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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스트레스와 탈진
김준수 교수(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I. 여는 글
우리들은 사람들의 입에서 스트레스 받는다는 말을 하루에도 수 없이 들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오늘날처럼 갈등과 경쟁이 치열한 산업 사회에서는 사회가 구조적으로나 기능적으로 복잡하게 변화함에 따라 이에 적응해야 하는 현대인들은 많은 신체적 심리적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당연하다. 적절한 스트레스는 삶의 원동력이 되고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여주기 때문에 삶의 원기를 북돋아주는 활력소로 작용한다. 그러나 지나친 스트레스는 삶의 에너지가 소진되는 탈진으로 이어지며 정신적인 문제나 육체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위험인자이다. 최근에 한국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자살도 많은 스트레스를 날마다 받으면서도 적절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모르고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의 마지막 선택으로 볼 수 있다. 특히 한국사회는 짧은 기간동안 너무나 많은 변화를 경험하였다. 어지러울 정도의 빠른 속도로 달려온 사회의 변화 속에서 한국인들은 자신을 돌보지 못하고 오직 성공을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왔다. 그동안 당장 먹을 끼니를 걱정하고 개발도상국의 딱지를 떼야 한다는 일념으로 달려온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정신건강을 논하는 것 자체가 사치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스트레스 해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으며 직장인들 10명 중 8명 가까이가 스트레스로 질병을 앓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날 정도로 그 피해의 심각성이 알려지고 있다.
목회자들은 직장인들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교회의 성장이 둔화되고 교회 개척을 해도 교인들이 오지 않는 현 상황에서는 목회자들이 더 많은 심적인 부담을 가지게 된다. 물론 직장인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으로 ‘폭음과 폭식’을 선호하고 있는 것에 비해서 많은 영적 자원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들은 좀 더 건강한 스트레스의 대처를 하고 있다고 여겨지지만 그렇다고 목회자들의 스트레스가 심각하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다. 목회탈진은 목회자들이 겉으로 드러내기가 어렵고 탈진상태에 있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다. 목회자가 탈진을 목회의 실패로 여기고 감추려하고 있으며 많은 목회자들은 자신이 탈진 상태에 있다는 것 자체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교회의 건물과 출석교인의 숫자에 의해서 목회자가 등급 매겨지는 현 한국교회의 상황은 탈진한 목회자들이 더 많아지는 구조이다. 한 사람의 성공한 목회자의 그늘에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수많은 목회자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있으며 이는 목회의 탈진으로 이어 질 수 있다.
한국교회는 2000년 교회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놀라운 부흥을 이룩하였으며 부흥의 요소들 가운데 목회자들의 교회를 향한 헌신이 있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순교적인 정신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목회자들의 희생이 교회부흥의 밑거름이 되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목회자의 열심이 탈진의 원인이 되는데 이는 탈진이 목표 지향적이고 목적 지향적인 사람이 불같은 열심을 가지고 전력투구해서 일을 하다가 그에 따른 결과가 보이지 않을 때 쉽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특히 더 많은 교인들을 모아야 하고 더 큰 예배당을 지어야 한다는 물량주의적인 목회성공에 쫒기는 목회자들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지속적인 스트레스에 노출되고 결국 탈진에 이르기 쉽다. 교회의 건강은 목회자의 건강에 의해서 좌우되기에 목회자의 탈진은 전반적인 한국교회의 건강에 치명적이다. 21세기의 한국교회가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고 더욱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목회자들의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을 강요하기보다는 목회환경을 개선 시켜서 목회자의 탈진을 막고 능률을 극대화시키는 목회구조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II. 펴는 글
1. 스트레스의 이해
스트레스의 원 의미는 단순히 ‘긴장’이지만 이 단어가 캐나다의 의사요 생물학자인 Hans Selye의 저서인『삶의 긴장(The Stress of Life)』에서 스트레스의 부정적인 영향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그 의미가 보편화되었다. 그는 스트레스를 디스트레스(distress)와 유스트레스(eustress)로 구분하면서 디스트레스는 우리를 파괴하는 부정적인 스트레스이지만 유스트레스는 긍정적인 스트레스로서 만족과 충족감을 준다고 하였다. 의학적으로 스트레스를 정의하면 육체적이나 심리적인 자극을 주는 요소로서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 몸과 마음을 약하게 하고 병들게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몸과 마음을 긴장하게 만드는 경험으로서 몸과 마음의 균형을 허무는 것이다. 스트레스의 원인은 외적원인과 내적원인으로 나눌 수 있는데 외적원인은 소음, 강렬한 빛, 좁은 공간과 같은 물리적 환경, 가정이나 사회에서 겪는 타인과의 갈등과 같은 사회적 관계, 친인척의 죽음이나 실직, 결혼 등과 같은 생활의 변화 그 외에도 일상의 복잡한 일들이 있다. 내적인 원인들로는 비관적인 생각이나 낮은 자존감, 피해의식 등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 비현실적인 기대, 과장되고 경직된 사고와 같은 마음의 태도 그리고 완벽주의자나 일벌레 등과 같이 스트레스가 잘 생길 수 있는 개인적인 특성들이 있다.
스트레스는 크게 3가지의 구성 요소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외부의 상황이며 둘째는 사람이 외부의 상황을 통해서 느끼게 되는 경험이고 셋째는 상황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표출되는 신체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이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는 신체에 파괴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스트레스의 상황과 개개인의 성격에 따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감정의 반응은 부정적인 감정들로서 불안, 분노, 슬픔, 수치와 죄의식 등인데 일반적으로 스트레스와 연관된 연구는 부정적인 반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스트레스를 주는 외부 환경에 대한 연구가 초기에는 주로 전쟁이나 자연재해와 같은 엄청난 충격에 집중되었으나 그 후에 일반적인 삶의 주기에서 일어나는 결혼이나 이혼, 사별, 새 직장에 입사하거나 직장에서 해고를 당한 경우들과 같은 보편적인 변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삶의 모든 변화는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데 배우자의 죽음이나 실직과 같은 삶의 파괴적인 변화도 스트레스의 요소가 되지만 결혼이나 출산 휴가와 같은 건설적인 변화도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상황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경험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 개인이 가진 자원보다 외부의 도전이 불균형적으로 클 경우에는 더 큰 스트레스를 경험할 수 있으나 이와 반대로 개인의 자원이 외부의 도전보다 더 클 경우에는 똑같은 상황에서도 스트레스를 덜 받게 된다. 모든 스트레스가 해로운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스트레스는 마치 우리 몸의 열과 같다. 너무 많아도 몸에 해롭고 너무 적어도 몸의 균형을 깨트린다. 그러나 적당한 열은 몸에 필수적이다. 이와 같이 우리의 삶에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너무 많거나 아주 없는 상태 모두가 해롭다. 적절한 스트레스의 상태가 유지되는 것이 필요하다. 스트레스의 양이 주는 차이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스트레스의 질도 중요하다. 같은 양의 스트레스라 할지라도 어떤 종류의 스트레스인가에 따라서 그 영향은 달라진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스트레스가 있고 불필요한 스트레스가 있다. 유익한 스트레스는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의무와 연관성이 있는데 예를 들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다양한 역할을 감당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우리가 책임 있는 삶을 살게 하며 삶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불필요한 스트레스는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불균형을 야기하며 삶을 파괴하는데 예를 들어서 학교에서 동료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 경험하는 스트레스는 심적이고 육체적인 고통을 줄 뿐 아니라 삶을 파괴하는 불필요한 것이다.
성경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이해할까? 물론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스트레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와 연관된 표현들은 성경에 자주 등장한다. 성경에서 스트레스 자체를 정의하거나 설명하고 있지는 않지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을 어떻게 극복하고 대처할 것인가에 관련된 여러 구절들이 있다. 첫 번째로 고린도후서 1장에서 바울이 환란이라는 표현을 하고 있다. “우리의 모든 환란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후 1:4). 즉 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받는 하나님의 위로는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을 극복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타인의 환난도 위로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숙하게 한다.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도 극심한 스트레스를 야기하는 환란이 우리를 허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세울 뿐 아니라 소망을 갖게 한다고 하였다(롬 5:3-5). 즉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은 부인하거나 회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적극적으로 직면하고 개인적인 성화와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스트레스와 연관된 다른 표현으로는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각자가 질 짐과 서로 질 짐을 말하고 있다(갈 6:2, 5). 우리는 누구나 각자 감당해야 할 책임의 영역이 있고 공동체로서 서로를 도와서 감당해야 할 영역이 있기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기에 우리들은 각자 자신이 책임져야 할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이와 동반되는 스트레스도 적극적으로 대처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나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할 짐이 너무 과도해서 견디기 어렵다면 교회는 이러한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고 공동체가 짐을 나눔으로서 공동으로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과도한 스트레스가 지속적으로 주어지는 상태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지쳐서 탈진에 이르게 되며 이는 결국 공동체를 허약하게 만들게 된다.
2. 목회자의 스트레스와 탈진
K목사는 요즘 매사에 의욕이 없어지고 우울한 감정이 자주 든다. 그동안 목회를 하면서 받은 스트레스가 쌓여서 점차 자신의 에너지가 고갈되는 탈진을 경험하고 있다. 그는 지금의 목회지인 A 교회에 4년 전 부임하였는데 지방에 위치한 A 교회는 약 100명의 장년과 주일학교 학생들이 출석하는 교회이다. 그는 지방으로 내려간다는 것이 약간 마음에 걸리기는 하였으나 처음으로 담임목회를 한다는 기대감으로 설레었다. 교회에 처음 부임을 해서 의욕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설교준비와 각종 성경공부 그리고 심방에 온 힘을 기울였다. 특히 A 교회는 담임목사와 교인들 사이의 불화로 인하여 전임 목회자가 교회를 떠나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K 목사는 우선적으로 교회의 어지러웠던 과거를 정리하고 교인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급선무였기에 첫 일년 동안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서 지냈다. 온 가족이 새로운 지역에 이사를 해서 아이들은 새 학교에 적응을 해야 했으며 아내도 낮선 지역과 새 교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부모와 형제들을 떠나서 아는 사람이 전혀 없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일이 힘들었다. K목사는 아내나 자녀의 적응에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매일 새벽기도와 심방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뛰었지만 처음에는 내 목회를 한다는 기쁨과 교회를 안정시켜 간다는 자부심 속에서 모든 일을 피곤한 줄 모르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지쳐 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교회 일은 시작과 끝의 경계가 불분명하였으며 해도 끝이 없는 것 같았고 일의 성과가 눈에 띄게 즉각적으로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최근에는 목회자로서 자신의 능력에 회의를 느끼기도 하였으며 사례비도 충분하지 못하여서 가정경제의 여유가 없는 것도 힘들었다. 이러한 다양한 요인들이 겹치면서 목회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가 고갈되어 갔으며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교회에서는 참고 있다가 가정에서 화를 내는 빈도수도 많아졌다. 마음이 답답하지만 이러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상대도 없어서 혼자 교회의 담임목사실에서 멍하니 앉아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K 목사는 자신이 목회를 계속 해야 하느냐는 근본적인 사역에 대한 회의를 가지고 있으며 다른 목회지를 찾아서 분위기를 바꾸면 모든 것이 더 나아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 구체적으로 찾거나 대 놓고 알아보지는 않지만 은근히 교회를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K 목사는 지금 목회의 탈진을 경험하고 있다. K목사 외에도 많은 목회자들이 탈진을 경험하고 있으며 목회탈진은 보편적으로 목회자들에게 한 두 번씩은 찾아오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목회탈진을 긍정적으로 극복하지 못하면 목회자 개인의 위기가 될 뿐 아니라 목회자 가정의 위기요 나아가서는 교회의 위기로 발전하게 된다. 목회탈진은 목회사역에서 목회자의 능률과 효율성을 빼앗고 섬기는 기쁨을 제거하며 고독과 실의 정신적 고통, 우울증 등에 시달리도록 한다. 탈진이라고 번역되는 ‘burnout'이라는 단어는 세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첫째는 건물들과 같은 어떤 물체의 내부 혹은 내용물들을 태워 없애는 것이다. 둘째는 전기장에 쓰여 지는 경우로 고온으로 야기된 자연 발화로 회로가 파괴되는 것을 뜻한다. 셋째는, 산불처럼 삼림의 생명력을 지탱해 주는 부식토마저 완전히 파괴될 정도로 불이 나 황폐해 지는 것을 뜻한다. ‘burnout’이라는 표현의 원 의미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상태를 설명한 단어가 아니다. 그러나 위의 사전적 의미를 사회 심리학적 의미로 적용해 본다면 건물의 내부가 다 타버려서 내면의 에너지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것처럼 고갈된 상태 그리고 정신적이거나 영적인 회로가 타 버려서 기능이 마비된 상태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생할 능력이 없을 정도로 소진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즉 탈진되었다고 할 때에는 다양한 원인들로 인하여 에너지가 고갈되고 정상적인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상태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가 가중되는 상태에서 적절한 대처 없이 지내다 보면 탈진으로 이어지며 이와 동반되는 정신적, 육체적 영적인 증상이 나타난다. 먼저 정신적으로는 개인이 실패자처럼 여겨지고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되며 스스로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될 뿐 아니라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영역까지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거짓 죄책감에 빠지기 쉽다. 이뿐 아니라 일상의 리듬이 깨어져서 일의 능률이 저하되며 한 가지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되고 육체적으로는 목이나 허리의 통증이나 두통 수면장애, 고혈압, 여러 종류의 소화 장애나 심장마비 등을 야기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지속되는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 일시적으로 잊기 위해서 알코올이나 수면제 등을 찾기도 하지만 이는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탈진을 재촉한다. 특히 목회자를 포함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탈진이 오면 영적인 고갈을 경험하는데 이때에는 하나님이 무능력해 보이고 자신 외에는 어떤 도움도 불가능해 보이며 규칙적인 말씀묵상이나 기도생활이 중단되고 영적인 공황상태는 더 심해진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이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기의식이 더해지면서 하나님이나 주위의 사람들이 자신을 포기했다는 생각에 더 괴로워한다.
탈진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개인적인 원인이다. 개인적인 원인들은 개인 자신의 심리적이고 성격적인 측면으로 인하여 탈진을 초래하는 요소들이다. 구체적으로 개인의 미성취된 개인생활, 일중독, 심리적 불안정, 지나친 인정에 대한 요구, 비교의식, 권위주의, 비주장적 행동, 자기비하 등과 같은 내면적인 요소가 있고 또한 담임목회자와 부목회자라는 변수, 신학교육 정도, 목회철학과 비전, 목회자의 정체성과 소명의식 등이 탈진을 촉진시키는 원인이 된다. 그리고 두 번째로는 조직적 변인들이다. 조직적 변인들은 개인의 문제보다는 개인이 속한 직업적인 환경과 구조적인 요소들 가운데 탈진을 유발하는 원인들을 말한다. 조직적 변인들로는 불확실한 업무시간, 긍정적 피드백의 결여, 가정을 위한 시간의 부족, 비현실적인 기대, 낮은 급료, 휴식의 박탈, 일정조절 능력의 상실, 불분명한 업무의 역할 규정 그리고 사역에서 오는 지속적인 긴장과 스트레스 등이 있다. 물론 개인적인 변인과 구조적인 변인은 서로 상관관계가 있으며 긴밀한 상호작용을 한다.
3. 교회 구조적인 탈진원인
1) 과다한 업무
한국교회는 다른 나라의 교회들에 비해서 많은 모임과 예배가 있다. 매일 새벽예배가 있고 수요예배, 금요 기도회, 주일 낮 예배와 저녁예배까지 공식적인 예배만 해도 한 주일에 10번 이상이다. 그 외에 각종 심방, 출생, 사망, 생일, 회갑, 기타 경우의 특별 예배 인도 그리고 교인들의 각종 경조사에 참여, 대 내외적인 교회와 관련된 일들 등 목회자의 업무는 참으로 많다. 이런 일들을 정신없이 하다보면 목회자는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를 지나치게 소모시키고 영적으로 육적으로 지치게 된다. 특히 부교역자 없이 담임목사 혼자 모든 모임을 인도해야 하는 대부분 교회의 목회자들에게는 스스로를 고갈시키는 업무량이기에 목회자는 자연히 휴식시간이 부족하게 된다. 새벽 기도회를 위해서 목회자는 매일 새벽 4시 혹은 5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심방과 각종 집회를 인도하다 보면 밤 12시 넘어야 잠자리에 드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생활이 스트레스 속에 계속되고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누구나 탈진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교회가 전통적으로 수직적인 교회 구조 속에서 모든 교회사역이 목회자에게 집중되어 왔기 때문이다. 유교적인 상하 계급의 구조가 분명하고 모든 일은 목사에 의해서 주도되어야 한다는 인식 속에서 더욱 가중되었다고 본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르비딤까지 인도한 모세가 혼자서 사법, 입법, 및 행정의 3권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모세는 전쟁이 나면 지휘를 하였고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법을 제정하였으며, 백성들 사이의 법적인 분쟁을 재판하였다. 아이들까지 합치면 이백만이 넘는 백성들이 모세의 판결을 받기 위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렸다. 모세는 과다한 업무로 지치고 결국은 탈진 상태를 면할 수 없었다. 결국 이드로의 지혜로 혼자 할 수 없음을 깨닫고 과중한 업무를 분담할 수 있었다. 한국교회의 목회자도 일을 위임하는데 에 두려움을 느낀다. 결국 교인들은 수동적이고 단지 주어진 지시에 따라서 하는 데에 길들어져 있으며 조그만 일도 목사님의 의도를 물어서 하려고 한다. 자연히 목회자는 회의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교회의 모든 일들을 일일이 챙겨야 한다. 과다한 업무량은 전통적으로 한국교회의 구조적인 측면에 원인이 있을 뿐 아니라 또 한편으로는 목회자 자신이 과감하게 일을 나누고 맡기지 못함으로 인하여 스스로 자초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목회자의 과도한 업무 중 가장 큰 부분이 설교이다. 한국교회는 특히 설교의 횟수가 많다. 주일 낮 설교 뿐 아니라 저녁예배, 수요예배, 새벽기도회, 금요철야예배 등등 일주일에도 10번이 넘는 설교를 준비하여야 한다. 목회자가 이러한 설교들을 대부분 같은 교인들에게 해야 한다는 것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같은 설교를 할 수가 없고 항상 새로운 설교를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설교준비를 힘들어하는 이유이다. 설교가 탈진의 이유가 되는 또 다른 이유는 모든 설교가 마감시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까지 설교를 완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과 지금까지 수많은 설교를 들었고 또 앞으로도 들을 사람을 대상으로 설교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스트레스를 가중시킨다. 한번의 설교를 마치고 나면 머리 속에는 다음번 설교에 대한 부담이 몰려온다. 특히 설교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배시간이 다가 올 때에는 심적 스트레스가 가중된다.
2) 불분명한 사역의 경계
일반적으로 사람을 돕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한결같이 호소하는 것은 일의 끝이 없다는 것이다. 특히 목회와 같이 사람을 돕는 사역은 시간의 한계를 정해서 할 수 없고 또한 도움의 성과도 불분명할 때가 많다. 그러기에 돕는 사역의 종사자들에게 특히 탈진이 많은데 목회도 결국 사람들을 대하고 도와주는 사역이기에 이러한 사역의 특성이 목회자들의 탈진을 가속시키는 역할을 한다. 특히 한국교회는 목회자들에게 구체적으로 해야 할 일을 정해주지 않는다. 서구적인 개념의 'job description'이 목회자들에게는 없다. 새로운 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할 때에나 또는 부목사로 부임할 때에 어떠한 일을 하게 되는지 구체적인 책임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사역을 시작하게 된다. 스스로 알아서 눈치껏 할 일을 찾아서 해야 할 경우가 많다. 교역자가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목회에 주어지는 책임과 업무의 한계를 알려고 하거나 규정하려고 하는 것은 비신앙적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부임하는 목회자가 사례비에 관심이 있고 알기도 원하지만 거론하는 것이 비신앙적으로 여겨질 것 같아서 묻지 못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풍토이다. 목회자에게 충분한 정보가 주어지지 않고 베일에 가려져 있는 상황이 스트레스의 요인이 된다. 부교역자들에게 구체적인 사역의 한계가 주어지지 않았을 때 항상 눈치를 보며 일을 해야 하며 자신의 고유한 사역의 영역이라고 여겨지던 일들이 담임목사나 장로들에게 침범을 당했을 때에 심한 모멸감을 느끼며 사역의 회의를 경험한다. 직업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경우는 자신의 맡은 일에 대해서 컨트롤 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아질 때이다. 책임은 주어지지만 컨트롤 할 수 있는 영역이 적을수록 자신의 무기력함을 많이 느끼게 된다. 병원에서도 의사보다 간호사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이유는 환자에 대한 같은 책임을 가지면서도 자율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것들은 적기 때문이다. 상하 계급 간에 원활한 쌍방 의사소통의 통로가 막혀 있는 교회조직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긴다. 한국교회에서 용납하지 못하는 것 중의 하나가 권위에 도전하는 행위이다. 이처럼 사역의 경계는 불분명하면서도 자율성은 주어지지 않는 불합리한 구조는 자연히 목회자들끼리 또는 목회자와 당회사이의 불화를 초래한다. 인간은 자율적인 존재이기에 누구나 단순하게 지시를 받아서 일을 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영역 속에서 자유롭게 일하기를 원한다. 목회자도 누구나 자신의 주어진 영역에서 자유롭게 사역하고 싶어 하며 다른 사람의 구속과 간섭을 싫어한다. 그러나 서로의 영역들이 분명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구조적으로 충돌을 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교회 사역에 한계를 분명하게 정하는 것이 어려울 때가 많으며 이러한 목회 적인 특성은 한국교회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한국교회는 서구의 교회들에 비해서 사역의 경계가 더욱 불분명하다.
이러한 사역의 불투명성은 독불 장군식 리더십에서 많이 나타난다. 좋은 리더는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자기공개를 하며 문제를 서로 상의하는 신뢰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독불장군 식 리더십은 위임의 부재와 언어소통의 단절을 가져오며 결과적으로 고립된 리더를 만든다. 리더의 고독은 이처럼 위임과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리더가 혼자서 결정해야 할 일도 있지만 모든 일을 혼자서 고독하게 결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리더가 독재적으로 결정하고 일방적으로 명령할 때 교회는 경직되고 수동적으로 변하며 언어소통은 쌍방통행이 아닌 일방통행이 된다. 리더는 대화보다는 명령에 익숙하게 되고 자연히 부하직원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의사소통은 조직의 혈액순환과 같아서 의사소통이 단절되면 리더는 고립되고 조직은 생명력을 잃게 된다. 리더의 고립을 막기 위해서는 리더가 조직의 구성원들과 대화의 채널을 활성화해서 결정에도 동참하게 해야 하며 적절한 위임과 함께 결정권도 이양해야한다. 일의 위임은 권한의 위임이기에 일을 맡겼으면 맡은 사람이 그 일에 대해서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을 지도록 하여야한다. 한스 핀젤은 리더들이 위임을 하지 않는 이유들 중에 첫 번째로 권한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들고 있다. 리더가 가지는 결정권은 부담스러운 일이면서도 동시에 리더만이 누리는 권한이다. 그러나 리더는 그 권한의 위임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을 리더로 세울 수 있고 자신만이 리더라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불분명한 한계는 업무의 한계 뿐 아니라 업무시간도 포함된다. 교회 목회의 특성상 목회자에게는 출퇴근 시간이 없다. 사역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은 24시간 긴장 속에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교회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쉴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없으며 사역과 가정의 한계를 지을 수 없다. 몸은 집에 있지만 언제 사역이 시작될지 모르는 끊임없는 긴장의 연속이다. 한 목사님은 집에서도 넥타이를 풀지 않고 항상 대기 상태로 지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설교 중에 하시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만큼 목회에 헌신한다고 볼 수 있지만 누구나 이러한 긴장 속에서 지속적으로 생활하다 보면 목회자는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탈진하게 된다. 부교역자들도 일정하게 정해진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서 사역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며 대부분의 부교역자들은 담임목사의 눈치를 살피면서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경우가 많고 일주일에 주어진 하루의 쉬는 날도 교회에 급한 일이 생기면 포기해야한다 자신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가 언제 끝날지를 알면 그에 대한 대처도 더 쉬워지기에 스트레스를 받는 기간이 정해져 있으면 그만큼 탈진을 줄일 수 있다. 그 한 예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전쟁에 참전하면 전방에서 기약 없이 전투에 임해야 했다. 이들이 후방으로 이송되는 유일한 길은 부상을 당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베트남전쟁에서는 육군은 365일 해군이나 해병대는 395일 동안만 전방에 근무를 하였고 그 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후방으로 이송되었다. 군인들은 전방에서의 근무가 일정한 기간에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스트레스를 좀 더 잘 극복하고 제2차 세계대전 때보다 병사들의 심리적인 외상을 삼분의 일로 줄일 수 있었다.
3) 끊임없이 요구되는 선택
사람은 누구나 살아가면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일들을 만나게 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목회자는 자신에게 연관된 개인적인 결정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일들을 선택하고 결정하게 되는데 이는 리더의 가장 큰 역할이 단체의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고 단체의 미래에 주도적인 결정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리더는 싫든 좋든 끊임없이 결정할 일을 직면하게 된다. 리더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는 주도성이다. 스티븐 코비는 주도성이 성공적인 사람의 특징이라고 하면서 가치관에 기초를 두고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성공적인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환경에 의해서 주조되는 자가 아니라 환경을 바꾸고 더욱 아름답고 풍성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잭 웰치도 리더가 가져야 할 필수요소들 중에서 가장 핵심이 결단력이라고 하면서 “리더의 일은 결정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결국 좋은 리더는 좋은 결정을 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결정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누구나 선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사실은 심리적으로 많은 부담을 주며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특히 자신이 한 결정이 자신에게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교회 공동체의 성공과 실패를 좌우한다면 누구나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게 된다.
리더의 기질에 따라서 결정을 하는 일이 더 어렵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예를 들어서 심리적으로 의존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결정하는 일을 만날 때마다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의 결정에 대해서 자신이 없고 가능하면 결정을 하지 않거나 최대한 미루려고 하든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대신 결정해 주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매사에 경쟁을 싫어하고 사회적 긴장이나 대인관계의 갈등을 참지 못한다. 일을 처리하는 방식은 일 중심이 아닌 극단적인 사람중심이고 이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가 깨어지지 않는 것이며 목표를 결정하고 추진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러나 리더는 기질과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다양한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목회자가 결정을 할 때 느끼는 스트레스 중 하나는 비난의 두려움이다. 누구나 비난을 받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리더의 결정에 불만을 품고 여러 사람들이 리더를 비난할 때에는 견디기 힘든 과중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러나 비난받기를 원치 않으면 리더가 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리더는 항상 비난을 받을 것을 감수해야한다. 왜 리더가 결정을 할 때에 비난을 받는가? 첫째로 이 세상의 어떠한 선택도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일을 결정할 때에는 항상 다양한 선택의 여지가 있고 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지만 각각의 선택에는 장단점이 있다. 리더는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가부간에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있다. 두 번째는 결정한 일이 실패한 경우이다. 만일 결정한 일이 성공적으로 진행이 된다면 리더를 비난할 사람은 거의 없지만 결정한 일이 계획된 대로 진척이 안 되고 결과가 실망스럽다면 사람들은 누군가 비난의 대상을 찾게 되고 항상 리더가 그 비난의 표적이 된다. 세 번째로 공동체 안에는 습관적으로 항상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끊임없이 리더에 대해서 부정적인 면을 찾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고 별 문제가 아닌 데도 불구하고 확대 해석해서 다른 사람들을 부추기고 리더를 대항하는 사람들도 있다. 리더는 이들에 의해서 근거 없는 비난으로 시달리고 고통을 당한다. 성격장애의 분류 중에서 반사회성 성격이나 수동-공격성 성격이 강한 사람은 이유 없이 비난하고 감정적으로 리더를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 리더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질수록 그리고 더 성공적일수록 더 많은 근거 없는 비난의 대상이 되며 리더로서 결정한다는 것은 곧 크고 작은 비난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리더가 공동체의 앞길을 좌우하는 중대한 결정 앞에서 받는 다른 스트레스는 불안이다. 자신의 결정이 실패하면 어떻게 하나? 자신의 결정에 다른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지지해 줄까? 나의 결정이 과연 최선의 결정이냐? 등등 수많은 걱정과 의심 그리고 회의가 리더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래서 리더의 마음이 불안해지는데 불안은 사람이 앞에 놓인 위험이나 혹은 위험의 징조를 감지했을 때 느끼는 감정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위험이 실제라면 불안은 긍정적인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경보장치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만일 불안을 야기한 위험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하게 위험의 가능성에서 오는 것이라면 불안은 부정적인 짐이 되어서 사람을 지치게 하고 에너지를 고갈시키며 육체적 정신적 기능을 저하시킨다. 불안과 두려움의 차이는 두려움은 구체적인 두려움의 대상이 있는데 비해서 불안은 특정한 대상이 있기보다는 막연하게 미래에 닥칠 위험이나 부정적인 결과를 예측하면서 느끼는 감정이다. 왜 리더가 결정을 할 때에 불안해지는가? 불안이 불확실하지만 가능한 미래의 위험에 대한 감정이라고 정의했듯이 리더의 결정은 미래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물론 리더는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서 결정을 하지만 어떠한 결정이든지 항상 부정적인 미래의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다. 불안감은 리더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적절한 불안감은 리더가 자신이 결정한 일에 대해서 좀더 집중하고 열심을 내도록 만들며 불안감이 자극제가 되어서 결정한 일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매사를 철저하게 준비하게 할 뿐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다는 교만함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게 만든다. 리더들은 대부분 일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적당한 불안감을 느끼지만 불안감이 가중되고 오랫동안 지속될수록 점차 리더는 지치게 되고 쉽게 짜증이나 화를 내게 된다.
4. 목회 구조에 기인한 탈진의 대안
지금까지 한국교회의 구조 속에서 나타나는 스트레스 그리고 과중한 스트레스로 인한 탈진의 요소들을 살펴보았다. 목회자의 탈진을 막는 대안들은 다양하게 열거할 수 있다. 교단 적인 차원에서 연금이나 보험, 목회도움에 대한 상담 그리고 탈진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에 대한 훈련과 동료 집단 지원체제 등을 들 수 있다. 교회적으로도 목회자에게 충분한 재정적 보상을 해 주고 지속적인 재충전의 기회를 갖도록 휴가와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규칙적인 운동과 식사 그리고 정기적으로 교회를 떠나서 기도원이나 한적한 곳에서의 쉼과 영적인 재충전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적절한 시간관리와 가족관계를 위한 노력 등이 있다. 그러면 이 중에서 특별히 한국교회의 구조적인 탈진의 원인과 연관되는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1) 사역의 전문화와 수평적 언어소통의 확대
구조적으로 과다한 업무로 인한 탈진을 막기 위해서는 사역의 전문화를 시켜야 한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하던 시대는 지났다. 농경사회에서는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맡아서 하였지만 지금은 산업화 시대를 지나서 정보화 시대이며 모든 것이 전문화 되어있다. 한 사람이 전문성을 가지고 주어진 영역을 맡아서 할 때에 그 일의 능률이 오르고 발전이 있다. 성경도 사역의 전문화를 강조하면서 하나님은 우리 각인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셔서 교회를 섬기게 하셨다고 하였다. 하나님이 어떤 이에게는 예언하는 은사를 또 다른 이에게는 섬기는 은사 또는 가르치는 은사 그리고 권위하고 구제하고 다스리는 일등 다양한 영역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교회를 세워가도록 하셨다. 그러기에 교역자들도 사역의 전문화를 이루어서 교회 사역의 한 영역에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결국 팀목회를 하여야 한다. 한국교회에서는 모든 목회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사역하는 팀목회 보다는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부교역자들에게 각자 영역의 전문성을 개발하도록 하고 책임과 권한을 동시에 부여하는 목회 구조가 적합할 것이다. 은사배치를 중요시하는 미국 시카고의 윌로우크릭교회의 담임목사인 빌 하이빌스 목사가 인도하는 세미나에서 설교에 은사가 없는 목회자는 설교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그의 뜻은 목회자도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최대한으로 개발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효과적으로 세워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목회자에게 설교만이 사역의 전부가 아니며 행정에 탁월한 목사는 행정의 은사를 개발하고 남을 돕는데 은사를 가진 목사는 심방이나 긍휼사역의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담임목사를 목표로 추구하는 목회자 보다는 한 영역에서 전문성을 발휘하는 부목사를 더욱 인정해 주는 교회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이와 함께 평신도 사역자들을 과감하게 기용하고 책임을 맡기는 교회구조가 되어야 한다. 요즘 평신도 사역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지만 한국교회의 앞날은 평신도들을 얼마나 잘 훈련시키고 사역에 동참케 하느냐에 달려있다. 미국에서도 앞서가는 윌로우크릭교회나 새들백교회들의 특징은 평신도들을 가르치고 훈련할 뿐 아니라 사역의 권한과 책임을 부여하여서 건강한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대형 교회들 뿐 아니라 소형 교회들도 평신도들의 역할을 확대함으로 인하여 목사 한사람에게 주어지는 과도한 업무를 덜 수 있다.
사역의 전문화와 평신도 사역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쌍방교류의 언어소통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 의사소통이 순조롭지 못한 공동체는 인간관계의 갈등을 많이 경험할 뿐 아니라 상호간의 불신과 오해를 가져온다.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들, 부교역자들, 또는 당회원들 사이의 원활한 의사소통은 사역의 불분명한 경계에서 오는 오해와 반목을 해소시킬 수 있다. 특히 교회에서는 지시와 명령으로 일관하는 수직적인 대화보다는 서로의 마음과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수평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이러한 수평적이고 열린 대화는 교회 안에서의 조그만 서로간의 불신과 오해들을 커지기 전에 예방하는 길이 된다.
수평적인 언어소통을 위해서는 목회자들의 건강한 자기 공개가 필요하다. 전통적인 유교문화는 가능하면 자신의 의견이나 감정을 숨기고 노출시키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다. 그러나 기독교는 먼저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신 계시의 종교이며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극치의 표현은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다. 또한 예수님은 공생애를 통해서 나사로의 무덤에서 자신의 우는 모습도 보이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고 죽게 되었다고 연약함도 드러내셨다. 목회자가 자신을 과도하게 숨기려는 태도는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또 다른 스트레스를 만드는 요소가 된다. 목회자들끼리 또는 교인들과의 관계에서 모든 것을 다 드러낼 수는 없다. 그러나 무조건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고 숨기려는 자세보다는 건강하게 노출시키고 공개하는 자세가 긍정적인 교회의 분위기를 만들며 목회자의 탈진도 감소시킬 수 있다. 목회자의 탈진을 가속시키는 요소 중의 하나가 마음을 터놓을 대상이 없을 때에 오는 외로움이다. 목회자가 교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데에 한계를 느끼기 때문에 같은 동역자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속마음을 나누고 이해와 위로를 받아야 한다. 같은 교회의 목회자들끼리 자기 공개의 영역을 넓혀 나가면 불분명한 사역의 영역과 한계에서 오는 탈진을 예방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
2) 목회자 가정과 쉼의 강조
한국교회에서 불분명한 사역의 경계 중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고쳐져야 하는 부분이 목회자의 사역과 가정의 구분이다. 필자가 신학교에서 교육을 받을 때에는 목회자의 우선순위가 첫째는 하나님, 둘째는 가정, 그리고 세 번째는 교회였다. 목회자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고 그 다음이 목회자의 가정사역이라고 배웠다. 즉 목회자에게 교회사역보다 더욱 우선 시 되는 것이 가정사역이다. 목사에게 제일 우선적인 목회의 대상은 가족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현실은 목회자의 가정은 목회를 위해서 희생되고 있다. 심지어는 목회자가 가정을 돌보는 것은 이기적이고 거룩하지 못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목사 자신도 가족들과 함께 휴가를 가거나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목사는 교인들에게는 목회자세미나 혹은 선교여행 등과 같은 이름으로 교인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가족 휴가를 보내기도 한다. 목회자가 가족들을 위해서 쓰는 시간은 절대로 낭비 되거나 불필요한 것이 아니다. 목사가 가정에서 충분한 쉼과 안식을 얻을 때 목회를 능률적으로 할 수 있다. 교회의 기본 단위는 가정이고 가정이 바로 서야 교회가 건강해 진다. 교회에서 가정사역의 첫 번째 대상은 목회자의 가정이며 목회자가 모범적인 가정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가정사역을 이끌어 갈 수 없기에 목회자는 가정사역의 성공이 곧 목회의 성공이라는 인식 속에서 가정에 우선권을 두어야 한다. 먼저 목회자의 가정이 치유 될 때에 교회 안의 다른 가정들도 치유될 수 있으며 자연스럽게 목회자를 탈진하게 하였던 근본적인 원인중의 하나가 해소될 수 있다. 이러한 목회 패러다임의 전환이 쉽지는 않으며 특히 보수적이고 오래된 교회일수록 새로운 패러다임 의로의 전환이 힘들다. 그러나 목회자의 가정을 살리는 것이 교회를 살리는 길이요 목회자의 탈진을 막는 길이다. 다행히 요즈음 한국교회 안에서 가정목회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으며 수적인 증가에 초점을 두는 목회에서 건강한 교회를 만드는 목회로의 구조적인 전환이 다양한 세미나를 통해서 그리고 성공한 교회들의 사례를 통하여 많은 목회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목회자의 탈진은 일과 쉼의 경계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올 때가 있다. 특히 목회는 다른 직장처럼 정해진 시간에 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내가 자유롭게 여가와 쉼을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기독교는 게으름을 ‘일곱 가지 죄악’ 중에 하나로 여길 정도로 게으름을 경계하였다(잠 6:6; 19:15, 전 10:18, 살후 3:12). 많은 경우에 목회자가 쉼과 게으름을 혼돈해서 여가 즐기는 것에 죄책감을 갖거나 가만히 있는 시간을 참지 못하고 무엇인가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 수 있다. 특히 교인들의 눈을 의식하는 체면문화에 익숙한 목회자들은 밤잠 안자고 동분서주하며 사역하는 목회자로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기도 한다. 그러나 열심히 일하는 목회자로서 보여 짐으로 자신이 인정받고 일의 성취를 통해서 자기 정체감을 얻으려는 시도는 잘못된 동기에서 출발한 것이며 그런 동기에서 열심을 내는 사역은 탈진이라는 슬픈 운명을 맞게 된다. 이에 대한 중요한 해독제가 여가와 쉼을 회복하는 것이다. 목회자는 여가는 노는 것이라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하여 일과 여가의 균형을 지켜나갈 뿐 아니라 교인들에게도 건강한 성경적인 여가문화를 교육하는 것이 필요하다.
3) 탈진에 대한 개인적인 대처
목회자가 자신의 탈진을 막기 위해서 다양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 마가복음 6장에 서 지친 제자들을 쉬게 하시는 예수님에게서 탈진 처방의 2가지 요소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장소의 변화와 활동의 변화이다. 예수님은 지친 제자들에게 한적한 곳으로 옮겨가도록 구체적으로 말씀하시는데 이처럼 장소의 변화는 탈진으로 몰고 갔던 사역의 패턴을 깨뜨리는데 도움이 된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쉬라고 하시는데 이는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을 놓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다른 일에 열중하게 함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 격리시키는 것이다. 목회자가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계속 받는 목회 상황에 처해 있어서 무기력해 지고 탈진의 증후가 나타난다면 사역의 패턴을 깨트리는 새로운 장소를 찾아서 시간을 보내거나 지금까지 해 왔던 사역을 내려놓고 당분간 다른 사역이나 일에 몰두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 외에도 지속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을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으로 몇 가지를 나열하면 첫 번째로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해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let go let God)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이다. 리더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는 있지만 결과는 리더의 선택권 밖에 있음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긴장을 푸는 방법을 배워서 활용하는 것인데 긴장을 이완하는 호흡이나 간단한 성경 구절을 반복해서 암송한다든지 또는 마음에 와 닿는 찬송을 계속해서 부르는 것도 불안을 가라앉히는데 도움이 된다. 세 번째는 불안의 감정이 나를 사로잡지 못하도록 구체적인 행동지침을 세우고 몰두하며 불안의 제목을 기도의 제목으로 전환하는 것 등이 있다. 탈진의 장기적인 대책을 위해서는 신체적인 영역, 심리적인 영역 그리고 영적인 영역을 고려해서 종합적인 계획을 세우는 일이 필요하다.
III. 닫는 글
엘리야는 불같은 열심으로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해서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으며 하나님의 불이 내려와서 제물과 나무와 돌과 심지어는 도랑의 물까지 태워버리는 장면을 목격하였다. 그는 성령 충만 하였으며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헌신과 믿음으로 무장하였을 뿐 아니라 아합의 전차를 능가하는 엄청난 에너지도 가지고 있었던 능력의 종이었다. 아무도 그가 이세벨의 위협에 겁을 먹고 광야로 도망하여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구하는 모습을 보이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겉으로는 강해 보이고 아무도 쓰러뜨릴 수 없을 것 같은 주의 종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이처럼 오랜 긴장 끝에 찾아오는 탈진은 남녀노소 믿음의 고하나 직위를 막론하고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다. 아무리 겉으로 신령해 보이고 지칠 줄 모를 것 같은 목회자도 결국 연약한 인간이며 스트레스에 장기간 노출되었을 때에 탈진에 이르게 된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모든 스트레스가 나쁜 것이 아니며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삶의 활기를 불어 넣을 수 있지만 지속되는 스트레스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면 결국 탈진에 이르게 된다. 특히 목회자의 탈진은 개인적인 원인도 있지만 목회 구조적인 원인이 더 크게 작용할 수 있다. 한국교회 부흥에 목회자의 물불을 가리지 않고 헌신한 목회자의 열심이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으며 지금도 목회자는 자기를 돌보기보다는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 불철주야 애쓰고 있다. 이제는 성장한 교회보다는 건강한 교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 앞에서 살핀 것처럼 목회자 개인이 목회 탈진을 막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뿐 아니라 목회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탈진을 방지할 조치들이 취해져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준수. “한국교회의 구조가 만들어내는 탈진”, 『목회와 신학』.통권 제 138권(2000) 120-125.
Nuss, Daryl “목회자의 탈진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목회와 신학』. 통권 제138권(2000) 96-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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