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금대 공원
악성우륵선생의 옛 정취가 묻어나오는 예향의 고장으로 문화재로 명승 제 42호에 걸 맞게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곳이다. 우륵의 발자취 풍기는 흔적은 거의 찾아 볼수 없는것이
아쉽다고나 할까?..고령에 있는 우륵박물관을 탐방한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각종 가야금을
전시해 놓은것을 본적이 있다.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곳에 위치한 탄금대는 대가야국의 악성 우륵이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진흥왕(551년)때 망명하여 이곳에서 가야금을 즐겁게 탓다는 뜻에서 탄금대란 이름이
붙혀젔고 우리나라 국악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삼국시대에 악성들을 중용한 이유는 국가를 통치하는 근간으로 음악을 통한 국민 계도와
통치에 큰몫을 했다고 한다. 진흥왕은 가야금 5곡을 궁중음악으로 삼았다.
*잘보이지 않는 부분보충문*
<탄금대 안내판: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당시 도순변사 신립장군이 8,000여명의
군졸과 함께 이곳에 와 배수진을 치고 왜장 가또 기요마사와 고니시 유끼나까의
군대를 맞아 격전을 한 전적지이기도 하다. 신립장군은 전세가 불리하여
폐하게 되자 역사에 씻지 못할 한을 품고 강에 몸을 던져 장렬히 순국하였다.>
<이병환 작사. 백봉 작곡. 주현미 노래
1.탄금정굽이 돌아~ 흘러가는 한강수야~ 신립장군 배수진이~ 여기인가요~ 열두대 굽이치는~
강물도 목 메는데~ 그님은 어디가고~ 물새만 슬피 우네.
2. 송림이 우거져서~산새도 우는가요~가야금이 울었다고~탄금인가요~우륵이 풍류읊던~
대문산 가는 허리~ 노을진 남한강에~님부르는 탄금아가씨>
<탄금대 일주로에 누드 동상과 조각품을 설치해서 탐방객들의눈요기에 안성 맞춤이다.>
< 탄천고혼위령탑: 임진왜란(1592년 선조25년)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8,000여명의 고혼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전적기념비: 신립장군이 칼을 뽑아들고 진두지휘하고 예하 장수와 군졸들은
왜군을 무찌르는 모습 >
<감자꽃 노래를 작사한 동천 권태웅의 안내판: 문학작가로서 童詩인 감자꽃을 작사한 동천은 일제
강점기에 조도전대학에서 항일운동을 하다 옥고도 치르고 충주에 내려와 일제에 대응한 독서회,
소인극등을 한 이 지역의 항일운동가이며 문학가이다.>
<이 감자꽃 노래비는 윤석중 등 동요작가들이 모여 1965년 5월5일 어린이날에 항일투사이자
동요작고가인 동천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
가사 내용
자주꽃 핀 건~자주 감자~ 파 보나 마나 ~자주 감자. 하얀꽃 핀 건~ 파 보나 마나 ~하얀 감자.
<각종 조각품들이 이채롭다>
<남한강의 푸른 물이 탄금대를 휘 감아 돈다.>
<탄금대비의 안내판>
<육당 최남선 선생이 글을 쓰고 김충현 선생이 글씨를 쓴 탄금대비>
<열두대에 설치된 신립장군의 순국터 비석>
< 신립장군이 왜적과 중원 전투에서 남한강을 배수진을 치고 독전한 이유는 긴급상황에서 정예화 되지
않은 농민 용병들로 구성되었고 기마전술에 밝은 신립장군이였기에 문경 조령에서 보다 유리하다는
판단에 의한 결전장이였으니 부득이 패전하고 열두대에서 투신 자결했다>
<열두대는 의구하나 용병들은 구천에 가고 남한강의 푸른 물만이 유유히 흘러가네>
<탄금정>
<탄금정: 열두대 바로 윗쪽에 세운 탄금정: 우륵이 어디서 나와 가야금 팅기는 소리가 들리는듯한데
장렬히 순절한 신립장군의 원혼을 달래주기라도 했으면...>
<우륵탄금대비>
<1981년에 건립된 충장공 신립장군 순절비>
신립장군순절비각
첫댓글 허 선생님,덕분으로 탄금대 공원/ 구경한번 잘 했습니다,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