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삶에 지쳐 까맣게 잊고 살아왔는데 최근 아들놈 장가 보내고 집안 정리하다 찾아낸 누렇게 빛바랜 사진이며 귀국후의 소식이 담긴 잉크가 반쯤 번진 여러장의 편지를 보니 내가 너무 무심했 던것 같아 새삼 가슴이 아려오는게 지금쯤 어떻게 변했을까 싶다. 1968년 베트남 푸캇 맹호1연대 2대대 7중대에서 함께 근무하다 나의 연장으로 먼저 귀국한 고향이 전남 목포인 팔방미남 김상현이가 무척이나 만나보고 싶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멋진 놈이었는데...! 어느날 작전을 마치고 베이스로 귀환하여 떠들석 소란한 가운데 나에게 대뜸 한다는 소리가 내가 잘아는 사람중에 한사람의 이름을 대 보라고 하기에 왜?하고 물었더니 지녀석이 그 사람의 신상에 대해 한번 생각나는데까지 맞춰 보겠노라고...!!!???
그런데 이 친구 정말 귀신같이 알아 맞히는데 체격/스타일/취미/취향/식성/버릇 등등 기가 막게 알아 맞추더니 마지막에 혼자말 처럼 혹시 덧니가 있을지도...? 허걱 뭔가 글을 쓰서 획수 풀이도 아니고 그냥 내 입에서 나가는 이름만 듣고 99.9%를 알아 맞치고는 한다는 소리가 조용한 분위기였다면 100% 자신 있다며 또 한다는 소리가 니 혹시 관상이 보고 싶으면 아침 일찍 세수하지 말고 지한테 오라나...^^
또 한번은 안쾅휴양소에서 모 소대장의 애인 이름을 쭈욱 알아 맞치고는 마지막에 또 혼자말처럼 혹시 물만두를 좋아할것 같다고 했더니 소대장 무릅을 탁치며 즉석에서 PX에 캔맥 1BOX 주문해 안겼다는 진짜 희안하고 멋찐 싸나이가 오늘따라 비도오고 많이도 그립습니다. 조선대 재학생이었으며 운동이면 운동 음악이면 음악 문학이면 문학 게다가 점쟁인지 관상쟁인지 모르겠지만 장난도 좋아하고 재대하고 깊은 산속에 가서 살자고 하는둥 좌우간 멋진놈...!
그 옛날 주소는 전남 목포시 북교동 154번지 6반 김옥심씨댁 뭐 이렇게 되어 있었는데...!
부산에서 서 건 작 010-7569-5973 멜-ds5giw@hanmail.net
전상학: 1967 9월~1968 .9 월 / 1947년생 ( 김상현 ) 소속 대전 보훈지청 등록 지청전화 042-253--6783 대전지청 전화하여 서전우님 연락처주시고 기달리시면 연락옵니다 건강하십시요 -[07/20-01:02]- 김상현: 꿈에도 그리워 하던 서건작 전우와 연락을 했습니다. -[09/11-21:35]- 김상현: 꿈이 아니길 간절히 바라며...그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헤여진지 40년이라는 긴 세월만큼 만나면 할 이야기도 많을 듯합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09/11-21:36]-
꿈에도 그리던 건작이가 요번 토요일에 나를 찾아 온다고 한다. 지금부터 가슴이 쿵쿵거리며 설레인다. 40년의 세월이 얼마나 우리의 모습을 변하게 했을지 모르지만
내 친구 건작이는 내 마음속에 흑백사진처럼 다정했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기도한다. 살아주어서 한없이 감사하고 다시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한다. 어제밤에는 뜬 눈으로 보내고 아침을 맞이했다. 젊은 시절 남의 나라 전쟁터에서 생사를 함께하며 서로 의지하며 서로 사랑했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사랑하는 내 친구, 생명을 함께 했던 전우 건작을 만나면
그 때 다시 나는 그의 해맑은 미소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총성이 끝이지 않던 고보이들판, 풋캇산, 앙캉휴양소, 퀘논 구정공세 전투 이야기
그리고 내가 귀국하고 나 없이 보낸 그 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리고 시간이 남으면 우리가 살아온 40년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그가 이틀간은 꼬박 나에게로 와서 머무러주기를 바란다. 그가 떠날 때쯤 나는 내가 쓴 베트남논픽션소설"미완의 휴식"을 선물로 주려고 한다. 하나님은 꿈을 이루어주시는 분이 아니고 꿈을 갖게 하여 꿈을 이루도록 하는 분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건작이와 내가 만나기를 간절히 꿈꾼 그 꿈이 이루어지게 된 것을 한 없이 감사를 하며 토요일
그가 오는 시간에 대전역에 마중을 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가 기억할 수 있도록 밝은 미소를 환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