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 프로필 이미지
목탁소리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국내여행 명상순례 스크랩 걷고 줍는 스님, 마지막 길을 나서다
법상 추천 0 조회 444 09.01.13 16:59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완연한 봄기운이
대지위를 따스하게 비춰주고 있다.

따뜻한 햇살이며,
살랑살랑 간지럽히듯 불어오는 바람,
이런 날에는
법당 안에만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어디로든 발길 닿는 곳으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고 싶어진다.

 

 



걷는다는 것은
나를 얼마나 이 살아있는
대지와 바람과 하늘과 구름과
이 찬연한 자연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게 해 주는가.

발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
나는 그 순간 자연속에서
또 하나의 자연이 되어 자연에 깃들게 된다.

오르막길을 오를 때의
몸뚱이를 떠받치는 묵직한 허벅지의 느낌을
가만히 관찰하면서 느릿 느릿 걷다 보면
그 느낌이 단순한 힘든 것이 아니라
내 몸을 살아 있게 해 주고 깨어나게 해 주는
아주 맑은 소식처럼 들려오기도 한다.

이런 햇살 좋은 날
나는 늘 그렇듯 정처 없이 걷는 상상을 한다.
물론 선뜻 발길을 내딛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상황이 내 발길을 붙잡을 때는
그저 가벼운 산책을 하면서라도
자연과 함께 걷는 즐거움을 대신하곤 한다.

이런 날,
함께 걷자는 길벗의
반가운 소식이 전해들게 되면
그처럼 반가운 일이 또 어디 있겠나.

그런 날...
이 상서로운 날 아침,
걸려 온 전화 한 통.

걷는 수행자로 통하는 원공스님께서
지금 막 강원도 화천을 출발하여
양구 쪽으로 오고 계신다고,

점심을 양구 평화의 댐 쪽에서 드신다고
길 안내를 부탁하는 전화에
반가워 반가워 길을 나섰다.

평화의 댐 위쪽
걸어서 한 시간 남짓의 거리의 안동포라는 곳에 도착하니
저기 머얼리서 원공스님께서 터벅터벅 걸어오고 계신다.

원공스님과는 두어번 인연이 있었다.
지난 2003년 즈음인가
적십자사에서 주최하는 peace korea 행사 때
경기도 양주 쪽을 지나실 때 처음 뵈었고,
또 작년에 북한산에 묻어져 있는 쓰레기를 캐어 내는
환경 캠페인을 하실 때 함께 동참한 적이 있다.

성격도 화통하시고,
시원시원하실 뿐 아니라,
수행자다운 정신을 잃지 않고 사시는
요즘같은 시기에 보기드문 수행자가 아닐까 싶다.

스님은 지난 70년대에 6년간의 무문관 수행을 마치시면서부터
걷는 행선을 시작하셨다고 한다.
스님 말씀에 의하면
무문관 막힌 곳에서 6년을 있다 보니
너무 답답해 걸어야 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하신다.

그렇게 시작된 걷는 수행이
이제 어언 29년의 세월이라고.
그동안 걸은 거리는 지구를 몇 바퀴 돌고도
남을 거리라고 하니
그 걸음 걸음에 깃들었을 세월의 흔적을 생각해 보면
저 스님의 두 발이 새삼 귀하게 느껴진다.

 



지난 80년부터 3년간 1,000일간 전국을 걸은 것을 비롯해
통일기원 180일 국토순례,
이산가족 고향자유왕래 염원 220일 순례,
123일간 한국과 일본 전역을 도는 환경과 평화를 위한
한일 도보 대장정을 개최하기도 하는 등
수많은 세월 길 위에서 삶을 사시다가
이번에 걷는 수행 30년 회향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그야말로 마지막 걸음을 내딛으신 것이다.

이 길은 아마도 내년 3월 즈음이나 되어야
회향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하신다.
동해와 서해를 지그재그로 가로지르며
몇 번을 그렇게 걸으셔야 할 것을 생각하니
그것도 환갑을 훌쩍 넘으신 노구를 생각했을 때
마냥 부러워할 수만은 없어 보이기도 한다.

스님을 멀리서나마 자주 뵈면서
스님의 가르침을 스승삼아 출가하신 한 스님이 계신데,
그 스님 말씀에 의하면
그야말로 무소유의 청정한 수행자로써
가진 것이 하나 없고,
거처인 선각원 또한 최소한의 생활에 필요한 생필품 외에는
거의 지닌 것이 없으며,
천정에 전깃불조차 떼어내고 사신다는 귀뜸을 주셨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스님 입고 계신 옷을 보더라도
지난 두 번을 만나며 입고 계셨던 그 옷 그대로다.

승복 비슷한 계량한복 같은 옷인데,
늘 그 옷만 입으시냐고 여쭈었더니
가진 게 두어 벌 밖에 없고
아직 떨어지지 않았으니 계속 입고 있다고
시답잖은 질문을 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답변을 주신다.

그러면서 요즘 수행자들이
비싼 승용차 타고, 비싼 음식 먹으면서,
스스로를 아주 대단한 부자인 양,
스님이라는 위치가 무슨 대단한 직위인 양 생각한다고 하시면서
수행자가 수행자다워야지 중생같은 생각을 하면서
중생들 사는 것과 똑같이 살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냐고 반문하신다.

신발을 척 보여주시며
이 신발은 좀 비싼거라고 농담삼아 자랑삼아 말씀하시는데,
북한산 무슨 등산용품 가게에서
300싸이즈 신발이 워낙 안 나가다 보니
두고 두었다가 스님 발 싸이즈가 300인 것을 아시고
원래 비싼거지만 너무 싸이즈가 커서 안 팔린다고
스님이 사시려면 2만원에 드리겠다고 하여
냉큼 사서 신고 오는 중이라고 하신다.

그 신발 위로
스님의 육중한 몸이
날듯 뛰듯 길 위를 자유로이 흘러가고 있다.

홀로 길을 출발하셔서
철원 즈음에선가 길벗을 한 분 만나
이제 둘이 되었다시는데,
이제 전역을 몇 일 남기지 않은 군인 원사님께서
당신의 군생활을 회향하는 의미로
스님과 함께 당분간 걷기로 하신 것이다.

안동포에서 평화의 댐 쪽으로 걸어오는 길은
비무장지대 쪽이라
화천 쪽에서 운행하는 관광용 버스가 때때로
지나갈 뿐 거의 차도 없고, 사람도 없는
그야말로 자연의 길이다.

길 우측으로는 평화의 댐에 이르는
호수같은 강 상류의 풍경이 고즈넉하다.
햇살도 좋고,
호수위로 비춰진 하늘도 높고 맑다.

걷기 좋은 날..
스님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터벅 터벅 걷기 시작한다.

갑가지 스님께서 저기를 보라며
발길을 멈추고 가만히 서서 손으로 가르치시는데,
재법 큰 맷돼지 3마리가 저 앞길을 가로질로
산 쪽으로 뛰어가는 것이 아닌가.

순간 마음 한 켠에 야생의 성품이 되살아나듯
짠한 또 찐한 무언가가 올라왔다.
야생이 살아있는 곳은
야생의 생명체들이 이렇듯 끊임없이 생명을 꽃피우고 있다.

그런데 이런 곳 조차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곳곳의 산이 허물어 져 있다.

 



스님 말씀이,
매년 그렇게 걷다 보니
개발과 발전의 속도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고 하신다.

얼마나 개발 속도가 빠른지,
예전에 걷던 길이 없어지고
쭉쭉 뻗은 4차선 도로 같은 것들이
새로 생기는 것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고,
비좁지만 투박하고 정겨운 우리 옛 길을
시간과 함께 하나 둘씩 잃어갈 때마다
고향을 잃은 듯 허하고 헛헛한 느낌을 감출 수 없으시다고.

스님께서 첫 발걸음을 강원도 전방지역 쪽으로
그것도 될 수 있으면
비무장지대 쪽을 경유하면서까지 다니시는 이유는
그래도 강원도 쪽이나 비무장지대 쪽이
덜 오염되고, 덜 개발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그럼 그럼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다.
야생의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곳을 걷다 보면
마음은 저절로 하늘을 닮아가고 바람을 닮아가며
숲을 닮아가게 마련이니까.

숨을 크게 몰아 쉬시면서
'아~ 달다. 아~ 맑다'를 연발 내뱉으신다.

길 가에
갯버들, 버들 강아지가 봄 소식을 전해주며
길을 걷는 이를 반겨준다.

 



12시가 조금 넘어
평화의 댐에서 공양을 간단히 하고는
계속 걷기 시작한다.

오르막이 나오면서부터
스님과의 대화도 저절로 침묵으로 바뀌고
이제는 한 발 한 발 걷는 순간만이 있다.

오르막이 계속되면서 숨도 가빠지고
조금씩 땀도 나고 모처럼의 걸음이라 다리도 묵직해오는데,
오르막이 시작되면서 시작된 스님의 침묵이
어느덧 경행 수행의 삼매로 바뀌셨는지
지금 저 노구를 이끄시고 오르막을 오르시는 스님이 맞으신가
싶을 정도로 속도를 내시면서 가볍게 가볍게 걸어오르신다.

정상 즈음에 이르러 이제 한 숨 좀 돌리려나 싶었는데,
약 2km가량 되는 정상의 터널을 하나 지나가면서
그 긴 터널을 숨도 안 쉬시고
한 숨에 뛰듯 날듯 발이 안 보이게 내달려 질주하시는데
깜짝 놀라 정신 바짝 차리고
나도 함께 뜀걸음으로 내달려 터널을 뚫고 나오자
멀뚱 멀뚱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은 내 표정에
미소를 지으시며 한말씀을 건네신다.

"어떤가. 여기 무슨 말이 필요한가.
오직 걷는 것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해"

스님 눈빛을 바라보며
한바탕 미소로써 법문을 깊이 새겨두었다.

될 수 있으면 아스팔트 큰 길로 가기 보다는
산길로 가려는 생각 때문에
길도 잘 나 있지 않은 산 길로 들어섰다.

역시 아스팔트 길과 산길은 차원이 다르다.
그야말로 다른 차원에 들어서는 것 같은 느낌.
산길로 들어서니
봄소식도 더 가깝게 느껴지고,
땅 위에도 살아 숨쉬는 동식물들의 흔적들이 생생하다.

풀 숲 사이로
초록의 생명들도 꼬물꼬물 올라오고 있고,

 



산양 똥에,

 



멧돼지 똥,

 



하고도 두더지가 지나간 흔적까지.

 



자작나무 숲 안에
생명들의 야생스럽고도 자유로운 살림살이가 펼쳐진다.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는 모습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방산까지 도착할 즈음이 되니
어느덧 해는 서쪽 산 아래로 넘어가고,
도착하기 직전부터 한방울 두방울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우리 지역의 불자분들이
모처럼 이 지역을 지나시는 스님을 뵙겠노라고
몇몇 분께서 모이셨다.

저녁 공양을 나누며
스님께 좋은 말씀을 듣고
내일은 시간이 되시는 분들이 함께 나와
함께 걸으면서 길가의 쓰레기를 좀 함께 줍기로 했다.

스님의 걷기와 환경, 자연에 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걷는다는 것은 곧 마음을 비우는 것이며,
자기 성찰이자
곧 자연과의 대화라는 말씀.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신도님들이 함께 모여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10장을 구입하고는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청정지역 양구,
그리고도 더 깊은 산골 마을 방산에서
죽곡리에 이르기까지의 길.

이 청정한 곳에 무슨 쓰레기가 있을까
싶은 마음에 모두들 별로 주워야 할 쓰레기는 없을 것이라고
슬슬 걸으며 이야기나 나눠야지 했던 마음은
몇 걸음 걷지 않아 금방 사라지고 말았다.

그저 차로 다닐 때는 깨끗해 보이던 곳들이
걸으면서 또 눈과 마음을 쓰레기에 집중하며 응시하고 걸으니
곳곳에 얼마나 많은 쓰레기들이 널려 있는지.

 



청정한 지역 이 곳이 이 정도라면
도대체 우리나라의 다른 길들은 말 다 한 것 아닌가.
얼마나 많은 쓰레기들이 넘쳐나고 있을 것인가.

그러고 보면 그동안
'쓰레기'라는 것은 별로 생각지 못하고 살았다.
쓰레기를 줍는다는 것 자체에 대해
별 생각이 없이 살았다.

그러다 보니 쓰레기가 내 눈 앞에 있던 없던
나는 그저 내 갈 길을 갈 뿐이었고,
당연히 내 눈에 쓰레기는 없었던것이다.

쓰레기를 줍겠다는 그 생각으로
큼직한 쓰레기 봉투를 하나씩 집어 들고 걷는데
내 눈 앞에 완전히 새로운 세상,
그동안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아주 지저분한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이건 참 의외이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한
그러나 아주 귀한 경험이다.
처음 우리 모두는
100리터짜리 큰 쓰레기 봉투를 한두장 정도 채울 수 있을 정도겠지
길가에 얼마나 쓰레기가 있겠느냐고 반신반의를 했었지만
출발하여 두세시간 정도가 되었나 싶은 시간동안
100리터 쓰레기 봉투 10개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랐으니 말이다.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초등학교 때 길을 가다가 쓰레기를 보면
주워야 한다고 도덕시간에 배웠던 기억이 있다.
그 수업이 있고 난 뒤에
무슨 깨달음이 있었나는 모르겠지만
몇 일을 등하교길에 길가의 쓰레기를 주워서 버리면서
스스로 뿌듯하고 대견하던 그런 기억이 희뿌옇게 뇌리를 스쳤다.

아마도 그 때가 '쓰레기'를 보면 주워야 한다는
그 기본적인 생각의 씨앗에 물을 주고 거름을 주었던
유일한 때가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지금까지 내 대지와 길 위의 밭은
무성한 잡풀들과 그야말로 쓰레기같은 부주의만 키워왔지 않나 싶다.

내가 지나오면서 길이 깨끗해지는 것은
분명 아주 단순하지만
전혀 새로운 경험이자 전환이다.

아, 쓰레기를 줍는 즐거움
이 단순함이 이 세상을 우리 주위를
또 내 마음을 얼마나 청정하게 가꾸어 줄 수 있는가.

 



그러고 보면 스님의 걷기와 쓰레기 줍기는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보살의 두 가지 서원을 실천하는
스님만의 독특한 수행방법이 아닐까 싶다.

걷는 내적인 경행수행과
매일같이 쓰레기를 주우시는 이타적인 자비행이
얼마나 소박하면서도 평범하면서도
획기적이며 경이로운 방식의 보살행인가.

입으로는 수행이 어떻고, 보시가 어떻고,
복과 지혜의 실천이 어떻고 누누이 떠들어 대지만
그런 가운데 자기 욕심을 채우며,
스스로 수행자라는 아상을 키워가며,
작은 수행도, 작은 하심도, 작은 나눔도 실천하지 못하는
그런 어리석은 수행자들을 볼 때

이름도 없고, 무슨 직책도 없고, 무슨 큰 절의 소임도 없으며,
환경운동이 어떻고, 수행이 어떻고
크게 나서서 소리치지도 않으시지만
그저 묵묵히 온몸으로 내 앞의 휴지를 주우며 걷는
지금 내 앞의 이 스님이야말로
얼마나 자기다운 수행과 자비의 길을 걷고 있는가.

이 얼마나 삶을 세상과 일터의 중생들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으며,
생생하게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을 실천하고 있는가.

선지식이
가만히 오래 앉아 있는다고 다가 아니고,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쓴다고 다가 아니고,
무슨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다가 아니고,
무슨 큰 일을, 무슨 큰 법회나 이벤트를,
무슨 큰 절에서 크게 크게 한다고 그게 다가 아니다.

자신이 있을 자리에서,
자연과 아주 가까운 그 자리에서,
온몸으로 온마음으로 자연과 환경과 수행과
그리고 중생들의 삶의 터전을 소박한 발걸음으로 걸으면서
뭘 한다 만다 하는 상도 없이
당신의 몫을 묵묵히 해 나가시는 모습,
이것이야말로 수행자다운 깨어있는 수행자 정신이 아니겠는가.

그래, 수행자 정신.
수행자가 수행자 정신을 잃으면 그건
수행자 옷을 입고 있어도, 수행자 대접을 받고 있어도,
목탁을 치고, 법회를 열고, 좌복 위에 몇 날을 앉아 있어도
그건 더이상 수행자일 수 없는 것이다.

수행자 정신,
그것은 매 순간 순간의 현재를 온전히 살아나가는
깨어있는 반야의 정신이고,
거추장스럽게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는
무소유와 가난의 정신이며,
내가 해야 할 나눔의 몫을 늘 실천하면서
작은 것이라도 세상을 위해, 이웃을 위해
베풀고 봉사하는 보시의 정신일 것이다.

수행자가 지혜와 보시와 가난의 정신을 잃으면
그것은 더이상 수행자가 아니다.

스님의 말씀처럼
스님들이 사회에서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고
스스로 나눔을 실천하며
스스로 깨어있는 정신을 닦고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지,
비싼 차에, 비싼 옷에, 비싼 음식을 먹으면서
가난의 정신에 뜻을 두지 않고
스스로 스님을 무슨 높은 위치인 것으로 여겨
신도님들이 떠받들어 주는 것에 안주하고,
당연한 삶의 방식인 기도와 수행과 예불과 정진을 게을리한다면
당장에 부끄러운 법복을 벗어버려야 하리라.

이른 아침
엊저녁 공양 때 밥 한 공기를 추가로 더 시키셨다가
그 밥 한 공기에 김치 몇 조각을 방으로 들고 올라가셔서는
아침 공양을 그걸로 굳이 때우고 마시겠다시며
든든하게 밥 잘 먹고 간다는 말씀을 남기고
또 길 위에 올라 발길을 옮기셨다.

 

스님의 뒷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그 모습이 어쩌면 그리도
당당하고 아름다운지.

뒷 모습에 합장하고
삼배를 드렸다.

 

 

걷는성자 '원공스님'

그는 지금 양양, 속초를 지나 어딘가로

계속해서 걷고 있다.

내년 3월까지 우리나라 전 지역을 홀로 순례할 계획이다.

길 위에서 만나면 반가운 눈인사라도 전해 주시길...

 
다음검색
댓글
  • 09.02.03 00:46

    첫댓글 가슴이 벅착 이야기인데 뭐라고 해야할지......'오직 걷는 거 외에 무슨 말이 필요해....내가 지나오면서 길이 깨끗해지는 것은 분명 아주 단순하지만 전혀 새로운 경험이자 전환이다.....' 이 말씀을 깊이 새겨둡니다... 양구 죽곡리 방산 평화의 댐...참 반가운 이름이군요...()()()

  • 09.02.28 23:49

    걷는 성자 원공스님의 발길 닿는 곳마다 처처에 맑은 풀꽃 피어나시기를!

  • 09.03.09 04:46

    신문으로 원공스님의 수행이야기를 읽었습니다. 무문관생활도 하셨다니 더욱더 마음이 숙연해집니다._()_

  • 09.04.01 11:12

    원공스님의 처소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답니다. 여름 이었는데도 두꺼운 개량한복 같은것을 입고 계셨구요. 그러시면서도 뭔가를 주고싶어 하시던 스님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 09.08.02 10:58

    맞습니다. 스님께선 가지신게 없으셔요. 그래도 자꾸 나눠주셨지요.

  • 09.05.21 20:57

    작년 어느봄날 호국관음사에 오셔서 쓰레를 같이 줍고, 점심공양을 드시고,빙둘러 앉아 원공스님 법문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는데, 스님께서 뭐니 뭐니 해도 이방 저방 다녀도 서방 이 제일 이니 집에 가서 저녁 해놓고 기다리라고 하셨다.슬그머니 합장 을 하고 돌아선 기억이 선연합니다. 원공스님 감사합니다,사랑합니다.

  • 09.08.02 10:56

    참 반가운 글이네요.9년전 스님과 함께 도봉산 쓰레기더미를 호미로 파서 산아래로 들고내려오던생각이 떠오르며스님께서 직접 쪄 주신찐빵도 생각이납니다. 감사합니다.스님 뵙고 싶습니다.

  • 10.07.14 21:18

    감사합니다. 스님 ()

  • 10.10.12 18:40

    잘보고 갑니다....^^

  • 13.06.12 20:24

    저도 원공스님 뒷모습에 삼배올립니다~

  • 18.12.15 02:41

    ....고맙습니다()()()

  • 19.12.20 10:21

    벌써 10년 전에 쓰신 글이네요. 걷는성자 원공스님도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을 이렇게 세심하게 글로 표현하신 법상스님의 마음도 아름답습니다.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