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 5월 iCOOP 수원생협 신문 연재분입니다)
" 먹을거리를 강조하는 한의원 "
갱년기 수족냉증을 가진 한 여성이 병원을 찾았습니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칠십대의 노의사는 웃으면서 환자의 손을 만져봅니다. "손이 차시군요. 그 손으로 배를 만져볼까요? 배가 더 차시군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의사는 이것이 갱년기가 되어 얼굴이나 손으로는 열이 많이 떠오르면서 몸 중심부의 체온은 낮아지고 있는 전형적인 상황이라고 설명합니다. 의사의 지시를 받은 간호사는 환자에게 필요한 처방 샘플을 가져옵니다. "그래서 처방은요..."
놀랍게도 간호가의 쟁반 위에는 호박, 부추, 여주(오끼나와 특산 박과식물)가 놓여있습니다. 부추는 따뜻한 성질의 채소로서 체온조절을 도와주고요, 호박이나 여주는 몸의 수분 배출을 도와주고 순환을 촉진하는 음식이라서 도움이 된다는 겁니다.
병에 대해서 약이 아닌 음식을 처방하는 의사. KBS수요기획 '곡괭이와 청진기'의 한 장면입니다(2007.7.18 방영) 일본 구마모토현 기쿠치시 '양생원진료소'의 다케쿠마 박사의 진료현장을 담은 모습입니다. 그는 30여년 전 한국의 한의사와의 만남을 통해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질병 자체에만 매달리는 대학에서의 혈액암 전문의 교수직을 그만두고 시골의 공립진료소로 내려와 생명을 기른다는 의미로 "양생원"이라고 이름붙이고 30여 년간 먹을거리와 예방에 중심을 둔 진료에 임했습니다.
그의 핵심적인 주장은 "건강은 건강한 밥상이 지켜주고 건강한 밥상은 건강한 흙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의 슬로건 중에는 "의학은 농업에서, 농업은 자연에서 배우자", "의,식,농은 하나"와 같은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직접 양생원의 텃밭에서 유기농 농사도 짓고 있으며, 양생원을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바른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교육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기농산물 위주의 식단, 소식과 절식, 환경오염을 막는 생활법, 적절한 노동, 인류공동체 의식 등의 내용을 담은 양생원의 교육프로그램을 듣기 위해 일본각지에서 사람이 찾아오는데 지금까지 교육을 받은 인원도 10만 명(!)에 이른다고 하더군요. 지역사회에는 다케쿠마 원장의 지도에 따라 식생활을 바꾸고 병이 치료된 후 감화되어 유기농으로 농사를 직접 짓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지 않는 의사를 주변에서 보신 일이 있나요? 여러분에게도 신선하겠지만, 처음 이 방송을 본 저 역시 의료인으로서 꽤 충격을 받았습니다. 우선 그와 같은 의학적 관점을 가지고 실제 그렇게 진료하는 양방의사가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매우 드문 일이기도 하지요. 저 역시도 바른 먹을거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고, iCOOP생협에서 전문활동가로 일하며 사회적인 식품안전의 문제를 다루고 있긴 합니다만, 직접 진료실 안에서 환자들에게 이렇게 약 대신 음식으로 권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짧은 진료시간 안에 그런 설명을 할 만한 시간적인 여력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또 그런 것을 설명한다고 환자들이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우리의 사회적 환경이 바른 먹거리를 실천하기에 어려움이 많고, 나 스스로도 외식에 의존할 때가 많은데, 너무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많았습니다.
처음 양생원에 부임했던 다케쿠마 박사도 초창기에는 많은 비난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병원 경영도 악화되고 환자들이 약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이 많아져서, 심지어는 내쫓으려는 움직임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알게 된 한 언론인이, 다케쿠마 원장의 진료 방식을 부각시키면서 ‘이런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의 명의다!’ 하면서 구명운동에 나섰다고 하죠.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환자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었고, 2007년에는 제약회사에서 뽑은 일본의 명의 50인에도 포함되었다고 합니다.
양생원과 같은 진료현장의 모습은 단시일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감기에 항생제를 오남용 하지 않는 문화가 의료진과 환자 모두의 공감과 실천을 통해 이루어낼 수 있는 하나의 의료문화이듯이, 식생활 지도와 실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만 이러한 건강한 의료문화는 조합원이 주인인 ‘의료생협’ 병원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의료인들이 먹을거리 문제를 자신의 영역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고, 환자들도 먹을거리에 대해 무관심하지만, 사실 식생활과 영양이야말로 건강을 지키는 핵심일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가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약으로도 고칠 수 없다”고 한 말을 다시 한 번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현대사회에 들어서 성인 남성의 1/3이 걸린다는 다양한 암들과 비만, 당뇨, 고혈압, 아이들의 알레르기 질환 등은 모두 사회적인 식생활의 변화가 주원인이며, 바른 먹을거리 실천을 통해 어느 정도 개선될 수 있는 질환들입니다. 1976년 미국 상원영양특위는, “광범위하게 퍼진 현대 질병들은 음식요인에서 비롯되었으며, 미국은 20세기 초반의 식단으로 돌아갈 것”을 이미 권고한 바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의료 현실은 예방보다는 치료를, 음식보다는 약물을 우선하고 있지요.
다케쿠마 박사의 꾸준한 노력으로 지역사회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약국을 하던 약사는 천연제제 위주로 약을 바꾸고 약국의 절반을 나누어 식당을 차렸습니다. 건강한 음식이 보다 본질적인 약이라고 본 것이지요. 방송분에는 잘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는 ‘일본 유기농업 연구회’나 ‘새로운 의료제도를 창조하는 모임’ ‘국제농촌의학회’등을 주관하고, 마을 주민들과 함께 무농약, 유기농 생산자 그룹을 만들어 유기농유통물류센터를 만드는 데 관여하여 지역 사회의 유기농채소의 생산과 소비가 증가하는 데에도 역할을 했습니다.
저는 다케쿠마 박사의 활동을 저의 롤모델 삼아 건강한 먹을거리를 실천하는 한의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진료시간에도 강조하겠지만, 그것으로 다 이루어지기 어렵다면, 정기적인 강좌를 열거나 홈페이지나 메일을 통해서 필요한 영양과 건강정보들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또한 특정 질환이 있는 조합원들을 모아서, 예를 들면 당뇨환자를 위한 저인슐린 식단 실천모임, 아토피와 알레르기 아이들을 위한 면역력 강화 요리모임, 건강 유기농 텃밭 가꾸기와 같은 소모임을 지원할 생각입니다.
어떤가요? 이런 한의원이 있다면 좋겠지요? 그럼 당장 수원새날의료생협에 연락해서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출자하시면 됩니다. (031 255 8843)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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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다케쿠마 박사의 말처럼 건강과 농업의 중요성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반세기 전에 비하면 농산물들의 비타민과 미네랄 등의 함량수준이 매우 나빠졌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철분이 풍부하다는 시금치의 철분성분은 1950년대에 비하면 약 5분의 1수준으로 떨어졌더군요. 빈혈을 예방하려면 전보다 5배는 많이 먹으란 말이 되겠네요. 비료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한 토양 영양소의 파괴되고, 다양한 미생물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세계에서 비료를 8번째로, 농약은 4번째로 많이 살포하는 나라니까요.(2005년 통계)
또한 축산물의 영양도 달라졌습니다. 풀을 뜯어먹는 소의 고기나 닭의 계란을 보면 오메가3지방산의 함량이 높습니다. 그러나 현대의 축산업은 살을 찌우게 하기 위해 곡물사료를 많이 먹이게 됩니다. 주로 옥수수 사료를 통해 만들어진 지방은 오메가6 비율이 높아지는데, 이러한 육류를 과도하게 섭취하면 우리 몸의 지방산 균형이 깨지면서 심혈관계 질환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고기를 먹더라도 오메가3지방산의 함량이 높은 고기를 먹을 때는 그렇지 않다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