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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5월, 지리산 칠암자에서!!
경남 함양시 마천면과 전북 남원시 산내면의 도경계를 이루는 연하천 삼각고지부터 실상사가 위치한 남원시 산내면까지 이어진 이 능선에 3개의 사찰과 4개의 암자가 있다. 이 능선은 삼정산을 품에 안고 길게 능선으로 뻗어 내려 백무동 계곡의 물과 합수되고 뱀사골에서 내려온 물줄기와 함께 임천강을 이룬다.
7암자를 찾는 첫 걸음은 실상사인데 왕방울만한 눈과 큰 코가 해학적인 목장승과 석장승이 반겨준다. 둥그렇게 튀어나온 눈이 일품인데 이 지방에서는 벅수라고 부른다. 재물과 건강을 염원하여 세워졌다고 한다.
실상사는 증각대사 홍척(洪陟)이 당나라에 유학 갔다가 자장율사의 문하에서 선법을 배운 뒤 세운 절이라 한다. 호국 사찰로 국보 1점과 보물 11점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이 흥하면 실상사가 망하고 일본이 망하면 실상사가 흥한다고 하는데 보광전 안에 있는 범종의 일본 열도 지도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화엄도량 지리산 실상사 보광전 앞 3층 석탑>
신라 흥덕왕 3년(828년) 흥척국사가 개창한 최초의 선종 가람이다. 창건 초에는 지실사(知實寺)였으나 구산선문이 분파 대립되던 시기에 하나의 종파 이름으로 홍척의 존칭인 '실상선정국사'의 앞머리를 따서 실상사라 부르게 되었다. 창건 당시에는 웅장하고 화려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나 지금은 대부분 불타고 요사 1채와 전각 3동만 남았는데 증축 공사가 한창이다.
약사전에 있는 여래불이 천왕봉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그 너머로는 일본 후지산이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고 하니 극일 사상을 불어 넣기 위한 선조들의 민족혼을 느낄 수 있다.
보광전 앞의 두 기의 3층 석탑은 처마의 풍경과 어울려 삼정산과 절묘하게 어울려 가람의 배치를 안정되게 한다. 두 탑은 보물 37호로 지정되어 있다.
수철화상 능가 보월탑과 탑비는 보물 33호와 34호인데 극락전 오른쪽에 서있는 탑인데 수철화상의 사리를 모셔 놓았다고 한다.
철제여래좌상의 특징은 광배가 없고 좌대도 없다. 일설엔 일본으로 흘러가는 땅의 기운을 막기 위해 도선국사의 풍수지리설에 따라 일부러 맨땅에 불상을 세운 것이라고도 전해 오며, 나라에 좋은 일이 있을 때면 땀을 흘린다고 한다.
<실상사 보광전 앞 석등>
보광전 앞에는 아름다운 석등이 서 있는데 보물 제 35호이다. 계단을 올라 보광전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이하다.
실상사의 배치는 너무도 자연 친화적인데 해우소와 부도 그리고 옛기와로 쌓은 돌무더기와 연못이 별로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들판에 위치하여 수수함을 느끼게 한다.
<약수암>
삼정산 능선을 따라 오르지 않고 산길과 임도를 통하여 조금 가면 약수암을 만난다. 보물 제 421호인 약수암 목조 탱화를 보유하고 있는데 나무에 불상을 조각하여 만든 탱화이다. 정조 6년 제작한 것으로 원만한 불사의 보습과 배치 구조, 정교한 세부 조각들이 조선후기 목조탱화의 기준이 되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누각 옆에는 약수가 솟는데 그래서 약수암이라 지어진 이름이며 1937년에 한 불자에 의해서 중수되었다.
가람의 위치와 탱화 보관 건물이 너무도 주변 경관과 잘 어울려 멋있다. 본래 암자란 큰 절에 소속된 규모가 작은 절을 말하고 암자의 스님을 암주나 감원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구름과 안개에 묻힌 약수암의 넓은 터가 안락하고 대나무 숲의 정취가 지리산 계곡에 묻힌 암자를 찾는 나그네의 발길을 붙잡는다.
쉼 없이 솟아나는 약수를 조롱박으로 한 모금 마시며 하릴없이 짖어대는 멍멍이가 적막을 깬다.
약수암을 지나 도마 마을을 가는데 고사리 밭과 수수, 호박 넝쿨, 옥수수, 결명자차 등이 평화로운 시골 정취를 듬뿍 보여준다.
고즈넉한 시골길을 걸으며 구름에 가린 삼봉산과 백무동 계곡을 가끔씩 바라본다. 인간이 산에 묻히면 많은 상념과 시름을 잊고 살 수 있다는데 그것은 산이 주는 무한함과 세속을 떠날 수 있는 자연의 품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지리산은 민족의 기상과 애환이 서린 곳이며 우리 역사에 비극적인 빨치산의 흔적이 묻혀 있는 곳이다. 그들이 은신했던 산죽비트, 바위비트, 굴 비트가 곳곳에 위치해 있다. 당대의 고승 109명이 도를 닦던 영원사와 상무주암, 문수암, 삼불사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천왕봉과 임천강을 바라볼 수 있는 천하절경의 조망터이다.
<삼불사>
경사가 심한 산길을 올라 다다른 삼불사(三佛寺)는 비구니 사찰로 토굴이라 불리는 토담집과 법당 그리고 산신각이 있다. 천왕봉을 바로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하며 전방이 확 트여 심신수련암자로는 제격인 듯하다.
스님이 내 놓은 삶은 감자에서 인정미를 느끼고 절집을 지키는 사나운 멍멍이의 컹컹거림이 한적한 암자의 적막을 깬다.
슬레이트 건물과 비대칭적인 암자의 배치가 의외적으로 다가오지만 삼정산 자락 느긋한 위치에 묘향대 처럼 다가와 인상적이다.
<문수암>
삼불사를 지나 능선을 가로 질러 가면 바로 문수암(文洙庵)에 닿는데 삼정산 자락 1100고지에 위치해 있다. 토굴 같은 법당 뒤에는 임진왜란 때 마을 주민 1,000명을 피난시켰다는 천인굴(일명 천용굴)과 샘이 있다.
석간수를 담아 놓은 큰 단지와 토굴에서 부는 바람으로 더위를 식힌다. 홀로 채소 재배하며 해우소를 정갈하게 관리하시는 스님의 모습이 카메라 앵글로 잡히니 암자의 모습과 너무도 잘 어울린다.
새순이 터져 나오는 야생 당귀의 청초함에서 지리산의 자연을 느껴본다.
문수암에서 가파른 오르막을 10분정도 가면 평탄한 길이 이어지고 고개 넘어 안부 삼거리가 나오는데 커다란 나무 그늘이 있어 오가는 산꾼들의 쉼터로 제격이다.
<상무주암>
오른쪽으로 조금 더 가면 상무주암이 나오는데 수량이 풍부한 샘이 있다. 보조국사 지눌이 오랫동안 수도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상무주암의 상(上)은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하는 경계를 말하고 무주(無住)란 머무름이 없는 자리란 뜻이다.
머물 곳도 없는 진리의 자리라는 너무도 난해한 법어적 문구와 수행 스님들이 나그네들을 반기지 않는 닫힌 문을 바라보며 심오한 불교적 의미에 암자를 지나친다.
<삼정산 정상표석>
상무주암을 지나 오르막에서 한참 땀을 흘리면 삼정산(1,182m)에 이른다. 삼정산 능선에서 가장 조망이 좋고 고도가 제일 높은 곳이다. 구름에 묻힌 정상에서의 조망은 너무도 허전하지만 후일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정상석을 만져본다.
삼정산은 천왕봉에서 동서로 길게 뻗은 주능선과 만복대에서 바래봉을 지나 덕두산까지 서북릉을 포함한 지리산 전체를 모두 볼 수 있는 뛰어난 조망터이다. 흔히 북쪽 전망대라 일컬을 만치 사방이 트여 있고 시야가 좋으며 천왕봉과 서북능선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비티재에서 영원사로 가는 길은 평탄하고 내리막이다. 우중에 걷는 지리산 자락은 많은 숲 냄새와 야생화의 향기로 머리가 맑아진다.
이끼와 바위손 그리고 이름 모를 야생화와의 만남은 우중에 제격이다. 선명한 자태를 뽐내는 아름다운 생명체가 있어 지리의 산길은 힘들지 않다.
<영원사>
시야가 트이고 평안한 위치에 영원사가 있다. 영원사는 해발 920m에 있는데 예전에는 100칸이 넘는 큰절이었지만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 신라 진덕여왕 때 당시 고승이었던 영원대사(靈源大師)가 지었기 때문에 영원사라 불린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영원(靈源)이 8년간이나 수도하였으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여 다른 곳으로 가려고 산을 내려가는데, 그 때 풀밭에서 물리지 않는 낚시로 육지에서 낚시를 즐기는 이상한 노인을 보았다. 그런데 그 노인이 풀밭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것도 이상한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로 지껄이고 있었다.
“2년만 더 낚시질을 하면 큰 고기가 낚일 터인데…….” 꼭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낚싯대를 놓고 한숨을 쉬고 있었다.
그 순간 영원은 번득 뇌리를 스치는 깨달음이 있어 다시 2년 간 더 수도하여 큰 깨달음을 얻고 절을 지었는데, 그것이 영원사였다. 후세 사람들은 그 노인을 문수보살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영원사는 여순사건 이후 반란군이 진압군에 쫓겨 절에 은거하였는데 주민들을 괴롭히자 불태워 없앴는데 1971년에 중건했다.
재난으로 가람은 많은 유물을 갖고 있지 않다. 다만 청매스님의 방광사리탑과 조실 스님들의 부도와 각운대사의 필단사리 3층 석탑이 있다.
<도솔암>
영원사를 지나 마지막 도솔암으로 가는 길은 힘든 오르막이다. 계곡과 바위 이끼의 미끄러운 돌길을 따라 1시간 정도를 가야 한다. 도솔암 가는 길은 지리산 능선의 벽소령으로 이어져 있고 능선을 따라가면 삼각지점의 형제봉에 다다른다.
잘 쌓여진 돌 더미 위에 도솔암은 너무도 평안한 자세로 천왕봉을 향하여 자리를 잡고 있다. 처마에 매달린 청아한 풍경소리와 나무로 파서 만든 샘터는 운치를 더한다.
높은 고지대여서 너무도 공기가 신선하다. 조망만 좋다면 지리의 모두를 볼 수 있다고 하는데 구름에 가린 시야가 야속하다. 절집의 주인은 암주(庵主)이거늘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고 예의를 갖추지 않으니 꾸중도 당연하다. 하지만 중생의 부족한 심사를 도를 닦은 스님의 덕담으로 가르침을 주면 얼마나 좋을까?
산에 오르면 늘 만나게 되는 암자에서 스님들과의 해후는 언제나 밝고 여유 있고 너그러워서 좋은데 지리산 삼정산 7암자를 순례하며 여러 모습의 세속을 본다.
벼락에 맞은 돌배나무에 매달린 자연의 산물을 손에 들고 하산하며 8시간여의 발품으로 만난 7암자의 여운을 본다.
높다란 산길에 정리해 놓은 암자 가는 길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으며 중생의 고뇌와 해탈은 거저 주는 것도 아님을 느끼게 한다.
도솔암을 지나 삼정리로 향하는 순탄한 길은 계곡물과의 합주이다. 양정, 하정, 음정의 세 마을을 일컬어 삼정리(三丁里)라 부른다는데 너덜지대의 색다른 만남과 푸른 소나무 숲의 행복한 여정이 감미롭다. 시원한 물소리가 땀에 젖은 나그네를 부른다.
발과 몸을 씻으니 날아갈 듯 행복하다. 비록 우중산행으로 만난 7암자였지만 지리산 자락에 묻힌 비경을 본 것은 두고두고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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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지리산 상무주암
임 인택
산속의 산을 간다. 왜 지리산은 그 많은 봉우리를 거느리고도 부족하여 삼정산, 세걸산, 창암산, 덕두산 등을 가슴에 품고서야 다시 산이 되는지. 대설 경보 속에 눈으로 흩날리고 싶어 산으로 간다.
겨울 들어 지리산은 참으로 조용하다. 지리산 사람들도 겨울잠에 들어 조용하고 산을 찾는 사람들도 발길을 끊어 조용하다. 매년 11월 15일부터 다음 해 5월까지 산불 방지 기간으로 입산이 금지되어 저잣거리처럼 소란스러웠던 모든 산길들이 다시 산짐승에게 돌아간다. 산이 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오늘처럼 눈이 온 천지를 하얗게 덮은 어느 해 겨울, 설마하고 산에 들었다가 공원 관리인에게 몹시 어려움을 당했던 적이 있다. 오늘은 아예 공원 관리소에 절에만 가겠노라고 신고하고, 정말 절에만 가기 위해 산에 들어섰다.
상무주암은 ‘영원사’까지 승용차로 가서 오를 수도 있지만, 양정마을 버스 종점에서 계곡을 따라 옛 스님들이 걷던 길을 쉬엄쉬엄 한 시간가량 걷다보면 ‘영원사’에 이르고, 다시 한 시간 더 땀을 흘려야 상무주암에 이를 수 있다.
지리산 품속에서 지리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 삼정산(1210m). 삼정산은 산 전체가 부처님 도량이다. ‘영원사’에서 시작하여 도솔암, 상무주암, 문수암,삼불주암, 그리고 견성골을 지나 약수암 ‘실상사’까지 산을 휘감고 천년 고찰들이 불국토를 이루고 있다.
그렇지만 민족의 비극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지리산과 그 속의 크고 작은 사찰들도 어찌 온전할 수 있었겠는가. 한 때는 선방만도 백 칸이 넘는, 기와 대신 너와로 지붕을 이었던 내지리(內智異)에서 가장 컷 던 ‘영원사’도 서로 분풀이라도 하듯 부수고 불 질러 아까운 문화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근래에 옛 가람의 모습으로 복원을 했다지만 어찌 옛 모습일 수 있겠는가.
빨치산의 주무대인 ‘영원사’ 루트는 피아의 전투가 가장 심했던 곳으로, 지금도 계곡의 여러 곳에는 험난한 계곡과 능선을 따라 자연적인 지형지물을 이용한 비트를 그대로 재생시켜 그때의 처참했던 참상을 일러주고 있다. 50년이 훌쩍 지난 오늘에도 아직 천도 되지 못한 원혼들은 나무 끝에 바람으로 매달려 내뿜는 습한 기운은 그곳을 지날 때마다 등골을 오싹하게 만든다. 나는 9천을 맴도는 유주,무주 고혼들을 위해 헌식하고 광명진언(光明眞言, 옴 아모카 바이로차나 마하 무드라마니 파드마 즈바라 프라바야 타야훔)을 읊조리며 이제는 서로들 원한의 고리를 풀고 부디 편히 쉬라고 기도한다.
계곡을 들어서면서부터 아무도 밟지 않은 신설(新雪)은 갓 빨아놓은 모시옷처럼 하얗다. 이불국토에 내 발자취를 남긴다는 게 그저 송구스러울 뿐이다. 발목까지 빠지는 눈의 촉감이 부드럽다. 뽀드득뽀드득, 눈을 밟는 소리가 정겹다. 얼마쯤 갔을까, 순백의 도화지 같은 새길에 나보다 먼저 지나간 녀석이 있다.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어린애 주먹만큼씩한 멧돼지 발자국. 배가 고파 마을 어귀를 어슬렁거리다가 늑장부린 나처럼 외로운 수퇘지임에 틀림없다.
무릎까지 차오른 눈은 능선에 이르니, 앞을 헤쳐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무섭다. 생명붙이들이 모두 잠든 산자락 거대한 능선에는 오직 눈뿐이다. 여름날의 꽃송이보다 더 곱고 화려한 눈꽃, 버릴 것 다 버려서 숲은 추린 뼈처럼 정갈하다. 어린애 팔뚝같은 가지에도 제 몸뚱이보다 두꺼운 눈살을 붙이고, 눈꽃은 햇살에 녹아 얼음꽃이 되었다가 안개에 덮여 서리꽃으로 피어난다.
눈 덮인 지리산의 주 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서쪽 만복대에서 1백 리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저 멀리서 태산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한 겹, 또 한 겹, 모두 눈을 뒤집어 쓴 장엄한 저 봉우리들. 그 당당한 위용을 한눈에 조망하기 좋은 천길 단애 위에 일주문처럼 버티고 서있는 소나무 한그루, 지금은 비록 빛바랜 등걸만 남았지만, 이 송정(松亭)에서 암자에 들기 위해 모든 선객들은 가쁜 숨을 고르며 요동치는 마음을, 멀리서 들려오는 깊은 산속 풍경소리에 맡겼으리라. 이제 한 모롱이만 지나면 상무주다.
상무주(上無住). 부처님도 발을 붙이지 못한다는 머무름이 없는 자리. 머물 곳도 없는 진리의 자리에 자리하기 위해 일찍이 보조국사 지눌부터 2천3년 11월에 입적한 청화 큰스님까지 수많은 선객이 수행 정진 했던 곳으로, 금강산 마하연과 함께 한국 불교의 선맥을 이어온 청정 도량이다.
산들이 온몸으로 철벅철벅 걸어와 조복하고, 기암과 적송이 빚어낸 선경이 신선도 탐낼 듯 아름다운 곳, 그곳에 상무주암은 조촐한 모습으로 그림처럼 앉아있다. 누군가 큰 복을 지어 붉은 양철지붕을 기와로 바꾸고, 앞면엔 큰 유리창을 달아 암자의 모습을 새롭게 꾸몄다. 지난 가을에 지어진 경내에서 가장 좋은 건물인 해우소는 햇빛에 반짝반짝 빛난다.
스물다섯 해 겨울을 이렇게 묵묵부답으로 홀로 앉아 있는, 이미 바위가 되어버린 도암 스님의 모습이 무겁다. 몇 해 전 추석, 암자에 들렀다가 스님이 손수 차려주신 점심 공양 대접을 받고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이후로도 몇 번을 부엌 맨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어머니 젖무덤같은 반야봉을 마주하며 함께 든 공양의 그 달콤함. 지눌 스님은 상무주에 든 지 삼년만에 대각을 이뤘다는데, 25년째 암자를 지키고 있는 스님 앞에 서면 오금이 저려 말문이 열리지 않는다. 스님이 내준 자리를 차마 함께 할 수 없어 스님의 뒤에 앉아본다.
내 것이 무엇이며, 내 것이라고 내놓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세상을 내 생각대로 사는 게 얼마나 될까?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쑥 뽑아내자 새로운 세상이 훤히 보이는 것만 같다. 1천 2백 미터 고지에 붕 떠가는 나를 바라본다. 세찬바람 속에서도 벅찬 풍경으로 가슴 뜨끈해지는 이순간이 생의 전부라 해도 좋겠다. 지금 내가 앉아있는 여기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고 살고 싶다.
몸을 뒤채며 흘러가는 구름 틈으로 천왕봉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등줄기에 달라붙은 햇볕 한 줌이 따뜻하다. 근대 선지식의 선구자인 경봉(1892-1982) 큰스님의 선필로 쓴 상무주 현판과 염송설화 30권을 쓰다가 붓끝에서 사리가 나왔다는 구곡각운대사의 필단(筆端)사리 삼층 석탑이 쓸쓸한 겨울 암자를 지키고 있다. 사흘만에 처음 든 객을 보내는 스님의 뒷모습도, 세월을 견디고 남은 사리탑위에도 본래대로 찬바람만 분다.
다시 누군가에 의해 산사의 적막이 깨어지기까지 눈과 바람, 해와 달과 별이 이 암자의 주인이 될 것이다. 필단 사리탑이 그 옛날 방광하여 세상을 놀래키듯 우리는 저산아래 어디쯤에서 돌탑이 되어 방광하는 불빛을 보고 상무주가 간밤에 불탔다고 얘기할 것이다. (끝) (계간 선수필. 2006년상반기 수필 36편에 뽑힌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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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행 안 내
1. 산행일자: 2013년 5월 5일 첫째주(일) 오전06시 00분
2. 산행장소: 지리산 삼정산 칠암자 코스
3. 산행코스
A코스: 실상사~약수암~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영원사~도솔암~음정(약 7시간 산행)
B코스: 실상사~약수암~삼불사~문수암~상무주암 ~영원사~음정(약 6시간 산행)
**구미보스톤산악회는 선두. 중간. 후미 산행팀장들이 안전을 위하여 함께합니다.
4. 출발장소: 06;00인동새천년사우나 앞/06;15 옥계신한은행 앞/06;30 오성예식장 앞
5. 참가회비: 30.000원 선입금 (조식, 하산주)
6. 계좌번호: 농협:352-0463-6062-03 (김주현)
7. 문의전화: 011-9357-5420(회장:황희덕) 010-2545-1201(카페지기:김주현)
8. 준 비 물: 산행에 필요한 개인장비(장갑.모자.선글라스.방풍의)/노래/열정/회비
9. 산행코스는 당일의 일기와 현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10.산행시 사고의 발생은 본인 책임이며 그 부주의에 대하여 본회에 이의 제기와
민.형사상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산행신청시 위 내용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합니다.
11.구미보스톤산악회는 비영리 단체로서 인원에 연연하지 않으며 운영상 불편함이 없도록 선 입금 협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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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 김미분님과 친구분 포함 2명 갑니다.
연락처 남겨주세요
입금확인
김미분님 010-9363-5994
김희숙님이 한 명 더 데리고 온답니다. 4명에서 5명입니다.오후에 입금한답니다.
예 알겠습니다
5명 입금확인
총 41명의 회원님이 입금을 하셨습니다. 유지연으로 송금하신 분이 계시는데 어느 분인지 확인이 안되네요. 아직 10여분의 회원님들이 입금을 안하셨는데 이러시면 안됩니다. 차에서 돈 걷을 사람이 없습니다. 토요일, 일요일까지 입금부탁드립니다. 저녁 먹을 식당 예약도 해야 하는데 정확한 인원이 안되다 보니 밥그릇 수를 말해달라는 식당 아줌마의 요청에 아직 답을 못했습니다. 빠른 선입금 부탁드립니다.
이재현님은 일이 생겨 참석하기 힘듭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미경님이 한 명 더 추가 신청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미경님이 한 명 더 추가 신청합니다
게스트 이주희님입니다.
이미경 이주희입금
태양인길구(손병철) 5월5일 본인포함 4명 참가 신청 합니다.
참가자 (손병철,최원교,권상조,정원현)
어디서 타는지 탑승지 좀 남겨주세요
참가비 12만원 입금했습니다,
입금확인
카페지기님 자리가 가능 합니까
전화번호 좀 남겨주세요
손병철님 010-3796-1258
옥계에서 4명 모두 탐승 합니다.
예
이현주님은 바쁜 관계로 산행 가기 어렵습니다.
이광재님도 바븐 일 정 관계로 불찹입니다.
예,
이상태님도 일정상 산행 참석 하기 어렵다고 하네요
예 괜찮습니다
30일 현재, 총 46명의 회원님이 입금을 하셨습니다.
이정숙님 산행 신청 합니다.
방금 지리산으로 입금하신 분이 있는데 어느 분인지 모르겠습니다.
현재까지 51명이 입금하셨습니다. 지리산으로 입금된 분이 누군지 모르겠습니다. 좀 알려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신청하신 분들 중에서 일요일 출근 명을 받은 분들이 몇분 계셔서 5자리 정도 산행 신청이 가능하니 신청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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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감사합니다, 옥계에서 타시죠?
신청합니다
내일.입금하도록 하겟읍니다
예 감사합니다.
입금햇읍니다 확인바랍니다
입금확인
오늘입금햇읍니다
예, 확인했습니다 장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