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8년 5월경 ‘강원도의 힘’이라는 영화 포스터가 여기 저기 붙어 있었다. 모교 고시실에서 제40회 사법시험을 코앞에 두고 있던 나는 점심을 먹고 다시 학교로 올라가는 길에 무심코 종로행 버스에 올랐다. 그리고 극장을 찾아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본 후 다시 돌아와 잠깐 어디를 다녀 온 것처럼 공부를 했지만 마음속에 무언가 모자람이 느껴져 며칠 후 다시 버스를 탔다. 두 번째는 다시 보러 오지 않기 위해서 영화 장면들의 순서를 기록해 두고 목차를 외우듯이 위 영화 장면을 떠올려 보곤 했던 기억이 있다. 대구에 내려와 고등학교 은사님들을 만나 뵙게 되면서 동기회를 결성하라는 압력을 느꼈다. 연수원 출신 변호사로서 초기에 업무부담도 없을 것 같아서 이를 수락하고 동기들 찾기에 최선을 다했다. 인터넷 사이트 ‘아이러브스쿨’, ‘다음’의 사람찾기 등을 통하여 “쏘주 한잔 하자”는 취지의 격서(檄書)를 18방(方)에 살포한 후의 어느 토요일 늦은 오후, 낯선 서울 말씨 사내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 왔다. 고등학교 동기인데 지금 사무실 근처에 있으니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이야기였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면서 ‘주파수’가 상응하는 것을 곧 느꼈고 바로 시내 선술집으로 갔다. 동기가 내민 명함은 ‘감독 김진한’의 것이었는데 나는 ‘햇빛 자르는 아이’라는 단편영화를 만든 사람이 바로 그 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다. 나는 ‘강원도의 힘’를 보러 다니던 기억에 대하여 이야기 하였고 김 감독은 그 영화에 대하여 약간의 비평을 해주었으며, 술자리가 깊어지면서 자신이 연출한 ‘햇빛 자르는 아이’에 대한 사회의 평가와 개인적으로 갖는 의미, 상업영화 시장에서의 단편영화 감독으로서의 한계에 대하여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했다. 김 감독은 가난한 어린 시절 누구나 부러워하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의 공부를 중도 포기해야 했던 일과 그 후의 영화판에서의 일들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또 내가 사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강원도의 힘’ 이후 극장에 가서 본 영화가 별로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문화의 힘에 대하여 새로운 인식을 가지지 않으면 다양한 삶을 이해하지 못하고 결국 문화적 소양이 결핍된 어설픈 전문인이 될 수밖에 없다며 나를 집중 공격했고 나는 무참히 그 가혹한 쓴소리를 고스란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술자리는 나의 집으로 이어졌다. 아내는 김 감독이 문 닫는 상점 주인에게 사정하여 마련한 작은 물고기 어항을 받음과 동시에 우리에게 보관용(?) 술과 주당들의 요구에 따라 김치를 적당히 넣어 얼큰하게 끓인 라면을 내 놓았고 우리(아내를 포함한)의 이야기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문화적 비교우위에 있는 아내와 문화인인 김 감독의 이야기는 점점 어려워졌고 나는 담배를 피면서 추임새를 넣는 역할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서울 가는 김 감독과 손을 맞잡으며 우리는 서로 이후 가장 소중한 친구 중의 하나가 늘어났음을 느끼게 되었다. 개업 초기 우연히 서울지방법원의 형사사건을 수임하였다가 의도대로(?) 1심에서 무죄판결이 내려지는 바람에 이후 6개월 이상 거의 매달 금요일 어느 날 서울 형사 항소심 재판에 출석하여야 하는 실로 궁박한 사정이 생겼으나 나는 금요일 저녁에 김 감독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즐겁기만 했다. 김 감독과 함께 만난 많은 영화인들, 물체극(物體劇)을 한국에 소개했다는 이영란씨, ‘꽃섬’의 주연배우이자 ‘버자이너모놀로그’ 앵콜 공연을 하고 있는 연극인 서주희씨 등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무언가 손에 잡히지 않는 희망을 느꼈다. 그것은 어떤 전기 에너지와 같은 것으로서 그 힘이 대단히 강해서 그들을 만나고 나서 며칠이 지나 내가 대구의 법정에 서 있을 때까지 간혹 그 힘이 남아있기도 하는 것이다. 힘든 개업초기의 어려움 속에 곧 방전되어 버릴 상황에서 이를 극복하고 긍정적으로 밝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해준 나만의 충전기를 갖고 있는 느낌. 바로 열심히 진지하게 사는 사람들의 힘이 내게 전달된 것이리라. “이상과 같은 모든 사정을 참작하시어 오늘도 창작의 자유 수호와 다양한 방면의 문화 발전을 위하여 자기의 삶의 방향 키를 고정하여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가슴이 허용하는 최대한의 사랑과 관심과 참여를 베풀어 주시어 이번 한 번 만이 아니라 계속하여 위 사람들이 긍지와 보람을 더욱 크게 가지고 일로매진(一路邁進)할 수 있는 기회를 크게 신장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위 문화인들의 어설픈 대리인 변호사 강정한. 동도제현(同道諸賢) 귀중.” /대구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