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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질랜드 지 교회 탐방기
(2008. 3. 14- 3. 22 일 8박 9일)
크라이스처치. 더니든. 인버카고 . 넬슨 .파머스톤 노스. 웰링턴.
오클랜드 . 헤밀턴. 로토루아
뉴질랜드는 어떤 나라일까 ?
남태평양에 있는 섬나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 남동쪽 약 2,000km, 태즈먼해를 사이에 두고 있고
약 415만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는 나라
"천연 자연의 나라"라고 불리는 뉴질랜드는 넓게 펼쳐진 목초지와 원시적인 수풀림, 화산지대,
계곡과 협만이 어우러진 피오르드 지형 등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연 환경을 모두 갖추고 있다
뉴질랜드는 인구가 적지만 넓은 국토를 효과적으로 이용함으로써 고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하였고,
그 결과 국민생활이 매우 풍요롭다. 뉴질랜드에서 실시되고 있는 사회보장 제도 중에는
경제능력이 없는 국민을 고령자·미망인·유아·폐질자·광부·퇴직자·환자 등으로 나누어
일정한 금액을 주 단위로 지급하는 제도가 있다. 뉴질랜드의 도시발전은 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았는데,
캔터베리는 영국성공회 교도들이 설립하였고, 오타고는 스코틀랜드의 자유교회파가 발달시켰다.
뉴질랜드는 개척 초기부터 기독교를 기반으로 한 깨끗한 사회건설이 이상이었다.
1814년 런던에서 선교사가 와서 기독교 전파하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이곳은
뉴사우스웨일스(오스트레일리아)의 식민지로서, 고래와 바다표범 잡이의 기지로 이용되고 있었다.
영어, 마오리어를 쓰고 있는 나라이며 수도는 웰링턴이다
국교가 정해져 있지 않으나 기독교의 영향이 강하며, 다인종 국가 특성상 유대교 회당, 이슬람 사원,
힌두교 사원도 존재 영국성공회(24%), 장로교(18%), 카톨릭(15%)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장로교를 제외한 침례교, 감리교 등을 포함한다면 개신교가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그밖에 소수 종교가 있으며, 전 인구의 15%나 되는 마오리족 가운데 20%는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 선교회에서 오랜 시간 가슴에 품고 기도한 나라
뉴질랜드에 있는 지 교회들을 탐방하기 위해
한달 전부터 회원들이 릴레이로 아침 금식하며 준비를 했다
“하나님 우리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수 없음을 다시 한번 절감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이번 탐방을 통해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생각하고 돌보셨는지 분명히 깨닫고 알게 하소서”
준비 기도를 시작한 날부터 영적인 싸움이 시작되었다
사단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회원 13명이 모두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
나 또한 갑자기 통증이 시작되어 병원 응급실에 두 번이나 가는 일들이 벌어졌다
두려움이 왔다 이렇게 몸이 아파 긴 시간 다녀올수 있을까
주일날 선교회에 가보니 다른 회원들도
사단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몸이 아파서 또는 가정 환경으로 여러 가지 방면으로
힘들어 하면서도 강하게 이겨내는 회원들 모습을 통해 나 자신도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큰일을 이루실 하나님의 섭리가 깨달아졌다
그럼에도 사단은 끈질기게 공격을 했다 선교지 탐방 일주일을 남겨놓고
시 어머님께서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내 마음에 심한 갈등이 왔다
과연 떠나는게 하나님 뜻인가 아니면 나 자신이 스스로 좋아서 가는것일까?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세미한 음성을 듣기위해 말씀을 보며 무릎을 꿇고 기도에 힘썼다
하나님 아무래도 이번 탐방엔 빠져야 할것 같습니다
만약 어머님께서 어떤일이 생기면 저 어떻해요 세상적인 염려와 근심이 몰아쳤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계속 질문하며 기도하는중 하나님께서는 내게 새 힘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입술로 “갈수 있다 ” 하나님께서는 마지막에 역사하신다 라고 선포하게 하셨다
3일동안 우리는 기도회를 가졌다
연이어 강한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무장했다 3일째
이성호 목사님을 통한 설교말씀(선교는 영적전쟁이다)를 듣고 통성으로 뜨겁게 기도하며
다시한번 재 무장을 할수 있었다
뜻밖에도 평안함이 임했다 그날 밤 집에 오니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말했다 내일 어머니 퇴원하신다고 하네
할렐루야 .....
새털처럼 가벼움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다
드디어 2008년 3월14일 13명의 십자가 군병들은 2시30분에 일본 오사카 공항을 향해 힘차게 날개를 폈다
예수님의 심장을 가지고 떠나는 선교지 탐방
비 내리는 오사카 공항에 1시간 20분을 소요해서 내렸다 차분한 공항분위기가 낯설지 않음에 감사하고 1
1시간의 긴 여정을 위해 뉴질랜드 항공에 몸을 실었다
잠이 오지않아 뒤척이다가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다가 눈을 감았는데 창문을 통해 엷은 빛이 들어온다
창밖에 새벽이 동트고 있었다 붉게 물든 바다 그리고 하늘.
하나님의 창조 섭리와 아름다움을 맘속으로 찬양하며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다
조금후에 뉴질랜드를 보게 되리라 생각하니 오늘 내가 살아있음에 저절로 감사가 나왔다
선교회 회원들도 다 나처럼 잠을 못이루고 뒤척이고 있다
처음 밟아보는 땅 언젠가 조용기 목사님께서 뉴질랜드를 지상낙원 에덴동산이라고 설교 중에 말쑴 하셨다
난 그때 꼭 가보고 싶은 나라 뉴질랜드 맘속으로 되뇌였는데
이렇게 주님의 이름으로 이땅을 밟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나의 작은 소원을 이루어 주신것이다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 그 땅에서는 어떤 향기가 날까 ? 나의 인생여정의 한페이지가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까 ? 설레임과 그땅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내 맘 가득 전해져 옴을 느꼈다
첫 방문지인 크라이스 처치는 캔터베리 대평원을 배경으로 곡물·양모·농기구의 거래가 활발하고,
고무·식품 등의 공업도 발달되어 있고 1850년 영국에서 건너온 이주자들이 외항 리틀턴에 거주하기
시작한 뒤 점차 도시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장대한 교회와 캔터베리대학교 및 박물관 등이 중후한
영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크라이스 처치에 처음 발을 내딛었다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들이 여유있어 보인다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이국인에게도 아침인사를 나누어 주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조상호 목사님 그리고 사모님 그리고 장로님이 공항에 내리니 기다리고 계셨다
크라이스 처치에서 첫날은 헌신적인 장로님 댁에서 묵었다
다음날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찬양이 뜨거운 교회 성도들의 얼굴엔 성령이 충만하고 고난주간을 맞이한 교회 분위기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께 대한 감사로 넘치고 있었다
예배를 드린후 성도님들과 친교의 애찬식을 가졌다 삥 둘러서서
서로를 축복하며 서로를 향해 손을 내밀고 야곱의 축복 찬양을 드리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지체임을 다시금 느끼며 그동안 교회를 위해 중보기도 했던 교회 여서 인지
한 성령안에서 함께 함이어서 인지 가슴 가득 벅찬 감동이 물결쳐왔다
주님 !!
크라이스 처치 교회에 물이 바다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 차기를 소원하며
이교회를 향하신 하나님 뜻이 온전히 이루어 지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우리 선교지 탐방 팀들에게 깨달음을 주시고 우리의 방문을 통해 교회가 회복되고
큰힘이 되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다
교회를 나와 우리 일행은 신실하신 장로님 부부의 헌신적인 섬김을 통해
고속도로를 몇시간 달려
더니든 순복음 교회에 저녁 7시쯤 도착했다
더니든 순복음 교회는 교회건물을 임대해서 현지교회와 같이 쓰고 계셨다
사진을 보면서 기도는 했지만 얼굴을 대면하는건 처음이었기에 다소 어색하리라 생각들었는데
막상 만나 뵙고 보니 전혀 낯설지 않고 오래전부터 만나왔던 형제애가 느껴졌다
한 성령안에서 지체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교회에서 우리는 뜨겁게 기도했다
성전에 앉으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새벽 제단을 쌓는다고 하셨는데
그래서인지 기도하시는 목사님에게서 영적인 힘이 느껴졌다 교회 성전 안의 모습은 성가대석이
높은 곳에 있고 강대상은 낮은 곳에 있어 한국교회들과는 다른 모습에 조금은 낯선 느낌이었다
더니든에는 대학이 3개가 있다고 한다
젊은 청년들이 많이 모이고 유학생들도 비교적 많이 온다는 이곳 도시가 제일 먼저 형성된 곳이라 한다
그러나 계속 머므르는 곳이 아니고 왔다가 유학 마치고 떠나는 곳이기에 성도수가 많지가 않았다
목사님께서 이도시를 변화 시키는게 기도제목이고 나아가 세계복음화를 위해 더니든이
쓰임받기 원하며 교회가 주님의 기쁨되는 것이 올해 목표라고 하셨다
또 심각한건 이곳에 있던 교회들이 술집이 되어 팔렸고 그일로 인해 교회가 사단의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안타까워 하셨다
우리는 교회에서 뜨겁게 기도로 무장했다 서로 손을 맞잡고 교회 부흥을 위해
더니든 교회를 통해 뉴질랜드 뿐 아니라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도록 기도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과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란” 말씀을 붙들고 여호와의 영광이 온땅 가득해지기를 기도했다
기도로 무장한 후에 최근 교회가 술집으로 변한 몽키빠에 갔다
예전에 교회였던 자리가 술집 간판이 붙어있다
그곳을 보니 가슴이 울컥거렸다 분노가 솟아났다 여기저기 십자가가 그려져 있는 흔적이 있다
다시금 교회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후 우리는 목사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세 군대를 갔는데 그곳은 목사님께서 십자가를 꽂고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는 곳이라고 소개를 하셨다
그곳에서 우리들은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었다 땅 밟기를 하며 주님의 나라가 임하시기를
주의 보혈로 이곳이 회복되기를 목소리 높혀 부르짖었다
우리는 더니든을 뒤로하고 다음날 3시간 동안 고속도로를 달려 인버카고에 도착했다
이정운 목사님 그리고 성도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얼굴을 처음뵈었지만 더니든 교회에서와 같이 금방 친숙해 졌다
주변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넓게 펼쳐진 들판 녹색 들판 끝없이 펼쳐진 목장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떼들 간간히 보이는 젖소들의 행진 들이 눈길을 끌었다
시편 23편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가 떠올랐다
목자이신 주님을 묵상했다
이정운 목사님께서는 지치신 모습이셨다 이곳은 여러 가지 환경적 어려움으로 인해
교민들이 오기 힘든 곳이라 한다
목사님은 자녀둘이 있는데 경제적으로 생활이 많이 어려워 보이셨다 좌담회를 갖고 교회의
현실적인 문제들과 비젼과 기도제목을 나누었다 영주권 문제를 위해 이민의 문이 열려지기를 위해 기도했다
인버카고는 알려진 곳이 아니기에 초. 중고 유학생들이 별로 없고 교인수가 적어 경제적 어려움이
심해보였고 물가가 비싸고 한국 식품점도 없다고 했다
선교는 버리는 것이라고 목사님은 말씀 하셨다 목소리도 적고 몸도 가냘퍼 보였다
우리 일행은 목사님 가정과 교회를 위해
뜨겁게 중보를 하며 도울수 있는길을 모색했다
저녁에는 땅 밟기를 했다 땅끝 마을에 가서 가장 높은곳에 올라 하늘을 보며 별을 보았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지만 주님께 춤을 추며 찬양하며 기도를 드렸다
이 지역 복음화를 위해
교회 부흥을 위해 새 힘을 달라고 목청껏 외쳤다 .
목사님께서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다고 하시면서 오랜만에 성령의 강한 임재를 체험했다고 하셨다
많은 은혜를 체험하고 우리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숙소로 왔다
은혜가 많으면 사탄도 그냥 있지를 않는다
우리 회원들간에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소한 것들임에도 서로 불편해 하는 일들이 생기고 알게 모르게
마음들이 힘들어 하는것이 보였다 감기로 몸을 힘들게 하는 일들도 생겼다
그러나 우리 회원들은 알았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지체임을 깨닫고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섬김을 나누지 못한다면
아무리 화려하게 외적으로 풍성한 결실을 맺고 박수를 받으며 칭찬을 받고 지교회 탐방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해도
그것은 주님과는 무관한 주님이 받으시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알고 있음에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들을 살피며 금식하며 영적인 싸움에 임했다
고난주간이라 특별히 새벽기도를 쉬지 않았다
계속 이어지는 강행군 속에서도 한사람도 지치거나 힘들어 하지 않고 감사하며 나갔다
다음날 우리일행은 웰링턴으로 향했고 부회장님과 총무님은 넬슨으로 향했다
프린터를 설치해 드리기 위해서다
남섬의 북서쪽 가장자리에 위치한 넬슨은 1840년대에 뉴질랜드회사에 의한 유럽인의 유입과 함께
개발되기 시작했다고한다. 이 지역은 뉴질랜드 남섬에서 가장 일조량이 많은 곳일 뿐만 아니라,
황금 빛 해변, 고급 포도주 양조장, 국립공원 등으로도 유명하다. 부회장님과 총무님 말씀에 의하면
넬슨도 경제적인 사정으로 주님의 사역에 많이 힘들어 하는곳이라고 하셨다
비록 가서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 일행은 넬슨 지역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뉴질랜드의 수도인 웰링턴은 북섬의 남쪽 끝에 있으며, 바다를 끼고 도시가 형성된 아름다운 곳이다
10세기에 폴리네시아의 쿠페가 발견하였으며, 1839년 영국인이 시가를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지역은 좁았으나 해상교통편이 좋기 때문에 1865년 오클랜드를 대신하여 수도가 되었다.
뉴질랜드 최대의 무역항으로서 양모·육류·낙농제품 등의 수출이 활발하고
방직·기계·화학·금속·인쇄·식품가구·신발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다.
그러나 지형상 도시발달이 미약한 것이 큰 결점이며 수도로서는 비교적 인구가 적다.
웰링턴 교회는
출석교인중 성인75-80명 정도 이고
청년 중고등부가 부흥되어 찬양예배가 활성화되어 성령이 강하게 역사하는 교회였다
우리 일행을 맞이하여 수요예배를 하루 앞당겨 화요일에 드렸다
교회건물은 한국교민회관을 빌어쓰고 있었다 오후에 어제 넬슨으로 향했던 부회장님과 총무님이 합류했다
저녁 예배에 채수봉 회장님 간증과 율동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렸고 기도회를 인도하여 은혜받는
시간들을 가졌다
저녁에는 한 지체가 가방을 잃어버려 서로를 당황케 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
긴장하기도 했다
우리는 꿇어 엎드려 기도했다 회개기도를 드렸다 주님만 높혀 드리지 못하고 우리가 나타나지 않았나
스스로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졌다 갈릴리 바다에서 주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주님이 잠자던 일이
기억나고 풍랑을 만났던 일들이 떠올랐다 혹여 우리가 지금 선교지 탐방을 하면서 각자의 모습들이
주님을 외면한 모습이지 않나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었다
웰링턴 교회에서 성도들과 나누었던 교제는 가슴을 한없이 따뜻하게 해주었다
가지고간 프린터기를 설치해 드리고 성도들과 함께한 시간들은 영원히 성령안에서 아름답게 증거되며
중보기도를 통해 더욱 성숙된 만남으로 이어지리라
3월 19일 우리 일행은 또다시 나뉘어 졌다
회장님과 총무님은 웰링턴 교회의 박무신 목사님과 파머스톤 노스로 향했고 우리 일행은 오클랜드로 향했다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하자 김지헌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기다리고 계셨다 오클랜드는
1840년 와이터마타 해안의 백인 천막취락이 기원이며, 시 이름의 유래가 된 인도 총독 오클랜드에 의하여
도시의 바탕이 이루어졌다고한다 개척 초기에는 북섬이 그 중심이 되어 있었으므로
교통의 요지를 이루는 이곳도 급속한 발전을 보였다. 이 도시엔 약 133만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바로 기도원에 숙소를 정하고 그곳에서 식사를 준비한 오클랜드 교회 지체들과
도착 예배를 드렸다 그곳에서 헌신하는 집사님 부부 그리고 백혈병으로 투병중이지만 교회를 위해
헌신하는 집사님을 위해 여호와 라파 치료의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치료해 주실것을 간구했다
오클랜드 도시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나무들이 둥글 둥글하다 이 곳 사람들도 둥글 둥글 여유가 있어 인다
집에는 하얀 커텐이 드리워져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 오클랜드 항에 정착해 있는 요트들이 눈길을 끌었다
세계 가장 많은 요트가 이곳에 있다고 한다
깨끗한 도시 오클랜드
교회는 뉴질랜드 교회들중 가장 규모가 컸다
2만평의 땅에 성전 부지를 구입해서 2010년에 성전이 완공될수 있도록 기도중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곳에 들려 손을 맞잡고 꼭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기도중 솔로몬이 성전 건축하고
일천 번제를 드렸던 말씀이 생각났다 그곳에서 기도하는 자들마다 치료가 임하고 문제가 해결받고
기적을 체험하는 곳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김지헌 목사님과 성도들에게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이 떠나지 않는 은혜의 전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다음날 새벽 예배를 드렸다
부흥이 보인다 청년들이 뜨겁게 기도하며 문화 사역을 하는 교회
주님이 함께하심을 느낀다 부흥이 오고있다
고난주간을 맞이해서 이곳 뉴질랜드 오클랜드 순복음 교회에서 새벽 예배를 드림에
큰 은혜의 보좌 앞에서 감사가 저절로 나왔다
예배 후 우리 일행은 다시 기도원으로 왔는데 오는 길에 하늘을 보니 별이 한아름 쏟아져 내린다
꽃 향기와 잔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맑고 신선한 풀냄새가 코를 찌른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이란 찬양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하늘을 향해 찬양을 드렸다
창조주 하나님께 피조물인 우리가 무엇을 할수 있겠는가 ? 오직 그분의
신실하심 그리고 자비로움과 오래 참으심과 십자가 사랑을 날마다 감사하며 찬양하는일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
우리 일행은 아침을 먹고 김지헌 목사님과 교회 목사님 한분과 성도님 한분이 운전을 해주셔서
헤밀턴 교회로 향했다
오클랜드에서 1시간 30분을 달려 헤밀턴 교회에 도착
성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목사님께서는 사모님과 함께 우리를 맞이해 주셨는데 비교적 평온해 보이셨다
성도들도 힘이 있어보였다 성도수는 45명쯤 된다고 하셨다
2008년 목표는 64명 주일성수 하는 교회
영적으로 가장 영향력 끼치는 교회가 되게 하소서
뉴질랜드가 한국인들에게 이민의 문이 활짝 열려지도록
교회들마다 좋은 일꾼들 보내주시도록 기도해 달라고 하셨다
같이 예배 드린후 좌담회를 가졌다
교회는 현지인과 같이 쓰고 있었고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부흥에 대한 열정과 비젼은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성도들도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고 교회도 어렵다고 한다
시드니 교회에서 일부 지원이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고 작년 7월부터 자립을 선포하고 자립 하기위해
힘쓰고 있다고 한다
전도는 구역예배를 통해 하고 있는데 불신자들을 초청해서 복음을 증거하고 같이 친교의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캠퍼스 복음화를 위해 또 노방 전도를 가지며 추수감사절에는 천국 잔치를 배설하고 생활전도에
초점을 두고 전도에 힘쓴다고 하셨다
성 총무님이 프린터를 설치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흐믓해 하시는 목사님
얼굴 가득 미소가 번져나오는 모습을 살짝 사진에 담아보았다
오세아니아 선교회 지원으로 인해 힘이 솟고 용기가 생기고 위로가 된다는 말씀과 함께
성도들이 읽을 신앙서적이 많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해 주셨다
사모님의 짧은 간증을 들으며 오세아니아 선교회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할지를 깨달았다
시간 관계상 우리는 오후에 그곳을 떠났다
로토루아에 오기 전부터 머리가 쥐어짜듯이 아픔을 느꼈다
사단의 공격 그 지역에 흐르는 악한 영들의 장난이 시작된 것을 느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계속 기도를 쉬지 않았다
로토루아에 도착해서 교회에서 기도회를 하는데 교회가 흔들 했다
지진이 온것이다 미진이긴 했지만 로토루아는 뉴질랜드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화산이 끓고
유황온천으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며 지진이 가끔 일어난다고 했다 인구는 약 7만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처음 이곳에 교회가 세워졌을때 순복음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기존 교회들의 핍박도 있었고 방언을 하는 것도 핍박의 원인이었다고 한다
영적으로 억눌림이 심한 곳이기도 했다
주일예배를 오후 1시 오후 6시에 드린다고 한다 성도들 직업 때문에 시간이 안되어서
예배 시간이 늦춰졌다고 한다 어른은 11명 정도 예배에 참석한다고 한다
한인가정이 101가정이었는데 지금은 다 돌아가고 40가정이 남았다고 한다
이곳엔 교민이 1200명쯤 살고 있는데 교회는 8곳이 있고 장로교회. 침례교회 카톨릭이 있다
몰몬교 위트니스티 .여호와 증인들 이단들의 교회도 많이 있는 곳이기에 영적 싸움이 심한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까 ? 머리가 지끈거렸다
키위교회를 임대해서 쓰고 있는데 예배드림에는 어려움은 없다고 하셨다
심각한 문제는 관광업이 사양길에 들어 교민들이 빠져나가기 때문에
교회에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기도제목은
성도들의 성령충만 .교회부흥 .키위교회들에게 자극주고 영향력 끼칠수 있도록..
키위들 교회가 지금 다 죽었다고 한다 키위교회들도 다시 회복되기를 소원하는 기도제목이 있었다
오후에 잠깐 로토루아 간헐천에 다녀왔다 마우리족의 민속 박물관을 찾아 이 지역에 흐르는 영적인
흐름을 느낄수가 있었다
로토루아 부근은 아직도 화산활동이 활발하여, 골짜기마다 지열지대가 형성되어 김이 무럭무럭 솟아
오르며, 온천과 간헐천이 많이 있다. 또한, 지난 날의 화산활동으로 조성된 많은 화산호와 한가로운
목장풍경 등 풍부한 자연경관이 펼쳐진다. 게다가 마오리족이 많이 살고 그들의 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어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우리는 간헐천을 다녀왔다
그곳에서 마지막 때에 유황불로 심판하신다는 계시록 말씀이 떠올랐다 폼페이의 최후의 심판이 떠올랐다
저녁에는 화장님과 총무님이 목사님 사택에 들러 프린터 설치를 해드렸다
사모님은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생활전선에 나가 일을 하시고 밤늦게 집에 도착하셨는데
기도중에 많은 눈물을 흘리셨다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가슴이 메어왔다
복음을 위해 이 낯선 곳에 와서 복음 때문에 고생하시는구나 생각하니 마음이 컬컬했다
밤에도 침대가 약간 흔들리는 미진을 두 번이나 경험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니 새소리가 들린다
묵상을 하며 땅 밟기를 했다 주님 이 땅을 회복하소서
나무들이 집을 둘러싸고 있어 주택들이 숲속에 있는것같다
잘 정리된 뜰 그리고 주변
유황 냄새가 진하게 나며 멀리 보이는 곳에 김이 모락 모락 난다
아침에 금식을 선포했는데 그곳에 한 집사님이 일식집을 하시는데 사업이 안되어 팔려고 내놓았으나
팔리지도 않고 많은 어려움을 격고 계시는데 우리를 대접하신다고 한다
우리는 그분의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야키 야키 식당 이었다
신 집사님은 이곳에 와서 남편을 잃고 동생부부와 같이 식당을 운영하는데 헌신 적이었다
식당 중간 공간을 기도처로 내놓으시고 그곳에서 철야 예배 새벽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우리 일행은 그곳으로 갔다
반갑게 맞아주시는 집사님의 안내를 받아 아침식사를 하고 우린 기도처로 향했다
기도처에서 기도회를 가지는데 나에게 뜨거운 성령의 역사가 임했다
기도중에 갑자기 신 집사님을 끌어안고 기도하라는 마음이 생겼다
집사님 곁으로 가서 그분을 끌어 안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집사님 우리인간은 인간의 마음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속사정을 아십니다 라며 기도하는데
얼마나 통곡을 하시는지 하나님께서 그분의 마음을 만지시는게 느껴졌고
목사님과 우리 회원들이 집사님을 둘러싸고 뜨겁게 통곡하며 기도하는 성령의 강한 임재를 체험할수 있었다
성령의 불도가니였다 하나님께서 로토루아에 우리를 부르신 뜻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수 있는 시간이었다
은혜의 강물이 넘쳤다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오클랜드로 향했다
오클랜드 순복음 교회에서 성 금요일 밤을 맞았다
십자가 고난을 받으신 주님 못자국 난 손과 발
나의 죄 때문에 주님이 고통당하신 십자가
처절하게 인간의 몸으로서 당하신 고통 그 고통속에 내가 있음을 바라보며
회개의 눈물을 흘렸다 아니 통곡했다
그분을 바라보면서 나의 부족하고 연약함에
주님만을 바라보아야할 내가 주님을 떠나 행한 모든 죄들이 밀려와 눈물로 예배를 드렸다
우리 팀들이 나가 오늘을 위한 기도 찬양을 드리고
회장님 간증 그리고 율동팀의 얼마나 아프셨나 율동이 이어졌고 청년팀들의
주님의 십자가 고난을 청년들이 성극을 통해 재현해 보였다
지은 죄를 글로 써서 태워버리는 은혜로운 시간도 가졌다
우리를 이곳에 보내신 하나님의뜻이 무엇인가 ? 주님의 음성을 듣기위해
몸부림친 성 금요일 저녁 예배였다
8박 9일의 일정을 마치고 성도들의 배웅속에 오클랜드 공항을 떠나 비행기에 올랐다
긴박한 일정 그 속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을 강하게 느꼈다
몸이 피로하지도 않았고 기도하면 새힘을 주셨고
가는 곳마다 위로와 성령의 강한 임재를 체험할수 있었다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가듯이 우리는 새 힘으로 걸을수 있었고 비행기를 탈수 있었고
교회들을 탐방할수 있었다
우리가 가는 발걸음마다
교회와 목사님께 위로와 평안을 끼칠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창을 통해 구름위를 날고 있는 모습을 보고있다
참으로 아름답다 햇살이 가득 들어와 따스하게 비추인다 기류가 불안정하다
그러나 두려워 하지 않을것은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8박 9일동안 몇몇 회원들이 사탄의 공격으로 힘들어 하기도 했지만
영적 싸움에서 우리는 결국 승리했다
우리가 마음으로 계획하고 떠났을지라도 주님 그분이 함께 하셨음을 믿음으로 고백한다
기류가 불안해서 많은 흔들림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흔들림 속에서도
그분은 함께 계셨고 무사히 일본에 도착해서 다시 대한항공 편으로 인천 공항에 귀국할수 있었다
참으로 감사할뿐이다
8박 9일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뉴질랜드 지교회 탐방은 나에게 참으로 더없이
소중한 시간이었다 뉴질랜드를 품고 지교회들을 품고 중보하며 선교할수 있도록
나의 눈을 열어주신 하나님 그들의 문화를 보았고 지역들에 흐르고 있는 영적인 흐름 상태를 알았다
이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부흥을 위해 무엇을 묶고 풀어야 하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강한 영성을 갖지 못하면 선교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확신아래 기도를 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해보았다
우리가 이번 선교지 탐방을 통해 할수 있는것은 오직 “ 감사 ”뿐이다 그분이 일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만 그분의 도구였음을 깨닫는다
일정을 다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그 문제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꼈고 보았고 체험할수 있었다 선교사님들의 고충을 알수 있었고
교회들마다 처해있는 상황들을 볼수 있었다
선교지 탐방에 대한 점수를 받는다면 어떤 점수가 나올까 과연
하나님의 시각에서 몇점을 받을수 있을까 ?
우리들의 관점에서 점수를 메길순 없다 그분만이 알고 계시리라
자신에게 익숙한것 자신이 기대하는 것으로 사역하다보면 사람의 일만 보게된다
하지만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기대를 버리고 하나님을 구하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본다
하나님의 평가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다르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선 안된다
주님만을 자랑하는 우리 오세아니아 선교회가 되기를 기도하며 선교지 탐방에 마침표를 찍어본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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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음에와서 다시봐야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