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축구 B조 대해부
팀 색깔이 확실한 나라가 모였다. ‘점유율 축구’ 스페인, ‘토털사커’ 네덜란드, ‘막강 공격’ 칠레, ‘수비 축구’ 호주 모두 B조에 속했다.
첫 경기부터 만만찮다.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또다시 만났다. 지난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의 연장선인 셈이다. B조는 이날 경기와 칠레와의 맞대결 결과에 따라 16강 진출국이 가려질 가능성이 크다.
스페인
세계에서 손꼽는 축구 강국이다. 수많은 유명 선수를 배출했고 ‘티키타카’(탁구공이 왔다갔다하는 소리를 뜻한다. 공 점유율을 높여 빠르게 공격하는 축구를 말한다.)를 앞세워 유로 2008, 2010 남아공 월드컵, 유로 2012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비록 2013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과 최근 저조한 경기 성적이 명성에 흠집을 주나 가히 명불허전이다.

-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우승한 스페인 대표팀.
이번 대회 역시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힌다. 풍부한 경험과 객관적 전력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팀이 거의 없다는 전문가 평이다. 하지만 비센테 델 보스케 감독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까다로운 브라질 적응과 조 편성, 불확실한 최정예 멤버, 경기력 저하 등 월드컵 2연패를 향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어쩌면 16강 진출도 어렵다. 스페인은 네덜란드, 칠레, 호주 순으로 경기를 치른다. 첫 두 경기에서 승점 3점 이상을 얻지 못하면 조 선두는커녕 2위 자리마저 위태롭다. 특히 칠레는 무시 못 할 복병이다. 지난 월드컵에서 간신히 2-1승리를 거뒀고 9월 치른 친선 경기에서는 2-2무승부를 기록했다. 게다가 남미에서 열리는 월드컵은 항상 유럽팀이 약세를 보였다.
그러나 스페인이 월드컵 우승 후보란 사실에는 변함없다. 스페인만큼 뚜렷한 축구철학과 훌륭한 조직력을 갖춘 팀은 독일, 칠레, 우루과이, 벨기에 정도뿐이다. 이 두 요소는 국가대표팀간 승부를 결정짓는데 매우 중요하다.
국가대표팀은 대체로 조직력이 약하다. 짧은 기간 팀을 구성해 좋은 성적을 거둬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다. 그래서 전술보다 개인 능력이 우선인 경우가 많다. 스페인은 뛰어난 전술과 기량 모두 갖췄다.
경기는 4-1-4-1전형을 바탕으로 풀어간다. 선수 및 전술변화 폭이 넓다는 게 강점이다. 공격할 때는 4-2-3-1과 4-3-3으로 수비할 때는 4-1-4-1을 유지하거나 4-4-2로 변화를 주어 유연한 경기운영을 펼친다. 또, 상황에 따라 3-4-3전형으로 공격 숫자를 늘린다. 주로 견고한 수비조직을 갖춘 채 철저히 역습을 노리는 팀을 상대로 나타난다.
스페인을 상대하는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앞서 말한 선(先)수비 후(後)역습 전략이고 남은 하나는 전진 압박하는 방법이다. 후자는 브라질이 컨페더레이션스컵 우승을 차지하는데 크게 일조했다. 스페인 수비진을 곤란에 빠뜨려 빌드업을 방해한 것이 주효했다. 다른 팀들도 브라질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나는 같은 방법으로 아약스, 아틀레틱 빌바오에 패했고 스페인은 남아공에 뜻밖의 일격을 당했다.
따라서 스페인은 수비가 맹활약해야 한다. 전진압박과 빠른 역습을 이겨내면서 상대 수비진을 무너뜨릴 공격 능력까지 겸비해야 한다. 세르히오 라모스가 적임자다. 델 보스케 감독은 ‘노쇠한’ 카를레스 푸욜의 대체자로 라모스를 중용하고 있다. 그만큼 신임한다는 증거다. 하지만 잦은 카드 수집이 우려스럽다. 올해만 벌써 옐로카드 10장과 레드카드 2장을 받았다. 라울 알비올, 헤라르드 피케를 제외하면 마땅한 중앙 수비자원이 없어 더욱 존재가 크다.
네덜란드십벌지목(十伐之木).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옛말로 무엇이든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뜻이다. 과연 유럽에도 같은 말이 있을까? 네덜란드는 이번이 10번째 월드컵 본선 진출이다. 준우승만 세 번(1974, 1978, 2010) 하며 유독 월드컵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다. 이제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때다.

- 2006년 독일월드컵에 참가한 네덜란드 대표팀
루이스 반 할 감독이 돌아왔다. 네덜란드 축구협회는 유로 2012에서 실망스러운 성적을 거둔 베르트 반 마르바이크 감독의 후임자로 반 할 감독을 선임했다. 2002 월드컵 이후 약 10년 만이다. 반 할 감독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어수선한 분위기를 잠재우고 활발한 어린 선수 기용이 세대교체가 필요한 대표팀을 이끌 적임자라 판단했다.
적절했다. 루마니아, 헝가리, 터키가 속한 까다로운 유럽 예선 D조에서 9승 1무라는 성적을 거두며 조 1위를 차지했다. 더욱 놀라운 건 독일(36골), 아르헨티나(35골)에 이어 월드컵 예선에서 가장 많은 34골을 터뜨리고도 불과 5실점만을 기록했다는 점이다. 더는 수비가 약점이 아니다.
수비진은 그동안 화려한 공격진에 가려져 왔다. 아르옌 로벤, 로빈 반 페르시 등 공격수 이름은 줄줄 외도 수비수 이름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다가올 월드컵부터는 아니다.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한다. 다릴 얀마트, 스테판 데 브리, 예트로 빌렘스, 브루노 마르틴스 인디 등 20대 초반 어린 선수가 주축수비다. 그렇다고 문제 될 건 없다. 지금 당장은 이름값이 떨어져도 모두 세계가 주목하는 유망주다. 혹여 수비진이 흔들리더라도 막강한 미드필더진이 건재하다.
미드필더가 곧 핵심이다. 반 할 감독은 4-3-3전형을 바탕으로 네덜란드다운 공격 축구를 추구한다. 전임 반 마르바이크 감독이 실용 축구를 펼친 것과는 정반대다. 경기장을 넓게 사용하며 촘촘한 간격 유지와 매우 빠른 속도를 자랑한다. 중심에는 3명의 창의적인 미드필더가 있다. 역삼각형으로 포진해 한 명은 수비진을 보호하고 나머지는 공격수를 지원한다.
가끔은 4-2-3-1전형도 사용한다. 선수 구성상 4-3-3과 큰 차이가 없어 공격할 때는 4-2-1-3으로 보이기도 한다. 중요한 건 미드필더와 풀백의 공격가담 정도다. 4-2-3-1을 바탕으로 한 전술은 주로 역습을 노린다. 중앙 미드필더 한 명을 아래로 내리고 풀백이 더 많이 공격에 가담한다.
네덜란드는 다시 매력적인 팀으로 돌아왔다. 이제 10번째 도끼질만 남았다. 어떤 도끼를 쓰느냐가 관건인데 그래도 반 페르시 만한 선수가 없다. 지난 헝가리전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41골로 네덜란드 A매치 역대 최다 득점 기록(종전 기록- 패트릭 클루이베르트 40골)을 갈아치웠다.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도 지난 시즌 득점왕에 이어 꾸준한 모습(12경기 8골 2도움)을 보인다. 다가올 월드컵이 기대간다. 반 페르시의 결정력과 활발한 측면 플레이가 네덜란드의 승부수다.
칠레
두려울 게 없다. 상대가 강팀이든 약팀이든 공격 축구를 펼친다. 확실한 축구 철학이 기반이다. 칠레는 마르셀로 비엘사 감독 후임으로 ‘차세대 비엘사’ 호르헤 삼파올리를 선임했다. 같은 아르헨티나 출신이자 비슷한 전술, 전략을 추구하는 감독으로 페루와 칠레, 에콰도르 리그를 경험하며 잔뼈를 키웠다. 특히 칠레에서는 우니베르시다드 데 칠레를 이끌고 리그 3연패와 수다메리카나컵 우승을 차지해 오래전부터 칠레 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됐다. 그만큼 칠레 축구를 잘 안다.

- 1998년 프랑스월크컵 당시 칠레 대표팀
일각에서는 비엘사 감독의 칠레보다 더 실용적인 공격 전술을 펼치는 감독이라 정평이 났다. 현재 삼파올리 감독이 이끄는 칠레 대표팀 또한 마찬가지다. 비엘사 감독 시절처럼 무모하게 수비진을 끌어올리지도 골을 넣고자 서두르지도 않는다. 그저 더 안정적인 공 소유를 통해 조직적으로 경기를 운영한다.
칠레의 킥오프 전형은 4-3-3이다. 그러나 높게 전진한 풀백과 수비진영 깊숙이 머무르는 하프백을 보면 전술 전형은 사실상 3-4-3이다. 하프백이 중심이다. 칠레 전형을 세분화하면 2-1-4-1-2다. 이중 하프백은 수비 앞 ‘1’이다. 상황에 따라 수비형 미드필더와 중앙 수비수로 번갈아 이동해 수비진을 구축한다. 전방에서는 상대 미드필더를 압박하고 후방에서는 수비와 미드필더를 더욱 풍부하게 한다.
따라서 칠레는 4백과 3백 수비운용이 아닌 2백과 3백 수비운용을 펼친다. 이 둘을 구분 짓는다는 건 숫자 싸움상 차이가 없지만, 인식에 따라 역할이 다르다는 데 의의가 있다. 덕분에 어떤 상황에서든 칠레 선수가 더 많아 보이고(실제로도 그렇다.) 그로 인해 빠르고 다양한 공격이 가능하도록 한다.
그러나 역습에 약하다. 순간적인 수적열세 탓이다. 칠레는 전방에서부터 강한 압박을 가하며 재빨리 측면 미드필더를 내려 5-2-3전형으로 수비한다. 그렇다 보니 빈틈은 수비 전환 과정뿐이다.
그동안 칠레를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친 팀은 빠르고 역동적인 공격을 펼쳤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모두 속공과 활발한 측면 공격으로 골을 넣었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팀은 속도 싸움에 밀리며 패했다. 칠레가 남미 예선에서 9승 1무 6패를 기록한 승패가 확실한 팀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수비 보완보다 득점력 강화가 우선이다.
에두아르도 바르가스의 활약을 눈여겨봐야 한다. 칠레는 남미 예선 최다 득점 2위(29골)를 기록했다. 바르가스는 아르투로 비달과 각각 5골을 넣으며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됐고 현재 브라질 리그 그레미우 소속으로 18경기 출전해 6골 1도움을 기록했다. 물론, 칠레는 알렉시스 산체스와 비달이 팀의 중추다. 하지만 경쟁자 호르헤 발디비아와 장 보세주르의 활약이 저조해 바르가스의 존재가 더욱 크다.
호주최악이 아니면 최악이다. 단기전은 보통 뚜렷한 강팀과 약팀이 없다. 더구나 이동 거리, 기후 등 기타 변수가 많은 이번 브라질 월드컵에선 더욱 그렇다. 그래서 전 세계 축구팬들은 스페인과 네덜란드 사이에서 칠레가 저지를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호주가 16강에 진출하길 바라는 팬이 있을까? 적어도 호주국민만큼은 그럴 것이다. 호주는 ‘어부지리’(漁父之利)를 꿈꾼다.

- 2005년 11월 16일 우루과이를 꺾고 독일 월드컵 진출을 확정한 호주 대표팀. 당시 히딩크 감독과 토니 비드마(왼쪽),제이슨 쿨리나.
호주 축구협회는 최근 엔제 포스테코글루 감독을 선임했다. 사우스 멜버른, 호주 U-20 대표팀, 브리즈번 로어 등을 이끌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계약기간만 5년. 전임 홀거 오지크 감독이 브라질과 프랑스에 연이어 6-0 대패를 당하자 개혁의 칼을 꺼내 들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의 최우선 과제는 세대교체다. 평소 어린 선수를 적극적으로 기용하는 모습이 호주 축구협회가 바라는 이상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대표팀 명단에는 아직 마크 브레시아노, 팀 케이힐, 루카스 닐이 떡하니 자리한다. 마치 10년 전 대표팀 명단을 보는 듯하다. 이번 월드컵을 기점으로 새로운 탈바꿈을 기대한다.
변화의 중심은 공격진이다. 로비 크루제(레버쿠젠), 매튜 레키(FSV 프랑크푸르트), 다리오 비도시치(애들레이드 유나이티드), 토미 주리치(웨스턴 시드니), 미첼 듀크(센트럴 코스트) 등 20대 초중반으로 이루어진 공격진은 언제든 상대 골문을 위협한다. 게다가 믿음직한 공격수 조슈아 케네디도 아직 건재하다.
케네디는 현재 일본 나고야 그램퍼스 소속으로 27경기 출전 12골 8도움을 기록했다. 194cm 84kg의 거구에서 뿜어나오는 힘을 이용해 매 경기 중요한 순간마다 골을 터뜨렸다. 특히 이라크와의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에서 머리로 골을 넣으며 호주의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어쩌면 월드컵에서도 세트피스 상황을 살려 팀을 승리로 견인할지 모른다.
하지만 미드필더진이 얼마나 받혀주느냐가 관건이다. 호주는 4-2-3-1전형을 사용한다. 간격을 좁게 유지하며 순간적으로 수비 뒷공간을 위협한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수비다. 막강한 중원을 지닌 스페인, 네덜란드, 칠레를 상대로 쉽게 실점하면 안 된다. 현 크리스탈 팰리스의 주장 마일 제디낙과 멜버른 빅토리의 주장 마크 밀리건이 자리한 더블 볼란테는 호주가 이변을 낳을 가장 유력한 경쟁력이다.
물론, 호주의 16강 진출은 사실상 어렵다. 적어도 한 팀을 꺾거나 3경기 무승부를 거둬야만 그나마 조 2위 가능성이 엿보인다. 그런데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월드컵 본선 참가에 의의를 두는 편이 낫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필자 또한 같은 생각이다. 호주의 16강 진출은 사실상 어렵다.

- 월드컵 조편성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