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청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
♥대청호에 잠든 마을,빛바랜 사진들
♥대청다목적댐 건설은 이렇게......
♥대청호의 오늘과 미래....소박한 꿈을 꾸는 사람들
은빛 윤슬 찬란한 대청호...그 곳에 묻혀버린 고향마을
※윤슬~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대청호는 동쪽으로 충북 보은군 회남면, 서쪽으로 대전시 대덕구,
남서쪽으로 대전시 동구,북동쪽으로 충북 청원군 문의면 북서쪽으로
청원군 형도면과 맞닿아 있다.
대전 쪽에서 보면 행정구역상 동구 대청동에 속하는 추동, 비룡동
주산동,용계동,마산동,세천동,신상동,효평동 등과 대덕구 신탄진도에
속하는 미호동,산정동,이현동,갈전동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청동과 신탄진동 일대는 1980년 대청다목적댐이 준공되면서
해발 80m 이하의 지역이 물속에 잠기게 되었다.
대청호 주변의 산은 대체로 남북으로 이어져 있으며
금강의 지류 751개 중 상당수가 합류한다,
산 능성에는 어김없이 계족산성, 질현성 견두산성,고봉산성 등
크고 작은 산성들이 위치해 있다.
대청호에 잠긴 마을들은 한결같이 역사와 전통, 나름대로의 사연을 떠안고 있다.
옛날에 갈대밭이 많아서 갈발 또는 갈전이라 불렀던 갈전동
연꽃이 물에 뜬 현상의 명당이 있다고 해서 부수로 부르다
변한 부수동 대청호상의 조그마한 무인도로 남아 있는 황호동
대청댐으로 수몰된 대청동과 신탄진동 일대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1년 용호동에서 10만 년전으로 추정되는 구석기 문화층이
포함된 유적(한남대학교 발물관)이 발견되었고
그 이후에도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수몰지역 대부분이 삼국시대에는 한때 백제와 신라가 격전을 벌이며
번갈아 점령했던 가슴 아픈 현장이기도 하였으며
백여 년 동안 길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여 아름다운
이웃사랑을 보여주었던 미륵원(굴파원)이 존재했던 곳도 있다.
때문에 금강을 끼고 늘어선 수몰지역에는 꽤 많은 유적들이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대청호는 이처럼 금강상류지역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 더 늦기 전에 대청호 주변의 유적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며, 고향을 대청호에 묻고 마음속에 담은 수몰민들의
애환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영원한 고향 대청호로 인하여 조상 대대로 물려받아 농사를
지어 오던 생명과도 같은 농토를 잃고 추억과 애정이 담긴 집과
마을이 물에 잠긴 고향을 바라보며 인고의 세월을 삭혀가는
수몰지역 인근민의 애절한 마음과 그 주변의 숱한 전설은
아직도 듣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눈앞에 평온함으로 다가오는 대청호
저 푸른 물속에 수장된 수많은 마을들, 오래된 가옥과 살림살이를
나름대로 상상하며, 그곳에서 삶의 터를 일구었던 이들의 애환을
되짚어 보려는 건 지나친 욕심일지 모른다.
평온한 쉼터로 아늑한 휴식공간으로 아름다운 관광지로 대청호를
가슴에 안을 수 있는 건 현세대의 축복이며,
물의 풍족함을 누리는 우리들에게 고향 잃은 수몰민의 애환은
무심코 지나쳐서는 안 되는 귀중한 대가다
※대가~어떤 일에 들인 노력이나 희생에 대해 받는 값
실향민의 아픔으로 만들어진 대청호
그 소중함을 바탕으로 절약과 수질보전의 올바른 길을 열어가야 함이
바로 대청호의 풍요를 누리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대청호가 용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기
이전 마을의 모습을 소개한다.
1978년 이전 충북 청원군 문의지역을 비롯
보은군 회남지역,옥천군 일대 등 86개 마을이
현재의 대청호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고향을 잃은 실향민들이 이따금 대청호를 향해 그윽한 눈빛으로 애환을
달래면 초록빛 대청호는 윤빛 윤슬만 반짝일 뿐 아무런 말이 없다.
30여 년 전의 수몰마을들 그 속에서 추억으로 묻어둔 빛바랜
사진들(대전광역시 동구,대덕구.청원지역 일부 수몰지역의 사진자료)로
작은 궁금증을 풀어보자
※윤슬~달빛이나 햇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수몰마을현황
대청댐으로 수몰 된 지역 현황
총 86개 마을이 대청호 물속에 잠겨버렸다.
수몰 가구수~4.275가구
수몰주민 인원수~25.925명
●청원군~15개 마을
문의면~문산,상장,미천,품곡,덕유,신대.산덕.후곡,가호 소전.괴곡.문덕~12마을
가덕면~노현
현도면~하석,노산
♣보은군~21개 마을
회남면~신곡,남대문.거교.신추.금곡,조곡,판장,분저.용호,법수,
산수,매산,어성.사음.사탄,송포,서탄,은운~18마을
회북면~죽암,신대,용곡
◆옥천군~30개 마을
옥천읍~옥각,수북
안내면~현리,인포,장계.답양
군북면~대정,항곡,용호,이평,추소,환평,구중,지오,이백,석호,막지,소정~12마을
안남면~연주,종미.도덕,오무,지수
청성면~합금,고당
동이면~남곡,석탄, 청마,우산,조령
▶대전광역시~20개 마을
대덕구~이현,갈전,부수,황호,삼정,미호
동구~신하,신상,세천,주산,용계,추동,마산,효평,직동,
오동,추촌,내탑,사성,신촌~14마을
총 86개 마을이 대청호 물속에 잠겨버렸다.
대청호 주변
상수원보호구역 총 55개 마을 지정되었다
●청원군
문의면~가호,후곡,소전,문적,신대,산덕,상정,덕유,품곡,두보
문산,구룡,미곡,미천,도원,죽암리
현도면~노산,하석,달계,선동,시동,우륵리
가덕면~노현,청용,행정,삼항,국전리
●보은군
회남면~법수,산수,매산,사음,남대문,염티리
회북면~묘암,마동,마구리
●옥천군
옥천읍~수복리
안남면~오대리
안내면~장계리
동이면~석탄,지양,금암,남곡리
●대전광역시
용호(일부) 미호,삼정,황호,부수,갈전,이현,직동,오동(일부)
주촌(일부),내탑,사성,신촌,효평,마산,용계.추동,주산,신상.비룡,세천,신하리
♠대청호에 잠든 마을,빛바랜 사진들은 넣지 못함
1. 주촌리 배말 서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쇠머리의 목과 같다 하여 우두목이라 불렀다고
2. 주촌리 가는 길 저 깊은 대청호수 아래 그대로 잠들어 있으려나
3. 푸른 물속에 잠겨있을 진벌동네 저 밑에 내탑초등학교가 있다.
4. 내탑 강물이 여울목을 급히 내려가 독바우앞을 휘돌아 흘러가고
있으며,왼쪽에는 나룻배도 있고 그 밑에는 추촌에서 내려오는
맑은 냇물이 강과 합류한다(77년 11월)
5. 수몰되기 전 김영우씨(내탑초 20기)의 고향집 사진속에 보이는
집이 수몰라인이라 물이 적을땐 뭍으로 보인다.
6. 왜정골의 현재 모습 대청호 깊은 물에 잠겨있을 고향산천에
다녀온 후 동향인들이 일제히 던지는 한마디
친구도 고향 한번 다녀왔구먼?
마음 한구석 허전하니 소주 한잔 하세나~~
7. 그때를 기억하시나요?
내탑수영장 하얀 모래 백사장으로 소풍갔던 시절 여기저기
흠집파인 나무책 걸상에 걸터앉아 수업하던 시절
공차기하던 학교 운동장이 그때는 어쩜 그리 넓게만 보이던지.....
8. 동네앞을 시원스레 달리던 신작로에 멀리서 시내버스가 달려오고
강에서 재취한 자갈을 쌓아놓고 있는 야적장과 자갈을 트럭에
실어주기도 했던 대전 동구 진벌과 아랫말풍경 내탑토 동문 18기
최광식씨가 운전하던 페이로더(페로디)가 서있고 닭키우던 23기
홍주씨와 18기 김철구씨 집 그리고 약국 등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한여름에 참 시원했다며,
내탑초 동문들은 한참을 회상에 잠긴다.
9. 행정구역 개편 이전 대덕구 동면 오동리 팽나무 거리
10. 대덕구 동면 오동리 장승백이
11. 1960년대초, 안골에 거주하던 마을 어르신들이 조상님
산소 정리를 마치고 찰칵~~ 기념촬영
현재 3분만 생존해 계시고 모두 작고 하셨다니
★작고~고인이 되었다는 뜻으로 사람의 죽음을 높여 이르는 말
12. 단기 4288년 지금으로부터 50년전에
내탑에서 거주하셨다는 증거자료
도민증 이후 시민증~주민등록증으로 변천되었다.
※변천~시간의 변화에 따라 변하여 바뀜
13. 27년전 담배건조장 담벽락앞에서 자연스런 포즈를 취하신
안골마을 어르신들 (1979년 8월5일) 오른쪽 마을 끝자락에
괘티고개가 있었고 고개너머에 금강물,어부동,회남가는 길이 있었다고
14. 안골 둥구나무 앞 담배건조장 모습
15. 1976년쯤 탑봉을 배경으로 찰~칵
당시에는 카메라가 황소 한 마리보다 비싼 시절이었다고
16. 여기가 어대래요?
마산리 용계리 경계 양칭이들판 보리베기(?) 현장
17. 대전 동구 대청동 일대 수몰민들이 꿈에서라도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부르짖는 내탑 수영장 모습
만리포 해수욕장보다 넓어 충청도에서 제일로 꼽혔다는 내탑수영장과
은빛 배사장의 곱디고운 감촉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이구동성
18. 1962년 5월 내탑해수욕장 개장 기념(현재 양구레에 거주하는 김홍범씨 제공)
19. 47년전,오동리 안골동네에서 결혼식을 올리던 춘자씨와 친구들
20. 수몰전 김홍래씨 (내탑초 23기 동문) 의 집 검은 돌기와 지붕이 강변밭에서
수확한 땅콩을 덩굴째로 말리고 있다.
튼튼해 보이는 돌담도 수몰된 즈음에는 자연적으로 거의
무너져 내려 마을 주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었다고
21. 1979년 수몰직전 신상리(묘골)로 이장하기 위해 울창한 낙낙장송
아름드리소나무를 모두 베고 중장비가 올라가는 길이 만들어진 내탑리 전경
22. 내탑리 동네 한가운데 덩그런 우물터와 얼음얼려
썰매타던 논이 그립다는 내탑리 모습
23. 1978년 뒷산에서 찍은 주촌리(배말) 전경
앞산 왼쪽 장고개 선명하고 그 밑 우두메기(우두목) 가 아련한 풍경
저 장고개 오르내리며 학교 댕기느라 얼마나 고생했전고 ?
24. 달이 밝은 날에 유난히 절경을 자랑하던 달개미
마을 뒤로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앞의 탁 트인 곳에는
시냇물이 흘렀다고 마을 앞 나무다리는 달개미 사람들의 주요 길목으로
장마철만 되면 종종 쓸려나가곤 했다고 (내탑초 28기 동문 배기원씨 제공)
25. 웃음이 묻어나는 사진...
초등 3-4학년 당시 동생들과 찰칵~
우리집 앨범사진 중 가장 인기있는 내모습이라며
개구진 표정을 짓는 내탑초 동문 서범석씨(왼쪽)
26. 1969년 7월20일 당시 트위스트가 유행하던 때
내탑수영장 치마바위 위에서 한판 멋들어진 유응시간
♪♪아싸라비아~~~~♬♬ 옛날처럼 함 놀아보세
27. 1969년 8월 어느날 회남(어부동)나루터
우와~ 카페리호네. 자수하여 광명찾자~
28. 지금은 대청호 깊숙히 숨어 있을 탑봉
그 아래서 친구들과 함께 보트 놀이를 즐기다.(1969년 김영근씨 제공)
29.충남에 유일무이(?)했던 내탑수영장 모터보트
에구~정원초과! 신고해서 상금 탔어야 했는디?
30. 오동리(창말) 전경 나의 고향집 꿈에서라도 가고 싶어라
(1976년 9월 소백수씨 제공)
31. 정든 고향을 떠나기 전 한자리에 모인 황호동 주민들(73)
32. 양짓말에서 음짓말(감나무골) 가는길
원안의 사진은 그 유명했던 음짓말 보호수
33. 70 새마을공사 양짓말 하수도 정리사업
34. 마을우물 원압샘
35. 마을의 안녕과 평화를 빌었던 양짓말 보호수 (느티나무)
36. 허탈한 마음에 이사하기 전 쓸만한 물건 찾아 둘러보는 주민(연선호씨)
37. 저기가 청원군 샘골입구
금강을 굽이 돌아 아늑한 골짜기에 자리잡은 문덕초등학교 입구
강을 끼고 길을 따라가면 소전리,후곡리 가곡리에 이른다.
38. 평촌학교가 보인다.
산좋고 물맑아 살기 좋았던 후곡리 마을은 비옥한 문전옥답이
가까이 있어 큰 동네를 이루고 있었다.
39. 바쁜 농번기 소에 멍에를 메워 논에 써레질을 하고
동네사람이 모여 풍년을 기원하며 손 모내기를 하고 있다.
40. 청원군 문의면 덕유리 외덕마을
문의면 소재지서 금강으로 내려가는 길목
오른쪽 첫마을이 덕유리 외덕마을 지금은 물속에 잠겼지만
그 당시는 큰마을이었다.
41. 새말과 곰실이 한눈에 산자락 밑에 초가집들이 옹기종기
사이좋게 터를 잡은 새터말과 곰실 산길을 돌아오르면
섭밭과 형강마을이 차례로 나온다 덕유리 (1977.5)
42. 전통한옥마을 압실
우리나라 남방계 취락과 북방계 중부지방의 건축양식이 골고루 분포
건축학계가 연구과제로 삼았던 청원군 문의면 문덕리 압실초가마을.
정확한 고증도 못한 채 없어져 큰 아쉬움이 남는다 (1976.4)
●취락~인간이 공동생활을 하는 주거의 집단
★고증~옛 문헌이나 유물 따위이 시대.의미.가치 등을 증거를 찾아 이론적으로 밝힘
43. 암소가 반기는 고향길
암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머리에는 작은 보따리를 인 할머니가
손자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모습은 고향의 따뜻한 정을 듬뿍 담고 있다
상장리 피미고개 (1976.5.26)
44. 물깃는 아주머니
햇볕이 따가운 여름날 공동샘터에서 물을 길어오는아주머니
찰랑거리는 그릇속의 물이 아슬아슬하다 신대리 섭밭(1978.7)
※대청호 길라잡이
오감만족 대청호 체험책에 실린
옛모습의 사진은
청원지역 옛사진을 제공해주신 김운기 씨
대청호생태관 황토관에 전시되어 있는 사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