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오전수업이다. 오후에는 서울운동장에서 열리는 재일교포 북송반대 궐기대회에 참석한다. 시간 절약을 위해서 청소는 전체가 하고, 1시 30분까지 운동장에 집합하도록!」
「우리 반은 지난번 대통령 생일 행사 때 동원됐잖아요.」
「맞아요. 윤번제로 돌아간댔잖아요.」
「이 녀석들아, 잔소리 말어. 오늘은 1학년 전체 동원이야. 이 문제로 온 나라 시끌시끌한 거 알아 몰라?」
일본 정부는 지난 2월 13일 재일교포 북송을 정식으로 결정했고, 한국 정부는 즉각적인 반대의사 표명과 함께 전면적 저지운동을 선언했다. 그에 따라 반대 궐기대회가 전국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신문들은 거의 날마다 궐기대회 상황을 보고하면서 두 달째를 보내고 있었다.
서울운동장은 학생들로 새까맸다. 교복에 하얀 목깃을 단 절반 정도의 여학생들 때문에 그나마 숨통이 좀 트이고 있었다. 북괴 김일성 도당의 만행을 규탄하는 연설이 길게 이어지고, 다음 사람이 나와 또 비슷한 내용으로 외쳐대고, 남녀 학생대표가 나와서 북송 결사반대 웅변을 하고, 학생들은 너무 많이 들어온 똑같은 말에 몸들을 비비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앞에서부터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술렁거림은 물결치듯 빠르게 뒤로 퍼져나갔다.
「혈서를 썼다, 혈서!」
「청년학도 여러분, 세 명의 애국학생들이 북괴도당의 만행을 규탄하고 재일교포 북송을 결사반대하는 뜨거운 결의로 혈서를 썼습니다. 이 장한 용기와 투철한 애국심에 우리 다같이 열렬한 박수를 보냅시다아!」
「북괴도당은 북송 만행을 중단하라!」
「재일교포 강제북송 결사반대한다!」
「삼천만이 하나되어 북진통일 완수하자!」
확성기의 선창에 따라 학생들은 구호를 외쳤다. 그리고 늘 똑같이 만세삼창으로 궐기대회는 끝이 났다.
이승만 정권은 필요할 때마다 학생과 시민들을 동원하여 궐기대회, 규탄대회 등을 열게 하였습니다. 일본정부가 재일동포를 북한으로 보낸다는 결정을 했을 때도 예외없이 학생들을 동원하여 궐기대회를 열었고, 이런 대회는 한두 명이 혈서를 씀으로써 분위기를 고조시키며 끝나기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