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려(高麗)의 계보
우리는 일제에 의해 우리의 역사가 왜곡되었다고 무수히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왜곡되었습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 선 듯 대답을 못합니다. 기껏 대답해 봐야 독도에 대한 영토 분쟁, 동해(East Sea)에 대한 표기 문제, 그리고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 정도일 것입니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한국인들은 한사군(漢四郡)의 위치와 삼국시대 영토의 크기 정도를 추가로 문제 삼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일제가 왜곡해 놓았다고 비판하면서도 일제가 만들어 놓은 역사 틀 속에서 이를 암기하거나 아예 역사책은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라는 것은 대부분 일제시대에 일제의 검열을 통과한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된 것입니다. 아무리 역사책이 바뀐다하여도 그들이 만들어 놓은 큰 틀 속에서 바뀔 뿐입니다.
일제는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를 통해 우리의 역사를 철저히 파괴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제국(日本帝國)의 입장에 맞추어 역사를 조작하였습니다. 조선사편수회는 16년 동안 백만 엔이라는 거액을 들여 총 35권, 전체 2만 4천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조선사>를 제작하였습니다. 조선사편수회가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 의해 직접 관리 운용되었다는 것은 일제가 역사왜곡을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였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조작된 역사를 만들려다 보니 기존 자료의 조작도 당연히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정사(正史)라고 알고 있는 책 중에 조작이 안 된 것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본서를 읽어보시면 아시게 되겠지만 1916년에 조선사편수회가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라는 이름으로 출범하기 전부터 이미 역사왜곡은 시작되었습니다. 본격적인 역사왜곡은 1876년에 조일수호조약(朝日修好條約)이 체결되면서, 그리고 1895년에 대청제국(大淸帝國)과 일본제국(日本帝國) 사이에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이 체결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본서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룰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우리의 역사만이 왜곡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프랑스의 대철학자 푸코(Michel Foucault)는 “지식은 그 시대의 지배관계-권력관계의 산물이다”라고 하여 우리가 세뇌 받고 있는 지식의 본질을 정확히 이야기 한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장하준 교수는 <국가의 역할(Globalization, economic development, and the role of the state)>이라는 책에서 현재 우리가 배우는 경제학이 상당히 정치적인 의도로 정착된 학문임을 설명합니다. 그에 의하면 경제학은 초기에 ‘정치산술(political arithmetic)’ 또는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 등으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후 많은 학자들이 이 학문에서 ‘정치(국가)’를 떼어내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고, 결국 20세기에 들어서 학문의 이름이 ‘경제학(economics)’로 명명되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지금도 학문의 이름이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으로 남아있다면 대학의 교과구성이 많이 다를 것이며 아마도 신자유주의(Neoliberalism)가 이렇게 판을 치는 세상이 도래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1989년에 딘(P. Deane)이 경제 사상사에 대한 자신의 걸작 <국가와 경제 시스템(The State and the Economic System)>에서 보여 주었듯이, 국가의 역할은 당초 경제학의 발전 과정에서 중심적 지위를 차지하는 독립적인 학문 영역이었다. 경제학은 초기에 ‘정치산술(political arithmetic)’ 또는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등으로 불렸다. 당시 서유럽에서는 국민국가의 등장과 함께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국가의 역할이 증대되었고, 이에 따라 국민국가의 지배자들은 경제 운영에 대한 ‘정치적’ 조언이 점점 더 필요하게 되었는데, 그 ‘정치적’ 조언이 ‘정치산술’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후 수많은 학자들은 이 학문에서 ‘정치’(혹은 국가)라고 하는 학문적으로 다루기 까다로운 요소를 떼어 내기 위해 끈질기게 시도했고, 이는 20세기로 접어드는 시기에 이 학문의 이름이 ‘경제학(economics)’으로 명명되면서 그 절정을 이루었다. 그러나 양차 세계 대전 사이의 기간 동안 국가 혹은 정치는 다소 극적인 방식으로 경제 이론과 정책 결정 과정으로 회귀한다. (장하준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2006. 국가의 역할(Globalization, economic development, and the role of the state). 도서출판 부키. 37-38쪽)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이 실제로는 역사 속에서 많은 사건 사건들을 거치면서 오늘날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며 또한 지배세력의 이해관계에 맞게 선택되고 왜곡되어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석학 하비(David Harvey)는 <신자유주의 : 간략한 역사(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라는 책에서 대중이 신자유주의(Neoliberalism)에 동의하도록, 그리고 신자유주의를 상식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지배세력이 치밀한 프로젝트를 실행해 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상식이라는 것은 지배세력이 만들어 놓은 세계 속에서 작동하는 상식인 경우가 상당수입니다.
1979년 이후 대처와 레이건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혁명은 민주적 수단을 통해 이뤄져야만 했다. 이처럼 중대한 이행이 가능하려면, 선거에서 이길 정도로 충분히 큰 범위에 걸친 정치적 동의가 사전에 구축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공동으로 보유되는 지각’으로 정의되는) ‘상식(common sense)’이라고 한 것이 전형적으로 동의의 기반을 이룬다.
상식은 흔히 지역적․국가적 전통에 깊이 뿌리를 둔 문화적 사회화의 오랜 실천을 통해 구축된다. 이는 당대 이슈에 대한 비판적 고려에서 구축될 수 있는 ‘양식(good sense)’과는 다르다. 따라서 상식은 문화적 편견 하에서 실제 문제를 중대하게 오도하고, 모호하게 하며, 가장할 수도 있다. ... (중략) ...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자적 전환을 합법화하기에 충분한 대중적 동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방식들은 다양했다.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영향이 기업, 대중매체, 그리고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제도들 - 대학, 학교, 교회, 그리고 전문가 협회 등 - 을 통해 유포되었다.
(하비(David Harvey). 최병두 옮김. 2008. 신자유주의 : 간략한 역사(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 한울아카데미. 59-60쪽)
자! 그러면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정사(正史)를 찾으려면 어떤 방법을 취해야 할까요? 일단 역사를 탐구함에 있어 상상력을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고 온갖 의문을 던져 보십시오. 왜 열도(列島)에 고려개(高麗犬)가 있고, 고려문(高麗門)이 있을까? 이것들은 언제부터 세워지게 되었을까?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성공 이후,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는 정조론(征朝論)을 주장하지 않고 왜 정한론(征韓論)을 주장한 것일까? 대청제국(大淸帝國)에서는 태극기(太極旗)를 왜 고려국기(高麗國旗)라 칭했을까?
저는 이런 의문을 풀기위해 열도(列島)를 발로 누비고 다니는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현장에 가서 무엇이 어떻게 이루어 진 것인지를 꼼꼼히 살피다 보면 여러 실마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현장에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내다 보면 그들이 무엇을 어떻게 바꾸고 싶어 했는지가 보입니다. 현장에 가면 여러 유적과 지명을 꼼꼼히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역의 공간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도 꼭 추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공간의 변화에는 정치세력의 의도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명한 도시지리학자 콘젠(M. R. G. Conzen)은 기존의 물리적 형태가 쓸모없게 되었다고 다 제거할 여력이 있는 사회는 없다고 말합니다. 사회가 변화하면 새로운 사회의 수요에 맞추어 기능(function)은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형태(form)는 이러한 수요에 따라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성(inertia)의 성질을 가진 형태(form)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대별로 구분되는 역사적 단층(historical stratification)을 형성하며 축적(accumulation)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form)의 축적(accumulation)은 한편으로는 이미 존재했던 형태(form)의 변형(transformation)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다소 모순된 특성을 가진 형태(form)의 축적(accumulation) 과정을 양승우 교수는 [그림 1-1]을 통해 쉽게 설명합니다. (이러한 형태 축적 과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들께서는 다음의 책을 참조바랍니다. M.R.G. Conzen(edited by J.W.R. Whitehand). 1981. The Urban landscape : historical development and management. London: Academic Press.)
[그림 1-1] 도시성장의 도식 / 출처 : 양승우. 1988. 서울 도심부 도시형태 변화과정에 관한 연구.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쪽
[그림 1-1]은 크게 두 시대에 걸쳐 축적이 이루어진 도시와 크게 3시대에 걸쳐 축적이 이루어진 도시를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크게 두 시대에 걸쳐 축적이 이루어진 도시의 형태를 보면 A시대에는 Ta라는 형태를 보였다가 B시대에 접어들자 Ta는 Ta´로 변형되고 새로이 Tb가 추가됩니다. 결과적으로 B시대에 해당 도시는 B시대에 새로이 만들어진 Tb뿐만 아니라 이전 시대의 형태가 변형된 Ta´도 보유하게 됩니다. A시대의 도시 형태와 B시대의 도시 형태는 분명히 구분되지만 한편으로 B시대에는 변형된 A시대의 도시 형태도 일부 보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크게 3시대에 걸쳐 축적이 이루어진 도시의 경우도 1시대만 추가되었을 뿐 축적과정은 동일합니다.
본서에서는 열도(列島)의 몇몇 도시의 변형과정을 자세히 들여다 볼 것입니다. 특히, 에도(江戶)가 동경(東京)으로 개조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이전 에도(江戶)의 공간형태와 이후 동경(東京)의 공간형태가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고, 어떤 점에서 변형이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공간형태의 변형을 통해 메이지유신 세력의 실체에 대해 일정부분 설명할 것입니다.
첫댓글 큰 구상으로 멋있게 과학적으로 글이 시작되는 것 같아 재미있습니다.
수고많습니다. 기대합니다.
욕실에서 두명의 노예와~
집이나 모델로 직접 보내드립니다.
3시간-3만원 긴밤-5만원 횟수는 무제한!
발가락부터 머리까지 깨끗히 입사
하루밤 사랑~ 100프로~ 전국 각지 모두 가능~!
시간제한없고 언제든지 만나실 오빠들
http://houseone2.com
에 오셔요 상상 그 이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