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80세대를 위한 가수 최유나의 감성 스토리
언제부터인가 문화계에 복고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20대의 첫사랑을 추억하는 내용의 영화 <건축학 개론>이 인기를 끌었고, 7~80년대에 유행한 음악이 다시금 중년의 감성을 사로잡고 있다. 이른바 현재의 중년층을 가리키는 ‘7080세대’들이 문화계의 변방에서 문화계의 향유자로 급부상한 것이다. 그들은 20대 때 들었던 추억을 노래를 들으며 열정적이고, 자유로웠던 지난 시절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7080세대에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 최유나를 통해 그 추억의 ‘흔적’을 찾아보고자 기획했다.
7080세대, 문화계 향유자로 급부상
데뷔 30주년, 감회와 함께 걸어온 길
“팬들이 소통 할 수 있는 라이브 선호”
‘자신을 언제나 갈고 닦는 거울 같은 가수’
가수 최유나에게 붙는 수식어다. 7080 세대들의 기억에 ‘흔적’이라는 노래로 ‘흔적’을 남긴 그녀는 어느새 내년이면 데뷔 30주년을 맡는 베테랑 가수다. 그녀는 1985년 1집 ‘첫정’으로 데뷔 후 ‘애정의 조건’, ‘밀회’, ‘미움인지 그리움인지’, ‘반지’, ‘별난 사람’ 작년에 발표한 신곡 ‘미워도 미워도’ 등 2,3년 마다 노래를 꾸준히 발표해왔다.
사람들은 허스키한 목소리의 매력을 지닌 그녀가 그리워 그녀가 운영하는 라이브 레스토랑 ‘흔적’을 찾는다. 그곳에는 이런 저런 사연을 가진 7080세대들이 찾아온다. 데뷔 30주년을 맡는 그녀는 아직 디너쇼 형식보다 자신과 팬들이 가깝게 소통 할 수 있는 라이브를 선호한다. 7080 세대 ‘트로트의 여신’ 최유나, 그녀의 속마음과 앞으로의 꿈을 들여다봤다.
내년이면 데뷔 30주년이다. 감회가 어떠한가.
“데뷔 30주년은 개인적으로도 큰 행사다. 그러다보니 감회가 정말 새롭다. 내 노래를 듣고 위안을 받는 분들이 계시니 가수가 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쉬운 점도 보람된 일도 많았다”
‘흔적’은 본인의 대표곡인데, 어떠한 의미가 담겨있나?
“1993년에 ‘흔적’으로 골든디스크 상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인 신승훈, 김건모, 조성모와 함께 10대 가수상을 받았다. 내 생에 가장 기억되는 해이고 잊지 못할 해다. 그때 ‘흔적’이라는 곡을 남기지 못했다면 지금쯤 나는 다른 환경에 속해 있을지도 모른다. 흔적이 그때 당시 53만장이 팔리면서 히트를 쳐 밥을 못 먹을 정도로 바빴다. 김밥과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기 일쑤였다. 그렇게 전국 방방곳곳을 돌아다녔다”
‘흔적’으로 인기를 끌고 활동을 해오면서 스캔들이 한 번도 난 적이 없다. 비법이 뭔가?
“어쩌면 적극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오로지 가수로서 인정받고 싶었다. 스캔들로 가수라는 이미지를 실추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사소한 자리라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자리를 되도록 피했다. 선배님들한테는 사랑받는, 후배들에게는 존경받는 깨끗한 이미지의 가수로 남고 싶었다”
무슨 일이던 롱런하는 과정에는 슬럼프가 존재하기 마련인데, 본인은 슬럼프를 겪지 않았나?
“나도 탄탄대로 고속도로만 달리지 않았다. 자갈길도 있었고 웅덩이고 있었고, 굽이굽이 길도 있었다.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슬럼프를 겪기도 했다. 어떤 분들은 최유나 하면 무대에서 화려해 보이고 당당해 보이니까 즐겁게 노래만 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여럿 계셨다. 워낙 상황을 노출시키지 않다보니 긍정적으로 사는 것 같은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 같다. 그러나 여러 위기를 이겨냈기에 지금의 최유나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힘이 들 때 자신을 치유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항상 음악을 통해 치유했다. 음악은 내게 산소 같아서 없다면 숨을 쉴 수 없을 것이다. 샹송, 팝, 국악 등을 통해 밝은 음악으로 기분을 좋게 하려고 노력한다. 요즘은 자연을 통해 힐링한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자연의 소리 하나하나 빗방울 ‘또르르’소리나, 어떨 땐 비춰오는 햇볕을 통해 나를 안정시킨다”
어떠한 계기로 라이브 레스토랑 ‘흔적’을 시작했나?
“처음에는 라이브 카페, 라이브 콘서트라고 생각하고 사업을 시작했다. 지금도 그런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비즈니스 CEO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아티스트로서 참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찾아오는 팬들에게 가수 최유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찾아온 팬 들 중 기억에 남는 팬은?
“캐나다에 사는 70대 분이 절 보고 싶어 오신 적이 있다. 노래 앞으로도 잘 해달라고 비타민을 건네주시더라. 또 얼마 전, 모두 같은 의상을 입은 나이 드신 분들이 흔적 노래를 신청하셨다. 마침 제가 카페에 들른 날인데 알고 보니 암 걸린 환자들이 있는 파주의 요양원에서 온 분들이었다. 싸인을 해서 씨디를 드렸더니 감사하다고 하시면서 우시더라. 나는 어려우신 분들을 볼 때 가슴이 아프다. 그래도 내가 받은 사랑만큼 베풀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소년원을 보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구분하는 감별소가 있다. 그곳에는 엄마 아빠가 이혼을 해서 배가 고파 빵을 훔쳐 먹다가 소년원에 들어온 청소년이 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어른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면 아이들이 삐뚤어지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한다”
살아가는데 힘이 돼 준 것과 인생의 목표가 있다면?
“재클린 캐네디의 자서전을 중3 때 접하고 ‘나도 반드시 사회에서 이름과 얼굴을 날리며 평범한 삶을 살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에 새겼다. 사랑을 많이 받은 만큼 베풀고 싶다. 오드리 햅번은 명배우 출심임에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외진 곳에서 봉사를 했던 분이다. 그 분을 존경한다.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본받아 소외되고 지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사랑을 베풀고 싶다”
강소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