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연대 초에 나는 소설가 유주현 선생님과 박영준 소설가 선생님과 함께 우리집에 잘 찾아 주시던 김세종 삽화가님께서 나를 퍽이나 사랑 해 주셨다. 지금도 불광동에 자택이 계시지만 구송 화실인이라고 김구용 시인의 자택 호를 정하여 주셨다는 잔디뜰이 200평이나 되는 그 때만 해도 일찍이 사대문 밖에서 전원 생활 하시겠다고 시골 찾은것이 그 만큼 뜰 넓은 곳을 택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9송 화실인에 소나무가 일부 본래 있던 나무가 죽었다고 해서 몇 구루 소나무 안성에서 옮기는 가운데 한 구루가 차에 들어 가지를 않아서 남은 것을 심은 것이다.
지금이야 소나무가 정원에 감초처럼 사랑을 받고 옮기는 기술력이 장비가 좋아 거의 다 살리는 편이지만 그 때만 해도 소나무를 옮긴다는 것은 감히 생각을 못 하던 때이다.
그러저나 김세종 화가 선생님댁에는 불광동 사거리에 보건원과 담을 이루고 있었지만 터널의 길로 인하여 200평 넓은 뜰이 옹색하게 적어졌다. 김선생님께서는 얼마나 멋쟁이가 하면 억새꽃을 가을 바람에 취하고 싶어서 뿌리 라인을 줘 가면서 기르시던 정원의 시안이 남다르게 높으신데 나도 사람 노릇 잘 못하여 찾아 뵙지 못 하는데 가을에 안성포도나 나올 때 찾아 뵙야겠다는 마음이다.
나보고 얼마나 독한 담배를 피우시는 애연가신가 하면 시골에서 [진달래] 독한 담배를 몰아다 달라고 하시는 분이시다. 불광동 자택에 초대 받아서 밤 늦도록 바둑을 두던 귀티가 가득 나시는 사모님. 모두 뵙고 싶다.
그 때 그 소나무가 이제는 용트림을 하면서 우리 청류재 뜰 가운데 만인들 시선을 끌고 있다.
이 소나무 전지를 해마다 시작이 되면 뙤약볕 아래서 3일간 전지를 해야만 된다.
2년에 한번씩 강한 전지를 하게 되는데 올 해가 강전을 하기 시작이다. 이 작업은 가지 굵기 유도를 해 주기 위함이며 바람통을 열어 주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소나무는 잎도 관상의 극치지만 소나무가 크면 잎보다 가지와 원통을 바라 보는 관상의 대상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이 소나무 밑에는 새우란이 각 도의 사투리로 향연으로 피우는가 하면 변종들 노래가 있다.
작업을 하다가 보니 삼꽃 열매가 한뿌리 붉은 열매로 새들의 유혹을 끌고 있다. 몇 뿌리 심었는데 누가 캐가고 한뿌리가 있다. 그 소나무 밑에는 큰 천남성들도 바람꽃도 있다.
작은 제구에 한참 남한강 수석에 미치게 다니던 수석들이 비오는 날에는 빛결의 노래 합창을 해 준다.
우리나라 시인 중에서 소나무 예찬의 시를 많이 쓰신 박희진 시인의 시화시비가 보인다.
소나무는 하루에 전지 할 것과 몇 일 두고서 전지를 할 것을 구분 하여 위에서부터 아래로 아래서 위로부터 전지 방법이 다르다. 전자는 하루에 전지를 다 할 때이거 몇 일씩 두고 하는 것은 밑에서부터 전지를 해야 좋다. 왜냐면 실은 상부 순 가가운 곳에는 1주일 이상 간격을 두고 전지를 해 주면 좋은 것이 밑 가지 보다도 언제나 먼저 순이 더 자라기 때문에 새순 눈을 먼저 유도 할 시간을 더 주기 위함에서다.
예전에는 안하던 우리 내자께서 아들놈 대신 하느라 그런지 내가 전지 한는데로 순처리 해 주며 사진도 찍어 준다. 이 큰 집에 조각하는 아들이 없으면 두 늙으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