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 작품/연표
나목 1970 (1980) |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1974, 1981 (1994) |
도둑맞은 가난 1975 (1981) |
도시의 흉년 1975, 1978 (1979) |
배반의 여름 1976, 1977 (1978) |
휘청거리는 오후 1976, 1993 (2000) |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1977 (2002) |
꿈을 찍는 사진사 1977 |
창밖은 봄 1977 |
혼자 부르는 合唱 1977 |
목마른 계절 1978 |
여자와 남자가 있는 풍경 1978 (1980) |
욕망의 응달 1978, 1989 |
살아있는 날의 시작 1979, 1993 (2000) |
그 가을의 사흘 동안 1980, 1985 (1997) |
엄마의 말뚝 1980, 1994 (2000) |
침묵과 실어 1980 (1991) |
이민가는 맷돌 1981 |
오만과 몽상 1982 |
살아있는 날의 소망 1982 (1993) |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1983 |
인간의 꽃 1983 (1996) |
서울사람들 1984 |
울음소리 1984, 1985 (1996) |
구름이 흘러간 자리 1985 |
서있는 여자 1985 |
지금은 행복한 시간인가 1985 |
꽃을 찾아서 1986 |
서있는 여자의 갈등 1986 (1987) |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1986 |
저문 날의 삽화 1987 (1991) |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1989 (1990) |
나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 1990, (1996) |
미망 1990 |
한 말씀만 하소서 1990, 1994 (2004) |
나의 아름다운 이웃 1991 ,1992 (1996) |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1992, 1993 (2000) |
산과 나무를 위한 사랑법 1992 |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1995 |
한 길 사람 속 1995 |
너무도 쓸쓸한 당신 1997 (1998) |
모독 1997 |
속삭임 1997 (1998) |
어른노릇, 사람노릇 1998 |
님이여, 그 숲을 떠나지 마오 1999 (2000) |
아주 오래된 농담 1999 (2000) |
아름다운 것은 무엇을 남길까 1999 (2000) |
자전거 도둑 1999 (2000) |
부숭이는 힘이 세다 2001 (2005) |
두부 2002 |
옛날의 사금파리 2002 |
그 남자네 집 2004 (2006) |
꿈엔들 잊힐리야 2004 (2006) |
보시니 참 좋았다 2004 |
나목에 핀 꽃 2004 |
잃어버린 여행가방 2004 (2005) |
박완서 작품에 나타난 현실인식 연구
---------목 차---------
Ⅰ.서론
1.연구 목적
2.선행연구 검토와 연구 방법
Ⅱ. 본론
1. 6·25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피해의식 및 극복의지
1) 전쟁 체험의 소설화:『나목』
2.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1) 속물근성의 소시민적 생활과 허위위식 비판:『도시의 흉년』
2) 배금주의적 삶과 경제구조의 모순:『휘청거리는 오후』
3. 여성 억압의 현실에 대한 비판
1) 사회질서에 대한 모순인식:『살아있는 날의 시작』
Ⅲ.결론
※참고문헌※
Ⅰ. 서론
1. 연구목적
박완서는 1970년 나이 마흔이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장편소설 공모에『나목」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한 이후 오늘날까지 대부분 비판의식에 의거한 작품들을 발표해온 작가이다. 박완서는 6·25와 분단 그리고 물질중심주의 풍조와 여성 억압에 대한 현실 비판을 사회제반현상과의 연관해서 성실히 해내고 있다.
박완서의 70년대 소설들은 70년대의 여타 일반 작품들처럼 사회상의 반영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서서 초·중·말기에 각각 「살아있는 날의 시작」 「서 있는 여자」「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를 내놓으면서 여성의 억압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고, 80년대 중반 이후 문단의 한 특징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여성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로 평가받게 된다. 그리고 최근에는 자전적인 소설들을 발표하여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박완서는 습작기간을 전혀 거치지 않고 나이 마흔에 바로 공식적인 창작활동을 하게 된 작가이기 때문에 70년대의 작품들은 박완서 특유의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날카롭고 다양한 비판 의식이 선명하게 표출되고 있다는 성과에도 두드러지게 한다던가, 주제의 극대화를 위한 구성의 작위성으로 인해 리얼리티에 손상을 입히는 점 등이 그것이다.
그의 작품세계를 논하는 대부분의 평자들의 일치된 견해는 그의 작품들의 바닥에 깔려서 작품의 성격을 규정짓는 정신이 소시민적 인생관과 삶의 방식에 대한 강렬하고도 신랄한 비판의식이라는 점이다. 이를 토대로 본고에서는 박완서의 초기작인「나목」에서 작가 체험으로 전쟁으로 인한 피해의식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밝혀보고 이로써 「도시의 흉년」「휘청거리는 오후」를 중심으로 사회문제에 대한 작가의 현실인식이 어떻게 반영되는지 밝혀보고 80년대 들어서 작가가 중점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킨「살아있는 날의 시작」을 통해 여성억압의 현실을 작가는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시대별로 사회구조에 대한 모순을 어떤 모습으로 구명하고 있는지 밝혀보는데 연구의 목적을 둔다.
2. 선행연구 검토와 연구 방향
박완서에 대한 여러 평자들의 논평은 70년 등단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그런데 박완서 소설에 대한 연구들은 대부분이 평론이거나 짧은 서평들이며 본격적인 연구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약간의 페미니즘적 연구와 몇 편의 석사학위논문이 전부이다. 지금까지 선행된 단편적인 연구들은 박완서의 소설들을 다양한 측면에서 논의하고 있다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체계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왕성한 작품 활동에 비해 박완서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미흡한 편이고, 실제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는 서평과 단평에 그쳤을 뿐이다.
박완서의 작품세계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개괄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이광훈은 박완서의 작품들이 도시 중류계층의 삶이 얼마나 허구에 차 있으며 소시민적 행복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파헤치고 있으며, 김주연 역시 박완서의 소설은 물질문명의 발달이 인간과 부딪히면서 어떤 마찰을 일으키고 있는가를 말하고자 하나 그것이 한국인의 전통적인 심성과의 조우에서 야기되는 갈등이라는 점이 주목된다고 밝히고 있다.
원윤수와 김교선은 단편집「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에 수록된 작품들이 알맹이 없는 허영과 더러운 위선에 가득찬 여인들의 추태와 무기력하기 한이 없는 남편에 대해 자의식이 강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주제를 이룬다고 평하며, 6.25의 역사적 비극과 해방 후에 한국사회를 지배하게 된 물량주의에 의하여 병든 사회적 현상과 그같은 상황 속에서 탈출을 시도하려는 갈망으로 파악하고 있다.
김영무는 박완서의 단편들을 검토한 후에 그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주로 사람답게 사는 것을 허용 하지 않는 병든 사회에서 개개인이 겪게되는 좌절과 패배, 이러한 현실에 대한 깨달음과 반항, 반항의 좌절 등에 관한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비평들은 박완서의 현실인식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 탁월함을 인정하기도 하나 소시민적 삶을 소재로 삼고 있는 이러한 작품들에는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작가와 동년배인 중년 기혼여성으로 설정되어 있고 이 여성들과 대립되는 인물로는 현실에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안주해 버리려는 안일한 삶을 가진 남성들을 설정함으로 해서 전체적 관점을 상실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특히 김윤식은 박완서의 소설사적 의미를 사색의 목적론적 정지 혹은 대독성으로 파악하고 있다. 작품의 대부분의 화자가 '나'이며 '나'는 '아내' 이거나 '여성'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는 박완서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조건으로 그의 일사천리의 문체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완서 대부분의 소설은 그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는 사색하고 골치 아플 필요가 없다며 사색할 수 없게 만든 박완서를 비판하고 있다. 덧붙여 그는 박완서에게 있어 소외문제라든가 6·25 분단의 비극 등은 양념에 불과한 데 이를 비평가들조차 본질로 착각한다고 혹평한다.
홍정선 역시 박완서 작품들을 검토하면서 그의 작품세계의 근간을 여자를 중심으로 한 이기주의의 뿌리에서 찾고 있다. 그는 박완서의 소설들에 등장하는 허다한 남편들의 모습이 대개가 일상성에 무의미하게 함몰된, 따라서 여자들의 신선한 생명력을 일깨워주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인물들이며 아내들은 인간의 처지에서가 아니라 여자의 처지에서 자신들의 생애를 아끼고 사랑하는 이기주의의 한 측면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작가 자신과도 같은 여성의 시각으로 그려져 있음으로 한계를 가진다는 이와 같은 비판은 박완서 작품 중에서 대개가 소시민적 삶과 물신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작품들에 대한 논평이 주를 이룬다.
이러한 논평은 성민엽에게서도 나타나는데 그는 박완서의 기본 모티브를 행복에의 갈망으로 파악하고 그 행복에의 갈망이 과거 지향적 가치관으로 규정되어 있음을 보이면서 박완서의 과거 지향적 가치관은 그 자신이 중산층 일원이라는 사정과 관련이 있음을 지적한다.
또한 박완서 비평의 주제는 6·25와 관련된 그의 소설 세계에 대한 비평이다. 이는 주로 박완서의 6·25체험 수용에 관한 글들로 그의 문학에 있어 체험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정호웅은 [상처의 두 가지 치유방식』(박완서 문학의 6·25체험 수용에 대하여)에서 박완서의 작품들에는 전쟁과 분단의 체험이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전쟁의 원인과 전개양상 그리고 그 결과물로서의 분단상황자체를 문제삼고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박완서의 전쟁분단 소재의 작품들은 전쟁으로 인해 한 가족이 겪는 엄청난 상처와 그것의 치유과정을 그리는 데 집중하고 있을 뿐이라고 하면서 「나목」의 '나'에게 있어 6·25란 성인의 문턱에 다다른 한 젊음의 내면 혼란을 보다 심화시킨 한갓 계기에 불과하다는 논의를 펼친다. 그는 작가가 경험의 직접성을 넘어야 하는데 박완서 문학에서의 6·25체험 수용은 이점에서 한계를 지니며 이같은 문제점은 박완서 문학의 인물들이 하나의 예외도 없이 '나'(그 뒤에 놓인 작가)의 시각을 벗어나지 못함으로서 대상의 성격을 총체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황광수도 박완서의 문학에서 분단이 어떤 흐름으로 다루어져 왔는가를 짚어주면서 박완서 소설에 흔히 나타나는 의미굴절과 작가의 문제의식과의 관계를 신중하게 연관짓는다. 그는 박완서의 데뷔작 「나목」이 전쟁으로 인하여 가정이 파괴되어 버림으로서 한 젊은 여성이 아무런 가정적 보호도 못 받고 외로움과 공포 속에 던져져 있음을 보여줄 뿐 민족감정이나 전쟁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데에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이후에 발표된 작품들은 60년대 이후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팽배해진 물질 만능주의의 생활태도의 실상들을 날카롭게 파헤침으로써 삶의 가치를 상실한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유감없이 드러내 보여주면서 그의 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 갔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분단현실의 극복의지를 작품화한 소설들이 민족상잔, 피붙이간의 갈라짐, 통일에의 염원 등을 드러내는데는 상당한 성공을 거두면서도 민족통일을 근본적으로 어렵게 하고있는 내외의 힘들에 대한 분석과 비판에서는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유종호는 「나목」속의 전쟁은 단순한 배경을 넘어서는 일차적인 작중현실을 이루고 있다고 보면서 「나목」을 전쟁과 청춘의 책으로 파악한다. 또한 그는 「카메라와 워커」를 전쟁의 후일담으로 보면서 「나목」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작품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휘청거리는 오후」를 물질주의와 배금주의의 위세 앞에서 휘청거리는 사람다움의 여러 가치를 건드린다면서 박완서의 단편들 역시 이런 기분 모티브를 중신으로 회전하고 있다고 본다.
이밖에 박완서의 생명주의와 비판의식을 작가가 살아온 시대상황 및 사회여건과의 연관에서 보고 있는 이선영의 논평도 있다. 그는 박완서의 생명주의를 삶의 근원적인 활력으로서의 야성 및 성 본능을 중시하고, 직접 인간의 생명을 사랑하고 중용과 평형에서의 일탈을 가능케 하는 싱싱한 인간내면의 추구에서 찾고 있으며 이러한 작가의 생명주의는 결국 인간의 참다운 삶의 가치를 저해하는 사회와 역사의 모순이나 문명의 해독을 배격하고 비판하게 되는 것을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한 박완서의 소설들은 이러한 사회적 상황과 역사적 조건에 대한 문학적 반등이면서 거기에는 사회와 역사에 대한 깊은 투시와 날카로운 비판이 수반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박완서의 작품이 모두 총체적 상황의식을 지니고 있는지는 검토를 요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한 여성주의 문학 비평의 관점에서 박완서 작품의 여성현실의 형상화에 대한 논의로 조혜정, 송명희, 고정희, 김경연의 견해가 있다. 조혜정은 남성우월의식과 이중가치, 주부의 반복적 일상, 남아선호가 낳은 가슴앓이, 성적폭행 등에 맞서 당당하게 살려는 여성과 가부장제 환경간의 투쟁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페미니즘의 싹을 키웠음을 지적했고, 송명희는 타자로서의 페르조나(perzona)를 벗고 자아를 발견하는 실존적 자각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러나 고정희는 가부장적 사회의 모순을 뛰어나게 그려내고 있지만 개인의 체험공간에 머물러 있음을 한계로 지적했고, 김경연은 소시민적 개인주의와 안일주의 귀결되어 진정한 해방의 비전이 제시되지 못했다고 했다.
이상에서와 같이 평자들의 박완서의 작품세계에 대한 연구는 개별작품에 대한 단평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박완서의 작품들에 대해 이루어진 연구방향은 대략 세 가지로 집약된다. 그의 소설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중요한 세 개의 축은 6·25와 분단으로 인한 피해의식 및 극복의지와 안이한 소시민적 인생관 및 삶의 방식에 대한 비판의식과 여성의 정체성의 확립이다.
첫 번째 주제에 속하는 작품들로는 잃어버린 한 가정을 외롭게 지켜나가는 한 처녀의 삶을 그린 「나목」 등의 장편과 6·25의 참변 속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후에 받은 상처로 인해 어머니가 겪는 한을 그리고 있는 「엄마의 말뚝2」, 그 외 「부처님 근처」「카메라와 워커」「겨울나들이」「어느 이야기꾼의 수렁」「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 작품들은 6·25가 가져온 현실 생활의 파괴와 그 후 사회와의 부조화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는 인물들을 내세워 분단의 아픔을 전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들에 대해 평자들은 대개 6·25는 박완서 작품에서 단순한 소재 차원으로 떨어져 있을 뿐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다루고 있진 않다고 평한다. 6·25관련 소설들은 작가의 체험이 특히 부각됨으로써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뿐 6·25가 가져온 사회상황의 전체적 조망에는 관심이 없다고 말하면서 그의 문학에 있어 체험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두 번째 주제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배금주의에 젖어 있는 속물근성의 소시민적 인생관과 그 삶의 방식에 대한 비판이다. 중산층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이러한 내용은 그의 작품의 큰 흐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작품 곳곳에서 보인다. 중산층 도시인들의 희화되고 거짓스러운 삶에 신랄한 메스를 가하고 있는 대표적 작품 「휘청거리는 오후」는 그의 이 두 번째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대표적 작품이다.「닮은 방들」에서는 도시생활의 획일성에 묻힌 자신을 깨닫고는 자신의 쌍둥이 아들들에게조차 일종의 환멸을 느끼게 되는 한 여자를 설정함으로써 도시 중산층의 획일적인 생활과 그에 따른 사고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그 밖에도 세속적인 안일주의의 사회풍조를 풍자한 「지렁이 울음소리」 가난한 사람의 성실한 삶이 농락되는 현실을 고발한 「도둑맞은 소리」 금력과 허영심이 지배하는 풍조에서 아이들이 바르게 자랄 수 없음을 말한 「낙토의 아이들」, 무식과 교만, 비겁과 위선이 판을 치는 저질의 사회를 비판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등등의 여러 작품이 있다. 여기에서는 박완서의 현실인식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 비판의식을 높이 평가하나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이 작가가 속한 계층의 여자의 눈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과 사회문제의 본질에 대한 심원한 통찰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구체적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지 않다고 보여진다.
세 번째 주제로 분류할 수 있는 것은 여성 억압에 대한 현실비판이다. 박완서는 80년대에 들어서 여성주의 문학에 관심을 기울여 왔는데 대표작으로는『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서있는 여자』『살아있는 날의 시작』등이 있다. 여성주의 문학 비평의 관점에서 박완서 작품의 여성현실의 형상화에 대한 논의로 조혜정, 송명희, 고정희, 김경연의 견해가 있다고 앞서서도 밝혔듯이 이러한 작품은 박완서의 현실인식을 명백하게 드러내어 준다.
이 세 가지 주제는 작품에 따라 서로 혼재된 상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박완서의 작품들에서는 6·25와 분단의 상처를 다루면서 동시에 이 땅의 분단상황이 가져온 사회상에 대해서도 비판을 하고 있다. 중산층의 속물근성과 전후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이 땅에 배태된 배금주의, 이에 따른 소시민적 안주 등에 대해 하나의 단편에서조차 복합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박완서의 데뷔 초기작에서부터 지금까지를 세 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연구대상으로 삼고자 한다.
그리고 이 세가지 주제는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나기도 한다. 데뷔 초기작에서는 분단의 모순적 현실을 작가가 직접적으로 체험한 현실을 작품으로 드러내어 이러한 현실을 비판하였고 중반에 들어선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또다른 비판의식으로 보여주었고 그후 80년대에 들어선 여성억압의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박완서의 작품전체를 포괄해서 파악할 수 있는 한 기준으로서 작가의 현실인식이 소설적으로 형상 되어진 것으로 보이는 것, 즉 작품 속에서 규정된 문제적 상황들에 따라 작품들을 분류하고자 한다. 구체적인 분석을 시도할 것이고 이때 작품해석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위해 작가의 전기적 사실에 대한 고찰을 분석방법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그리고 단편이라는 형식적 특성도 본 연구의 대상으로는 적합하지 않은 제약을 가하게 된다. 단편은 사회적 모순 구조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며 특히 개인과 역사적 상황과의 관계를 문제삼고 있는 작가의식에 본질적 측면을 탐구하기 위해서는 장편으로 연구 대상을 선정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본고에서는 기본적이 텍스트로 「나목」「휘청거리는 오후」「도시의 흉년」「살아있는 날의 시작」등의 장편소설을 택하여 시대별로 달라지는 이 세 가지 기본적인 주제의식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Ⅱ.본론
1. 전쟁체험의 소설화
박완서의 초기작에서 현재에 이르는 작품들에 나타나는 그의 문학적 주제는 6·25전쟁이 한 가족에 미친 영향, 6·25이후에 분단상황하의 개인적 삶의 모습에 투영이 있다. 특히 6·25와 관련된 전쟁과 분단을 다른 작품들은 박완서의 초기작에서부터 근래에 이르기까지 그 관심이 지속되어 왔는데 이는 작가 체험과 밀접한 관련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파악될 수 있다. 전쟁의 소설도 실제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될 때 보다 절실한 체험에 진실성이 구현될 수 있다. 아래에서 다룰 「나목」은 박완서의 6·25와 분단 관련 작품들중 6·25전쟁이 단순한 소재적 차원을 넘어 작중 인물들의 의식과 사건의 추이에 결정적인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는데 이는 작가의 체험과 중요한 관계를 이루고 있다. 박완서에게 있어 전쟁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박완서에게 있어 전쟁은 자신의 가족을 붕괴시켰고 따라서 민족적 비극 이전에 개인적 비극으로서 직접적인 체험이 되고 있다.
6·25의 경험을 그의 소설의 출발점으로 보고있는 박완서 자신의 말이『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서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인용해보도록 하겠다.
...그때 문득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도망자가 획 돌아서는 것처럼 찰나적으로 사고의 전환 이 왔다. 나만 보았다는 데 무슨 뜻이 있을 것 같았다.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 고 덮쳤던가. 그래, 나 홀로 보았다면 반드시 그걸 증언할 책무가 있을 것이다. 그거야말로 고약한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다. 증언할게 어찌 이 거대한 공허 뿐이랴. 벌레의 시간도 증언해야지, 그래 야 난 벌레를 벗어날 수가 있다.
그건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었다. 그 예감이 공포를 몰아냈다. 조끔 밖에 없는 식 량도 걱정이 안됐다…
박완서는 위에서 "우리만 여기 남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약한 우연이 엎치고 덮쳤던가"라고 말하고 있다. 이때 '우리'라는 말은 어머니와 오빠 가족과 작가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그러면서 그 '우리'에게 덮친 수많은 '고약한 우연'들을 증언하겠다고 결심하고 있다. 자기 가족에게 덮친 그 끔찍한 불운들을 증언하는 길만이 "우연에 대한 정당한 복수"이며, 자신들이 벌레가 아니라 인간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길이라고 화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 다 도망가고 텅빈 서울에 남아서, 누구 하나 화자의 가족에 씌워진 '고약한 우연'을 증명해 줄 사람이 없는 현저동 산 위에서 "앞으로 언젠가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에 사로잡히는 것은 가족이 겪는 수난을 증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이번 박완서의 소설을 통해 왜 그의 소설이 6·25와 관련된 가족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담고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윤식이 일찍이 지적한 것처럼 "6·25의 끔찍한 체험에서 박완서가 해방될 수 있는 길은 박완서가 작가가 되는 길밖에 달리 없었"던 것이다. 작가 자신의 말을 빌리면 자신이 살았던"벌레의 시간"을 증언하기 위해서, 그러한 증언을 통해 "벌레를 벗어나"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러나, 작가의 문자행위가 자신의 한풀이와 상처치유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일 수는 없다는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6·25로 말미암은 상처는 크든 작든 우리민족 구성원 대부분이 지니고 있는 것인데 이를 다루는 작가는 경험의 직접성을 넘어서야만 한다. 거리를 두고, 전체적 시각으로 조망하는 태도를 견지할 때 대상의 성격이 객관적으로 포착될 수 있을 것임은 자명한데 그럴 때 비로소 작가는 만인의 상처를 다스리는 언어의 사제, 진실의 사제가 될 수 있다. 박완서 문학에서의 6·25체험 수용은 이 점에서 한계를 지니는 것으로 판단된다.
박완서의 처녀작 『나목』을 비롯해서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저녁의 해후』『아저씨의 훈장』『엄마의 말뚝』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작품들은 이른바 분단문제를 다룬 작품이고, 그런 작품들을 통해 작가 박완서는 비통한 가족사를 줄기차게 반복해 왔다. 이들 작품은 분단이라는 냉전적 사고방식의 현실구조가 어떻게 사람들을 위축시키고 황폐화시키는지를 보여주지만 이 작품들 모두 결말에 가서는 이러한 현실 앞에서 무기력해지면서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패배주의적 관점이 드러나고 있다.
분단시대의 또다른 문제로서 전쟁이 남긴 분단상황으로 인한 피해의식을 개인적 삶 속에 투영한 작품으로는 「부처님 근처」「카메라와 워커」「엄마의 말뚝」등이 있다. 이들 작품엔 모두 '나'와 어머니가 등장한다. 작가 개인의 체험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6·25 회고담이 삽입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모두 오빠의 죽음이 공통적으로 관여한다. 이데올로기 전쟁의 희생자인 오빠의 죽음은 가족을 파괴하였고 이로 인한 개인적 피해의식은 세 작품에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들 작품은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개인들이 분단시대라는 상황 속에서 그 피해의식을 제각기 드러내고 있다.
박완서는 6·25 이후 전후의 분단상황을 소재적 측면에서 여러 작품 속에서 형상화 하였다. 분단문학이라고 할 때 분단문학의 개념과 범주가 6·25이후 전후의 분단상황을 소재적 측면에서 더 이상 심도있는 접근을 거부하는 한정된 주제로 규정된 경우도 있고, 해방 이루에 등장한 모든 문학을 분단시대의 산물로 인식하고자 하는 포괄적인 논의가 개진된 경우도 있다. 그 동안 우리 문단에서 이루어진 분단문학에 대한 논의는 대개 분단상황과 연관되는 6·25전쟁, 이산가족, 이데올로기 문제들을 문학적 소재로 다룬 작품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 분단상황의 예각적인 측면들이 이러한 소재를 통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1) 6·25전쟁과 분단으로 인한 피해의식 및 극복의지 :나목
「나목」은 박완서 자신의 체험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1970년에 발표된 박완서의 처녀작인 이 작품은 전체가 1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51년에서 1952년에 걸치는 겨울을 시간적 배경으로, un군에 의해 재수복되긴 하였지만 아직 환도는 이루어지지 않은 서울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품의 주인공은 대학입시에 낙방한 스무살의 젊은 여자이자 미군부대 px초상화부에서 미군에게 초상화를 주문받는 일을 하는 점원인 '경아'라는 이름의 여자인데 이 여자의 사랑이야기가 작품의 줄거리를 이루고 있다. 1951년 겨울, 작가는 실제로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비탄에 잠겨 생의 의욕을 상실한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미8군에 취직을 하게 되었고 거기서 화가 박수근을 만난 것이다.
「나목」에서 전쟁은 단순한 소재적 차원의 배경이 아니라 작품 전면에 등장하면서 여러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전쟁은 특히 두 오빠의 죽음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면서 그로 인해 경아네 집안사정이 속속들이 밝혀진다. 우선은 어머니의 존재가 두드러진다. 박완서의 작품 속에서 어머니에 대한 형상화는 종종 이루어지는데 「나목」에서 어머니는 상징적인 인물로서 작품흐름에 한 축을 형성한다.
전쟁 중에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그후 삶에 대한 의욕을 잃고 과거의 시간 즉 6·25라는 전쟁의 시공간에 그녀의 삶은 정지되어 있다. 폭격으로 두 아들을 잃고 난 후 "어쩌면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들들은 몽땅 잡아가시고 계집애만 남겨놓셨노."라는 어머니의 말은 주인공 경아에게 자신이 오빠들을 죽게 한 장본인이라는 피해의식을 심어주게 된다. 결국 경아와 오빠들의 죽음 사이엔 단지 우연일 뿐이었을 사건이 어머니라는 존재가 매개됨으로써 전쟁으로 인한 피해의식이 주인공에게 직접적으로 미치게 된다.
아들을 잃고 부우연 회색빛 세계 속에 침잠해 버린 어머니의 존재는 전쟁의 상처라는 표피적 의미만이 아니라 내면의식의 위축생태를 상징함으로써 민족분단의 비극성까지도 내포하고 있다. 경아가 화가 옥희도씨에게서 느끼는 황량함에도 회색 빛이 관여한다.
그것은 필경 그 회색 휘장 때문일 게다. 부우옇게 그의 시선을 가로막은 휘장 때문일 게다. 그 휘 장이 그의 영감을, 그의 상상력을 억압했을 게다.
( ····················)
어쩌면 전쟁 때문인 것도 같다. 살벌한 거리와 회색의 건물들과 촉루 같은 가로수 때문인 것도 같 다. 그 모든 것 때문일 것도 같다. 그 모든 것이 그로 하여금 심한 기갈을 앓게 했는지도.
주인공은 어머니와 옥희도씨에게서 똑같은 회색 빛을 발견한다. 어머니의 부우연 회색빛, 옥희도씨의 회색 휘장은 전쟁으로 인한 피해의식의 단면을 상징한다.
박완서는 이 작품의 옥희도는 고(故) 박수근 화백이 모델이라고 밝히면서 「나목」후기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지만 예술가가 , 모든 예술가들이 대구, 부산, 제주 등지에서 미치고 환장하지 않으면 독한 술 라 도 정신을 흐려놓지 않으면 견디어낼수 없었던 1·4 후퇴 후의 암담한 불안의 시기를 텅빈 최전 방 시인 서울에서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의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살았나,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의 모습을 증언하 고 싶은 생각을 단념할 수 없었다.
"독한 술로라도 정신을 흐려놓지 않으면 견디어 낼 수 없었던" 시대의 불우한 예술가를 설정함으로써 작가는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로서 어머니와 간접적 피해자로서 화가 옥희도를 양측에 세워서 전쟁의 아픔을 그리고 있다.
전쟁이 남긴 현실은 경아, 어머니, 옥희도씨가 각각 갈등하는 대상이며 이 세사람의 갈등의 원인이 된다. 오빠들의 죽음의 흔적이 그대로 남겨진 고가에서의 어머니의 부우연 회색빛은 어머니의 죽음으로써 해소되고 주인공과의 갈등도 해소되기에 이른다. 또한 회색휘장 뒤의 옥희도씨는 그가 현실에 괴로워하며 그린 그림이 주인공 경아의 눈엔 고목으로 비춰지지만 작품 후반부에 가서 고목이 나목으로 인식되면서 갈등해소가 이루어진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아주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 만 그의 수심엔 봄에의 향기가 애닯도록 절실하다.
(··················)
봄에의 믿음 - 나목을 저리도 의연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나는 홀연히 옥희도씨가 바로 저 나목이었음을 안다. 그가 불우했던 시절, 온 민족이 암담했던 시 절, 그 시절을 그는 바로 저 김장철의 나목처럼 살았음을 나는 알고 있다.
위 인용의 '고목(枯木)'과 '나목(裸木)'은 모두 주인공 경아에게 비춰진 옥희도씨에의 두 모습이다. 즉 전쟁이라는 현실상황은 경아 가족과 그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원인 이었고 화가인 옥희도씨를 '화가가 화가일수 없는 처지'로 몰아 넣었다. 작가는 인용에서처럼 그 시대를 '암담했던 시절'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남긴 현실과 작중 인물들의 정신세계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고사(枯死)한 고목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러나 어머니의 죽음이 일차적인 갈등해소의 방안이 되면서 경아는 주위 환경의 변화와 함께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그것이 만족할 삶은 아닐지라도 주인공은 이때에 이르러서 지난날과 대비적인 오늘을 보는 것이다. 그것이 가까운 앞날에의 믿음을 상징하는 나목으로의 인식은 옥희도씨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며 그 시대를 바라보는 눈이기도 하다. 이것은 전쟁으로 인한 패해 의식에서 다시 극복의지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고목』에서 『나목』으로의 인식을 통해 나타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전쟁이 작중인물의 의식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면서 전쟁으로 인한 황폐한 삶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2.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
60년대 후반에 시작된 경제개발정책은 70년대에 본격적인 산업화 과정에 들어서게 되면서 막대한 외형상의 성장을 가져온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시기는 외국자본의 막대한 유입으로 인한 경제성장의 불균형과 소득분배의 격차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당시의 이러한 물질만능주의의 만연은 중산층 의식의 확대를 가져왔으며 이는 중산층의 소시민적 삶의 양상을 배태하였다. 박완서의 많은 소설들은 우리의 사회적 상황과 역사적 조건에 비판적인 도전을 감행하고 있다. 박완서의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의식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예민한 감응력과 깊은 투시력 우리 사회의 기형적 문명생활이 빚은 인간소외, 소시민적 편의주의에 의한 자기기만, 관료사회의 횡포와 약한 자들의 인권문제, 그 밖에도 타락 사회의 갖가지 문제들을 이 작가는 섬세하고 신랄한 필치로 묘사하고 비판한다.
박완서 문학은 한국인의 삶이 안고있는 모순의 영역을 철저하고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는 작가중 하나인 것이다. 이러한 것은 또한 박완서의 문학적 변화가 70년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했던 작가들이 보여준 변화의 본질적 한계와 맞물려 있다는 것, 즉 70년대의 의식적 토양 속에서 받아들인 매우 제한된 범주의 변화라는 점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변화의 한계는 이른바 '반성하는 중간층'의 의식의 한계와 관련된 것이면서 동시에 박완서 세대가 겪은 역사적 체험의 축적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그리고 박완서의 문학적 특성, 즉 판단을 유보하기보다는 상황이나 인물들에 대한 즉각적인 판단을 유도하는 단호하면서도 신랄한 특유의 문체로, 소시민적 삶의 불모성과 허위 의식, 그 중에서도 특히 소시민적 가정에서 여자들이 부당하게 격어온 고통받는 삶의 여러 모습들을 즐겨 소설적 소재로 다루어온 작품 성향에서 크게 벗어날 정도의 변화는 아니다.
실상 오늘날 소시민적 삶의 양태란 한정된 계층의 범주를 넘어서 현대적 삶의 일반적인 풍속도를 이루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런 점에서 박완서의 문학이 그리고 있는 소시민적인 삶의 꼴은 박완서의 문학이 지닌 계층적·세대적 한계를 넘어서는 폭넓은 의미의 자장을 거느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박완서가 그리는 저무는 세대의 이야기 속에서 오늘날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무기력한 이기주의에 의해 한없이 작아져가는 우리 자신의 왜소한 모습과 부딪치게 되는 것은 피할수 없는 일인 것처럼 보인다. 결국 박완서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자질구레한 일상사에 부딪혀 끊임없이 갈등하고 분개하는 소시민적인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에 다름 아닌 것이다.
중산층의 위선과 속물근성에 대한 비판을 담은 박완서의 작품들은 깊이 있는 인식 대신에 세태묘사에 그치는 풍속적 차원으로 전락하고 있거나 삶에의 따듯한 입김과 체온이 담기지 않은 차갑고 앙심품은 냉소만을 지닌 시선을 담고 있다고 비판되어 왔다. 그러나 여러 작품들에서 작가가 담고 있는 주제는 개개인의 약점에 대한 공격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반의 세태에 대한 비판을 구체적인 인물들을 통해 형상화 시키고 있는 것이다. 소설 속의 인물은 개인과 개인 또는 개인과 사회와의 대립관계 속에서 조명된다. 따라서 한 작가가 어떤 유형의 인물을 설정하는가 또는 그 인물의 어떤 문제에 관심의 초점을 맞추는가 하는 문제는 기교상의 문제라는 차원을 넘어서서 한 작가의 특질을 본질적으로 가늠해 볼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다수의 작품들에서 가진 자들이 도덕적으로 어긋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어긋남이 사회 전반의 세태와 무관하지 않음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세속적 욕망에 집착하는 문제적 인물을 내세워 작가의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대부분이 70년대에 발표된 작품들이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박완서는 70년대 물질주의의 확산과 이에 따른 정신적 황폐함을 치열하게 그려내기 위한 시도를 다수의 작품에서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들에서 공통적으로 귀결되는 결말은 주인공의 패배적인 시선과 체험이 강하게 드러나고 있으며「휘청거리는 오후」에서는 허성씨의 자살에까지 이르고 있다. 이러한 결말은 작가가 사회를 보는 관점이 부정적임을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의식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휘청거리는 오후」「오만과 몽상」「도시의 흉년」「욕망의 응달」「저문날의 삽화」등이 있다. 여기에서는 「도시의 흉년」과「휘청거리는 오후」를 중심으로 그가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표출되고 있는지를 구명하고자 한다.
1)속물근성의 소시민적 생활과 허위위식 비판: 도시의 흉년
1975년부터 『문학사상』에 연재되기 시작한 이 작품은 배금주의와 속물근성 혹은 안이한 소시민적 인생관과 삶의 방식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물들을 통하여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기본적인 갈등은 인간성을 왜곡시키는 물신주의와 이것에 저항하여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고자 하는 것 사이의 갈등이다. 여기에서 물신주의, 배금주의는 앞에서 「나목」을 분석하면서 들었던 일상성의 다른 한 형태이다. 즉 중산층의 가정에서 갖은 사치와 낭비를 일삼으면서, 그리고 결혼관이나 처세관등 생각하는 것이라곤 모조리 돈을 절대적인 척도로 가치를 삼고 있으며 결국 인간을 인간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사고방식은 주인공이 속해있던 계층의 일상적인 것이며, 이것으로부터의 탈출은 바로 배금주의에 저항하여 인간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도시의 흉년」은 「나목」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도시의 흉년」에서는 모든 사건들이 수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경제적인 실권이 전혀 없으며 아내에게는 성불구인 아버지 지대풍씨의 첩살림, 언니 수희와 출세에 모든 가치 기준을 두는 서재호의 결혼 그리고 파탄, 탈춤 써클 회원이자 데모꾼인 구주현과의 사랑, 자기의지라곤 하나도 없이 지극히 의존적인 오빠 수빈이가 자신의 의지대로 살기 위해 어머니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의 하나로 사랑하게 된 가난뱅이 순정이와 수연의 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히면서 전체 줄거리를 이룬다.
70년대에 들어오면서 한국 경제는 고도성장을 했다. 하지만 그 고도성장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못했음을 작가는 경화 아버지의 내력을 통해 고발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인간성의 상실, 즉 부를 획득한 사람은 획득한대로 그리고 부를 갖지 못한 사람은 그걸 가지려고 아둥바둥하며 도덕성까지 내팽개치는 걸 경화라는 인물이나 재호를 통해 여실히 드러내놓고 있다. 한편 이와 반대로 가난하지만 깨끗하게 살아가는 순정이에게 대해서는 따뜻한 시선이 주어진다. 순정이의 집은 미로처럼 길이 얽혀있는 지저분한 산동네이고, 순정이의 아버지는 경화네 집에서 수위로 일하고 있으며 자식의 고등학교 진학을 위해 담배를 끊었다. 수빈이와 사귀면서 부자집 며느리가 된다는 생각에 때로 가슴이 부풀기도 하지만 수빈이와 사귀는 것은 단지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수빈이네가 몰락하고 그 어머니가 용변을 못가리는 바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정이는 수빈이와 결혼해 시어머니의 온갖 지저분한 시중을 기꺼이 다 든다.
급격한 도시화와 산업화에 따르는 이른바 70년대식 삶의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가치관의 변화이다. 전통적으로 삶의 지표로 삼아오던 가치가 무너져내리고 거기에 대신하는 새로운 가치관이 혼재되면서 부초처럼 떠돌게 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새로운 가치는 바로 돈으로 측정되는 가치이며, 무가치의 가치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수연이와 경화를 비롯한 그의 친구들 사이의 관계에는 인간적인, 적어도 서로에게 내면적인 고민을 이야기 할 수 있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 끊임없이 자기과시를 하는 것, 그 자기과시를 받아주는 상대가 있다는 거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
이처럼 배금주의가 빚어내는 한 가정의 불화와 자식세대를 통해 그 극복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이 작품은 '김우종'에 의해 70년대 경제성장 속에서 빚어진 문제를 특히 한국인의 의식구조와 문명사적인 측면에서 과거의 뿌리부터 캐어 종합적으로 분석해 나간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기도 하다.
2) 배금주의적 삶과 경제구조의 모순: 휘청거리는 오후
박완서의 대표적 작품 가운데 하나인 장편 「휘청거리는 오후」는 허성씨네 집안을 중심으로 현대의 물질중심주의 삶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장편 「휘청거리는 오후」에서는 허성씨 일가족을 통해 물질중심의 가치관이 인간과 사회의 모습을 어떻게 황폐화시키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이고 있다. 이런 작품들에서 박완서는 특히 도시 중산층에게 신랄한 비판과 조소를 보내고 있는데 이는 사회비판적인 면모를 두드러지게 보이고 있는 것이며 이로써 개개인의 모습들이 때때로 과장되고 풍자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70년대가 시간적 배경을 이루면서 허성씨와 허성씨의 아내 그리고 초희, 우희, 말희 세 딸이 등장하는데 세 딸이 결혼에 이르는 과정이 작품의 중심내용을 이룬다. 그러나 결혼문제를 단순히 결혼에 필요한 요건이 돈이라는 물질적인 것인가, 사랑이라는 정신적인 것인가에 국한시키고 있지 않다.
박완서는 작품후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다.
실상 내가 독자가 관심 있게 봐 주기를 바란 것은 누가 행복하게 되고 누가 불행하게 됐나보다는 어 떠 어떠한 것들이 許成씨 家의 조용한 몰락에 작용했나 하는 것이다. 부자도 가난뱅이도 아닌 보통으 로 사는 사람의 생활과 양심의 몰락을 통해 우리가 사는 시대의 정직한 단면을 보여 주고자 했을 뿐 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작가가 제시한 독법에 충실하기 위해 「휘청거리는 오후」를 당시의 시대상과의 연관속에서 분석해 보고자 한다. 「휘청거리는 오후」가 보여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작품의 중심 내용이 되고 있는 세 딸의 결혼을 통한 산업화 시대의 정신적 가치의 황폐화 현상과 그러한 결혼을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끝내는 파산에 이르게 되는 소규모 공장의 운명을 통한 경제구조의 모순이 그것이다. 「휘청거리는 오후」에서 세 딸의 결혼은 남녀의 경제력의 차이에 따른 세 가지의 상황을 각각 보여준다. 큰딸 초희의 결혼은 남자 쪽의 경제력이 월등히 우위인 경우이다. 이때 초희는 어머니 민 여사의 후원 속에서 자신의 미모를 밑천으로 하여 결혼을 통해 경제적인 지위 상승을 이루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무리 매력 없는 남자도 자가용 타고 데이트하면 저절로 매력이 있어진다는 이치를 어떻게 하면 아빠에게 납득시키겠어? 그까짓 자동차가 좋아서가 아냐. 자가용 타고 앉아 걷는 사람 , 버스 타는 사람을 깔보는 생활이 좋은 거지. 누구나 다 자가용을 갖게 되면 그 땐 자가용 비행길 타고 자 동차 탄 사람을 깔보게 해주는 남자가 매력 있어 지겠지.···
그러나 이러한 결혼관은 산업화의 부산물인 물신주의에 기반한 것이었으므로 결혼 양상 역시 물신주의에 의해 지배받게 된다.
둘째 우희의 결혼은 여성이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을 때의 상황을 보여준다. 우희와 민수는 초희처럼 서로의 조건을 따지지 않는 순수한 사랑을 나누었지만 혼전 성관계라는 사회적 인습에 반하는 행위를 저지름으로 해서 결혼으로 떠밀려 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허성씨는 민수의 아버지를 상대로 초희의 맞선 때와는 상반된 입장에 서게 됨으로써 사돈지간의 역학관계를 조성하는데 있어서 경제력의 우위가 저절로 고자세를 취하도록 막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음을 경험하게 된다. 그것은 전통적인 아들과 딸의 우열관계를 일거에 무시할 수 있도록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경제적 우위가 가르쳐준 우월감은 이번에는 상대 집안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수 집안의 경제적 무능으로 인해 허성씨가 결혼비용을 거의 전적으로 부담해야하는 대가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말희의 결혼은 두 사람의 만남이 순수한 사랑에 의한 것이며 우희와 달리 사회적 인습에서 벗어나는 어떠한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두 언니에게 보내졌던 허성씨의 비판에서 비켜서 있다. 그러나 이런 말희의 결혼이 성사되는 과정은 그 만남의 순수함과는 달리 세속의 결혼 풍습에 가장 잘 부합되는 것이었다. 문경하를 바라보는 허성씨의 시선은 '집안 좋고, 학벌 좋고, 장남 아니고 나이 차이 걸맞고 신체 건강하면 됐지 하는 식으로 일반화된 사위 고르는 방법'과 타협해 있어 트집잡을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흠잡을 데 없이 평범한 결혼이었기 때문에 말희의 결혼비용 역시 허성씨가 전적으로 부담하게 됨으로써 결정적인 몰락의 원인이 되고 있다. 선금으로 받은 공사비를 말희의 혼수인 달러로 바꾸기 위해 유용해 버림으로써 부실 공사를 바로잡을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말희의 결혼식이 있던 밤 자살을 하게 된 것이다.
「휘청거리는 오후」는 세 딸의 혼수장만의 과정이 허성씨의 공장운영의 파행을 초래하도록 함으로써 사회적 경제 구조의 모순을 일상 생활과의 연관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이는 성과를 보여준다. 이러한 딸들의 결혼 양상과 함께 「휘청거리는 오후」에서는 허성씨가 세 딸의 혼수를 준비하기 위해서 자신의 작은 공장에서 저지르는 부정과 부실 공사를 통해서 당시 산업구조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세딸의 결혼 유형들을 통해 표면적으로 결혼풍속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면에는 불행한 결혼생활로 이어지는 딸들의 생활과 허성씨네의 몰락이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에서 작가는 사회 세태에 대한 강한 비판을 하고 있다. 허성씨는 물질적 부를 위해 교사를 그만두고 영세한 전기제품공장을 시작했으나 끝내 영세함을 벗어나지 못한다. 허성씨는 공장 종업원들의 변칙을 눈감아 주는 데까지 이르나 결국은 그것이 몰락을 자초하게 된다. 허성씨일가의 몰락은 세딸의 결혼과 연관되며 이는 물질만능주의의 세태로 인한 정신적, 물질적 파경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공장의 몰락에는 물질적인 부를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휘청거리는 오후」는 물질중심의 사회변화가 우리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혀주고 있으며 특히 정신적 불모화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다.
박완서 소설에서 중산층적 삶에의 비판은 잠재된 이기성의 극단적 드러내기를 보인다. 작가는 세태와 풍속에 대한 솔직하고도 적나라한 묘사로 소시민적 삶의 허위성에 거침없는 충격을 가함으로써 삶의 무사안일성에 대한 각성을 유발케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시민적 삶의 허위성에 대한 비판은 주로 도시 중류계층의 여인들을 내세워 그들의 물질주의에 대한 숭배를 신랄하게 풍자화하면서 공격하고 있다.
3. 여성억압 현실에 대한 비판
박완서는 남녀 관계가 억압자에게는 물론이거니와 피억압자에게까지 '아름답고 낯익은 미풍양속이란 탈'로씌워져 있음에 주목한다. 이 '탈'은 여성이 조상대대로 써내려오는 동안 '거의 육화된 것이기 때문에' 피를 흘리지 않고는 결코 벗어던질 수 없다. 작품 속에서 남성들의 폭력성에 진저리를 치던 작가가 '피흘리기' 라는 가학적 언어를 사용한 것은 그 자체로서 이미 억압관계의 해소는 '이해와 타협'으로선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박완서는 여성문제의 심각성을 일찍부터 간파하고 있었으며 수많은 작품들 속에서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의식의 편린이 엿보이지 않는 경우는 거의 드물 정도이다.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여성문제에 도전한 작품은「살아있는 날의 시작」이 처음이었으며 이 작품의 후기에서 그는 이 문제가 '앞으로 집요하게 되풀이 시도해 볼만한' 이야기라고 말함으로써 독자들과 일종의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리고 「서있는 여자」(1985)와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로써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진 작가가 되었다. 박완서는 이 시대 여성의 삶을 몸으로 살았기 때문에 몸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그는 무엇이 여성을 얽어매는 기제 안에 대해서 끊임없이 질문과 해답을 찾는다. 세상이 바뀌어도 좀체로 바뀔 줄 모르는 것, 그것은 바로 가부장제 문화가 갖고 있는 남성 중심적인 논리임을 집어내고 저항한다.
여성들이 자신의 문제를 인간해방이란 비전 속에서 파악하고 문제해결을 위해 새롭게 힘을 모으고 방향을 세우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70년대 후반에 와서야 여성운동은 하나의 새로운 사회운동으로 그 변모를 일신하였으며, 그 궁극적 목표를 여성의 인간화 사회의 민주화 그리고 인간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문화에 대한 체제변혁과 대안문화의 창출에 두게 된다. 즉 여성운동은 단지 여성들의 지위 향상을 위한 운동이라는 틀을 벗어나 그들과 더불어 사는 모든 사람들의 해방을 지향하게 된다.
세편의 소설 속에서 박완서가 여성들의 일상적인 체험을 서술할 때 그의 예민한 감수성과 집요한 관찰력은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 이 세 이야기는 여전히 오늘날 여기서 살아가는 거의 모든 여성에게 실제상황으로 다가온다. 독자는 세계를 여성의 관점에서 인지하고 체험하게 된다. 이런 낯선 경험은 특히 세 이야기의 주인공과 같은 계층에 속해있는 가정주부들에게는 하나의 충격이다. 머리로 받아들일까 말까를 판단하기도 전에 이미 가슴으로부터 그들과 동일시가 가능해진 중산층 여성들은 이내 주인공과 함께 좌절하고 분노하며 함께 의식화에까지 이른다. 작가는 의도했든 안했든 자신이 인식하는 여성문제의 내용들을 여성의 감성을 통해서 전달 수용시키고 그들로 하여금 여성의 삶을 조건짓는 역사에 대한 인식이 가능하도록 돕는다.
1) 사회질서에 대한 모순 인식 : 살아있는 날의 시작
「살아있는 날의 시작」은 79년 동아일보의 연재소설로 후기에서 작가는 비정상적인 남녀관계의 억압구조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지며, 때로는 바람직한 풍속으로 호도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표제의 '살아있음'은 살아있지 않은 '죽은' 상태에 있는 여성의 자아가 깨어남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성이 자신의 삶을 중심으로 한 살아있음을 수행하기가 어려우며, 사회에서 수용되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즉 깨어난 자아를 지닌 여성의 살아있는 삶은 이제 겨우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살아있는 여성으로서의 삶은 시작되었지만, 그 것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여성억압의 질서 속에서 불완전한 것일 수박에 없는 것이다.
박완서의 여성들은 남녀관계를 지배, 복종의 수직적 관계로만 생각하려는 이 사회의 고정관념에 저항한다. 가정이 진정한 보금자리일 수 있으려면 그 속에서만이라도 화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작품에 나오는 남편들은 하나같이 아내들을 소유물로 간주할 뿐 그들의 정서적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내의 경제적 능력조차 아내의 시간조차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정인철의 경우를 보면 그는 아내와의 시간 약속에 늦으면서도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다.
그는 남자답다는 걸 좋아했다. 거의 신봉하고 있었다. 그가 신봉하는 남자다움에는 아내와의 약속시 간은 희미하게 기억한다는 것도 포함돼 있었다. 똑똑히 기억하고 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을 것이 다. 그들 사이의 모든 소유관계가 명백하고도 당연하게 그의 것도 그의 것, 아내의 것도 그의 것이었 던 것처럼 아내의 시간 역시 그에게 속했다. 아내만의 시간이라는 걸 그는 의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결혼생활을 불화 없이 유지시키는 건 전적으로 여성이 얼마나 여자다움을 구현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그것이 바로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부덕이란 탈임을 박완서는 독자에게 끊임없이 환기시키고 있다. 그는 부부관계 내에서 여성이 남성에게 종속되는 권력관계가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어도 여전히 마찬가지로 지속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하여 그의 주인공들을 모두 일 가진 여성으로 그렸다. 여성이 경제적 필요성 때문에 일을 갖는 건 말릴 수 없기도 하려니와 감사할 만한 일이다. 그것은 내조이기 때문에 여성이 마땅히 해야 할, 여자다운 행동이며 부덕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다. 그러나 아내가 일해서 돈을 번다는 목적 외에 일 자체를 키우려는 욕심을 부린다면 그것은 남성에 대한 도전으로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문청희가 미용실 경영만으로도 생활을 꾸려나갈 돈을 충분히 벌 수 있는데도 미용학원까지 차리자 정인철은 모욕당한 기분을 느낀다.
그는 자기가 마치 아내의 유능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제력과 출세에의 의욕 상실하고 무능력자 가 돼 버린 것처럼 느꼈다. 모든게 아내 탓이었다. 빌어먹을……. 그는 아내와 이 세상에 모든 유능한 여자에게 이를 갈았다.
이렇듯 어찌보면 박완서의 소설들에 나타난 남성모습의 표본은 자기의 무능을 아내에게 돌리거나 세상의 여성들에게 돌리는 미련하도록 바보스러울 뿐이다. 이것은 박완서의 지나온 세월의 영향이 크지 않았나 싶은데 어릴적부터 아버지라든지 주위에 남성이 없이 엄마와 올케와 자신만이 험난한 세월을 겪어왔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작가는 남성과 여성이 공존하는 사회, 남성과 여성이 인간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불가능 하다는 것을 현실에서 직접 경험해 보고, 작품속에서 반체제적 여성인물들을 통해 우리사회에 지속되고 있는 여성억압의 현실을 역설적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Ⅲ.결론
지금까지 박완서의 작품을 세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작가의 의식세계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주제별 대상 작품은 첫째로 작가 개인의 6·25 체험이 직접적으로 드러난 작품인『나목』을 중심으로 전쟁에 의한 피해의식과 극복의지를 살펴보았고, 기존 평가에서 박완서의 전쟁 체험이 단순히 소재 차원에서 전락하고 있다는 것과는 달리 6·25는 작품의 직접적인 배경으로 작중인물들의 의식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나목』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황폐화한 살의 모습을 주인공 경아와 그의 어머니 그리고 불우한 화가 옥희도씨를 통해 조명하고 있으며, 단순한 체험의 직접성을 뛰어넘어 6·25가 가져온 삶의 모습을 투영하려고 하는 점이 작가의 일차적 관심을 이루고 있다. 둘째로는 물질만능주의의 삶 속에서 중산층의 속물근성과 허위적인 삶을 다룬 작품인 『도시의 흉년』과 『휘청거리는 오후』를 분석하면서 작가의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살펴볼 수 있었다. 그러나 사회비판적인 요소를 담아내는 데 있어서 작중현실과 인물이 지나치게 과장되고 왜곡된 인물상, 즉 부정적인 중산층 의식을 반영하는 여성들과 무력하고 냉소적인 남성들이 등장하고 일상성에 대한 세부묘사와 사건의 통속화 등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의 한계가 노출되기도 한다. 셋째로는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여성억압현실에 대한 비판을 『살아있는 날의 시작』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이 겪고 있는 억압의 다양한 양상을 예리한 시각으로 섬세하게 포착되고 있다. 작가는 가족,일,성을 포괄하는 여성 삶의 전체 영역에서 그들을 짓누르는 핵심적 요인들을 가능한 한 샅샅이 집어내 보이고 있다. 현재에 들어선 이러한 현실의 실날한 비판의식을 뒤로하고 차츰 생명력에 대한 관심이나 자전적인 작품들을 보여주게 된다. 이후의 작품들에 대한 연구는 계속해야할 과제로 남기고, 이상으로 박완서의 작품속에 나타난 현실 비판의식을 미흡하게나마 살펴보았다.
<참 고 문 헌>
※ 자 료 ※
1.박완서, 『나목』, 작가정신, 1990
2.______, 『휘청거리는 오후』, 열린책들, 1987
3.______, 『도시의 흉년』, 문화사상, 1979
4.______, 『살아있는 날의 시작』, 전예원, 1980
5.______,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웅진출판, 1994
※ 단 평 ※
1. 이광훈, 『소시민적 삶과 일상의 덫』, <현대문학>, 1980
2. 원윤수, 『꿈과 좌절, 문학과 지성』, 1976년 여름
3. 김영무, 『박완서의 단편들』, <제 3세대 한국문학, 박완서>, 삼성출판사, 1983
4. 홍정선, 『한 여자작가의 자기 사랑』, <샘이 깊은 물>, 1985
5. 성민엽, 『윤리적 결단과 소설적 진실』, <지성과 실천>, 문학과 지성사, 1975
6. 황광수, 『민족 문제의 개인주의적 굴절』, <창작과 비평>, 1985
7. 유종호, 『불가능한 행복의 질서』, <동시대의 시와 진실>, 민음사, 1981
8. 이선영, 『세파속의 생명주의와 비판의식』, <그 가을의 사흘동안>, 나남, 1985
※ 학위논문 ※
1. 이경식, 『박완서 장편소설 연구』, 경희대 석사논문, 1986
2. 윤철현, 『박완서 소설연구』, 부산여대 석사논문, 1991
3. 김종구, 『여성의 글쓰기와 자기발전의 서사구조』, 한남대 석사논문, 1992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