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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7일(목) : 도착 4일차
암비볼리 마을과 사자상(행17:1)
바울 사도 강을 건넌 나룻터(행17:1) 기도000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행17:1)
● 암비볼리(Amphlpolis)
암비볼리의 위치는 빌립보에서 남서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스트리몬(Strimon)강 유역에 있습니다. 이 스트리몬강을 건너면 평온한 시골 마을 암비볼리 마을이 나오는데 그 입구에는 BC. 4세기경 알렉산더 대왕 시대에 마케도니아의 영광과 힘을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사자상이 서 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서 석방된 후 이 길을 따라 데살로니가로 가는 길에서 바울도 이 사자상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볼로니아 바울의 비마, 장터, 로마시대 목욕탕. 기도000
아볼로니아(Apollonia)는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중 암비볼리를 거쳐 데살로니가로 가는 길에 들렀던 도시입니다. 이곳은 암비볼리로부터 48km, 데살로니까로부터는 61km 떨어진 곳에 있는 볼레(Borle)호수(현재 명칭은 Volvi 호수) 남쪽에 위치한 도시로서 에그나티아 가도에 자리잡은 고대의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당시에는 약 만 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아테네와 맘먹는 수준이었습니다. 고대 아볼로니아(현재는 미그도니아) 도시 안에는 궁전 원형극장, 공중목욕탕, 운동장, 시의회 등과 함께 장터(아고라, Agora)가 형성되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아고라 주변의 기둥과 건물 터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바울은 암비볼리에서 떠나 데살로니까로 가는 도중 이곳에 잠시 들러서 설교를 했다고 하며 마을 입구에는 사도 바울이 강론한 자리로 전해지는 바울의 비마(Bema, 연단) 바위가 남아 있습니다.
.데살로니키(데살로니카) 호텔 1박
◆ 5/8일(금) : 도착 5일차
●데살로니키(행17:1-9) 기도000
데살로니키(Thessaloniki; Θεσσαλονίκη, 혹은 데살로니카, 살로니카)는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 다음가는 도시로서 그리스령 마케도니아 지방의 상업, 공업, 해운, 문화, 정치의 중심도시입니다. 이 도시는 명예 지명으로 그리스의 ‘공동 수도’라고 일컫기도 하며, 비잔티움 제국 때에는 ‘공동 황제 수도’라 일컫기도 하였습니다. BC. 315년경 마케도니아 왕 카산더가 이 도시를 건설하고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 누이이자 자신의 아내인 ‘데살로니카’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습니다.
BC 146년 이후 로마시대에 이 도시는 식민지 마케도니아의 수도로서 번영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중 이 도시에 데살로니가 교회를 세웠으며, 그가 보낸 서신서 데살로니가전,후서의 배경이 됩니다. 이 도시는 비잔틴 제국 시대에도 중심 도시 역할을 했으나 1423년에 베네치아에게 양도되었고 1430년에는 투르크의 술탄 무르다 2세에 의해 점령되었습니다. 1912년 발칸전쟁이 터지면서 그리스와 불가리아는 이 도시를 점령하려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결국 이 도시는 그리스 군대에 의해 함락되어 그리스 왕국에게 양도되었습니다(1913, 부쿠레슈티 협정). 이처럼 이 도시는 이스탄불처럼 동서양의 교차점에 있는 교통요지로서 오랜 세월 외부 세력에 의해 숱한 고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뿐만아니라 2차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함락되어 6만 여명의 유대인들이 모두 나치 수용소로 끌려가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인구 130만명(도심은 30만)이 거주하는 그리스 제 2의 도시로서 수많은 강대국의 지배 속에서도 다양한 문화가 섞여 독특한 분위기를 가진 도시입니다. 대표적인 랜드마크는 ‘화이트 타워’(레프코스 피르고스)와 ‘알렉산더 동상’, 그리고 서쪽 해안가의 ‘아리스토텔레스 광장’ 등입니다.
◉ 알렉산더 대왕 동상
데살로니키는 알렉산더 대왕의 고향입니다. 그는 아리스토레스의 제자이자 마케도니아 왕으로서 당시 헬라 제국을 평정한 인물입니다. 이 동상은 자신의 애마였던 ‘부케칼로스라’는 말에 타고 있는 역동적인 모습으로 조각되었고, 동상의 높이는 6m, 무게는 4톤, 전체 높이는 11m입니다. 그는 자신의 부친 필립 2세왕이 개발한 신무기 ‘사리사’를 사용하여 세계정복에 나섰습니다. 이 조각상과 창 등은 1973년에 화이트 타워 근처에 세워졌습니다. 비록 알렉산더를 배신하고 그의 가문을 몰살시킨 카산더가 세운 도시이지만 위대한 알렉산더 대왕을 기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헬라 제국은 얼마 안 가서 알렉산더 대왕의 나이 33세에 그가 요절한 후 신하 4명에 의해 분열되고 맙니다(단7:6 표범의 날개 넷과 머리 넷, 단8:8 숫염소에게서 난 현저한 쁠 넷). 그의 신하 4명은 카산더(그리스와 마게도니아), 리시마쿠스(트라케, 비두니, 소아시아), 셀류쿠스(시리아, 바벨론), 프톨레마이오스(이집트, 팔레스타인, 아라비아, 페트라)입니다.
단7: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또 권세를 받았으며
단8:8 수염소가 스스로 심히 강대하여 가더니 강성할 때에 그 큰 뿔이 꺾이고 그 대신에 현저한 뿔 넷이 하늘 사방 네 바람을 향하여 났더라
◉ 화이트 타워(White Tower, 레프코스 피르고스, Λευκός Πύργος)
데살로니키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 중 하나인 화이트 타워는 높이가 약 30m로서 15세기 이탈리아 베니치아인에 의해 세워진 도성의 일부입니다. 18-19세기의 터키 시대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으며, 당시 대량학살이 일어나 ‘피로 물든 탑’으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 이후 탑 표면을 흰색으로 칠해 ‘화이트 타워’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이곳은 비잔틴 시대의 유물 전시를 위한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 에게해 살로니카 해변
에게해는 유럽과 아시아 사이에 있는 지중해의 길쭉한 만입니다. 발칸 반도와 아나톨리아 사이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마르마라해와 연결되고 마르마라해는 흑해와 연결됩니다. 에게해 제도는 바다 안에 위치하며 크레타(그레데) 섬과 로도서 섬을 포함한 일부 섬은 남쪽 경계를 이룹니다. 데살로니키는 에게해의 북부 항구 도시로 살로니카 해변은 웅장한 바다 풍경과 화이트 타워가 보이는 역사적인 산책로로 유명합니다.
(행17:1~9)
1 저희가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 거기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지라
2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3 뜻을 풀어 그리스도가 해를 받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 할것을 증명하고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전하는 이 예수가 곧 그리스도라 하니
4 그 중에 어떤 사람 곧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고 바울과 실라를 좇으나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 내려고 찾았으나
6 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앞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7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
8 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
9 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
바울은 유럽의 첫 항구도시인 네압볼리를 통해 이어서 빌립보, 암비볼리, 아볼로니아를 거쳐 데살로니카에 도착하였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카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유대인의 회당을 찾아가 늘 하던대로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3주(세 안식일)에 거쳐서 성경을 풀어 강론하며 예수 그리스도와 부활에 관하여 상세히 설명하며 선포하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살전2:9에서 바울 자신과 일행이 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생업에 종사하며 단 3일이 아닌 좀 더 긴 기간 동안 일하면서 전도한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의 이러한 수고로 인해 데살로니카의 많은 시민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으며 바울은 후일 데살로니가전·후서를 통해 이들에게 믿음을 담대히 가지도록 권면하였습니다. 한편 시기에 가득 찬 유대인들은 사람들을 모아 떼를 지어 몰려가서 당시 야손이 집에 머물고 있는 바울과 실라를 잡기 위해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실라를 찾지 못하자 그 집 주인 야손과 형제들을 끌어내어 재판정의 읍장들에게 끌고가서 천하를 어지럽히는 자들을 맞아들였다는 이유로 소동을 부렸습니다. 결국 무리와 읍장들은 야손과 그의 형제들에게서 보석금을 받고 풀어주게 됩니다. 할 수 없이 바울과 일행은 몰래 예수 믿는 형제들의 도움으로 데살로니카를 떠나 베뢰아로 가게 됩니다.
◉ 야손의 집
데살로니가의 전승에 의하면 당시 바울과 실라가 머물렀던 야손의 집은 데살로니가 시내를 내려다 보는 산 능선에 있었으며, 그 인근에 후일 블라타데스(Vlatades/ Vlatadon) 수도원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 블라타데스 수도원(Vlatades Monastery)
데살로니카에서 가장 유서 깊은 장소 중 하나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했던 역사적 장소 위에 세워졌으며 데살로니카의 초기 기독교 및 비잔틴 기념물 중 하나로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에 지정되었습니다. 이 수도원은 비잔틴 시대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폐쇄되지 않고 운영 중인 데살로니가의 유일한 수도원이며,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머물 때, 유대인 회당에서 강론한 후, 이곳에서 설교를 이어갔다는 전승이 내려옵니다. 이곳은 바울이 도망칠 때 이용했던 성문과 가까우며 산꼭대기에 있는 동쪽 성벽의 삼각 망대(Trigonio Tower)에서 북쪽 성벽을 따라 500m 떨어진 곳, 즉 데살로니가 구시가지의 가장 높은 곳인 아노 폴리(Ano Poli) 지역에 위치해 있어서 테르마이코스만과 화이트 타워 도시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습니다. 수도원 본당(Chatholicon) 옆에는 바울이 설교하기 위해 머물렀던 자리를 기념하는 ‘바울의 보폭’이라는 작은 경당(Parekklesion)이 있으며 바울이 섰던 자리에는 ‘바울의 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14세기에 제작된 정교한 비잔틴 양식의 벽화와 이콘들을 볼 수 있습니다.
◉ 사도 바울 기념교회(Holy Church of Saint Paul the Apostle, 성 바울 성당, Ιερός Ναός Αγίου Αποστόλου Παύλου)
데살로니가(테살로니키)의 사도 바울 기념 교회는 사도 바울이 서기 50년경 데살로니가에 방문했던 역사적 발자취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상징적인 정교회 성당입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야손의 집에 불량배들이 몰려와 폭동이 일어날 즈음 바울과 실라가 급히 도시를 떠나 성벽의 가장 높은 곳을 통해 성도들의 도움으로 베뢰아를 향해 탈출할 때, 잠시 물을 마시기 위해 들렀다고 전해지는 샘터의 샘물이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 샘물은 수 세기 동안 '사도 바울의 성수(Apostle Paul's Holy Water)'로 알려지게 되었고, 신자들의 순례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22년에 케드리노스 언덕 기슭 블라타돈 수도원 바로 곁에 작은 교회가 먼저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사도 바울에게 헌정된 현재의 웅장한 “성 바울 기념교회(Agios Pavlos)”가 완공되었습니다. 이 사도바울 기념교회는 언덕 위에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어 도시와 에게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성지순례 명소이기도 합니다.
● 성 디미트리오스 성당(Church of Hagios Demetrios, Άγιος Δημήτριος)
그리스 데살로니키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성당으로, 4세기 초 로마 황제 갈레리우스의 기독교 박해 당시, 신앙을 지키다 창에 찔려 순교한 젊은 로마 군인이자 정교회 성인인 드미트리우스를 기념하는 성당입니다. 이 성당은 드미트리우스가 갇혀 있다가 순교한 고대 로마 목욕탕 터 위에 세워졌는데 5세기에 처음 대형 성당으로 지어졌으나 여러 차례 화재를 겪었습니다. 특히 1917년 데살로니가 대화재로 거의 소실되었다가 1948년에 현재의 웅장한 5랑식 바실리카 형태로 복원되었습니다. 성상 파괴 운동(iconoclasme) 이전에 제작된 7~8세기경의 희귀하고 아름다운 비잔틴 모자이크들이 성당 기둥 등에 그대로 남아있어 예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닙니다. 데살로니키의 초기 기독교와 비잔틴 양식의 건축물 중 중요한 하나로서 1996년에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에 등록되었습니다. 지하 유적지(크립트)에는 성인이 갇혔던 로마 시대 목욕탕의 잔해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으며 발굴 당시 나온 고대 유물들과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성 데메트리오스 교회 지하에는 테살로니키의 수호성인인 성 데메트리오스를 비롯한 초기 로마 시대의 기독교인들이 순교한 장소가 있는데 수세기에 걸쳐 지반이 점차 높아지면서 이 지역은 지하 묘지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전승과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이곳은 데메트리오스가 투옥되었다가 서기 303년에 순교한 옛 목욕탕이었습니다. 5세기에 최초의 성 데메트리오스 교회가 세워지면서 그의 순교 장소는 교회에 편입되었고, 샘물은 성수대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샘물에는 신자들이 성인의 유물에서 나오는 향기로운 기름인 미론을 담을 수 있도록 여러 개의 물받이가 설치되었습니다. 이 지하 묘지는 오스만제국 시대에 흙으로 메워졌다가 1917년 화재 이후에야 재발견되었습니다. 이후 고고학청의 복원 작업을 거쳐 1988년에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 베레아(행17:10-14)
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12 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13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
14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카에서 황급히 떠나 베레아로 향합니다. 베레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강팍하고 완악하여 자신들의 신념과 다른 바울의 설교를 배척하며 바울 일행을 잡으려고 소리쳐 난동을 부리던 유대인들과 같지 아니하게 신사적이고 너그러워서(유게네스, εὐγενής 고귀한 혈통의, 마음이 고상한, noble) 열린 마음으로 바울의 설교를 잘 듣고, 그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회심자가 많이 나타났고 그 중에는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에 있던 강팍한 유대인들이 베레아까지 쫓아와서 여기서도 소동을 일으켜 복음 전파를 방해하는 일이 있게 됩니다. 할 수없이 믿음의 형제들은 바울을 내보내 아덴으로 가는 바다까지 가게 하였으나 바울의 일행이었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이 베레아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바울을 인도하던 사람들은 아덴에 이르러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오게 하라는 명령을 받고 베레아로 떠납니다.
● 베레아 바울의 비마(행17:11) 기도000
현재 베리아 중심가에는 바울이 서서 말씀을 전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1세기 당시의 돌계단 3개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나 베레아(현재의 베리아)에서 복음을 전했던 역사적인 강단(설교대)입니다. 계단 주변은 아름다운 비잔틴 양식의 모자이크 벽화가 있는데 중앙에는 말씀을 선포하는 바울의 모습이, 왼쪽에는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는 바울의 벽화가, 오른쪽에는 바울의 설교를 경청하는 베레아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또한 바울의 전신 동상으로 화려하게 꾸며진 야외 제단 형태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 유대인의 게토
베리아(Berea)에는 성경 시대부터 이어진 유서 깊은 유대인 거주 지역(게토)인 '바르부타(Barbouta)'가 있습니다. ‘바르부타’는 이 지역에 오래된 분수 이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 건축 양식: 외부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집들이 서로 빽빽하게 밀착착되어 폐쇄적인 삼각형 구조를 이루며 외부와 통하는 출입구는 단 두 개뿐이었습니다. 미로 같은 골목과 독특한 마케도니아식 전통 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 사도 바울의 발자취: 신약성경 사도행전 17장 10절에 등장하는 ‘베뢰아’의 유대인 회당에서 사도 바울이 서기 50년경 복음을 전했습니다
- 역사적 배경: 1943년 나치 점령 당시, 약 460명의 베레아 유대인들이 이곳 회당에 갇혀 굶주린 뒤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 학살당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슬픈 홀로코스트의 역사).
- 트리포타모스 강가: 마을은 깎아지른 듯한 트리포타모스 강 절벽 위에 세워져 자연적인 요새 역할도 했습니다. 현재는 복원된 석조 주택들과 유대인 회당(Synagogue)이 남아 있어 전 세계에서 많은 순례자와 관광객들이 찾는 역사적 명소가 되었습니다.
● 베리아 유대인 회당(Veria Synagogue)
북부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된 유대인 회당입니다.
1850년 오스만 제국 황제의 칙령으로 재건축되었으며, 화려한 나무 천장 조각과 모자이크 바닥이 특징입니다. 회당 내부에는 휘장으로 가리워져 토라를 보관하는 보관함이 있어서 회당 뒤편에는 유대인의 전통 정결 목욕탕인 미크베(Mikveh)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 <비잔틴 시대 교회와 골목의 초대교회들>
◉ 구세주 그리스도의 부활 교회 (Church of the Anastasis tou Sotira Christou)
베레아에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의 부활 교회는 베레아 시 중심부, 시청(Town Hall) 바로 옆에 위치해 있으며 14세기(1315년 경, 비잔틴제국 말기)에 지어진 비잔틴 시대의 중요 유적으로서 베레아에 있는 48개의 교회 중 매우 중요하고 귀중한 역사적인 종교 건축물 교회로 꼽힙니다. 이 교회 내부는 벽면을 가득 채운 고품질의 프레스코화로 유명한데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칼리에르기스(Kalliergis)의 서명이 있는 독창적인 프레스코화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습니다. 외부는 프레스코화로 장식된 기둥(Frescoed portico)이 14세기 특징적인 비잔틴 양식을 잘 보여줍니다. 이콘들은 세 구역으로 나뉘는데, 하단에는 성인들의 전신상이, 중간에는 복음서 저자, 예언자, 성인들의 흉상이, 상단에는 정교회 12대 축일(Dodekaorton) 정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생애 중 가장 중요한 사건들을 기리는 12개의 절기. 최대 욱일인 부활절 다음으로 중요시 여김. ①성모 탄생 ②성십자가 현양 ③성모 입당 ④성탄 ⑤신현 ⑥주 만남 ⑦성모 희보 ⑧예루살렘 입성 ⑨주 승천 ⑩성령 강림 ⑪주 변모 ⑫성모 안식
의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십자가형과 부활 장면이 가장 두드러집니다.
◉ 베리아 구 대성당(Old Metropolis of Veria, 팔레아 미트로폴리(Παλαιά Μητρόπολη)
- 역사적 가치: 11세기 초 비잔틴 제국 시절에 건립된 발칸반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바실리카 양식 성당 중 하나로서 사도 바울(Paul the Apostle)에게 봉헌된 성당입니다.
- 변천사: 1430년 오스만 제국이 도시를 점령했을 때는 이슬람 사원(모스크)으로 개조되어
'휸카르 모스크(Hünkar Mosque)'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1912년 발칸전쟁 이후 버려졌다가 교회로 재 봉헌되었고 이후 세속적인 용도로 사용하면서 오랜 기간 방치되어 훼손되었습니다.
- 복원: 대대적인 복원 공사를 거쳐 12~14세기의 귀중한 비잔틴 벽화(프레스코화) 등이 다시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2019년 방문 당시에도 복원공사가 진행중이었습니다.
.베레아 호텔 1박
◆ 5/9(토) : 도착 6일차
■ 알바니아 입국
알바니아는 동남유럽 지역에 위치한 국가로서 공식 국명은 알바니아 공화국((Republika e Shqipërisë, 리퍼블리카 에 슈치퍼리아)입니다. 총면적 28,748km², 2022년 기준 인구는 286만여명으로 인천광역시보다 적으며 수도 티라나에 약 70만명 이상이 거주하고, 알바니아인 90% 이상으로 구성된 단일 민족 국가입니다. 주요 도시는 수도 티라나, 두러스, 블로러인데 해외 이주 및 고령화로 인해 지속적으로 인구가 감소 추세로 현재는 약 200만명 중반으로 봅니다.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무슬림 비율이 높은 지역으로 종교를 가진 인구의 68.0%가 무슬림입니다. 그 다음으로 정교회(22.0%)가 많으며, 가톨릭(10.0%)이 그 뒤를 잇습니다. 무종교인의 비율도 꽤 되지만, 이 중 무신론자는 소수로 인구의 2% 남짓한 수준입니다.
.알바니아 피스쿠팟 또는 린에서 1박
* 그리스 베레아에서 알바니아 페슈코피까지는 약 311km로 자동차로 약 4시간 44분(유료도로) 거리.
* 그리스 베레아에서 알바니아 린까지는 약 286km로 자동차로 약 4시간(유로도로) 거리.
◉ 페슈코피(Peshkopi)
- 알바니아 북동부에 위치한 페슈코피(Peshkopi)는 알바니아 디버르(Dibër)주의 주도로, 북동부 지역의 경제 및 문화 중심지입니다. 마케도니아 국경 근처의 코라프산(2,764m) 부근에 위치하여 지형이 높고 험준합니다.
- 온천과 자연: 이 지역은 약 2500㎢ 이상의 면적에 걸쳐 있으며, 특히 온천(thermal baths)으로 잘 알려져 있어 치료 목적으로 찾는 관광객들이 있습니다.
- 인구 및 분위기: 페슈코피는 상대적으로 작은 도시로, 인구는 약 13,000명 수준으로 추정됩니다. 대도시와는 다른 조용하고 전형적인 알바니아의 고산 도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 교통: 수도 티라나에서 차로 약 3~4시간 정도 소요되며, 산악 지형을 통과하는 경로라 이동 시간이 긴 편입니다.
◉ 린(Lin)
- 알바니아 동부 국경, 오흐리드 호수(Ohrid Lake) 연안의 작은 반도에 위치한 린(Lin)은 발칸 지역의 숨겨진 보석이라 불리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 위치 및 풍경: 오흐리드 호수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반도에 자리 잡고 있으며, 붉은 지붕의 집들과 돌길이 어우러진 여유로운 호숫가 마을입니다.
- 역사적 유적: 마을에는 기독교 초기 시대의 바실리카 모자이크 유적이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습니다.
알바니아 오흐리드 호수 연안 린 페슈코피와 린
두레스, 티라나, 페슈코피 오흐리드 호숫가 연안 린
◆ 5/10(주일) : 도착 7일차
출발 전 주일 예배 드린 후 두레스로 출발
* 페슈코피에서 두러스까지는 126km, 2시간 21분 거리이며
* 린에서 두러스까지는 141km, 2시간 37분 거리입니다.
● 일루리곤(현 지명, 두레스(Durrës)); 롬15:19
- 로마시대부터 아드리아 바다를 건너 이태리로 왕래가 많은 알바니아 2번째 큰 항구.
-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이곳 출신으로 로마 황제들이 별장을 지었던 지금도 아름다운 도시.
(롬 15:19) 이 일로 인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 일루리곤은 로마서 15장 19절에 언급된 당시 로마의 속주로, 오늘날의 알바니아와 그 인근 지역(발칸 반도 서부 아드리아 해안)을 가리키는 고대 지명입니다.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 중 마케도니아 북쪽이자 아드리아해 동쪽인 일루리곤 지역까지 편만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 두러스는 고대 로마 시대에 '뒤라키움(Dyrrachium)'으로 불리던 일루리곤의 핵심 항구 도시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로마로 향하거나 일루리곤 지역에서 선교할 때, 이 주요 항구 도시인 두러스를 거쳐 가거나 이곳을 통해 육로인 '비아 에그나티아(Via Egnatia)'로 진입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요약하자면, 일루리곤은 바울이 복음을 전한 넓은 지역(현재의 알바니아 전체)을 의미하며, 두러스는 그 일루리곤 내에서 바울의 선교와 이동의 거점이 된 핵심 항구 도시(뒤라키움)입니다.
- 역사: ‘두러스’라는 도시 이름은 ‘디르하키온’ (라틴어: Dyrrhachium , 고대 그리스어: Δυρράχιον)에서 온 것으로 원래 기원전 7세기 그리스인들이 세운 '에피담노스(Epidamnos, 고대 그리스어: Ἐπίδαμνος , 알바니아어: Epidamn)'에 기원을 둔 도시로서 로마시대에 두러스는 중요한 항구도시였습니다. 무역과 상업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동서로마의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입니다. 두러스는 에그나티아 가도가 끝나는 항구도시로 이곳을 지나 바다를 건너면 이태리의 브린디시(Brindisi)라는 도시로 연결되며 그곳에서부터 로마까지 중요한 도로인 아피아 가도(Via Apia)로 연결되는 곳입니다. 또한 이 도시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주전 48년에는 이곳에서 줄리어스 시저와 폼페이가 전투를 벌이기도 하였으며 중세에는 시칠리아 왕국과 베네치아의 지배를 받기도 했습니다.
- 현재, 알바니아 서부 아드리아해 연안에 위치한 두러스(Durrës)는 알바니아 제2의 도시이자 최대 항구 도시로, 기원전 627년 세워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합니다. 로마와 비잔틴, 오스만 제국의 유적이 공존하며, 베네치아 타워와 대규모 원형 경기장 등 관광 명소와 아름다운 해변을 갖춘 주요 휴양지입니다.
- 주요 명소:
- 로마 원형 경기장 (Amphitheatre of Durrës): 발칸반도에서 가장 큰 규모 중 하나로, 과거 검투사 경기가 열렸던 장소.
- 베네치아 타워 (Venetian Tower): 도시 성벽의 일부로, 오스만 시대 요새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곳.
- 해변 (Beach): 긴 해안선을 따라 현대적인 호텔과 레스토랑이 즐비한 휴양 시설.
- 교통: 수도 티라나와 가깝고, 이탈리아를 잇는 페리 항구가 위치해 교통의 요지 역할을 합니다
● 바울 기념교회(Apostle Paul & Saint Asti) (롬15:19)
- 당시 바울사도가 직접 전도하셔서 약 20여가정이 있었다 함.
- 예루살렘으로부터 그 때 당시 서쪽 땅 끝까지 복음을 전파하심.
- 로마제국은 바다를 건너 중동 아시아 대륙까지 점령할려고 이곳을 집중적으로 키웠음.
- 알바니아의 고대 항구 도시 두러스(Durrës)에 있는 바울 기념 교회는 정식 명칭으로
'사도 바울과 성(聖) 아스티 교회(Apostle Paul & Saint Asti)'라고 불립니다
- 위치 및 역사적 배경: 로마 시대의 중요한 항구였던 두러스의 원형경기장 인근 바닷가 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 지역은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당시 일뤼리쿰(일루리곤, 현재의 알바니아 지역)에서 선교했을 때 통과했던 경로로 추정됩니다.
- 기념하는 인물: 일루리곤 지역의 최초 전도자인 사도 바울의 선교를 기념하는 동시에, 주후 100년경 이 지역의 주교였으나 로마 트라얀 황제 때 최초로 순교한 순교한 성 아스티(Saint Asti)를 함께 기리는 교회입니다.
- 건축: 1994년 기공되어 2000년대 초반 완공 후 2009년 5월에 정식 축성되었습니다.
- 교회의 의미: 구체적으로 바울이 두러스를 직접 방문했다는 명확한 성경적 기록은 없으나, 이곳을 통해 이탈리아 로마 등으로 이동하며 복음을 전했을 것이라는 오랜 구전과 전통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알바니아 내 기독교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로마로 이어지는 뱃길의 길목인 두러스에서 바울의 전도 흔적을 기념하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사도 바울과 성(聖) 아스티 교회(Apostle Paul & Saint Asti) 예배당 입구의 사도바울 그림
교회당 실내의 사도 바울과 예수님 성화 성 아스티 그림 성화벽(이코노스타시스)
● 로마시대 원형극장(Amphitheatre of Durrës); 콜로세움(검투사, 야수들)
알바니아의 항구 도시 두러스(Durrës)에 있는 원형극장은 발칸반도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로마 시대 유적 중 하나입니다. 흔히 '알바니아의 콜로세움'으로 불리며, 2세기 초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대에 건설되었습니다.
- 규모와 구조: 15,000~20,0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던 타원형 경기장으로, 로마의 콜로세움과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 용도: 검투사들의 전투, 야수와의 싸움 등 잔인한 볼거리가 열렸던 공간이었습니다.
- 보존 상태: 오랜 기간(6세기와 10세기)의 대지진으로 크게 파손되었으며, 16세기 오스만 제국 시대에는 흙으로 덮여 묻힌채 그 위에 가옥들이 지어져 있다가 1966년에 발견되어 현재는 일부가 복원된 상태로 대중에게 공개되어 있습니다. 경기장 지하 구조물과 검투사들이 사용했던 통로 등을 볼 수 있습니다.
- 위치: 두러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있으며, 근처에 베네치아 탑(Venezia Tower)과 요새 성벽이 있습니다.
● 비잔틴 시대 지하도시 예배당 흔적
-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공인하고 검투사 경기가 금지된 4~5세기 이후인 6세기 무렵, 원형극장의 지하 통로를 개조하여 이 예배당을 조성했습니다. 이 두러스 원형극장 내부에 숨겨진 비잔틴 시대 지하 예배당과 그 유명한 모자이크 흔적은 원형극장의 지하 갤러리(회랑) 구역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초기 기독교 예배당: 경기장 내부 갤러리에 만들어진 예배당입니다. 예배당 벽면을 장식하고 있는 성인들의 비잔틴 양식 모자이크가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 지하 터널: 고대 검투사들과 동물들이 경기장으로 입장하던 지하 통로를 직접 걸어볼 수 있습니다.
두러스의 원형극장 파노라마
주택가 집들에 둘러 쌓여있는채 발굴된 두러스의 원형경기장
6세기 앱스형 장례 예배당 원형극장 입구 원형극장 계단 초기 기독교 모자이크
● 박물관(Muzeu Arkeologjik i Durrësit)
두레스 고고학 박물관은 아드리아해 연안의 가장 중요한 고고학 박물관 중 하나로, 알바니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고고학 박물관입니다. 고대 디라키움(Dyrrhachium) 유적에서 발굴된 그리스, 헬레니즘, 로마 시대의 방대한 유물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주요 전시품으로는 대리석 조각상, 모자이크, 암포라, 고대 동전 등이 있으며, 인근의 거대 원형 극장과 함께 알바니아의 고대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주요 명소입니다.
- 전시 내용: 고대 그리스 식민지에서 로마의 중심지로 변모한 두레스의 역사를 담은 다양한 유물로서 주요 소장품은 로마 시대의 정교한 장례용 석비(Stelae)와 거대한 석조 석관, 아름다운 모자이크, 일리리아(Illyrian) 및 로마시대의 도자기류, 고대 동전 및 난파선에서 인양하여 조개껍데기가 붙어 있는 암포라(항아리) 등이 있습니다. 또한 고대 두레스가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로마의 비너스)를 숭배하는 종교적 중심지였음을 보여주는 비너스의 방에는 다양한 비너스 흉상들이 모여 있습니다. 이는 Durrës가 여신 숭배의 중심지였던 시대를 증명합니다
- 역사적 배경: 1951년에 설립된 이 박물관은 1997년 알바니아 내전 당시 심각한 약탈과 파손을 겪었으나, 이후 복원 과정을 거쳐 2015년에 현대적인 시설로 재개관했습니다
- 위치 및 특징: 해안가에 위치하여 경관이 뛰어나며, 인근 원형 극장과 연계하여 관람하기 좋습니다.
두레스 고고학 박물관 외부 박물관 실내
비너스의 방 암포라(항아리)
.두레스 호텔 1박
◆ 5/11(월) : 도착 8일차
.북마케도니아 행
티라나(Tirane, 알바니아 수도) 지나서 북마케토니야 입국
오홀리드(Ohrid) 호수
- 알바니아와 마케토냐에 걸친 발칸반도의 제일 큰 아름다운 호수를 보며 갑니다.
* 두러스에서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까지 36km, 45분 거리이며,
티라나에서 북마케도니아 오흐리드 호수까지 131km, 2시간 44분 거리,
오흐리드 호수에서 키체보까지 61km, 1시간 거리입니다.
* 알바니아 두러스에서 북마케도니아 키체보까지 총 4시간 30분, 약 230km 거리입니다.
.키체보 호텔 1박
◆ 5/12(화) : 도착 9일차
■ 북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
* 키체보에서 스코페까지는 110kg, 1시간 52분 거리입니다.
* 스코피에에서 불가리아 두피니챠 까지는 179km, 약 2시간 50분 거리입니다.
* 북마케도니아 키체보에서 불가리아 두피니챠까지 총 289km, 4시간 42분 거리입니다.
■ 불가리아 입국
온천 휴식
불가리아 두프니차(Dupnitsa)에서 가장 가깝고 유명한 온천 지역은 사파레바 바냐(Sapareva Banya)입니다. 위치는 두프니차에서 차로 약 15~20분 거리로 매우 가까우며 발칸반도에서 가장 뜨거운 온천수가 솟아나는 간헐천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아쿠아 클럽 코트바타(Aqua Club Kotvata)가 대표적인 온천 휴양지로, 야외 수영장과 온천 시설을 잘 갖추고 있어 인기가 높습니다.
.두피니챠 호텔 1박
◆ 5/13(수)10일차 / 마지막 날
■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불가리아 서부 비토샤 산 아래 분지에 위치한 소피아는 유럽에서 가장 역사가 긴 수도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14세기 이전까지는 세르디카(Сердика)라고 불렸으나, 소피아라는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된 계기는 비잔틴 제국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소피아라는 여동생이 온천으로 유명했던 세르디카에서 요양을 한 후 그녀의 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하여 이를 기뻐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성 소피아 성당을 짓게 되고 이후 이 도시가 소피아라는 명칭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 알렉산더 넵스키 정교회(Alexander Nevsky Cathedral)
불가리아 소피아의 '성 알렉산더 네브스키 대성당'은 세계에서 규모가 큰 성당 중 하나로 유서 깊은 정교회 성당입니다. 1877~18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당시 불가리아를 오스만 제국의 지배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싸우다 숨진 러시아 군인 20만 명을 기리기 위해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불가리아 국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기념비적인 건축물입니다. 1882년에 착공되어 1912년에 완공되었으며 성당의 명칭은 러시아의 국민적 영웅인 알렉산드르 넵스키에서 유래되었습니다.
- 건축 양식: 웅장한 네오 비잔틴 양식으로, 외관의 거대한 황금빛 돔과 아치들이 조화를 이루는 걸작입니다.
- 규모: 내부 면적은 약 2,600㎡에 달하며, 한 번에 약 5,000~최대 10,000명의 신자를 수용할 수 있는 압도적인 크기입니다. 동방 정교회 건물 중 10대 규모에 속하며,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의 성 사바 대성당에 이어 발칸반도에서는 2번째로 큰 대성당입니다.
- 내부 장식: 이탈리아산 대리석, 브라질산 마노(오닉스), 화려한 모자이크와 프레스코화로 가득 차 있어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 지하 크립트: 불가리아 국립미술관의 분관으로 운영되며, 유럽에서 가장 방대한 규모의 정교회 성화(아이콘)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 특별한 성물: 제단 왼쪽 함에는 성 알렉산더 네브스키의 실제 갈비뼈 일부인 성유물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알렉산더 네브스키 대성당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 내부
●대통령궁(Presidential Palace)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중심부에 위치한 대통령궁은 대통령 집무실과 라르고 복합단지가 어우러진 소피아의 랜드마크입니다. 대통령궁 정문(라르고 광장 근처)에서는 매 시간(또는 1시간 반)마다, 2인 1조 근위병들의 절도 있고 독특한 교대식이 열립니다. 궁전 안뜰에는 4세기 로마 유적인 성 게오르기우스 로툰다 성당이 보존되어 있어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Rotunda of St. George)
4세기 초 로마 시대에 지어진 붉은 벽돌의 원형 교회로, 소피아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대통령궁 안뜰에 둘러싸여 있으며, 내부의 10~14세기 프레스코화가 유명한, 숨은 역사적 명소입니다. 4세기 초 로마인들이 건립한 이래로 교회, 모스크, 박물관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어 왔는데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 그려진 다양한 프레스코화가 내벽에 남아있어 당시의 예술을 볼 수 있습니다. 성당 주변으로 고대 로마 도시 세르디카(Serdica)의 유적이 발굴되어 있어 역사적 분위기를 더합니다.
불가리아 공화국 대통령궁 정문 앞 근위대병의 모습
불가리아 상징의 사자 문장 대통령 궁 중정의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 외부 유적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 출입문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 실내
● 네델야 교회(St. Nedelya Church)
불가리아 소피아 중심부에 위치한 '성 네델랴 성당(St. Nedelya Church)'은 10세기부터 자리를 지켜온 역사적이고 상징적인 정교회 성당입니다.
- 역사적 사건: 1925년 폭탄 테러: 이 성당은 불가리아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성 네델랴 성당 폭탄 테러(1925년 4월 16일)'의 현장입니다. 당시 불가리아 공산당 세력이 국왕 보리스 3세를 암살하기 위해 지붕에 폭탄을 설치해 터뜨렸습니다. 이 사고로 약 200명 이상이 사망하고 5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나, 정작 타깃이었던 국왕은 다른 장례식에 참석하느라 늦게 도착하여 화를 면했습니다.
- 재건된 역사: 테러로 파괴된 후 1933년에 현재의 웅장한 네오 비잔틴 양식의 중앙 대형 돔으로 다시 지어졌습니다.
- 내부: 내부에는 13세기 세르비아의 국왕이었던 스테판 밀루틴(Stefan Milutin)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어 많은 신자와 관광객들이 찾으며 1970년대에 완성된 아름다운 벽화들과 테러 속에서도 살아남은 19세기의 화려한 성화벽(아이콘 월)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 참고: 성 네델랴 대성당은 활동 중인 예배 장소로, 모든 방문객이 자유롭게 출입하고 탐방할 수 있으나 가장 붐비는 예배 시간을 피하기 위해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 사이에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입장료는 없지만 내부 프레스코화를 촬영하려면 5 BGN의 작은 비용이 부과됩니다. 이곳은 운영 중인 대성당이기 때문에 방문객은 전통적 정교회 복장 규정을 준수해야 합니다. 이는 남성과 여성 모두 어깨와 무릎을 가려야 하며, 남성은 입장 전에 모자나 머리 덮개를 벗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예배 참석자나 개인기도 중인 이를 존중하기 위해 침묵을 엄격히 지켜야 합니다.
성 네델랴 성당(St. Nedelya Church)
성 네델랴 성당(St. Nedelya Church) 내부 프레스코화
● 비잔틴시대 발굴 유적지(Ancient Serdica Complex)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에서 가장 대표적인 비잔틴 시대 발굴 유적지는 고대 세르디카 유적지(Ancient Serdica Complex)입니다. 소피아(Sofia)는 고대 로마 시대에는 '세르디카(Serdica)'로 불렸으며, 이후 비잔틴 제국의 주요 도시로 번성하며 찬란한 유적들을 남겼습니다. 2010년에서 2012년 사이 지하철 공사 중 우연히 발견되어 발굴된 대규모 복합 유적지로서 지하철 세르디카(Serdica)역 일대 및 독립광장 지하에서 볼 수 있으며, 고대 로마 및 비잔틴 시대의 도시 구획, 주거지, 목욕탕, 하수도 시스템 등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도시 생활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습니다.
고대 세르디카 유적지 안내판 세르디카 유적(로마시대 목욕탕)
세르디카 지하 유적지
이상 불가리아 선교지 답사 여정을 마치고
.선물센타
저녁식사 후 소피아 공항 체크인
쏘피아 공항 T2 TK1030편 출발, 밤 21:05
이스탄불 공항 도착 22:35 transit 3시간 15분 대기
◆ 5/14(목) : 도착 11일차(출발 12일차)
이스탄불 공항 TK0090편 출발, 01:50
인천공항 도착, 오후 17:40
*** 모두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며, 목사님과 함께한 일행들, 선교사님과 가족들, 그리고 후원해주시고 기도해주신 은혜교회 모든 교역자 및 성도님들과 가족들에게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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