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벗어나 남양주와 팔당을 지나 양수리에서 청평 방면으로 길을 타다보면 양평군 서종면이 나온다. 그 곳 북한강가의 푸른 잔디밭, 서종문화체육공원에서는 지난 8월 21일 서종면 우리동네음악회의 50번째 음악회를 기념하는 제 3회 북한강 주말 음악축제가 있었다. 21일 저녁의 음악축제는 지역 문화모임단체인 '서종사람들'과 서종주민자치위원회, 서종문화센터가 주최하는 음악회로 지난 8월 7일(48회)과 14일(59회)에 걸쳐 3주차로 진행된 동 음악회의 3회 째 공연이다.
서종면의 우리동네음악회는 2000년 4월 서종초등학교에서 열린 동성 틴 오비 남성합창단의 공연을 1회로 그 무대가 꾸준히 이어져 마침내 올해 그 50회 연주회를 맞았다. 지역의 소소한 행사로서는 뜻밖이랄 정도로 의욕적인 문화행사로 발전해온 서종면 우리동네음악회는 지난 4년여의 기간동안 모스크바 국립남성합창단, 아이리쉬 체임버 오케스트라, 모나코왕실소년합창단, 도깨비스톰, 카로스 앙상블, 서울 목관5중주단, 한국예술종합학교 현악 앙상블 조이 오브 스트링스등을 초빙하는 적극적인 기획으로 주목을 받았다.
2000년에 시작된 문화모임 서종사람들은 매월 1회의 공연을 열고 매년 전시회를 기획함으로써 지역주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지역문화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노력해온 서종면 인근의 문화관계자들을 중심으로 운영되어온 순수 민간 문화모임으로, 이후 서종사람들의 꾸준하고 정력적인 문화활동은 인근 타 지역으로의 문화활동 확산의 동기가 되는 등 지역 문화 활성화의 한 촉매가 되었다. (ex. 양평읍 문화모임 열린터 설립)
이후 서종사람들이 기획하는 음악회는 중앙무대로부터 소외된 지역주민의 문화욕구의 충족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생활 속의 문화 교육과 조기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전 주민이 참여 가능한(아울러 인근 주민을 아우르는) 공연 프로그램을 기획함으로써 지역주민의 문화이해 향상과 교양(敎養)으로써의 어린이와 청소년층의 예술소양 함양에 기여하고자 정례행사로 기획-공연-발전되어왔음이다.
필자가 관람한 21일의 공연은 브라스 앙상블의 무대였는데, 공연무대에 선 프라하 브라스 앙상블(The Prague Brass Ensemble)은 1979년 트롬본의 Jan Votava(現 Prague Brass Ensemble's artistic director)가 프렌치 호른의 Jiri Lisy와 함께 ‘The Brass Quintet of Prague Conservatory Students/프라하 음악원 학생 브라스 오중주단'를 결성한 뒤 Frantisek Bilek, Jan Hasenohrl, Jiri Susicky가 후발멤버로 합류, 그 창단 첫해에 듀섹 베르트람카(Duseks Bertramka) 컨테스트에서 1등상을 수상하면서 국제적인 주목을 끌기 시작한 동유럽 단체이다. 체코 프라하 브라스 앙상블은 8월 12일부터 제주도에서 열린 제주국제관악제에 참가하기 위해 내한한 것으로 보이는데, 해외 유명단체가 내한했을 때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들을 공연무대로 이끌어들이는 섭외력을 발휘한 주최측의 기획을 높이 사야할 것이다.
또한 실제로 음악회가 열리기 시작한지 4년여가 지나면서 차츰 소문이 나기 시작한 행사는 이제 지역주민들에 의해서만 치뤄지는 조촐한 무대의 규모를 벗어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23일 당일 공연의 경우 넓은 주차장을 가득 메운 관람객들이 타고 온 차량들 상당수가 서울 번호판을 달고 있어서, 그간 공연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관람객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널리 퍼져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8월의 북한강 주말 음악축제가 명실상부한 수도권 배후의 여름음악축제로 자리를 잡아가는 매우 긍정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우선 공연과 관련해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지적해야겠다. 당일 현장에서 배포한 체코 프라하 브라스 앙상블에 관한 세 장짜리 안내문은 몇 가지 상당한 오류를 담고 있었다.
우선 프로그램은 청중들에게 ‘프라하 브라스 앙상블은 1980, 1981년 독일 바이레우스의 세계적인 페스티벌인 ‘유전드 페스트스피에트레펜’에서 연주를 하였으며-’라고 연주 단체를 소개하였는데, ‘페스트스피에트레펜’이라는 생전 처음 듣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공연을 기획한 서종사람들측에서 ‘Festspieltreffen’을 ‘Festspietreffen’로 오타를 내버린 제주관악제의 보도자료를 아무런 사전 검토 없이 그대로 가져다 제작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참고자료: http://www.chejusbf.or.kr/english/festval/team_09.html)
80년 당시 프라하 앙상블이 독일에서 정식무대로 데뷔한 페스티발의 정확한 명칭은 Internationales Jugend-Festspieltreffen Bayreuth, Festival ju“nger Kunstler Bayreuth/(영어로는 Young Artists' Festival Bayreuth)였다. 핀란드의 작곡가 얀 시벨리우스의 후원으로 1950년에 시작된 바이로이트 청년 음악가 축제는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외손자인 볼프강 바그너(프란츠 리스트의 외증손)를 비롯, 요셉 카일베르트/Joseph Keilberth,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등의 후원으로 현재까지 꾸준히 개최되고 있는 음악축제이다.(프라하 브라스 앙상블의 나이 지긋한 모습을 본 분들은 ‘아니, 저 수염 덥수룩한 아저씨들이 무슨 청년음악제를?’이라고 반문하시겠지만, 그들도 25년전에는 꽃띠 미소년들이었음을 잊지 말것!)
또한 프로그램은 Bayreuth를 ‘바이레우스’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 역시 생전 처음 듣는 명칭으로 바이레우스가 무엇인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잠시 뒤 바이레우스가 바이로이트의 오기(誤記)라는 것을 알고는 아하, 고개를 끄떡 하지 않을 수 없었다.
1부 공연의 3번째 프로그램, ‘주 예수를 찬양하라(Laudetur Jesus)'의 작곡가 Cernohorsky, Bohuslav Matej(c.1684-c.1742)의 이름 역시 잘못 소개되어 있었으며, 2부의 구 소련 작곡가 Aram llich Hachaturian을 Chaeaturjan으로 소개한 것은 하차투리안의 체코식 표기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루지야 공화국 태생의 옛 소련 작곡가의 작품을 한국에서 공연하면서 그의 이름을 체코식으로 표기하는 것이 공연진행에 무슨 도움이 될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차피 키릴문자의 이름을 영어 알파벳으로 옮긴 것이니 표기에 문제가 없을 수 없는 것이지만, 역시 주최측이 프라하 브라스 앙상블로부터 자신들의 모국어로 된 프로그램을 건네 받은 뒤 아무런 수정없이 복사- 배포한 것으로 보인다. 조금만 더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국제적으로 통용되기로는 Georg Ignaz Linek(1725-1791)인 작곡가의 이름을 Jiri Ignac Linek으로 표기한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 현장에서 배부한 프로그램은 청중들의 음악적 이해를 도와줄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데 그다지 성실한 자료가 되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찌보면 사소한 일이라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이지만 당일 공연에 참가했던 어린 학생들이 집에 돌아가 그날의 일기와 음악회 감상문에 현장 프로그램의 오자 오역을 그대로 옮겨 적을 일을 생각하면 그것은 결코 간단한 실수가 아니었다. ‘Preis der Europa Stadt Passau’를 ‘프레이 데 유럽 스타드트 파싸우‘로 표기한 데에 이르러서는 정말 공연관계자가 프로그램을 한 번만 사전검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강하게 남았다.
공연의 입장료와 관련해 당일 현장에서는 중학생 이하 어린이 500원, 성인 1천 원의 입장료를 받고 있었는데, 서종사람들 사무국장 이근명씨(서양화가)는 이를 “유료관람문화를 심어주려는 의도”라고 설명하였다. 초대권 문화로 얼룩진 공연행태를 -500원, 1000원의 입장료가 공연수익에 큰 도움이 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바로잡고 긍정적인 공연문화의 정착을 유도하는 작지만 타당한 계획이었다.
음악축제는 50회 기념 음악회을 맞아 50명의 청중을 추첨해 '서종사람들' 회원인 김용만씨의 소설책과, 황명걸씨의 시집, 민정기, 김인순씨등의 그림부채와 더덕 등 농산물을 선물로 증정하였는데, 이 역시 대도시의 세련된 공연무대에서는 볼 수 없는 지역축제의 훈훈한 정이 살아 있는 보기 좋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서종면 우리동네음악회의 가장 보기 좋았던 모습은 무대 위에 있지 않았다. 나는 내가 앉았던 자리 옆에 돗자리를 펴놓고는 손자와 함께 앉아 공연을 관람하던 시골 할머니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남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는 것은 분명히 대단한 실례였지만, 그 얼굴 만면에 즐거운 빛을 띄고는 뚫어져라 공연무대에 집중하던 할머니는 공연보다도 오히려 그 싱글벙글하는 표정을 신기해하며 구경하던 나를 도무지 알아채지 못한 채 공연에 집중하고 있었다. 할머니에게는 그것이 아마 올 여름 최고의 경험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부는 공연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전하며 프라하 브라스 앙상블이 한참 공연중인데도 잔디밭에서 공을 차며 뛰놀던 아이들을 통제하지 못한 주최측의 준비성 미비와 현장 통제의 아쉬움을 토로할 것이다. 또한 머플러를 띄고 굉음을 내며 질주하던 폭주족 차량의 소음이 공연을 방해하던 것도 지적할 것이다. (이 점 확실히 지역 교통경찰측의 협조를 구해 짧은 공연 시간 동안만이라도 주변의 도로를 통제해 차량의 저속통과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또한 세련된 서울의 관객들은 한 작품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공연 에티켓 없이 매 악장마다 요란하게 박수를 쳐대던 관객들의 자질을 시비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박수는 누가 시켜서 억지로 강제한 것이 아니었고, 치기 싫은 박수를 마지못해 치는 것도 아니었다. 별이 보이는 북한 강가의 파란 밤 하늘이 좋아서, 촉촉히 젖은 잔디밭의 노천 무대가 좋아서, 프라하 브라스 앙상블의 공연을 구경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이 즐거워서 손바닥이 부르터라 두드려댄, 즐겁고 행복한 관람객들의 박수였다. 비록 연주의 맥(脈)을 끊는 것이기도 했지만, 프라하 브라스 앙상블도 그런 박수를 받는 것이 싫지만은 않은 표정이었다.
분명 당일의 공연을 관람한 관람객들 중에는 프라하 브라스 앙상블이 먼 이국 땅에 와서 고생을 한다며 관객들의 에티켓 부족을(확실히 공연 도중 공을 차고 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리 보기 좋은 것만은 아니엇다) 아쉬워한 분들도 계시겠지만, 공연은 떠들썩하고 밝은 분위기의 건전한 시골 ‘야외’ 음악회였다.
총평하자면; 프라하 브라스 앙상블의 이날 공연은 전체적으로 무난한 수준의 연주무대였다. 우선 무대 뒷편까지 음악이 전달되는 금관앙상블의 특성상 오픈된 야외무대에서도 소리의 전달에 부족함이 없었고(그러나 만약 훗날 주최측이 희망하는대로 서종의 무대가 탱글우드의 수준으로 발전하게 된다면, 그 때는 더욱 ‘넓은’ 장소를 알아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행사를 위해 급조된 단체가 아닌 설립된 지 20여년이 넘는 나름 상당한 연륜의 단체답게 다소 소란스러운 청중들 앞에서도 당황스런 모습없이 흐트러지지 않는 연주를 해주었다.
연주자들의 기량면만을 놓고 본다면 굳이 ‘옥의 티를 잡는다면-’식의 억지말 만들기식 연주회 비평이 필요 없을 훌륭한 무대였으나, 그래도 굳이 흠을 잡자면 오히려 음악을 너무 쉽게 풀어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매너리즘의 모습이 간간 비치는 것도 사실이었다. 청중들은 즐거워하지만 무대 위 배우들의 화장 뒤 숨겨져 있는 것은 짙은 ‘밥벌이의 지겨움’이 아닐까하는. 이런 것은 결국 지역무대의 지역성에 동화되지 못하는 외부 초빙의 한계였을 것이다.
어스름 별들이 뜨는 밤하늘로 울리는 맑은 트럼펫의 텔레만은 대단히 아름다웠다는 것을 전하며 모니터링 보고서를 마무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