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계절에 만난 작가] 이송희 시인
시인 이송희는 심미안적인 시계(詩界)에서 자연과 인간을 관찰하고 아름다운
시어(詩語)로 시를 짓는 작가이다.
그의 글들 대부분은 요즘 시를 짓는 기법과 시인으로서 서정시를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주고 있다.
2023년은 시인 이송희에게 있어서 더욱 각별한 해이기도 하다.
‘제20회 대한민국통일예술제’에서 시 ‘안악(安岳)에 가고 싶다’로 문학대상을 수상하고 미국 시애틀에서 시상식에 참여 겸 고국을 방문한 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시는 황해도 안악이 고향인 할머니의 소원과 그 자손인 시인 자신의 통일에 대한 간절한 애국심을 잔잔한 시어로 뜨거운 가슴을 풀어내고 있다.
소녀같은 시심(詩心)으로 깊이있는 시를 짓는 그는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중견 시인으로 창작에 열정을 다하고 있다.
안악(安岳)에 가고 싶다 외 3
˹제20회 대한민국통일예술제˺ 문학대상 수상작
구월산 아래
편안한 고을이라는 황해도 안악
할머니가 늘 말씀하셨다
내 고향이라고
서울서 대전보다 조금 먼 곳
대구, 부산보다 멀지않은 곳
그런데도 생전에 못가보고
가슴에 묻고 떠나신 곳
통일이 그리 힘든 것일까
통일이 그리 힘든 것일까
서독과 동독을 분리하던 상징의 벽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통일독일을 이룬 서독과 동독
남한과 북한을 가로막은 휴전선
아, 이제는 휴전선의 빗장을 열고
우리도 이루자 통일대한민국!
남쪽에 살아도 북쪽에 살아도
한핏줄 부모형제 자매인데
한마음으로 보듬고 힘을 합해 이루자
통일대한민국 살기좋은 나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를
떠나시는 할머니 손잡고 통일이 되면
꼭 대신 가보겠다고 약속한 곳
구월산 아래
편안한 고을이라는 황해도 안악
그 안악에 가고 싶다.
겨울 준비
바람이 숭숭 들어오고
베 상복 한벌 대충 걸려 있는 상념의 집
이름 석자 적을 화선지 한 장 바닥에 눕힌다
무릎을 세워 먹을 갈고 있으면
시계 초침이 웃으며 다가 온다
아주 오래된 친구처럼 반갑게
그는 알고 있다 그동안 함께 뒹굴던 모든 것을
하나도 갖고 갈 수 없다는 것을
길고 긴 시간을 마음대로 쓰고 버리고
희노애락이란 단어에 실어 보냈으니
딱히 애잔 할 것도 없다
단지 세상에 나 올 때 부터 정해진
떠나야 할 시간이 있다는 것을
가끔씩 잊고 살았던 탓에 그저 눈이 시리다
붓 담긴 벼루의 먹물이 따뜻하다.
우주(宇宙)의 탄생
여자는 시녀(詩女)다
소반 만한 탁자와 사과표 노트북
그리고 목이 구부러지는 스탠드와
보풀이 일어난 담요와 한 몸이 되어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있다
자유의 색으로 물들여진 여자는
창조의 품에안길 순간만을 기다리다가
운명처럼 혼을 맞이하면 울음을 터뜨리곤 한다
언제올지도모르는혼의 운명을기다리는 여자는
실상아무 것도할수없다 그저 긴 시간
눕혀진 인형처럼 눈을 감고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우주(宇宙)가 온다
꼭 닫히지 않은 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머리카락을 만지고
가슴을 헤집고 심연의 바다에 파도를 일으키면
긴 시간 매달렸던 고치에서 애벌레가 되어 빠져 나온 여자는
초침을 타고 날아가는 시간을 움켜잡고
생사의 시공을 정성스레 수종들며
온 몸에 돌고 있는 수액을 비틀어 짜고 또 짜고
마침내 산모가 되어
아무도 닮지 않은 시아(詩兒)를 생산한다
그리고 감히 ‘우주(宇宙)’라 명명(命名)한다.
해질녘
웃음은
앞서 걸어가고
바람만 서성이며
말을 하고 싶어했다
해는
바다로 들어 가기 싫다며
피를 흘리며 생떼를 쓰다가
지쳐 자진했고
바람이 소리 없이
내 눈을 만지작 거리는 걸
혹시 네가 보았을까
내 마음이 지는 해를 따라
노을 뒤로 숨고 있었다.
Time to sunset
As my laughter walked ahead
only the wind stood around
wanting to talk over
The sun didn't like falling into the sea,
bled and refused stubbornly,
but exhausted and collapsed
Perhaps, you might have seen
the wind, silently,
touching my eyes
My heart was there hiding
behind the sunset following the 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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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 프로필]
‘미주아동문학’ ’문학공간’동시부문 신인상/ ‘뿌리문학’ 시부문 신인상/ 경희해외동포문학상 수상/ Famous Poets Poetry Contest 영시 입상/ 황순원디카시 공모전 수상/ 미주한국문인협회 이사./ 미주시조시인협회 회원 /한국디카시인협회 시애틀지부장/
시집<나비,낙타를 만나다>/ 동시집< 빵 굽는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