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상에 올랐던 우리 민족의 차 -백산차
버들잎 같고 맛과 향기가 그윽하다
음력 1월 1일은 조상에게 떡국과 차를 올리고 차례를 모시는 우리의 민속 명절이다. 이날 차례 상에는 술 대신 차가 오른다 하여 ‘차례’지낸다는 말이 전해오기도 한다. 차례에 차를 올렸다는 역사 기록은 『삼국유사』에서 볼 수 있다. 그 책 「가락국기」편에 “서기661년 신라 30대 법민왕께서 수로왕은 내 15대가 되므로 비록 나라는 망했다 해도 사당은 남았으니 제전을 받들되 당시의 제물과 똑같이 술 . 단술 .떡 . 밥 .차 과일 여섯 가지 제수품을 올려서 제사를 그르지 않도록 하라”는 내용이다.
수로왕 제사에 백산차가 올랐는지 녹차가 올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민족의 양대 명절인 설, 추석날 ‘차례 모신다’는 말과 함께 차를 올렸음이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 차례 상에 올렸던 차가 바로 우리 민족의 차 백산차(白山茶)였음을 『한국민속대백과사전』에서 기록하고 있다.
“백두산에 있는 석남과의 식물로 바위의 깨끗한 곳에서 자라며 잎은 버들잎 같고 맛과 향기가 있어 제사에 쓰기 좋다. 그 잎을 말려 차의 대용으로도 썼다. 잎을 비비면 향기로운 냄새가 난다. 『해동역사(海東繹史)』를 보면 우리나라에 차가 수입되기 전부터 이미 백산차가 있었다.”
1975년 북한에서 발간한 『조선식물지』에는 ‘여름 꽃피는 시기에 꽃과 잎을 따 그늘에 말린 것을 차 대용으로 사용한다. 꽃과 잎에서 기름을 뽑아 향료로 쓴다. 가지를 꺾어 방안이나 옷장에 두면 파리 . 모기 등 벌레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내용도 있다.
백산차, 박하향인 듯 솔향인 듯
백두산은 우리 민족의 영산이지만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산이다. 그러기에 우리의 고유한 차인 백산차는 우리 곁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그런데 이 백산차를 찾아낸 사람이 있다. 차인 남봉우 씨다. 남씨는 대학시절 차 공부를 하다 백산차의 기록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11년 전부터 백산차 찾는 일에 전념했다. 백두산에 쉽게 갈 수 없는 탓에 중국 영토를 넘다들었다. 그러다가 백두산에서 곰을 만나 생명의 위협을 받기도 했고 북한군을 만나 간담이 서늘한 적도 있었지만 20여 차례나 다닌 끝에 1996년 비로소 백산차 재현에 성공했다.
백산차를 찾아낸 남씨는 6월말에서 9월초까지 백두산에서 잎을 채취하여 이도백하에서 차를 만들었다. 백산차에 관심을 갖고 들인 공은 백두산 높이가 되고도 남을 거라며 너털웃음으로 그동안의 애환을 감추었다.
백산차 맛은 박하향과 솔향 그리고 밀감향이 어우러진 화하고 맑은 맛이다. 그의 집념으로 탄생된 백산차는 시중 백화점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최근에는 현미와 섞어서 숭늉처럼 구수하고 편하게 마실 수 있는 봉지차도 상품으로 나왔다.
『백두산 자원식물』에는 백산차의 효능을 “거담 제거, 만성 기관지염에 좋고 특히 여성들에게는 월경 불순과 불임증에 좋다”고 적고 있다.
※『이연자의 우리차, 우리꽃차』, 2005, 랜덤하우스중앙, pp.102~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