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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에게 애착을 두지 않는 이가 되는 것(kulesoananugiddho)
역시 자기와 다른 이의 행복을 위해서 좋은 조건이 되기 때문에 자비를 펴기 전에 닦아야 할 법 까라니야 라고 한다. 재산이나 물건에 애착을 가지는 수행자는 역시 신도들에게도 집착한다. 적당하지 못한 사람들과 섞여서 한 무더기가 된다.
신자들에게 재산에 집착하거나 주고받는 성품처럼 사람에게 깊이 정직함이 없는 것을 말한다. 달빛이 왕궁이거나 천민의 집을 구분하지 않고, 집집마다 있는 대로 비추듯이 비쿠는 어떠한 신도들에게도 구분을 두지 말고, 고르게 자비를 보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신자에게 번민이 생기면 같이 번민함, 신도들의 집에 경사가 생기면 같이 기뻐함, 신도가 행복하면 수행자들 역시 행복해 하고 신도가 고통스러워하면 자기 역시 고통스러워 함. 사람들의 일에 수행자가 같이 섞여서 희로애락에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고 주석서에 말해 놓았다. 그 뜻을 모르는 어떤 이 들이 가끔 " 이 스님이 집에도 한번 오지 않고, 어떤 일도 상의드릴 수가 없다. 어떤 스님들은 신도 집안의 일을 모두 주선해 주신다. 얼마나 고마운가" 라고 하기도 한다.
그것은 스님으로 원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친척을 원하는 일이 된다. 수행자는 수행을 잘하고 수행을 잘 가르치는 것이 본분이다. 스님들을 자기 집안 일을 시키는 것은 단연코 불선업이 된다.
2차 대전 때 많은 이들이 집도 솥도 없이 되어서 절 근처에 붙여서 한 사람 한 사람 의지하고 살았다. 그때는 전쟁의 위험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을 때는 수행자의 일과 세속 사람들의 일을 구분해서 살아야 한다. 신도에게 집착을 가지고 있는 수행자는 수행하는 일에 노력을 쏟을 수가 없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사람들에게 애착을 두지 않는 이가 되는 것도 한가지 닦아야 할 수행, 행하여야 할 수행자의 책임으로 설하셨다.
세상에 사람, 담마 이 두 가지가 있는 것처럼 중생들의 행복을 참으로 원한다면 사람에 게 애착을 가지는 것은 쓸모가 없는 일이다.
세상에는 법이 기본이 된다. 나쁜 업이 스며 있는 이는 쓸모 없는 사람이 된다. 좋은 법이 스며 있는 이는 지혜가 있다. 왕족, 브리만, 거부장자, 모양이 아름답고 아름답지 못함, 재산이 있고 없음, 같은 무리나 친척이 많고 적음, 남자 여자를 구분하지 말라. 어느 누구라도 살생하고, 다른 이의 재산을 도리가 아니게 취하는 것 등 불선업을 지으면 4악처에 가게 된다. 그러한 불선업을 삼가고, 선업을 지으면 행복한 과보를 받을 것이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법이 바른 이와 같이 지내면 편안하고, 행복하며 그렇지 못하여 법이 없는 이와 같이 지내면 그것은 고통이 된다. 설사 아들딸이더라도 법대로 살지 아니하면 부모가 얼마나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
부처님께서도 스스로 담마를 귀히 여기셨기 때문에 법의 길대로 수행하는 이가 되면 그 사람의 종족이나 태생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받아들이셨다. 비쿠를 만들어 주시고 제자로서 허락하시며 계.정.혜를 가르쳐 주셨다.
개에게도 보시 받을 수 있는 권리는 있다. 그러나 지계가 없는 이에게 보시하면 그 이익은 적다. 계를 청정하게 지내는 이에게 보시하여야 이익이 크다. 그 보다 선정과 지혜 있는 이에게 보시하면 더욱 이익이 크다. 그래서 담마가 있는 분에게 후원하고 격려해서 보시하면 더욱 아름다운 일이 된다.
나싸 쿡다 마싸래 낀씨
예나 윈뉴 빠래 우빠와대 용
수키노와 캐미노 혼뚜
삽바 삳따 바완뚜 수키따따
지혜 있는 이들이 경멸하는 저속하고 거친 불선업을 설사 아무리 작더라도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중생들 몸과 마음이 행복하여지이다.
원수와 위험이 사라지고 편안하여지이다.
몸과 마음이 행복하여지이다.
부처님께서 까라니야 등 2계송으로 꼭 해야 할 법을 보면 다음에 하지 말아야 할 법을 보여주셨다.
꼭 해야 할 법을 수행하고 있는 이들도 가끔은 "이 행위가 굳이 말로 허물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다."라는 생각이므로 범하는 일이 아주 사소한 신,구,의 업을 크게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그 아주 사소한 그런 불선업이라도, 불선업이라면 모조리 두려워해서 삼가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이다. 그 작고 하찮은 불선업이라도 짓게 되면 금방 지혜 있는 이들의 경멸을 받는다 라고 하셨다.
여기서도 지혜 없는 이가 그 대상이 아니다. 지혜 없는 이들은 지계가 없는 이가 되어서 허물이 없더라도 허물이라고 치부한다.
작은 허물도 크게 범한 것처럼 수선스럽게 떠들어댄다. 지혜 있는 이들은 자세하게 조사하고 구분해서 참으로 경멸할 사람만 경멸한다. 참으로 칭찬할 만한 사람을 가려서 칭찬한다.
그래서 지혜 있는 이가 그 기본 대상이 된다고 주석서의 스승님들이 말씀하셨다.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해 보여 주셔서 500명의 비쿠들에게 목신들이 놀라게 하는 위험을 없애도록 하기 위해서 위빠싸나의 기초가 되는 자비 수행을 생기게 하기 위해서 자비 수행을 키우는 방법을 설하셨다.
자비 수행을 키우는 방법 대강
모든 중생들 몸이 편안하여지이다.
행복하여지이다.
마음이 편안하여지이다.
◇ 자비의 적 2사람
자비에는 탐심과 화냄이라는 2개의 적이 있다. 그 2가지 가운데 탐심은 사람 모습을 하고, 사람 곁에 바짝 붙어 있는 가까운 적 살인자와 같다. 화냄은 가고 오기 어려운 산이나 험한 곳에 지내면서 반대되는 일을 하기 때문에 먼 적이라고 한다.
달리 말하면 탐심은 거짓말하는 이와 같다. 화냄은 강도와 같다. 중생들은 대개 거짓말에 속는다. 강도를 당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와 같이 중생들이 아침 눈뜨고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탐심의 괴롭힘을 받는다. 잠자는 시간이나 선업 짓는 시간외에는 그 탐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화냄이라는 적보다 탐심이라는 적이 훨씬 더 두렵다.
◇ 자비의 가까운 적
참으로 진짜 자비는 자기가 있는 우주와 함께 한량없는 세계의 무량한 중생들을 자기와 다르지 않게 자비를 펼 수 있어야 한다. 자기만 행복하기를 원하는 것과 그의 한 가족, 한 마을, 한 도시, 한 나라만이 행복하기만 원한다면 다른 중생들에게는 자비가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 자기 하나만 잘 되기를 바란다면 가족끼리 서로 돕고, 화합할 수가 없다. 세계 전쟁이 일어나는 것도 자기 한 종족만을 행복하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 된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서로 서로 도우려는 마음을 키워서 윤곽을 드러내어 자비의 풀로 잘 붙여서 평화롭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기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오는 이에게 쉽게 도와 줄 수 있지마는 수레의 한쪽 바퀴만 돌리게 하면 이 세상 서로 서로 의지하고 도우기 위해서 어떠한 이익도 얻을 수가 없을 것이다.
◇ 자비의 먼 적
자비의 먼 적은 화냄이다. 화냄이 많이 생기면 다른 이를 질투하는 마음도 함께 따라 나온다. 화냄은 원인이 바르든지, 그르든지, 이익이 있고 없고를 가리지 않는다. 화냄은 서로 서로에게 이익을 주는 법이 아니다. 원한을 품음, 은혜 배반, 경쟁함,
다른 이를 짓눌러서 압박함 등 낮은 법을 동반하고 나온다. 화냄 가운데는 남을 상하게 하려는 생각과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포함되어 있다. 화냄에서 멀리 떨어지려면 피부색깔과 견해에 상관없이 누구를 막론하고 경쟁하려는 마음, 원한 갚으려는 마음을 없애고, 자비심에 깊이 들어가서 사랑해야 한다. 행복한 이를 보고 기뻐해 주고, 고통스러운 이를 가엾이 여겨야 한다.
높고 고상하게 지내는 법(Brahacariya)이 조금 있으면 조금 행복하고, 많이 있으면 많이 행복할 것이다. 온 세상이 이 자비, 연민, 같이 기뻐함, 평등심 4가지가 가득하면 우주 초기 시절처럼 되어서 모두가 완전하게 행복해 질 것이다.
◇ 위빠싸나로 빼어버리는 모습
그 탐심과 화냄들을 위빠싸나 수행으로 빼어 버릴 수가 있다. 그렇게 빼어버리기 위해서는 6문에 생겨나는 것마다 놓치지 말고 따라 잡아서 관찰해야 한다. 마음에 좋아하는 대상이 떠올라서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면 "좋아함 좋아함" 하고 관찰해야 한다. 싫어하는 대상과 만나서 화가 나면 "화남 화남" 하고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관찰해나가면 관찰하는 그 순간에 거칠고, 흔들리는 마음이 사라지고 좋은 마음만 생겨난다. 그 좋아하는 마음도 다시 계속 관찰해 가면 생겨나고, 사라져서 무상하고, 고통이며 '나'가 아닌 모습들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관찰해서 알 때에 어떠한 것도 원하는 탐심이 생기지 않는다. 관찰하는 마음이 쌍으로 생겨나고 사라지고 하기 때문에 영원한 것은 없구나 하고 알게 되면 모든 것에 탐하는 화내는 마음이 생겨날 이유가 없어진다. 이렇게 위빠싸나로 빼어버리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예 깨씨 빠나부따티
따사와 타와라와나와새사
디가와 예와 마한따
맛지마 라사까 아누까 툴라
디타 와 예와 아디타
예와 두래 와산띠 아위두래
부따 와 삼바왜시 와
삽바 삳다 바와두 수키따따
모든 두려워 할 것이 남은 범부와, 닦을 것이 남은 이들
두려워 할 것이 없는 아라한들,
몸이 긴 뱀, 용 같은 중생들,
몸이 지나치게 큰 거북이, 코끼리, 아수라
등의 중생들,
중간 정도의 몸을 가진 소, 말 등의 중생들,
몸이 낮은 닭, 새와 같은 중생들,
아주 작은 몸을 가진 벌레 같은 중생들
뚱뚱한 몸을 가진 중생들,
※ 닦을 것이 남은 이 (Sikkha)- 초과에서 아라한 도에까지 7종류의 아라한
보이는 중생, 보이지 않는 중생들,
멀리 있는 중생, 가까이 있는 중생들,을
이미 태어난 아라한들, 앞으로 태어날 곳을 찾는 범부와 아직 더 닦을 것이 남은 중생들의 모든 중생들이 있다. 이 모든 중생을 몸과 마음 2가지 모두 행복하여지이다.
마음이라는 것은 갖가지 대상에 돌아다니는 성품이 있기 때문에 처음 시작하자마자 한 가지 대상에 머물기 때문에 억지로 끌어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마음을 잘 머물게 하기 위해서 갖가지 대상을 그 대상에서 자비를 키우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렇게 갈망, 탐심이 아직 없어지지 아니해서 두려워하고, 놀라는 범부와 닦을 것이 남아 있는 중생을 따사(tasa)라고 한다.
갈망, 탐심 등의 번뇌를 빼어버렸기 때문에 두려워할 것이 없는 이를 태와라(아라한)라고 부른다.
보통 눈으로 볼 수 있는 중생을 디타 라고 한다. 산 속 깊은 곳이나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중생을 아디타라고 한다.
자기 몸 안에 있는 중생은 가까운 중생, 몸 바깥에 멀리 있는 중생들이 있다.
애착이 끊어져서 윤회가 끝난 아라한을 붓다, 애착이 남아서 윤회할 것이 남아 있는 이들을 삼바왜시라고 한다.
◇ 입태 4종류
① 알로 태어나는 중생
② 자궁으로 태어나는 중생
③ 어둡고 습한 곳에 태어나는 중생
④ 순간에 태어나는 중생·화신
알과 태로 태어나는 중생이 알과 태에서 바깥으로 나오기 전을 삼바왜시라고 한다. 알과 태에서 바깥으로 나오면 부따(Bhuta)라고 한다. 습한 곳에서 태어나는 중생과 화신으로 태어나는 중생들은 첫 번째 마음이 생기는 순간을 삼바왜시, 두 번째 마음 순간을 부따라고 한다.
첫 번째 자세를 바꾸기 전을 삼바왜시, 자세를 바꾼 순간부터를 부따라고도 한다.
여기서 2가지씩 4종류와 3가지씩 3종류, 모두 7종류로 자비를 펴는 모습이 있다.
① 두려움이 있는 중생, 두려움이 없는 아라한,
이 모든 이들이 몸과 마음 2가지가 모두 행복하여지이다.
② 보이는 중생, 보이지 않는 중생,
이 모든 이들이 몸과 마음 2가지가 모두 행복하여지이다.
③ 가까이 있는 중생, 멀리 있는 중생,
이 모든 이들이 몸과 마음 2가지가 모두 행복하여지이다.
④ 이미 태어난 아라한, 앞으로 태어날 곳을 찾는 범부와, 닦을 것이 남은 이들, 이 모든 이들이 몸과 마음 2가지가 모두 행복하여지이다.
⑤ 몸이 긴 중생, 짧은 중생, 중간인 중생들,
이 모든 이들이 몸과 마음 2가지가 모두 행복하여지이다.
⑥ 몸이 큰 중생, 중간인 중생, 아주 작은 중생들,
이 모든 이들 이 몸과 마음 2가지가 모두 행복하여지이다.
⑦ 몸이 뚱뚱한 중생, 중간인 중생, 아주 가늘은 중생들,
이 모든 이들이 몸과 마음 2가지가 모두 행복하여지이다.
◇ 자비의 이익 11가지
①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
② 편안하게 깨어날 수 있다.
③ 나쁜 꿈을 꾸지 않는다.
④ 많은 이들이 좋아한다.
⑤ 천인들이 좋아한다.
⑥ 천인들이 보호해 준다.
⑦ 불, 무기, 독이 다치게 못한다.
⑧ 마음이 고요해 진다.
⑨ 얼굴이 아름답고 깨끗해진다.
⑩ 죽을 때 헤매지 않는다.
⑪ 브라흐만 천에 이르게 된다.
자비의 주인이 자비를 키우는 동안에는 원수라고는 없다.
몸부림치게 놀랄 만큼 두려움 없이 지낸다.
몸과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지내며 사마따띠에 들어간 사람처럼 편안하게 잠들 수 있다.
잠에서 깨어날 때 역시 신음하고 뒹굴며 뒤치락거리다가 일어나는 일이 없이 개운하게 깨어난다.
두렵고 무서운 꿈이 없으며 혹 꿈을 꾸더라도 아름답고 편안한 곳을 거닐거나 쉬는 등 보기 좋은 꿈만 꾸게 된다.
◇ 로사 말라(Roja malla) 왕
어느 때 부처님께서 천 이백 오십 명의 아라한을 거느리시고 꾸시나라 국에 가셨다. 그곳의 말라 왕족들은 자기들 성안에 부처님께서 오실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기쁨에 넘쳐서 부처님을 맞이하는 환영행사 준비로 모임을 가지게 되었다.
"부처님 환영하는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이에게는 무조건 누구를 막론하고 오백냥의 벌금을 내어야 함" 이라고 약속을 정해 놓았다.
드디어 부처님께서 오시자 마자 왕족들 모두가 나와서 환영식에 참석하였다. 그 가운데 아난다 테라가 출가 전에 친구였던 로사라는 왕자는 벌금 500냥 무는 것이 무서워서 나왔던 것이였다. 그러한 사정을 아난다 테라에게서 전해들으신 부처님께서 아시고 그 말라 왕자에게 자비를 보내시며 전에 머무시던 정사로 들어 가셨다.
로사 왕자가 부처님이 보낸 자비에 닿게 되자 젖 빠는 송아지가 어미소를 찾는 것처럼 부처님을 찾아서 이 건물 저 건물 돌면서 찾아다녔다.
드디어 로사 왕자가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곳을 보고 조용히 들어와서 예배하고 한 옆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보시, 지계의 차례로 법을 설하시자 4가지 진리를 깨닫게 되어서 4가지 물건으로 부처님을 환대했다.
수행자가 필요로 하는 절, 공양, 가사, 약 이 4
가지 물건을 언제든지 필요하시면 청하셔 달라고 부탁을 드린 것이다.
이렇게 자비는 중생들을 법을 얻게 하는데도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이다.
◇ 위니마하와(Viniaya mahavagga)
사람들이 좋아하고 따르듯이 천인들 역시 존중하고 따르며 좋아한다.
어느 때 위사카마와 테라가 쌔이딸라 산에 4달을 목적으로 지내셨다. 4달이 채워져서 다른 곳으로 가시려고 하자 천인들이 그곳에 계속 더 머물러 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마하 테라께서는 천인들의 행복을 위해서 그곳에 더 계셨다. 다음에는 그곳을 떠나시려고 하자 다시 부탁드리기를 거듭하여서 그곳에서 계속 지내셔야 했다. 이렇게 하기를 거듭해서 빠리닙바나에 드실 때까지 그 쌔이딸라 산에만 지내셨다.
이 이야기에 다른 곳으로 가시지 말기를 거듭거듭 부탁드린 것은, 위사카마하테라의 자비의 힘으로 천인들이 서로 서로 친근 하는 자비 성품을 닮아져서 화합했다. 참고 서로 아껴 주었다. 서로 보호해 주고 돌보아 주기를 즐거이 했다. 이렇게 천인들이 몸과 마음이 모두 편안해 졌기 때문에 위사카마하 테라를 다른 곳으로 가시지 말도록 거듭 거듭 부탁드린 것이다.
어머니가 자식을 보호하듯이 천인들의 자비심을 펴는 분을 좋아하고 보호한다.
이 자비심을 잘 막아서 보호해주는 울타리가 되어서 자비를 펴는 이는 무기나 독, 또는 불이 그를 다치게 하지 못한다.
어린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는 어미소의 자비의 힘 때문에 사냥꾼이 던진 창이 어미소를 찌르지 못하고 나뭇잎처럼 퉁겨져 떨어졌다. 상깨이싸 사미에게 도둑들이 칼로 찌르려고 했지만 그 어린 사미의 자비의 위력 때문에 털끝 하나 다치지 못했다.
담마빠다(Dammapada)에서 자비수행을 키우는 이의 마음은 이리저리 동요하지 않고 언제나 고요하고 편안하다. 탐심과 화내는 마음이 붙어 있는 마음은 여기 저기 대상을 찾아 헤매느라고 끊임없이 동요한다. 자비 수행을 하는 이의 마음은 천상의 마라들 조차 위협을 줄 수 없다. 예를 들면 어느 누구도 날이 시퍼런 창의 끝을 손으로 잡거나 굽히거나 둥글게 할 수 없는 것처럼 그와 같이 자비를 펴는 이의 얼굴은 언제나 밝고 깨끗하다. 설사 처음 얼굴을 보기 싫게 태어난 이라도 피어나는 연꽃처럼 보기 아름다워진다.
자비를 펴는 이는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지니므로 고요하고 편안함 때문에 죽음으로 인하여 동요하거나 당황해 하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편안하게 잠자듯이 죽음을 맞이한다.
자비수행을 키운 이는 자비선정에서 위빠싸나로 올라가지 못하더라도 자비선정을 잃지 않고 죽음을 맞이하면 브라흐마천상(무색계천)에 태어난다.
어느 한 사람이 일백 개의 솥에다가 밥을 가득 지어서 아침, 점심, 저녁 하루에 3번씩 보시하는 이와 어느 한 사람이 한번 훑어서 우유를 짜는 짧은 시간 동안만큼 하루에 3번 자비를 편다. 이렇게 하루에 3번 100개의 솥으로 밥을 지어서 보시하는 이보다 우유 한번 훑어서 짜는 짧은 시간동안 하루에 3번 자비를 펴는 이의 선업이 훨씬 더 이익이 크다.(삼욕따 니까야에서)
손가락 한 번 퉁기는 시간만이라도 자비를 키우는 이를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따르는 이가 되어서 나라의 밥을 허비하지 않도록 사용하는 이라고 할 수 있다고 설하셨다.
모든 보시와 모든 귀의하는 계를 지키는 것보다 우유 한번 훑어서 짜는 짧은 시간만큼이라도 자비를 키우는 이의 이익이 더 크다고 웰라마 숟따(Velamasuttana)에서 설하셨다.
7년을 자비를 키웠던 공덕으로 마하브라마 7번인 제석 천왕36번, 전륜성 왕이 되기를 수도 없이 하였다. 그래서 선업 짓기를 주저하고 두려워 말라고, 선업이란 행복의 이름이 된다고 설하셨다.
"어느 한 수행자가 어느 신도의 가사, 공양, 절, 침대 등과 약을 받아서 사용하면서 자비와 함께 하는 사바이를 생기게 하여서 지냈다. 그 신도에게 이 정도 이만큼의 선업을 얻었다고 구분해서 정할 수 없을 만큼 많다" 고 설하셨다. 부처님의 이 말씀으로 자비를 키움으로 인해서 번성해지는 자비의 공덕을 짐작해서 알 수 있다. 이 공덕을 믿은 이들의 도와과를 얻는 원인이 되는 삿띠빠타나 수행은 올라갈 수 있는 원인이 되는 것도 알아야 한다.
나 빠로 빠람 니 꿉배타
나 띠 만내 타 까타씨나 낀씨
비아로 사나 빠띠가 산냐
닌냐민냐따 둑카밋채 냐
한사람이 어느 한 사람을 속이고 업신여기지 말라.
어느 곳을 막론하고 어느 사람에게라도 경멸하지 말라 몸과 입으로 괴롭히는 것과 화내는 마음으로 서로 서로에게 고통이 있기를 바라지 말라.
중생들에게 행복과 편안함을 얻도록 하기 위해서 자비를 키우는 모습을 보여 주셔서 번영과 행복이 없는 고통스러운 불행에 떨어지지 않도록 원하기 때문에 '나 빠로 빠람 니 꿉배타' 등을 설하셨다.
그렇다. 자비수행이란 중생들의 행복을 위해서 키워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익 없는 것이 생기지 않도록 원해서 키워야 하는 것이 된다.
나니꿉배타(Nanikubbetha)
다른 이에게 여러 가지 계교를 부려서 속여서 다른 이에게 이익 없는 일을 보이는 것이다.
1. 무게를 속이는 것
2. 가짜를 섞어서 파는 것
3. 깨나 쌀을 사고 팔 때 팔 때는 천천히 부어서 양이 많을 때 담고 살 때는 되를 흔들어서 많이 담게 한다.
이렇게 계교를 써서 속이는 것은 다른 이에게 자비가 없는 것이다. 속임을 당한 이가 나중에 알 때에는 화가 날 것이다. 이렇게 양쪽에 모두 불선업을 키우게 하는 속이는 일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교만의 성품은 매우 잘난 척 하는 것이다. 교만이 있는 이를 보게 되면 좋아하는 이 앞에서는 잘난 척 하지 않는다. 자비심이 없는 이가 하는 행동이다.
자기를 업신여겼다고 생각되면 양쪽 모두에 이익이 없는 일이 생긴다. 서로가 서로를 경멸하고 낮추어 보지 말라고 하신 것이다.
다른 이에게 입으로 나쁘게 말하여서 다치게 하는 것이나 몸으로 때리고 괴롭히면 자비심이 없어서 이익이 없기 때문에 입과 몸을 조심해서 자비를 키워야 한다.
화냄이 생겨나면 원인 결과를 모를 만큼 나쁜 행동을 하게 된다. 그 화냄을 당해야 하는 이 역시 몸과 마음이 크게 괴롭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괴로움을 주지말고 자비를 펴야 한다고 하신 것이다.
마타 야와 니양 뽁따
마유따 애까뽁따 마누라캐
애완삐 삽배부때수
마나 상 바와예 아빠리마낭
홀어머니가 하나뿐인 외자식을
자기의 목숨과 바꾸어서 보호하듯이
그와 같이 모든 중생들에게
한계가 없는 자비심을 키워야 한다.
모든 중생들에게 괴로움이 닥치지 않기를 원하여서 자비 키우는 모습을 보이시고 그 자비수행을 키우는 곳에 중생들에게 자비를 갖춘 마음을 가장 잘 드러나는 비유를 들어서 보이신 것이 "홀어머니가 자기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자식 위하는 것처럼 해야 한다"라고 하신 것이다. 이렇게 모든 중생들에게 고통이 미치지 않도록 자비를 펴야 하는 것이다.
자비를 키울 때 대상으로 하지 않고 남겨 놓으면 어떤 중생들에게만 자비가 이르기 때문에 한계가 있는 자비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말고 어느 누구도 남겨 놓지 않고 모두를 대상으로 하는 한계가 없는 자비를 펴야하는 것을 아빠리마낭(Aparimanam)으로 알게 한 것이다.
매띤싸 삽바 로까 사매인
마나상 바와예 아빠리 마낭
옥당 아도 싸 띠리옌싸
아삽바당 아왜라 마따빠땅
위로 무색계와 아래 욕계, 중간의 색계까지 3계 모든 중생들에게 한계가 없어서 좁지 않도록 화냄이라는 안의 적과 괴롭히는 바깥 적이 없도록 키우라
욕계, 색계, 무색계라는 3계를 구분함이 없는 자비의 마음을, 한계 없고 좁지 않도록 화냄이라는 안의 적이 없고 괴롭히는 바깥 적이 없도록 자비의 마음을 키워야 한다.
자비수행 키우는 마음가짐을 한 마을, 한 도시, 한 나라에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에 펴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자비를 키우는 곳에 이 사람은 나의 원수이니까 빼어 버린다면 큰 자비라고 할 수 없다. 그러한 이들조차 포용해서 한계와 구분 없이 펴야 자비의 수행이 구족 해진다.
그렇게 온 세상에 자비를 펼 수 있을 때에야 초기 선정(upacarajhana)과 깊은 선정을 얻을 수 있다. 그 선정 얻은 이의 자비를 아삼바다(Asambadha)라고 한다.
◇ 처음에 자비를 키우지 말아야 할 4사람
① 자비수행을 처음 시작할 때 미워하는 이에게 자비를 보내면 화냄만 커져서 자비가 생기기 어렵다.
② 자비수행을 처음 시작할 때 매우 좋아하는 이에게 자비를 보내면 그 사람의 행복과 고통 때문에 걱정이 생겨서 자비 선정이 생기기 어렵다.
③ 미워도 좋아도 하지 않는 이에게 좋아하는 마음 보내기 역시 처음에는 어렵다.
④ 적대감이 있는 자에게 자비를 보내면 화냄이 생기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그래서 이 4종류의 사람에게 자비수행을 처음 시작할 때는 대상으로 하지 말아야 한다.
◇ 절대로 자비를 보내지 말아야 할 사람
이성에게 자비심을 키우면 애욕을 생기게 한다.
죽은 이에게 자비를 키우면 초기 선정도 깊은 선정도 얻을 수 없다 그래서 이 2종류의 사람에게는 절대로 자비 수행을 펴지 말아야 한다.
◇ 차례대로 키워야 한다.
자비를 키우려는 이는 먼저 자기 자신에게 자비심을 가져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자비를 펴면 선정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행복하기를 원하듯이 다른 이들도 행복하기를 원한다 라고 자기를 증거로 삼아서 시작해야 한다.
"내가 행복하여지이다. 나에게 고통이 없어지이다." 라는 등으로 자기의 행복을 발원한다. 그 다음 자기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스승님이나 계사스님 등에게 자비를 키워야 한다. 그 분의 지계의 공덕, 지식의 공덕과 다른 좋은 점을 마음 속에 떠올리며 "이 분이 행복하여지이다. 모든 고통이 사라지이다" 라는 등으로 자비수행을 키워야 한다. 존경하는 스승님 등에게 이렇게 자비를 키워서 자비수행의 힘이 커졌을 때, 다음 매우 좋아하는 친구에게 키워야한다. 그 다음 미워도 좋아도 않는 이에게 자비를 키운다. 그렇게 점점 자비의 힘이 커졌으면 그 자비심을 미워하는 이에게도 펴야한다.
자비심이 점점 커져서 편안해졌을 때, 이 때 미워하는 이에게 자비를 보낼 때 원수로 생각되지 않고 좋은 사람으로 바꾸어지게 된다.
◇ 시마 삼배다(Sima sambheda)
거듭해서 자비수행을 끊임없이 펴고 있는 이는
① 자기 자신
② 자기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
③ 미워도 좋아도 않는 이
④ 미워하는 이
이 4사람에게 자비의 마음이 고르게 되기 전에는 구분이 없어지지 아니한 것이다. 수행의 힘으로 그 4종류 사람들에게 자비의 마음을 보내는 것이 고르게 되었을 때에야 구분과 한계가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 한계가 무너진 특징
이 한계가 없어지려면 좋아하는 이, 미워하는 이, 좋아도 미워도 하지 않는 이, 자기, 이 4사람이 한 곳에 있을 때 한 도둑이 와서 목의 피를 내어 제사 지내기 위하여 한 사람을 달라고 했다. 그때 누구를 데리고 가라고 생각된다면 그에게는 아직 구분이 있는 상태이다.
나를 데리고 가고 이 3사람을 남겨두라고 해도 역시 그의 자비수행은 한계가 무너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어느 누구이든지 한 사람을 데리고 가라고 생각하면 그 사람의 이익을 바라지 않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도 줄 수 없을 때 4사람 모두에게 고르게 자비심을 펴서 한계가 없는 시마삼배다가 이루어진 것이 된다.
이렇게 한계구분이 사라졌을 때 그 사람은 초기 선정을 얻게 된 것이다. 한계가 없어지고 장애(Nivarana)가 사라지고 초기선정이 이루어진 것이다. 거기에서 거듭 수행하기를 노력하면 오래지 않아서 깊은 선정에까지 이를 것이다.
자비수행의 힘이 커져서 한계가 사라지고 화냄이 없어진 이에게 사람들도 좋아하고 천인들도 좋아하기 때문에 적이 없어진다.
때니탕 싸랑 니신노와
자야노 야와따사 위따매인도
애땅 사때인 아디태야
브라흐마 매땅 위하라 미다 마후
섰을 때나 걸어갈 때, 앉았거나 누웠을 때, 잠들지 아니한 시간에는 언제나 자비선정과 함께 하는 알아차림을 단단히 잡고 있어야한다.
붓다의 가르침이 이 자비선정과 함께 하는 알아차림으로 지내는 것을 특별하게 높은 행이라고 붓다께서 설하셨다.
앞의 게송에 세계와 중생의 구별 없이 남김없이 자비를 펴야 한다고 하신 다음 자비를 키우는 이는 어떠한 자비일 때라도 자비심을 놓치지 말고 항상 자비심과 함께 하는 알아차림을 가져야 된다고 이어서 설하신 것이다.
자비수행을 해야 하는 데에는 다른 수행처럼 자세를 제한을 두지 않는다. 어떠한 자세이든지 자기가 그때에 편안한 상태로 지내면서 자비수행을 펼 수가 있다. 잠들기 전에는 언제나 연결이 되도록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 높고 고상하게 지냄(Brahama vihara)
높고 고상하게 지내는 것과 화냄이 없이 지내는 것을 브라흐마 위하라 라고 한다.
모든 중생들이 행복하여지이다 라고 하는 이 자비는 많은 중생들의 이익을 원하는 행이 된다. 그래서 자비로운 마음으로 지내는 것은 높은 행이라고 한다.
마음의 장애가 없이 화냄이 없이 지내는 수행자들의 마음도 브라흐마 천인들의 마음과 같다.
◇ 위하라(Vihara)4가지
① 가고, 서고, 앉고, 누움 이 4가지로 지내는 것
② 무색계 천인들의 선정 사마빠띠로 지내는 것
③ 자비심으로 지내는 것
④ 성인들의 과의 선정으로 지내는 것의 이 4가지가 있다
◇ 브라흐마 위하라
높고 고상하게 지내는 것은 자비심 한가지만은 아니다.
① 자비(Metta)
② 연민심(Karuna)
③ 따라 기뻐해 줌(Mudita)
④ 평등심(Upekkha) 이 4가지이다.
자비라는 것은 다른 이들도 자기처럼 행복하기를 자기의 일처럼 원하고 좋아하는 성품이다. 연민심이란 고통에 이른 중생들에게 자기의 일처럼 가엾이 여기는 것이다.
따라서 기뻐해 주는 무디따는 자기보다 구족하게 행복한 이를 그대로 오래 행복하기를 기뻐해 주는 마음이다. 평등심이란 중생들이 스스로 짓고 스스로 지은 대로 업에 따라서 지낸다고 어느 쪽도 기울지 않고 평등심 그대로 생각하는 성품이다.
◇ 가장 현대적인 법
이 4가지 법은 종족, 나라, 장소의 구별 없이 누구나 누구에게 행하여야 할 가장 현대적인 법이 된다. 이렇게 가장 합리적이고 현대적인 4가지 법을 예전의 붓다들께서 계속 이어져 설해 주셨다. 우리 불법 안에서만 닦아야 하는 법이 아니라 우리 부처님 가르침이 없는 시기에도 많은 이들의 이익을 위해서 키워야 할 법이다.
이 4가지 브라흐마 위하라 법이 번성하는 시대의 중생들은 행복할 것이다. 이 법이 엷어진 시대의 중생들은 고통스러울 것이다. 많은 중생들을 위해서 이렇게 이익이 많은 법이 어째서 시대에 뒤떨어질 수 있겠는가?
◇ 자비(Metta)
바른지 그른지 생각해 보라. 자기의 일이 성공하도록 도와주는 것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누가 거절하겠는가? 어느 누구도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살색이 서로 다르고 견해가 다르고 각자 의지하는 종교가 다르더라도 누구를 막론하고 기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래서 사람마다 행복하기를 원하는 성품을 사람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행이 된다고 드러낸 것이다.
어느 누가 웃음을 지으면서 바라본다면 그 사람 역시 웃는 얼굴로 대할 것이다. 어느 누가 듣기 부드럽고 친절한 소리로 말을 건넨다면 그 역시 부드러운 소리로 대답할 것이다.
길 모르는 이에게 길을 안내하거나 무거운 짐을 들어서 도와주면 고마워 할 것이다. 자기 역시 그 사람이 편안해지는 것을 보고 금방 기쁨을 가질 것이다. 자기에게 어려움이 생겼을 때 도와주는 이가 생길 것이다.
사람마다 사람이 해야 할 일을 알고 몸과 입과 마음으로 자비심을 가지고 이러한 방법으로 서로 도와주면 사람 사는 세상이 언제나 평화로워질 것이다. 그래서 이 자비의 높은 행은 사람마다 해야 할 높은 행이 된다.
◇ 연민심
연민심은 자기보다 아래 사람과 고통을 받는 이들에게 자기 일처럼 가엾이 여기는 성품이다.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보고 들으면 그 선한 이의 마음이 동요되기 때문에 가루나라고 한다. 그렇다. 선하고 착한 마음을 가진 이가 엄한 괴로움을 받고 있는 이를 보고 들으면 자기가 직접 당한 것처럼 마음에 닿아서 가슴 아파한다.
그렇게 아파하는 것으로도 그가 좋은 사람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라고 구분할 수 있다. 이 가루나의 성품이 다른 이가 당하는 고통을 빼서 버리려는 성품이다. 자기의 능력이 미치는 범위의 일이라면 다른 이를 고통에서 벗어날 때까지 걱정해 준다. 자기가 구해 줄 수 없는 일이 되더라도 다른 이의 고통이 빨리 사라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심하게 고통스러워하는 이를 볼 때 세상에 저렇게 딱할 수가 있나 하고 불쌍히 여기는 태도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 붓다의 연민심
그 연민심이 생기는 곳에 붓다의 연민심이 으뜸이 된다. 자기에게 이익 없는 일만 할 뿐 아니라 자기를 죽이려고 언제나 생각하고 있는 대와따나조차도 아들 라후라와 다름없이 가엾이 여기셨다. 모든 중생들의 현재의 고통뿐만 아니라 윤회전체에서 만나게 될 고통까지 바라보면서 불쌍히 여기셨다. 시간마다 순간마다 죽음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보고서 죽여야 할 소를 도살장으로 끌고 가는 것처럼 불쌍히 여기셨다.
나라와 국법을 어겨서 오래지 않아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수처럼 보아서 중생들이 살생, 도적, 강도 등 불선업을 범하고 오래지 않아 지옥, 축생, 아귀에 떨어져서 고통 받을 것을 보고도 불쌍히 여기셨다. 늙고, 병들고, 죽는 등 고통의 바다에서 윤회하는 어렵고, 힘든 여행길에 잠시 쉴 틈도 없이 흘러가는 것을 보시고, 가여워 하셨다. 구해 주는 이 없고, 벗어날 기회가 없는 윤회의 새장 안에서 고통 받는 것을 보시고, 가여워 하셨다.
나 여래는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중생들은 벗어나지 못했다. 나 여래 외에 구해 줄 이가 없다는 것을 보시고, 가여워 하셨다. 이러한 식으로 다른 원인들을 보시고, 모든 중생들을 연민히 여기셨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면 붓다의 제자가 되는 승가와 재가 모든 이들이 스승님을 따라서 연민심을 키워야 한다. 자비심 키우는 것은 알아도 연민심을 키워야 하는 것은 모른다.
극심한 고통에 이른 이들을 연민히 여겨 지켜주는 이가 없으면 더욱 고통스럽다. 심한 괴로움에 이른 이를 연민심으로 불쌍히 여겨서 도와 주고, 보호해 준다면 어느 누구도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매우 고마워 하면서 받아들일 것이다.
◇ 연민심 3가지
연민심 가운데도 몸(身이), 입(口), 마음(意) 3가지 종류가 있다. 갑자기 넘어지거나 미끄러져서 넘어진 이
를 보면 물을 사이도 없이 일으켜 세워 준다. 약이 있으면 발라주고, 걸을 수 없으면 적당한 장소까지 옮겨준다. 강제로 핍박당하는 이를 보면 막을 수 있으면 막아준다. 이렇게 하는 것을 몸으로 짓는 연민심이라고 한다. 고통에 이른 이들에게 할 수 있는 만큼 벗어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준다. 설사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는 처지라면 일이 끝날 때까지 그에 상응되는 위안의 말로 격려해 준다. 이러한 것이 입으로 연민하는 일이라고 한다. 어떤 이들은 그렇게 도움 청하러 오는 이들에게 거친 말로 꾸짖어서 쫓아낸다. 이러한 것은 연민심은 커녕 자비심마져 바싹 말라 있는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병으로 고통 받는 이, 위험으로 재산이 무너져서 먹을 것이 없는 이 등을 위해서 자기의 능력껏 그들을 도와 주기 위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음으로 짓는 연민이라고 한다.
바라밀이 되도록 연민심을 키우는 것은 고통에 이른 이들을 대상으로 "고통에서 벗어나지이다. 고통에서 벗어나지이다." 라고 거듭 거듭 마음 속으로 발원해야 한다. 1분간을 연민심을 키웠다면 1분 동안의 선업을 키운 것이 된다.
◇ 따라서 기뻐해 줌
무디따라는 것은 자기보다 더 갖추고 더 행복한 이들에게 그 행복을 같이 기뻐해 주며 그 행복이 오래가도록 생각할 수 있는 성품이다. 그러나 대개의 중생들이 자기보다 나은 이에게 질투의 마음을 낸다. 화를 내고 미워한다. 이 질투심 때문에 금생에도 나쁜 결과들을 받게 되며 내생에도 즐거움이 없는 고통스러운 곳에 떨어져서 윤회의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이 무디따를 키우면 현재는 물론 내생에도 행복하고, 좋은 결과를 받게 되며 세세 생생 좋은 과보를 얻게 된다.
◇ 같음이 없는 큰 보시
빠새나디(Pasenadi) 꼬살라 국왕이 어느 날 천만×14의 황금을 써서 같음이 없는 크나 큰 보시 행사를 베풀었다. 그 보시를 깔라라는 대신이 "창고 안에 있던 천만×14의 재산이 쓸모 없이 허비되었다."라고 경멸하였다. 수나라는 대신은 "오 한나라의 국왕이 되니까 이렇게 큰 보시를 할 수 있다. 나도 이렇게 큰 보시를 하고 싶구나" 라고 기쁨의 소리로 "싸두 싸두 싸두" 하면서 찬탄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빠새나디 국왕이 듣고서 깔라라는 대신을 그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고, 수나라는 대신에게 7일 동안 왕이 되어서 자기와 같은 큰 보시를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이것은 따라서 다른 이의 행운을 기뻐하는 무디따를 금방 얻게 되는 결과였다. 다른 이의 번영과 행복을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천상에 태어날 수 있는 만큼의 선업일 뿐만 아니라 사람 세상에 태
어나더라도 다른 이보다 주변 권속들이 많으며 본인 역시 행복해진다.
무디따의 3가지 역시 몸과 입, 마음으로 짓는 기뻐함이다. 이것 역시 시간에 구애 없이 행할 수 있는 선업이 된다.
◇ 평등심
우빼카 라는 것은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고, 고르게 보는 성품이다. 이 평등심을 키울 때 자비, 연민, 따라서 기뻐해 줌처럼 많은 중생들에게 이익을 주기 위해서 키우는 것이 아니다. " 중생들이 스스로 지어 놓은 업에 따라서 생겨나고 살고 있다." 라고 어느 쪽으로도 쏠리지 않고, 그대로 생각한다. 선업을 지은이들은 선업의 결과를 받고, 불선업을 지은이들은 각자 자기 값의 과보를 받아야 한다. 그 업에 따라 그가 받는다 라고 생각하여 괴로움과 기쁨을 지나서 고르고 평등한 마음을 키우는 것이다.
이 우빼카는 자비, 연민, 기뻐함 들이 할 수 없는 곳에서만 행할 수 있는 법이다. 비유를 들자면 어느 한 사람이 국법을 범해서 곧 심한 형벌을 받게 되면 자비와 연민심은 할 수 있는 만큼 그를 도와준다. 그러나 죄가 분명해져서 마지막으로 벌을 줄 때에는 이 자비, 연민, 기뻐함 등이 도와줄 기회는 없다. 그때는 평등심 우빼카로써 고르게 기울지 않는 마음으로 지내는 것이 적당하다.
벌받는 이에게 기우러져서 다른 이에게 허물을 씌우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지금 현재 허물이 없더라도 전에 지어 놓았던 불선업의 결과를 받는다고 생각한다.
◇ 마하깔라
붓다 당시 사왓티 나라에 마하깔라 라는 소따빠나 남자 신도 한 사람이 있었다. 그가 제따와나 정사에서 재일 날 계를 지키고 밤에 절에서 법문을 듣고, 자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제따와나 정사 안 우물 옆에서 세수를 하였다. 그때 도둑들이 훔친 물건과 함께 달아나다가 위에서 쫓아오는 사람이 가까이 오자 그 물건들을 세수하고 있는 마하깔라 옆에 던지고 달아났다. 물건 주인들이 자기 물건과 같이 있는 마하깔라를 보고 도둑으로 생각해서 우루루 달려들어 때리자 죽어버렸다. 그때 비쿠스님들이 이 마하깔라가 재일 날 계를 지키고, 법을 듣고, 착실한 선한 이였지만 도둑의 누명을 쓰고 맞아 죽게된 것은 적당한 일이 아니다 라고 붓다께 말씀드렸다.
그때 붓다께서 현재만 볼 것 같으면 이 마하깔라의 결과는 적당하지 않지만 그의 예전에 지은 업을 보면 당연한 결과이다 라고 하셨다. 마하깔라는 어느 전생에 강도가 많은 지역의 숲 속에서 그 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험이 없도록 지나가게 도와 주는 관청의 한 관리였다. 어느 날 한 남자가 매우 호화로운 수레에 아름답기 그지없는 아내를 태우고 그 숲을 통과하려고 왔다.
그때 이 마하깔라는 그 아름다운 여자를 차지하려고 그의 집에 하룻밤 자게 한 다음 다음날 그들이 떠나려고 할 때에 집안에 있던 보석이 없어졌다고 하면서 그의 수레를 뒤지게 하였다.
일찍이 그 스스로가 넣어 놓았던 보석을 찾아 낸 그는 그 여행자를 보석 도둑으로 몰아서 죽여버렸다.
그 불선업 때문에 죽은 다음 지옥에 떨어져서 긴 세월 동안 지옥의 고초를 받아야 했다. 지옥에서 벗어났지만 일백 생을 내내 이러한 방법으로 도둑의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해야 했다. 그래서 전생에 지은 불선업으로 보면 그는 당연히 받을 것을 받는 것이라고 부처님께서 설해 주셨다.
그가 지은 한번의 불선업은 그대로 한번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갚아지는 것이 아니다. 이자를 어마어마하게 붙여서 받아야 되는 것을 안다면 누가 그 두려운 불선업을 감히 지을 수 있겠는가 그렇게 용감해 질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이렇게 생명 있는 중생들의 행복과 고통에 대해서 도움을 주는 곳에 이 브라흐마위하라 높고 고상하게 지내는 법 4가지가 기본이 된다. 이 법들은 어느 시간 어느 때에 어느 곳을 가리지 않고, 키울 수 있는 방법이다. 그의 능력만큼 기회를 놓치지 말고 키워야 나와 남이 이롭게 되는 법이다. 그래서 이 아름답고 귀한 법을 키우도록 붓다께서 여러 곳에서 설해 놓으셨다.
디틴싸 아누빠 감마
실라 와 다싸내나 삼빤노
까매수 위내야 개당
나 히 자뚜갑바새야 뿌나래띠
자비 선정을 얻은 수행자는 유아견에도 집착하지 않고 출세간 계가 있어서 소따빠띠 막가의 지혜가 구족해서 오욕락의 대상에 번뇌로써 탐하는 것은 남김 없이 빼어버렸다.
틀림없이 다시 태어날 일은 사라졌다.
자비수행은 중생이라는 명칭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나와 남, 여자 남자, 사람 천인이라는 중생의 명칭에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유아견 쪽으로 기우는 위험이 있다. 그 위험을 막기 위해서 자비선정에서 한 계단 올라가서 위빠싸나 쪽으로 건너가서 유아견을 갈라내야 하는 길을 알게 하기 위해서 "니틴싸 나누빠깔마" 등으로 가르쳐 보이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