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테마수필 제9차 공모전 대상작입니다.
꿈을 꾸는 사람들
'오늘도 바람이 분다'를 읽고
박초롱
유난히 춥고 길었던 겨울이 끝났다. 머리맡 수줍게 내려앉은 햇살도 제 몸의 온기를 나누고, 매일같이 화를 내던 바람도 매서운 손길 대신 다정한 얼굴로 인사를 슬쩍 건넨다. 무거운 엉덩이를 들썩이며 앙탈을 부리던 겨울이 물러가며 변덕맞은 꽃샘을 놓고 갔지만 그마저도 어여쁘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부슬거리는 봄비에 녹아지면 움이 트고 꽃이 필 터, 땅 속 깊이 겨울잠을 자던 녀석들도 봄이 오는 소리에 바스대어 기지개를 퍼겠지. 꿈도 이와 같아서 앙증맞게 구부러진 더듬이를 내놓고 양팔을 뻗어 기지개를 쭉 펴 잠을 깨우면, 오므렸던 입도 한입 크게 벌려 바람을 베어 먹곤 기운을 차릴 테다. 꿈은 겨울이 지나 찾아온 봄의 모습을 꽤나 닮았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봄이 오면 꽃들이 피어나듯 만물은 생장한다. 2006년 열여덟 명의 작가가 수필드림팀으로 뭉쳐 써 내려간 『3도 화상』을 시작으로 테마수필은 해마다 한 가지의 주제를 정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나와 테마수필의 첫 만남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 세 번째 수필집 『첫사랑』이었는데, 어제와 같았던 그 만남이 이제는 무려 아홉 번째 이르렀다. 마음이야 촌분 같다 한들 나와 책의 역사마저 짧다 할 수 없을진대 중년의 작가 스물네 명의 이야기에는 성숙한 깊이와 그들이 모아놓은 세월이 담겼다. 아홉 번째 테마 ‘꿈’, 테마수필 『오늘도 바람이 분다』에는 ‘맑고 풋내 나는 젊음을 꽃 피우고 쓰러졌던 어제의 꿈’과 ‘소소한 일상에 감사하며 바람을 먹고 또다시 꿈꾸는 오늘의 꿈’, ‘세찬 풍파에도 지지 않고 희망의 나래에 끊임없이 도전하려는 내일의 꿈’이 그려있다.
호랑이 장가가는 날, 홀연히 나타났다 사라지는 여우비 뒤에 한 자락 걸린 무지개를 본 적 있나. 과거엔 오색 무지개라 불렸고, 지금은 일곱 빛깔 무지개 통하는 찬란한 빛의 스펙트럼은 물방울과 해님이 지어낸 꿈의 향연이다. 한 저자가 표현하기로 꿈은 정확한 실체와 만나기 어려워서 신기루와 같고 팔색조를 능가하는 특성으로 카멜레온을 비웃는다 하였는데(「신기루와 카멜레온」) 그 또한 다양한 형태를 지니고 있는 꿈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꿈은 꾸는 저마다 가지각색이다. 끝없는 시행착오와 좌절에도 다시금 ‘이웃에게 작은 힘이 되어주는 꿈’을 적바림 한다는 그는 지나온 자신이 인생이 초라하다 하였지만 누구보다 근사한 꿈을 꾸며 살고 있고(「세상에서 가장 기분 좋은 일」), 365일간 365명의 꿈을 인터뷰한 꿈쟁이 김수영씨가 꿈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오랫동안 딸의 곁을 지켜주는 엄마가 되는 것’이 꿈이라는 답변은 참으로 값진 보물을 품었다(「스물한 살이 되었어요」). ‘친구 둘과 함께 살 집’을 설계하던 여중생은 세월이 흘러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었지만 허망스레 보낸 친구들과 지켜주지 못했던 어릴 적 추억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늦게나마 그 꿈을 조금씩 지으려 한다는 다짐 속엔 애잔한 슬픔과 먹먹한 눈물이 흐른다(「건축학 개론」). 반면 황소만한 돼지가 줄줄이 들어오는 복꿈을 꾸고 가진 돈 다 끌어모아 그길로 복권을 사서 ‘금빛 나래’를 꿈꾸던 남자는 김칫국만 실컷 먹고 복권에 학을 뗐지만 그래도 많은 꿈을 꾸고 싶다 말하는 그의 모습에 피식 새어나는 웃음과 재치가 유쾌하다(「돼지 꿈」). 어린 시절 대통령이 되고 연예인이 되는 직업의 감투를 쓴 희망 대신 ‘시골에서 사는 것’을 꿈이라 말하며 상대를 웃기던 아이는 어른이 되어 꿈을 이루었고 한층 더 진화된 꿈을 꾸는 포부에 순수한 감탄과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꿈은 ‘명사’여야만 하는 게 아니다」). 테마수필을 읽으면서 무수히 많은 꿈을 엿보았고, 그들이 떠난 꿈의 파노라마 여행에 동행한 기분을 느꼈다.
나는 한 번의 읽기를 끝내고 다시 책장을 펼쳐 스물넷 작가들의 목소리, 그들이 꿈에 대해 말하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산마루에서 얻은 행복」의 저자는 우리 집이 참 따뜻하다 말하는 두 아이를 생각하면 자신의 마음도 따듯해지는데 따뜻함은 행복이고 행복으로 이끄는 삶이 바로 꿈이 아닐까 하고 조심스레 말했고, 무한함을 벗어나 하루라는 사소한 칸에 감사와 희망을 심고자 애쓰는 자신을 발견하거나(「꿈, 365」), 계획한대로 금방 이룰 수 있는 꿈은 꿈이 아니라며 이제는 돌부리 걸려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 망설이지 않겠다는 다짐은(「꿈꾸는 섬」) 알맞은 본보기다. ‘꿈을 꾸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칼 샌드버그 말처럼, 스물네 명의 작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꿈을 꾸라”고 한다. 물론 꿈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꿈을 꾸는 것이라고 말하는 그들의 외침은 냉담한 사회에 피폐해지고 앞날이 캄캄한 청춘을 감히 대표하는 나를 토닥이며 위로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자기주장이 없고 꿈이 없다 지적받지만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고 슬쩍 편을 들어본다. 「미래의 자신에게 미안하지 않도록」의 저자는 욕심을 줄이고 자기만의 전문성을 마련한다면, 젊은 날의 어려움이나 방황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조언한다. 93세의 할아버지 발레리노는 87세에 데뷔하였고, 94세의 할머니는 대수술 겪었음에도 현직 요가 강사로 활동 중이다. 꿈꾸는 사람은 언제나 청춘이다(「첫사랑처럼 설레는 꿈」). 사람들은 그들의 꿈을 향한 도전과 용기에 손가락질보다는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땐 진짜 늦었다는 말에 실망하지 말자. 버스는 지나갔지만 계속 온다. 조금 늦게 도착할 뿐, 아예 타지 않으면 가고자 했던 곳으로 영원히 갈 수 없게 된다(「익어가는 꿈」).
찰리 헤지스라는 사람은 꿈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꿈이란 당신이 잠에서 깨어나면 잊어버리는 그 무엇이 아니라 당신을 잠에서 깨우는 그 무엇이다.” 「반음」에서 꿈은 생명을 알차게 해주는 보배라 했다. 테마수필『오늘도 바람이 분다』는 희망과 꿈을 상실한 채 살아가는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꿈을 함께 되찾자고 말한다.
세상은 돈이나 명예의 성공을 꿈이라 할지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꿈은 세상의 어떤 가치로도 계산할 수 없는 무엇이다. 꿈은 멀리 있지 않다. 거창하지 않아도 있어 보이지 않아도 진정한 꿈은 분명 가까이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가 꿈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잊어버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꿈을 찾아 다시 꺼내서 꿈꾸면 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꿈을 꿀 수 있는 자격이 있고, 꿈을 이룰 자유가 있으며, 행복할 권리가 있다. 꿈을 꾸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