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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난한 프로 데뷔 고려대에서 포항으로부터 1년간 월급을 받고 계약금도 받은 상황에서 드래프트를 통해 유공 ( 현 부천 sk )으로 가게 되자 , 당시 황선홍과 함께 드래프트 거부로 맞대응한다. 유공과 포항의 단장회의를 통해 포항에서 뛰던 김진형,조정현,이석경 3 : 1의 선수 맞트레이드가 이루어졌고 어렵게 포항과 계약. 92년 MVP 포항 아톰즈 ( 現 스틸러스 )의 92년 정규리그 우승 리그 3게임을 남겨둔 상황에서 현대와 2게임 LG와 1게임 남은 상황에서 어웨이 경기 현대와의 시합에서 패한 포항은 현대를 홈으로 불러들여 시합을 벌이지만 전,후반 90분 경기가 마감할즈음 홍명보의 종료 1분전 결승골로 승리를 거둔다. 홍명보의 데뷔골이자 MVP를 결정짓는 골이었다 92년 데뷔 첫 해 MVP와 베스트 11 ●94 미국 월드컵 스페인,독일 전에서 각 1골
이란에게 6 : 2 대패 ●97 J리그 벨마레 히라츠카 이적 Intervew 리그 데뷔전을 치른 홍명보와의 일문일답. -데뷔전을 치른 소감은. ▲훈련을 통해 많은 준비를 했지만 첫 경기라 상당히 긴장했다. 그러나 다 행인 것은 이겼다는 사실이다. -어떤 점에 중점을 두고 플레이를 했나. ▲첫 목표가 팀이 이기는 것이니 실점을 막는 수비가 먼저였고 그 다음이 팀의 공수를 연결하는 패스를 하는 것이었는데 만족할만큼은 아니었다. 그러 나 최선을 다했다. -감독이 적극적인 공격가담을 요구했다는데. ▲전반 1-0으로 이기고 있는 상황이어서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다. 또 팀에 좋은 공격수들이 많아 한국에서처럼 수비에 치중하는 경향이 버릇처럼 나타 났다. -다른 선수들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은 없었나. ▲말이 안통하니 어려움이 있지만 축구는 말로 하는게 아니다.아직 첫게임 이라 패스가 안 맞을때도 있었지만 앞으로 언어문제가 해결되면 더 나아질 것이다. -한국축구와의 차이점은. ▲포항에서 4-4-2전술을 사용했기 때문에 크게 다른 점을 느끼지는 못했다 .일본은 측면 공간을 많이 활용해 그쪽에 신경을 많이 써야했다. 한편 2일 경기가 끝난뒤 벨마레의 우에기감독은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홍명보가 좀더 적극적인 공격가담을 해주길 바랬다. 그러나 나갈까 말까,망 설이는 모습이 보였다. 선수들과 대화의 어려움이 있지만 곧 나아질 것으로 본다며 홍명보의 데뷔전을 평가했다. ●98 프랑스 월드컵 예선 1위 ●98 프랑스 월드컵 본선 1무 2패 탈락 홍명보 100번째 A매치…'센추리 클럽' 가입
아시아에서는 5번째,한국선수로는 최순호(포항코치) 에 이어 2번째 영예.최다출장기록은 토마스 라벨리(스웨덴)의 143회이며 현 역선수 가운데서는 로타르 마테우스(독일)가 135회로 가장 많이 A매치에 출 장중이다. 고려대 재학중이던 지난 90년 2월4일 노르웨이를 상대로 A매치에 데뷔,9년 4개월만에 센추리클럽에 이름을 올리게 된 홍명보는 “축구선수로서 큰 영광 이고 그동안 태극마크를 달고 치른 경기들에 대한 감회가 새롭다”며 가슴설 레는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대표선수로 활약하며 감격스런 승리도 많았지만 지난 96년 아시안컵에서의 이란전 6―2 참패는 두고두고 잊지못할 뼈아픈 순 간. 90년 이탈리아 이후 월드컵 본선대회에서 9게임연속 출장기록을 세운 홍명 보는 “2002년월드컵 때까지 뛰겠다”고 다짐하고 있어 A매치 출장기록에서 최순호의 113회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대한축구협회는 벨기에전 하프타임 때 순금 2냥짜리 기념카드를 전달,대기 록 달성을 축하할 예정이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브론즈 볼 수상 마지막에 빛난 캡틴, 홍명보 승부차기 마지막 키커…세계 최고의 수비수 발돋움
히딩크 감독은 경기가 끝난 뒤 “극도의 긴장을 이겨 내고 침착하게 찬 것에 대해 크게 만족한다”며 홍명보를 칭찬했다. PK 뿐 아니다. 홍명보는 전ㆍ후반과 연장 내내 안정적인 수비를 이끌어 스페인에게 한 점도 실점하지 않는 데 가장 큰 수훈을 세웠다. 외국기자들은 “나이만 젊으면 빅리그로 부르고 싶은 선수”라고 높게 평가했다. 히딩크 감독이 “그는 경기장 안팎에서 큰 일을 해 내고 있는 선수”라고 평가하는 것처럼 팀내에서 홍명보가 차지하는 비중은 너무나 크다. 그라운드에서는 중앙 수비뿐 아니라 공수를 지휘한다. 후배들을 다독이며 분위기를 살리는 경기 외적인 주장의 임무 역시 훌륭하게 수행한다. 부상으로 9개월간 대표팀을 떠나 있을 때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였다. 일각에서는 “홍명보는 끝났다. 히딩크 감독은 그를 다시 부르지 않을 것”이라는 혹평도 나왔다. 그러나 그가 올 2월 대표팀에 복귀한 이후 한국팀은 놀랍게 달라져 ‘4강 신화’까지 이뤘다. 팬들은 한국축구의 기둥 홍명보가 앞으로의 돌풍도 이끌어 주기를 바라고 있다.
■ 홍명보 인터뷰 _어렵게 MLS행이 결정됐다. 소감은. ▲물론 기쁘다. 새로운 도전을 하게돼 설레기도 한다. 올해 K_리그에서 뛰어본 결과 점점 빨라지는 한국 축구에 적응하기 힘들어 이 상태로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상황을 바꾸지 않으면 나의 발전도 없다는 생각을 했고 그 탈출구로 미국을 선택했다. _미국에서는 얼마나 생활할 예정인가. ▲4년 정도를 예정하고 있다. 2년은 LA 갤럭시에서 선수로 뛰며 공부를 병행하고 나머지 2년은 체육관련 전공을 살려 전문분야를 만들어가겠다. 그 이후에는 유럽으로 나가 본격적인 축구공부를 할 것이다. _섭섭해 할 포항 팬들이 많은데. ▲1년밖에 뛰지 못하고 다시 외국으로 나가게 되어 죄송하다. 구단에서도 내가 빠지면 관중이 빠져나간다며 말렸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 팀 뿐만 아니라 한국 프로축구가 전체적으로 관중을 흡입할 수 있는 매력적인 요소를 개발해야 하고 이 같은 일을 위해 내가 미국으로 간다고 봐달라. ▲앞으로의 스케줄은. 17일 성남전에서 K_리그 고별전, 20일 브라질전에서 국가대표 고별전을 각각 치른다. 그리고 구단이 원한다면 12월에 열리는 FA컵에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21일 쯤에는 메디컬 테스트를 위해 미국을 한번 다녀와야 하고 LA 갤럭시에 합류하는 것은 내년 1월쯤 될 것이다.
언제나 약속을 지켜왔던 홍명보
우리들 곁에 다시 서는 날을 기대해 본다.
우리들의 홈 스틸야드에 발을 내딛는 순간 관중들이 열광하는 모습을
그려본다.
물론 그 시간이 돌아오면 선수로써의 홍명보로 돌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들의 영원한 스타인 사실만은 변함이 없을것이다.
성명 : 홍명보 생년월일 : 1979년 4월 29일 국적 : 대한민국 신장 : 181cm 체중 : 72kg 주포지션 : 수비수 입단일자 : 1993년 클럽 :포항 스틸러스 ( 1993 ~ 1997 ) J리그 벨마레 히라츠카 ( 1997 ~ 1999 ) J리그 가시와 레이솔 ( 1999 ~ 2002 ) 포항 스틸러스 ( 2002 ) LA 갤럭시 ( 2003 ~ ) 주요경력 : 90 이탈리아 월드컵 대표 , 94 미국 월드컵 대표 98 프랑스 월드컵 대표 , 2002 한/일 월드컵 대표 92, 94,95,96,2002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92 K리그 MVP ,94 AFC 베스트 DF , 1994,95,97,98 세계 올스타 선발 ,99 센츄리클럽 등록 , 2001 FIFA 선수분과 위원회 회원 ,2002 한/일 월드컵 브론즈볼 수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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