시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돌아다니는데 서비스 택시를 이용하며 많은 택시들이 버스처럼 정해진 노선으로 운행된다. 승객은 5명을 태우며 요금은 1/5씩 나누어 낸다. 또한 손님을 태우려고 돌아다니는 해적 택시들도 많이 있는데 이들은 서비스택시보다 비싸지만 겉보기는 똑같으므로 타기 전에 물어보는것이 좋다. 베이루트와 다른 도시 사이는 버스가 다니지만 자주 운행되지 않으며 시간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다. 도시간 버스 서비스를 복구하려는 계획이 있지만 아직은 머릿속에서만 구상되는 단계이다. 철도 서비스가 복구되는 것은 거의 무리일 듯이 보인다. 렌터카는 상당히 비싸며 도로사정과 운전자의 부풀린 머리스타일로 악명 높다. 도로 규칙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교통 체증은 어디서건 일어나고 속도 제한도 없다. 도로 주행은 원칙적으로는 오른쪽 주행이며 휘발유는 싸고 쉽게 살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