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을 선고받은 것은 10여년 전 일입니다.
그때 50대에 간경화로 7~8년 정도 약을 먹으며 고생하다가 간암으로 발전했습니다.
ooo에서 간경화가 심해 6개월 정도 약을 복하던 중 큰 병원에 가는 것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소견서를 써주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oo병원에 갔습니다. 그때 그 병원이 파업으로 사진을 찍지 못해서 다른 병원으로 갈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oo병원에 갔지만 MRI가 준비가 안되서 1달 후에 다시 가서 찍게 되었고 몇 일 후 누님과 가족과 함께 갔습니다. 가족만 남고 환자분은 나가라고 하기에 “암이면 암이라고 정확히 이야기 해주십시오. 나는 내가 암이라는 것을 아는데 왜 나가라고 하느냐 내가 속시원하게 알아야 병이 낫던지 할꺼 아니냐며 그냥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간경화가 오래되면 간암으로 발전할 수 있다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암이 왜 빨리 왔나 하면, 간경화가 왔을 때 한참 약을 먹었는데 경과가 좋다고 이만큼 좋아졌으니 약을 중단해도 되겠다고 하여 중단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술도 먹고, 일도 많이 하고 했는데 얼굴에는 별로 표가 안 나는데 갑자기 배가 자꾸 살이 찌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실수한 것 같고 빨리 암이 된 것 같았습니다. 나는 몇 개월이나 살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처음에 말을 망설이던 의사 말이 “만성말기라 수술할 수 없고.. 지금으로써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잘 산다면 3개월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는 명이라는 것은 하늘이 내린 것이라고 생각해서 2~3개원 살다가 가지머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최선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머냐고 물었습니다. 지금으로써는 동맥수술(항암치료)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00병원에서 과장이 하는 말이 “무료로 수술(항암치료)을 하는데 시험용으로 수술을 하자”고 말했습니다. 00병원에서는 대상자가 나뿐이라고 해서 자식들과 연락이 됐는지 자식들이 자꾸 수술(항암치료)을 하자고 해서 생각하니 내 몸 하나 희생시켜서 다른 환자들에게 이 수술이 좋다는 걸을 알릴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해 한번 해보자고 수술(항암치료)을 하기로 했습니다. 마음을 정리하고 수술(항암치료)을 하기 위해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치료하는데 병원비가 든다는 말에 나는 “왜 말이 틀리느냐~ 먼저에 비용이 안 들어간다고 해서 왔는데 촌사람이라 무시하냐며”말을 했습니다. 암환자를 위해서 이렇게 힘들게 결정을 했는데 병원만 위해 하는 것 같아 그만두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며 화를 내고 왔습니다.
몇 일 후에 셋째 딸이 분당에 있는 좋은 병원이 열었는데 그곳에서 한번 해보자고해서 그곳에 가서 수술(항암치료)을 했습니다. oo병원에서 동맥수술과 고주파수술을 받았지만, 부른 배는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집에서는 부른 배가 9개월 된 임신부보다 더 불러서 엎드리지도 못하고 옆으로 누워서 하루하루 지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암이라는 병이 아픈데는 없고 배만불러 잠자리가 불편해 도저히 안돼서 수술(항암치료)을 받았지만 배가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 배만 꺼지면 다른 아픈 곳이 한군데도 없었습니다.
내가 55세 암 선고를 받고 죽음의 시초라고 생각해 죽을 준비를 하던 중에 아는 사람이 영정사진 찍는다는 말을 듣고 사진을 확인하니 단체사진은 많은데 혼자 찍은 사진이 없어 집사람 몰래 영정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야기를 하려면 한이 없을 정도로 암 선고로 고민하다 죽을 생각도 만이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기계가 없어 모심기 하는데 전부 사람 손으로 할 땔라 나도 하고 싶은데 배가불로 몸을 앞으로 숙이지 못하니 일도 못하고 나 혼자 양지 바른 곳에 혼자 우두커니 있으면 코에서 피가 쏟아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죽는구나 싶고 서러워서 눈물이 비 오듯이 흘렸습니다. 이제야 말하지만 그때 이렇게 살 바에는 빨리 죽어야지 싶어 약을 한 봉지 사고 술도 한 병 사서 조부님과 부모님이 계시는 산소에 가서 죽을 생각도 했습니다. 약을 먹고 빨리 죽어버려야 하겠다는 마음에 술잔 한 것이 어느새 잠이 들었습니다. 일어나서 보니 조상이 도왔는지 먹으려고 손에 쥐었던 약봉지가 바람에 날려서 없었습니다. 그래서 죽지도 못했습니다. 죽는 것도 팔자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산을 내려왔습니다.
부인은 3개월밖에 못산다는 말에 많이 울고 했습니다. 그때 포항에서 은행을 다니던 재부의 지인이 암에 걸렸었는데 민속한의원에 가서 약을 가져다가 먹어서 나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배가불러 이렇게 된 마당에 내가 죽으면 죽었지 내가 살겠나 했는데, 몇 일 지나고 계속 민속한의원이 생각났습니다. 이제 죽을 마당에 머리에 자꾸 생각나니 한번 가서 진찰도 이나 해보고 궁금한 것이나 물어도 보고 약 가격이 비싸지 않으면 탕약이나 한제 지어 먹어보고하자는 마음으로 처음 민속한의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MRI사진을 가지고 가서 보여주고 진찰 후에 쑥뜸도 뜨고, 약차 물도 약도 먹었습니다. 한 3개월을 제시간에 탕약을 먹었습니다. 탕약을 먹으니 마음적으로 나마 배가 사르르 꺼지면서 잠자리가 좋아진 것 같았습니다. 워낙 많이 부어있던 배라 표는 안 나지만 뒤로 누워도 덜 땅기는 것 같았습니다. 그 후에는 절대로 다른 사람들처럼 띄지 않았습니다. 한의원에서 좋다고 하는 것 미나리, 돌 냉이, 온갖 좋다는 것을 다 먹기 위해 가족이 많이 힘들었습니다.. 민속한의원은 마늘을 구워서 죽염을 찍어서먹고, 쑥 목욕, 족욕, 발 주무르기를 비롯해 방안에서 연기가나는 쑥뜸을 3년을 계속 주기적으로 했습니다.
부인은 민속한의원에 갔다가 오고부터는 쥐 눈이 콩 한 되를 시장에서 사가지고 밥에 넣고, 반찬도 하고, 콩나물도 길러 먹었습니다. 오리도 집에서 키워서 1주일에 한 마리씩 먹기도 하고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오리는 간과 알이 좋다고 해서 먹기도 했지만 지금은 냄새가나 안 먹습니다. 다른 음식도 시장에서 나오는 식품은 두부도 안 좋다고 해서 안 먹고 집에서 만들어 주었습니다. 몇 년지 나고 나아지면서 조금씩 시장에서 파는 음료와, 식품을 조금이 먹을 수 있었습니다. 부인은 환자는 마음이 편안해야 병도 낫기도 한다며 내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서 많이 노력했다고 합니다. 남편이 성격이 불같고, 하는 것은 하는 성격에다 급한 성격으로 암이 온 것 같아 아무리 잘못 된 것이 있어도 속으로 참고 참았다고 합니다.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시골은 남자가 일을 못하면 살기가 힘듭니다. 예전에는 밭이 4천평 정도 됐었고, 누에도 키우고 했는데 뽕나무는 심어놓은 것이고 기계로 할 수 있는 것이라 남기고 나머지는 다 팔았습니다.
보내오는 약을 계속 먹고 건강한사람보다 배가 줄어서 1년 후 두 번째로 민속한의원에 갔었습니다. 그때는 잘 방이 없어(입원실이 없어) 갔다가 치료를 받고 집에 돌아오고 했습니다. 한약을 먹는 동안에는 병원에 안다니다가 1년 정도 되었을 때 oo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결과는 많이 좋아졌다라는 말 이였습니다. 잘 아는 과장에게 병원 약 안 먹고 다른 약 먹는다는 말을 하기 그렇지만 탕약을 같이 먹어도 되냐고 물으니 병이 좋아졌으니 같이 먹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그 후로도 8개월을 약을 더 먹었습니다. 그 후로 사진을 다시 찍어보니 암이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병이 낫고 약은 가끔 먹었지만 민속한의원 방문은 5번 정도 갔습니다. 3번 자고오고, 2번은 그날 갔다가 오고했습니다. 처음 민속한의원이 개원을 했을 때 갔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암환자에게 한마디를 해달라고 해서 해주었습니다. 나는 집에서 고생하며 치료했는데 지금 입원해서 치료하는 환자는 호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목숨이라는게 정해져 나왔지 싶습니다. 자기가 잘못하여 죽으면 몰라도, 살고 싶어도 죽을 수도 있지만 항암을 하더라도 쪼금 나으면 마음이 조급해져 참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의사선생님에게 막 호통을 치고요 그래서 병이 안났는 것 같습니다.암환자가 참으로 많습니다. 암환자는 한 가지를 가지면 한 가지를 버려야 합니다. 참을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좋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때 병원에 있을 때 어떤 아주머니의 딸이 암환자였습니다. 자신 몸도 가누기 힘든데 살기 힘들다던 딸을 대려 와서 뒷바라지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암은 들기 전에 예방이 중요합니다. 요새는 사진을 찍으라고 하면 나는 건강하다며 사진을 안 찍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언제나 예방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암환자는 자신이 알아서 일신을 보호해야합니다.
요새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 생각하고 하루하루 살 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 못 걸었는데 지금은 산책을 하면서 여름에는 벌 따고, 더덕도 캐고 다닙니다. 하루는 이산 하루는 저산을 다닙니다. 술도 먹지 않기 위해서 볼일 있을 때만 나가고 합니다. 놀러갔다고 하면 조금만 있다가 다시 집에 돌아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