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의 천국
얼마 전 퐁피두센터 특별전엘 다녀왔다.
퐁피두센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건축가 렌조 피아노이다.
퐁피두센터는 렌조 피아노와 리처드 로저스 공동 작품이다.
그렇게 멋진 건축작품을 만드는 건축가 사무실은 어떨까 궁금했는데...
렌조 피아노, 사진으로 만난 그의 사무실은 며칠밤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을 정도로 멋지고 근사했다.
역사박물관에서 하차,
시립미술관으로 향하는 이 길을 나는 참 좋아한다.
미술관 관람이 아니라도 가끔 이 길을 걷는다.
이때 아이팟으로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를 들으면 금상첨화.
정동교회, 덕수궁돌담길, 캐나다 대사관, 이화여고, 수령 500년이 넘은 회화나무까지... 이 거리 경관은 추억과 함께 늘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발투스 (1908~2001) 나무가 있는 풍경 1957, 캔버스에 유채, 130.5x162cm
박수근 화백을 떠오르게 했던 작품이었다.
박수근의 '나목'을 그의 풍경 속에서 언뜻 만난 것 같기도 하고...
색감이나 기법이 박수근 화백과 참 비슷하다 싶었다.
그가 박수근의 영향을 받았을까, 혹은 박수근 화백이 발투스의 영향을 받았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박수근 화백이 1914년생이고, 발투스가 1908년이니까... 서로에게 영향을 받거나 줄 수 있었던 비슷한 시기의 화가였겠구나 싶다.
피에르 보나르 (1867~1947) 꽃이 핀 아몬드 나무, 1946~1947, 캔버스에 유채, 55x37.5cm
이 작품 사진은 구하기가 어려워서 미술관에서 구입한 화집에서 사진을 찍어 편집했다.
아몬드 꽃이 이렇게 생겼구나, 처음 알게 해준 그림이기도 하다.
한국에도 아몬드 나무가 있나? 있다면 꼭 한 번 만나서 저 탐스런 꽃나무 앞에 서보고 싶다.
파블로 피카소 (1881~1973) 누워있는 여인, 1932, 캔버스에 유채, 38x46cm
역시 피카소야, 라고 탄성이 나왔던 작품이었다. 1927년에 만난 여인 마리 테레즈 월터가
모델이라고 하는데 '볼륨감'이 확실하게 살아있다. 그녀를 모델로 했던 많은 초상화들이 떠올랐다.
마르크 샤갈 (1887~1985) 무지개, 1967, 캔버스에 유채, 160x170.5cm
이 작품에 서있노라니, 몇년전 시립미술관에서 만났던 샤갈전의 감동이 밀려왔다.
앙리 마티스 (1869~1954) 폴리네시아, 하늘/ 폴리네시아, 바다 1946, 캔버스에 과슈로 색칠된 종이로 장식, 200x314cm
앙리 마티스 (1869~1954) 초록 찬장이 있는 정물, 1928, 81.5x100cm
이 작품 역시 찾을 수가 없어서 화집에서 찍어 편집한 것임.
마티스는 여러 번에 걸쳐 세잔에 대한 존경심을 표현했으며, 그의 작품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작품 속 바둑판 무늬의 식탁보와, 녹색 찬장, 물컵, 화병, 복숭아 몇 알...
이런 정물을 보고 있노라면 불편하게 엉클어진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거려주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앙리 마티스 (1869~1954) 붉은 색 실내, 1948, 캔버스에 유채, 146x97cm
이인성 화백의 '여름 실내에서'와 '책 읽는 소녀'
이번 전시회에서 내 시선을 가장 오랫동안 잡아 끌었던 마티스의 작품들이다.
'붉은색 실내'를 보면서 문득 이인성 화백의 '여름 실내에서' 작품이 떠올랐다.
재작년 한동안 그의 작품 '여름 실내에서'가 보고 싶어 리움 현대미술관에 일부러 발걸음할 때도 있었는데...
마티스의 붉은색 실내와 이인성 화백의 '여름 실내에서'의 느낌이 비슷한 감성으로 다가왔다.
어쨌든 이번 퐁피두 센터 특별전에서는 마티스의 색감에 젖어들었던 시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의 폴리네시아 하늘과 바다의 푸른빛, 붉은색 실내의 정열적인 빨간빛, 초록 찬장이 있는 정물의 녹색빛에 서서히 젖어들었던 시간, 참 좋았다.
피에르 보나르 (1867~19470) 미모사 꽃이 핀 아틀리에, 1939~1946, 캔버스에 유채, 127.5x127.5cm
이 작품을 보고와서 미모사 꽃 색깔을 보고 싶어 여기저기 검색해 보았지만 꽃색깔 보다는 미모사 초록잎사귀 오므라드는 모습만 많이 보게 됐다.
미모사가 활짝 피면 그림처럼 저렇게 아름다운 노란색으로 충만하게 될까?
지우세페 페노네 (1947~) Giuseppe Penone 잎의 표면 (Breathing the Shadow), 2000, 산화된 청동 가변설치
그늘을 들이마시다. 월계수 잎으로 채워진 200개의 철망과 '폐' 모양의 황금 브론즈.
이 곳에 들어서는 순간 월계수 향 가득한 오이피클을 한 입 베어문 느낌이었다.
시원한 바람이 어디선가 스며들어서 내 가슴속에 채워지는 듯한 기분과, 마른 월계수 향이 코끝을 자극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월계수 향이 점점 엷어지고 잎들이 마르면서 그 색이 변해 있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연스레 시간의 흐름이 연상되고, 노화할 수 밖에 없는 모든 사물의 운명이 느껴졌다.
황금색 청동으로 만들어진 작은 폐 모양 앞에 서 있노라니 지금 여기 서서 월계수 향기를 호흡하고있는 내 자신이 철저하게 느껴졌다.
살아있음이 현현하게 느껴졌다. 월계수 향기와 부드럽고 은은하게 스며드는 바람소리를 듣는 순간 내 오감이 활짝 열렸다.
이 공간에서 그렇게 나는 그늘을 오래도록 들이마셨다.
지우제페 페노네의 작품 '그늘을 들이마시다' 동영상으로 만날 수 있는 곳 ▼
http://www.tagstory.com/video/video_post.aspx?media_id=V000258390&feed=N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