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마우스(EMMAUS)란?
엠마우스(EMMAUS)는 성서(루가복음 24장)에 나오는 지역명으로서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그를 믿는 이들이 슬픔과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때 두사람의 제자가 엠마우스로 피신하여 가던 도중에, 알지 못하는 여행자와 동행하게 되었다. 엠마우스에 도착했을 때 날이 저물자, 두 제자는 그 여행자에게 "날이 저물었으니 우리와 함께 머물러 주십시요." 했다가 그 여행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임을 알고 용기와 희망을 되찿은 곳이다. 엠마우스라는 말에는 지역 이름 외에 세계의 가난한 이들에게 집과 식사를 제공하며, 용기와 희망이라는 뜻이 더해졌다.
"엠마우스 운동"의 시작
1949년 당시 프랑스 국회 상원의원이었던 아베 삐에르 신부는 파리 교외에 부모로 부터 상속받은 퇴락한 큰집에 살고 있었다. 그 집을 수리하여 국제 유스호스텔로 이용하려고 할 즈음, 한 사람의 자살 미수자를 만났다.
고통에 짓눌린 이 사람의 모습을 본 삐에르 신부는 이런 사람을 도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일시적인 자선행위가 아니라 그를 재기시켜 자신감을 갖고 새로운 인격과 긍지로 자기보다 더 비참한 상태에 놓여 있는 사람을 도와 그 고통을 함께 나누어 짐으로써 삶의 의욕과 자립의 가능성을 가지게 해주었다. 이렇게 하여 삐에르 신부는 처음으로 가난한 이들을 받아들인 그의 집을 '엠마우스'라 이름 짓고 이후 엠마우스 운동은 전세계로 확산 되었다.
제2차 대전이 끝난 직후 프랑스 파리의 거리는 부랑자로 가득 찼다. 파괴된 거리에 잃어버린 부모, 처자, 형제 그리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이, 그래도 인간답게 살려고 이 집에 찿아왔다. 그래서 집을 더 넓혀야 한다는 문제가 생겼다. 건축비를 어떻게 마련할까? 그런데 그때 그 전에 넝마주이를 하던 사람이 "우리들 모두가 넝마를 주워서 팔면 어떻게 되겠지요."하고 제안했다. 모두가 그 제안에 찬성하고, 그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파리 시내로 들어가 휴지, 넝마, 고철 등을 주워왔다. 그 성과는 대단했으며, 그때부터 우리도 하면 된다 남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힘을 합하여 노력하면 자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삶의 긍지를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힘차게 새출발을 하게 되었다.
이 최초의 집단은 서서히 전 프랑스에 퍼져 나갔고, 이어서 같은 정신을 가진 집단들이 전 세계 각국으로 번져나갔다. 이리하여 굶주림과 헐벗음과 추위에 떠는 슬럼가는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 운동은 전세계에서 이 비참함이 사라지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받는 이에게 먼저 봉사하자."는 소외된 계층, 빈민계층, 전과자, 날품팔이 등 고립된 개인, 소외된 개인, 파편화된 개인에게 공동체로 만들어 나간다고 하는 사회학적 가설이다.
엠마우스 운동의 요지
엠마우스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활동보다는 정신이다. 즉 민족이나 국가나 계급이나 종교를 초월해서,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에게 인간애를 베풀고 함께 그들의 고통을 맛봄으로써, 그들을 인간적인 생활로 끌어올리는 데 목적이 있다.
정신적 물질적으로 타격을 받아서 좌절된 사람이 단지, 물질적인 원조만으로써 만족하지 않고, 자기보다 더 비참한 사람들을 도와 줌으로써, 함께 고락을 나누며 살아가겠다는 정신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 정신은 자기 자신의 안락만을 추구하는 그런 생활방식에서 벗어나 즉,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하려는 보편적인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서, 남의 고뇌를 함께 아파하고 남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감지하여, 그것에 응해주며 살아가는 운동이다. 다시 말하자면, 정신적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끼리 서로 아끼고 서로 도와주며 서로 섬기며 살아가는 그것이다.
엠마우스 운동은 그 누구든 또 어떠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든, 서로 자유로운 인격의 존엄성을 가지고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으로 함께 일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개인이나 집단의 이기주의에 따라 발생한 여러가지 계급과 차별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정치적 또는 계급투쟁들에 의해 해결하려고들 하지만, 엠마우스 운동은 그런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 역시 다시 새로운 이기주의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엠마우스는 다른 사람의 고통, 그리고 자기들 밖의 다른 집단들의 비참한 환경이나 상황을 함께 괴로워 하고 함께 나눔으로써, 개인 또는 집단들의 이기주의에서 떠나, 서로의 인격을 존중하고, 아껴주며 격려하고 도와가며 살아가자는 것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우리는 이기주의에서 해방되고,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의 자유를 되찿을 수 있으리라고 확신한다. 이러한 이유로 엠마우스 운동은 정치, 종교, 인종 등의 차별을 초월하여 서로 하나가 되어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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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아베 삐에르 신부에 관한 신문기사의 일부입니다.
그는 1949년 파리 근교에 오두막을 짓고 노숙자들을 위한 자립공동체인 엠마우스(Emmaus)를 만들었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며 노숙자를 위한 입법 활동도 벌였다. 현재 엠마우스 공동체는 전 세계 50개국에 350여 그룹이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일한다, 나눈다, 베푼다’를 3대 원칙으로 하는 엠마우스 공동체의 핵심 철학은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인간에게도 그만의 탁월함이 있음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그는 노숙자 운동을 하면서 TV 방송 등에 출연해 종종 격하게 분노하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나는 자주 화내는 인간은 아니지만 인간을 무너뜨리는 무언가에 대해 비난해야 할 때면 화를 내기도 한다”면서 “이 같은 ‘성스러운 분노’를 일으키는 것은 사랑이며, 이 둘은 서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피에르 신부는 9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 수여자로 결정됐을 때 처음에는 훈장 수여를 거부했다. 노숙자에 대한 정부 정책이 불충분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2000년에야 훈장을 받았고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해비타트(Habitat , Habitat for Humanity)
설립 목적
열악한 주거환경과 무주택 가정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봉사단체. 1976년 미국의 변호사 밀러드 풀러(Millard Fuller)와 그의 아내 린다 풀러(Linda Fuller)의 “모든 사람들은 안락한 거처에서 살 권리가 있다”는 신념에서 시작되었으며, 무주택가정에 보금자리를 제공함으로써 건전한 사회 구성원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주요 원칙
해비타트 운동은 집 짓는 모든 과정을 자원봉사자들의 힘을 모아 해결한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건축에 투입되는 토지 및 장비 등의 비용은 자산가와 기업들의 후원을 통해 조달된다. 입주가정은 건축 원가의 5% 정도를 선금으로 지불할 능력이 있어야 하고, 자신의 집이나 다른 이들의 집을 짓는 데 최소한 500시간 이상 노동으로 동참해야 한다. 또한 건축원가를 약 15년 정도의 정해진 기간 내에 무이자 분할 상환해야 한다. 상환금은 무주택 서민의 집을 짓는 데 다시 사용된다.
현황
전 세계 5개 본부(미국·캐나다, 라틴아메리카·카리브해, 유럽·중앙아시아, 아프리카·중동, 아시아·태평양), 70개 국가에서 전개되고 있다. 1976년 활동을 시작한 이후 2009년까지 집짓기나 집고치기를 통하여 30만 가구 이상의 집을 세웠고, 2011년에는 아프리카 케냐에서 50만 번째 해비타트 주택이 설립되었다. 2014년에는 누적된 해비타트 주택 수가 100만 채를 달성했다.
한국의 해비타트
해비타트 운동이 한국에 알려진 것은 대천덕 신부(R. A. Torrey)가 쓴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를 통해서였다. 1995년 발족된 사단법인 한국 사랑의 집짓기운동 연합회를 전신으로 하여, 2010년 사단법인 한국 해비타트로 변경되었다. 1994~2015년간 총 35만 5,921명의 자원봉사자가 해비타트 운동에 참여했으며, 국내에는 경기북부·군산·대구경북·서울·울산·전남동부·진주·춘천·충남세종·충북청주 등 10개 지회(지부)가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