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張應斗 - 막혀있는 벽과 열려있는 벽
이재창
何步 장응두(1913, 11, 4~1972, 3, 17) 시인은 경상남도 충무 출생으로 20세까지 할아버지 밑에서 한학과 한의학을 배웠다. 유치환, 염주용, 박영포 등과 시운동을 벌이며 동인지『生理』를 발간하기도 했다. 그 동인지에 시「가을」「나의 해복날」「상심」등의 작품을 발표했고, 양장시조「卽景」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35년 조선문단지에「압록강을 건느면서」가 당선되었으며, 194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조「寒夜譜」가 입선 한 뒤 문장지의 추천을 받았다. 처음엔 시로 시작해 시조로 방향을 바꿨다. 1965년부터 한국문인협회 부산지부 부지장을 맡는 등 부산과 통영 등지에서 활동을 했다. 향토적 서정을 위주로 한 그의 작품은 지금까지 시조문학사에서 그럴만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오랬동안 땅 속에 묻혀 있었다. 저서로는 유작시조집『한야보』가 있다.
찌르릉 伐木소리 끊어진지 오래인데
굽은 가지 끝에 바람이 앉아 운다
구름장 벌어진 사이로 달이 반만 보인다.
낮으로 뿌린 눈이 삼고 골로 내려 덮어
고목도 亭亭하여 뼈로 아림일러니
풍지에 바람이 새어 옷깃 자로 여민다.
뒷산 모롱이로 바람이 비도는다
흰눈이 내려 덮어 밤도 여기 못오거니
바람은 무엇을 찾아 저리 부르짖느냐.
-「寒夜譜」전문
주먹을 쥐고 보면 만사가 다 됨직도 하고
벽으로 돌아 누우면 슬픔만 어리운다
나날이 밀고 일어서는 나는 벽을 가졌다.
-「벽」전문
1940년에 발표된「寒夜譜」는 당시 일제 말기의 시대의식을 비유한 것으로 보인다. 일제 패망 얼마전 조국광복의 희망을 구름장 벌어진 일제의 탄압 사이로 희망의 달, 자유의 달이 반쯤 보인다고 표현하고 있다. 겨울밤의 벌목소리 끊어진지 오래인 고요로움 속에서 시인은 가지끝 울고 있는 바람처럼 수난 속에서 시달리며 살아가는 식민지의 백성을 생각한다. 총과 칼의 탄압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체념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견뎌내는 시적 자아가 견고하다. 흰 눈이 내려 덮고 겨울 바람마저 부르짖는 것은 조국광복의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일면엔 서정적인 겨울밤을 그렸다고 볼 수 있지만 그 내면에 깔린 당시 민족이 처한 시대의식이 은은하게 깔려있다. 또 작품「벽」은 자신과의 의지의 싸움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벽은 막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벽은 막혀 있음으로서 열려 있음을 의미한다. 막혀 있는 것은 그것을 허물거나 뚫고자 하는 진보적인 의식을 잠재적으로 가진다. 홀로의 마음으로 다짐할 때면 무엇이든지 못할 일이 없지만 벽 앞에서 서듯 어려움이 부딪치면 절망하고 마는 인간의 심리는 가냘프다. 하지만 시인은 자신의 인생과 시대적 상황에 대해 나날이 밀고 일어서는 벽을 지님으로서 막힘의 벽을 희망의 벽으로 승화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