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計 고육계(苦肉計) - 고통을 감수하고 살을 도려낸다. 글 박재희
사장이 아끼는 직원들을 회사 사정 때문에 해고하는 경우 가슴을 찢어 내는 아픔을 감수해야 한다. 비록 정리해고란 이름으로 행해지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전술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것도 일종의 생존 전술이다. 비록 한 솥 밥을 먹던 동료를 내 보내긴 하지만 그런 아픔을 통해서 결국 회사가 경쟁력을 회복하고 생존할 수 있다면 과감하게 인원조정을 해야 된다는 주장이 고육계(苦肉計)다. 영국의 어느 등산가가 바위에 낀 자신의 팔목을 스스로 자르고 생존에 성공한 것이나, 도마뱀이 자신의 꼬리를 포기하고 생존하는 것도 당장은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어떻게 하던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을 위한 고육계다. 고(苦)는 고통스럽다는 뜻이다. 육(肉)은 자신의 육신을 뜻한다. 비록 아프고 고통스럽지만 생존을 위해선 서슴지 않고 내 육신을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이다. 이 병법은 원래 자신에게 스스로 상처를 입혀 상대방을 안심시키고 기회를 엿보다가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전술로 사용되었다. 자신의 희생을 통하여 상대방의 신용을 획득하여 안심시키고 내가 원하는 정보를 믿게 하는 전술이다. 손자(孫子)와 오자서(伍子胥)를 기용하여 힘을 키웠던 오(吳)나라 왕 합려(闔閭)는 국왕을 시해하고 쿠데타를 통해서 대권을 잡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전 국왕의 태자인 경기(慶忌)라는 인물이 살아있다는 걱정거리가 있었다. 이때 오자서는 요리(要離)라는 인물을 천거하여 고육계를 세운다. 자객으로 자청한 요리는 자신의 처자식을 일부러 처형하고 자신을 경기에게 보내달라는 계획을 짜고 경기에게로 가서 투항하는 척 하면서 완전한 신임을 얻는다. 경기는 자신의 부인까지 잃고 찾아 온 요리에게 아무런 의심도 없이 함께 군대를 동원하여 오나라로 진격한다. 그러나 가는 도중 요리는 방심하고 있던 경기의 등을 찔러 고육계를 성공으로 이끈다.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까지 잃는 고통을 감수하여 결국 상대방을 속이고 목적을 이룬 이 이야기는 고육계의 가장 고전적인 예로 인용된다.
세상에 내 몸 어느 하나 상처 내서 기분 좋은 사람이 있겠는가? 그러나 생존이란 절체절명의 순간엔 결국 내 고통을 감내하고 조직의 생존을 위해 어느 하나를 포기하는 지도자의 결단은 비장함을 넘어서 따듯함까지도 엿 볼 수 있다. 아픔을 견뎌내고 내가 거느리는 저 직원들은 살려야겠다는 일념에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버릴 줄 아는 지도자가 참된 지도자인 것이다. 고통은 기쁨이다. 고통이 심해져 극에 다다르면 또 다른 기쁨이 찾아오듯이 내가 아끼는 소중한 것을 버리고 포기하였을 때 새로운 살이 돋아날 수 있는 것이다. 지나간 사업 아이템이 아무리 조직의 발전과 번영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해도 과감하게 포기하고 다른 아이템으로 바꿔 탈수 있는 용기도 이 고육계의 또 다른 측면이다. 세상엔 버려야 될 것과 버려서는 안 될 것이 있다. 버려서는 안 될 것은 내가 이끄는 이 사람들을 살려서 무사히 고향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야전 리더의 확신과 소신이다. 버려도 될 것은 그 목표를 위해서 그동안 사용하던 전술이다. 세상이 변하면 변하는 만큼 버릴 때 진정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고육계의 본질은 자신에 대한 희생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 자신의 목숨과 육체를 고통스럽지만 참아 견딜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 이 고육계의 본질을 깨달은 사람이다. 자신의 육체는 고통스럽지만 포기하면서까지 조직의 생존을 위한다는 고육계는 숭고함까지 보이는 생존전술이다.
* 매미는 죽음을 감수하는 탈피의 과정을 통하여 진정한 매미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
첫댓글 고육계, 인간의 욕심이 과감히 포기해야되는줄 알면서도 포기못하는 우매함을 범하는것 같습니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한 단면을 보는듯하여 쳐연하기까지한 좋은가르침 입니다. 마음속 이 갈등도 도려냄 좋으련만..
많으것을,생각하게하는군요.
적벽대전에서의 '황개'가 고육지계(주유의 계책)에 쓰여져서 수없는 곤장으로 다죽어가는 모습만이 고육계인 걸로 알고 있는 데 .... 좁은 견문을 넓혀 주셔서 고맙습니다. 오자서의 고육계 ...要離 ! 꼭 기억하겠습니다.
요리..要離..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지난번 대왕세종 드라마에서도 세종이 명나라 간섭때문에 장영실에게 고육계를 썼었지요. 맞나??
지금의 쌍용 회사가 고육계..실천중.. 쌍용이 다시 일어서길..
음~ 고육계 좋은 가르침이지만 전 왠지 어렵게 느껴지네요. 함께 잘~해 볼수는 없을까요...
사회생활 잘 하던 여자가 눈물을 머금고 훗날을 기약하며 전업주부의 길로 들어서는 것도 고육계라고 할 수 있을까요? ㅠ.ㅠ 가끔은 억울해서 눈물이 쬐금 나올때가 있어요~ㅇ 크는 아이 얼굴을 들여다 보면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길을 가련다 하고 위로를 합니다ㅋㅋ
지혜로운 리더만이 고육계를 적절한 시기에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