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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간 9정맥 완주와 같이한 낙남정맥 11구간 마지막 졸업구간
고운동재(해발 약 800m)-묵계치(약 810m)-외삼신봉(1.288m)-삼신봉(1.284m)-1.254m봉-석문-음양수-영신봉
(1.651.9m) 낙남정맥 끝-한신계곡-백무동 하산
도상거리 : 약 18km
소재지 : 지리산 국립공원 내
2005년 8월 21일 (일) 날씨 : 비 온 후 갬
같이한 사람 : 영신봉에서 조우 : 울산3명 대구 2명 초이 노으리 자근산 조은산 태백 들꽃산장 조우
◁산행 후기▷
5일만에 다시 낙남정맥의 마지막 구간을 졸업하러 가는건 내 못된 성질머리 때문인 것이 괜스리
1대간 9정맥을 졸업하는 날이라고 알게되면 혹시라도 번거로움이 따를까하는 생각 때문인데
뭐 ~~ 어차피 번거로움은 따르고 말았고 그런 번거로움 이라고 생각하는 축하 정도 받아도 무방할텐데
아직도 그런 것들에 서툴은 나 狂人이다 하지만 적어도 세 사람에게는 알려지게 된 것인데,
영신봉 언제 옵니까? 오는 날 꼭 알려줘야 합니다 막걸리들고 기다릴께요
하는 것은 한라산 있는 제주도 버리고 지리산속에 파묻혀 살고픈 노으리의 채근에 그 넘한테 알려준들
아무 문제가 없을터 그래 살작 알려주고 만다
또 한사람은 일년에 한 번씩 가졌던 가야산 인근 말아먹기에 먹거리 준비에 걱정없이 도와주고
산에서 자주 만나는 울산의 권분남 여사 ,,, 형이다
마지막 구간은 꼭 알려줘야 한다카이 그 날은 같이 산행 하입시더
할 수없이 목요일 살짝 귀뜸하니 권형과 매일 통화하는 사이인 초이님과도 연락되고 마침 남부능선
한번도 가보지않은 초이님이 서울서 동행키로한다
그러고보니 살짝 일러준 사람들이 어찌하다보니 모두가 팔광(?)들이다 (^_^)
인간이 나이만 먹었지 동년배들보다 철도 덜 들고, 거기다가 미욱하고 덤벙대다 보니 먼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이 산행후기를 기록해보려고 기록지를 찾으려니 으악! 없다 ...
이게 어캐 된거여 아무리 생각해봐도 하산 후 잃어 버린 것인데 물 먹은 숲에서도 틈틈이 기록해서
젖지않게 하려고 비닐에 싸서 배낭에 넣고 하느라 시간도 제법 잡아먹은 물건(?)인데 잃어 버리다니
에고 에고 ~~~ 狂모야 그 기록이 아무리 그래도 1-9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기록인데 축하주에
뿅 ~ 가서시리 잃어버리다니,
하여튼 사진과 가물대는 가억으로 어줍잖은 산행후기를 정리해 나간다
사진에서 시간을 추출 하려해도 지난번 카메라 A/S를 받을 때 시간등 입력된 것이 다 지워졌나보다
이래 저래 상세한 마지막 구간의 기록은 없다는거다
서울에서 고운동재로 대중교통편을 이용해서 접근하기 가장 좋은 곳이 그래봐야 진주행 심야버스로
산청군 신안면 소재지 원지에서 하차하는 것이다
일기예보에는 산청 진주 지역이 토요일까지 많은 비가 내리지만 일요일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예보만 철석같이 믿고 움직이지만 어잿건 물 먹은 산죽밭을 헤치려면 온 몸이 젖을거라는 예상은
하고 갈아입을 옷이야 당연하지만 샌들이나 슬리퍼를 준비해서 간다는게 아내가 챙겨주지 못했다고
갈아신을 신발을 못 챙긴다
원지에서 고운동재까지 그렇게나 멀줄은 생각을 않았다
택시만 타면 금방 도착할줄 알았지만 마침 게속 내리는 빗속에 천천히 달리는데다가 미터기 요금으로
34.000냥 정도가 나오니 무려 40분 정도를 달려서 고운동재 다
◁산행이 시작되는 고운동재에는 비가 내리고 어둠은 걷히지않고, 짇은 산죽터널▷
부슬 부슬 비가 내리는 어둠속의 고운동재를 출발한 시간이 05시40분이다
철문을 지나서 들머리를 찾느라 잠시 갈팡질팡, 역시 생각대로 철문 좌측의 억새밭을 헤치며 올라야
하거늘 초반부터 실수를 하지않으려 어둠속에서 여기저기 살펴보느라 지체 다
무성한 억새를 헤치며 오르니 금새 짇은 수림 사이로 오르는 뚜렷한 등로가 나타난다
무덤 지대를 지나니 지난번 혼나게했던 어른 키보다 더 큰 산죽밭으로 빨려 들어서며 오름은
이어지는데 물 먹은 산죽 가지에서 떨어져 피부에 와 닿는 빗물이 유난히도 차갑게 느껴진다
산죽이 없어졌다가 다시 산죽을 헤치며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비는 상당히 내리고 가스는 자욱한데 짇은 수림상이라 그런지 어둠은 가시지 않는다
젖은 종이를 훼손하지 않으려 기록을 하려면 배낭을 내리고 비닐에 싼 종이를 꺼내어 기록하고
다시 소중하게 싸서 배낭에 넣고, 카메라도 마찬가지다
06시25분 쯤 잡풀이 무성한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공터의 "묵계치"를 지난다
조선조 세조 때의 대학자였던 김일손이 이상향인 청학동을 찾아서 넘나들던 고개인데 그 이상향이었던
청학동도 이제는 시류에 편승해서 온갖 돈벌이에, 커다란 건물들, 도저히 지리산 속에 자리한
이상향이 아닌 것으로 변모했으니 청학동의 이상향의 모습은 1980년대가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옛날에 청암면 묵계리와 시천면 내대마을을 넘나들던 고개가 묵계치인데 불과 한 시간여 전에 원지의
택시로 묵계치 아래 삼신봉 터널을 지나왔던 곳이기도하다
◁이 정도의 산죽밭은 보기좋고 걷기도 참 좋은 곳, 보이는게 있어야▷
산죽밭은 여전히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묵계치 이 후 상당히 가파르게 오르는 곳에는 베어진 나무들과 쓰러진 나무들이 산죽밭에 어우러져
있어 진행하는데 불편하고 06시35분 쯤 배낭속의 손전화가 울려서 받아보니 울산의 정원식님인데
권분남님과 3명의 일행이 백무동에서 장터목을 향한 산행이 시작된다는 소식이다
07시 초반 다 올라서니 반석같은 바위지대에서 주저앉아 아까부터 이상하게 배가 고파와서
그 빗속에서도 캔맥주 하나와 요기를 하고가기로한다
너무 이른 새벽에 거칠한 입에 식사를 하는둥 마는둥 해서 그런가보다 07시17분 출발(15분지체)
키 큰 산죽은 아니드라도 산죽은 여전히 참나무 수림 아래로 자주 이어지고 바위들이 슬 ~슬
나타나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보이는게 없으니 지루하기만 하다
춥고 지루하고, 나야 낙남길 졸업에다가 1-9를 마무리하는 목적산행이기라도 하지만 남부능선
처음으로 걸어보겠다는 초이님 보이는게 없으니 내가 미안한 마음이다
바위턱이 나타나고 밧줄도 걸려진 곳을 올라서서 잠시 평탄하다가 오르니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지
않았을까 깃대가 있고,
"서기 일천구백구십이년유월13일, 단기 4325년5월13일"
이라 새겨진 외삼신봉 표석의 외삼신봉 정상에 선다
젠장! 날씨가 맑았다면 일대의 조망이라든지 멀리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는 그림이 얼마나 좋을까
마는 세찬 바람과 자욱한 가스속에서 사진만 기록하고 다시 삼신봉을 향한다
바위지대를 내려서고 이제 등로가 넓고 아주좋은데 잠시 후 세워져있는 이정표에는
←청학동 2.0km ↑세석대피소 8.0km 좌측으로 산죽 사이로 청학동 하산길이 보인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가스는 자욱하다
◁외삼신봉 정상과 세석대피소 8km의 이정표▷
08시40분 정도 되지 않았을까싶다(기억상이니 확실치는않다)
공터에 삼거리가 나타나면서 ←청학동 2.5km ↓세석대피소 7.5km →쌍계사 8.9km의 이정표에서
그대로 진행해왔던 방향의 바위등을 타고 오르니 제단이 있는 삼신봉 정상인데 표석에는
"일천구백구십년시월구일"이 음각되어있고
"삼신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종주능선"의 그림이 관리공단에 의해서 설치되어 있는데 아이구 ~
저 그림대로 실제로 보이면 얼마나 좋을까!!!
이번에는 제 등로를 따라 바위지대를 내려서서 우측인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간다
지금까지는 거의 북서쪽으로 했기에 자욱한 가스속에서 약간의 혼동스러움이란,
싸리나무등 참나무 산죽등 사이로 불탄 나무들이 기괴스럽게 보이는 지역을 거의 평탄하게 한동안
진행되고 ← 청학동 3.3km 세석대피소 6.7km →이정표를 지나간다
한동안 지루한 오르내림은 여전히 키작은 산죽밭과 참나무 군락 사이들로 이어지고 시간 미상의
← 청학동 4.5km 세석대피소 5.5km →의 이정표를 지나간다
좌측으로 밧줄로 막아놓은 "탐방로 아님 No Trail" 지역을 지나도 여전히 나타나는 산죽밭이다
삼신봉에서 약 1시간 정도 오르내림을 반복했을까! 그렇게 도착한 곳은 한벗샘 갈림길이다
↓청학동 5.2km ↑ 세석대피소 4.8km 한벗샘 40m의 이정표 지점이다
무성한 산죽밭을 다시 한번 헤치며 5분 정도 오르니 노란 미타리꽃이 비에 젖어 애처로운 헬기장으로
이루어진 1.254m봉 정상에 오르고 이정표에는 청학동 4.4km 세석 5.6km 다
그러니까 내 짐작상 시간은 한 10시쯤 된 것으로 생각한다
비는 거의 내리지않고, 뚜렷한 산길은 자꾸만 오름으로 이어지는데 그게 난 좋다
내려가는 길이 있다면 그만큼 다시 올라야 하니까 말이다
◁삼신봉 정상 한벗샘 갈림길, 그리고 1.254m봉▷
바위들이 자주 나타나고 커다란 바위 봉우리를 오르지않고 봉우리를 우측으로 두고 좌측의 사면으로
휘돌아 오르는데 다시 보이는 이정표에는 그냥 ← 청학동 6.7km만 가르키고,
올라서니 꼭 설악산 희운각에서 천불동계곡을 통해서 내려설 때 무너미고개를 올라서는 듯한 느낌을
받는 그런 턱으로 올라서니 앉을 바위턱이 나타나서 주저앉아 잠시 휴식을 청한다
서서히 잦은 바위지대도 나타나고 가스도 좀금씩 걷히면서 멀리는 보이지 않아도 지나온 능선들이
잠시 보이니 그래도 그냥 무의미하게 지나는 남부능선은 아니구나,,,, 그런 느낌,
10시50분 쯤 되지않았을까! 남부능선에서 특별하게 눈에 띄는 석문을 통과해서 오른다
공터를 지나고, 바위 봉우리를 역시 우측으로 두고 좌측 사면으로 휘돌아갈 때 사면에는 무성한
넝쿨 식물들과 대성골쪽이 시야가 터지면서 보여지는 곳이다
무성한 넝쿨들을 자세히 바라보니 엄청나게 열려있는 다래 열매를 볼 수 있지만 본시 그런 것 들에
관심없으니 그저 트여진 대성골쪽과 멀리 구름을 이고있는 왕시리봉 능선들을 감격에 겨워 바라볼
뿐이니 동행자도 못 말릴 위인이라고 ,,, 하긴 그런 생각한지 오래일 터이다(^_^)
한벗샘 갈림길 ,,, 대강 15분 여 후 ,,, 올라서면 드디어 좌측으로 대성리 갈림길이 나타난다
이정표에는 ← 대성교 6.2km ↑ 세석 대피소 2.2km ↓ 삼신봉 5.3km를 가르킨다
잦은 바위지대가 나타나고 가끔식 햇볕이 나면서 나뭇가지 사이로 주능선의 멋진 장관이 나타나는데
그 그림이 아까워서 사진에 담으려고 시야가 터지는 곳으로 나서면 여지없이 자욱한 가스로 가리워져
버리는 심술을 지리의 위의 하늘은 그렇게 부리고있다
분명 영신봉과 그 좌측으로 촛대봉이 멋지게 바라보일텐데, , ,
중간에 다시 걸려오는 마중팀의 전화에 아마 12시면 영신봉 도착 확신한다고 답을 보낸다
◁바위봉 넝쿨지대 사면을 지나며 바라본 대성골을 사이에두고 능선들이▷
등로가 점 점 넓어지고 철죽군락 아래 부드러운 포아풀등, 그리고 야생화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11시30분 ↑ 세석대피소 1.2km ↓ 쌍계사 15.3km 청학동 8.8km 의신 7.9km의 이정표를 지나면 바로
저 앞에 바위와 함께 음양수가 자리하고있다
최근에 많이 내린 비로 음양수 일대는 여기저기 물이 흐르고있고 그래도 미란님은 영신봉에서 기다리는
마중팀들을 위해서 맛이라도 보라고 음양수를 패트병에 담느라 분주하다
누군가 적어논 음양수에 관한 그럴 듯한 전설을 옮겨본다
"옛날 대성게곡에는 호야라는 남자와 연진이라는 여자가 부부로 살고있었는데 이들 부부 사이에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차 마침 지리산에 살고있던 곰 한마리가 남편이 없는 때 연진에게 찾아와
세석평전에 음양수가 있어 이를 마시면 아들 딸 마음대로 낳을 수가 았다고 알려준다
아이를 낳고싶던 연진은 남편과 상의없이 음양수를 찾아와 마음 껏 마시고,
이 때 곰과 사이가 좋지않던 호랑이가 곰과 연진의 이야기를 옅듣고 지리산 산신령께 고하고 대노한
산신령님은 음양수의 비밀을 연진에게 발설한 곰을 토굴속에 가두고 호랑이를 백수의 왕으로
하였으며 음양수를 훔쳐먹은 연진에게도 벌을 내려 잔돌이 많은 평전에서 평생 동안 철죽을 가꾸게
하였다 잘못을 산신령에게 빌며 그대로 굳어 돌이된 연진의 모습이 촛대봉 이라나 어쨌다나,,,
하여튼 모든 전설은 대개 슬픈 사연과 인과응보의 뜻을 지니고 있지(^_^)
초이님이 음양수를 뜰 동안 나는 음양수 바위 갈라진 틈의 풀들과 이상한 그림들을 사진에 담기
바쁜데 나중에 보니 그리 쓸만한 그림이 없다는 이야기 다 ,,,,, 10분 지체 40분 출발,
◁음양수▷
음양수 바위위에 돌 제단이 보이고 그대로 큰 등로를 따르자니 게속 내린 비로 온통 물바다 다
예전에도 남부능선을 지났지만 마루금 타기의 의미가 아니었으니 아무 생각없이 지나갔었다
그러나 지다람님의 이야기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하여튼 음양수의 물길을 좌측의 대성골로 두고
움직였으니 산자분수령을 제대로 따른건가!!!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여기저기 물이 흐르니 그 물의 의미를 모른다면 당연히 당황하지 않을까
잠시 후 넓은 둥로가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느낌이 보일 때 !!! 괭장히 오래된 걸음이지만
(20년 전???)거림에서 세석으로 올라갈 때 ,,, 그 때의 기억을 떠 올려보며 이 길은 세석산장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등로일 것이다 ,,,,로 확실한 생각이 들며 전면의 푹신한 포아풀을 헤치며 방향을
잡아 날등으로 짐작되는 곳으로 오른다
잠시 후 산죽을 헤치고, 철죽나무를 휘돌기도, 그렇게 오르니 영신대에서 남부능선을 향할 때의
그 희미한 족적들이 나타나고 나는 제대로 능선의 날등을 타고감을 느낄 수 있다
보이지않는 밀림의 숲은 게속 이어지고 12시 좌측으로 영신대의 바위벽이 보이며 저 위로 영신봉쪽이
가늠되고 나무가지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여진다 다 왔구나
저 위에서 누군가 사람소리가 들리지만 주능선을 걷는 사람들의 소리가 아닐까 하는데 초이님은
"언니야 ~ "하고 울산의 권형을 부른다
울산서 차를 몰고온 정원식 아우님이 마중을 나와서 악수를 청하고 햇볕으로 노출되면서 주능선
등로를 건너서 저 위의 기다리는 사람들의 영신봉 정상으로 향한다
그나마 기다리는 사람마저 없었다면 정말 무덤덤 ~~~ 그 것이 었을거다
축하 악수 뭐 그런 것과 사진 찍어줄테니 올라가봐라 ,,, 하는 그런 것들로 드디어 목에 걸린 가시를
제거한, 이제 아주 자유스러운 산행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1-9를 끝낸 모양,
◁저 아래 대성골쪽도 보이고, 세석길을 버리고 포아풀을 밟으며 좌측의 능선으로 들어선다▷
그냥 아까부터 전화에 돌문어 안주 이야기를 들었기에 빨리 쫀득한 안주에 소주 한 컵을 마시고 싶을
뿐인데 , 정말로 그런데 이게 그렇게 축하 받을 일인가?
축하를 해도 내 스스로 자축한다면 몰라도 남들이 해주는건 ,,, 그들을 괴롭히는건 아닐까?
정말로 진심으로 고맙게도 축하를 해주는데 정말 나는 매번 이 모양일까??? 다시 한번,,,이후도
뉘우침의 시간을 가져보지만 여전히, 솔직히 감동이 없는데, 우씨 ~~ 제발 감동아 오거라
모르겠다 그냥 영신봉 정상에 주저앉아 따라주는 술잔에 기분은 좋아진다
세석산장에서 기웃대고 있다가 연락이 닿은 대구의 능금님과 산길로도 합류하고,
산정에서의 술잔 오감은 한동안 이어진다
아마 1시간 이상은 주거니 받거니 했을거다 마침 빗방울 떨어지기 시작하고 하나의 찌꺼기도
흘리지않고 깨끗히 청소를 하고 한신게곡으로 향한다
세석산장위의 마루턱을 넘은게 정확히 13시30분 이고, 비가 내리는데도 많은 산악회원들이 한신게곡
쪽으로 내려서는 것을 보고는 일단은 저 아래까지 개별적으로 내려가서 만나자,,,
모두들 뜀박질로 일관한다 , 급경사 지대를 다 내려설 무렵 반대쪽을 향해 오르던 포항팀들과 조우도
이어지고 인사도 나누고, 그래도 오층폭포 가내소폭포 들려서 사진찍고 16시가 채 못되어 백무동으로
내려서니 언제나 그랬듯이 햇볕이 비춰준다
두 대의 차량에 동승해서 중군마을의 들꽃산장으로 향하고, 그 곳에서 노으리와 합류,
다시 술잔을 마주하며 산사람들 산 이야기 꽃 피우며 거나해 지는데 나중에 반선서 하산주 자리
펴려던 부산산사의 조은산님 일행과 연락기 닿아서 또 한차레 초치기는 이어진다
남원에서 새마을 열차로 귀경을 하느라 헤어들지고, 이 후 그동안의 종주를 회상해본다
◁영신봉 , 하산길 한신계곡, ▷
-에필로그-
1993년이든가? 94년이든가,,, 출판문화회관에서 있엇던 조석필님과 이제 고인이된 이우영님의
산경표에 대해서,백두대간의 이야기들은 이전부터 약간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백두대간 이라든지
여러가지 것들이 확실하게 다가오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1997년 늦가을 당시는 그리 흔하게 하지않던 지리산 당일종주를 계기로 몇 년전부터 생각했던
백두대간 종주로 이어지게되고, 하지만 백두대간 종주 후 다른 정맥산행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다만 오래전부터 관심과 의문점을 가져왔던 오대산에서 서진하던 거대한 능선에 대한 생각들,
그 능선들을 개척산행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경험과 워밍업을 겸한 산행이 한북정맥종주 였는데
사실 솔고개 이 후의 종주는 의미가 없다고 중단해버린 것이었다
오대산에서부터 대학산까지의 능선은 나름대로 짐작하겠는데 약간의 의문이 가는 응곡산이 라든지
그 다음의 능선들은 그 몇 년전 초등을 한바있다는 동국대 산악부에 전화로 대강의 지식을 얻고
몇 명이서 상당 구간 족적도 거의없던 능선을 종주한다
사람들은 이 후 그 능선들을 한강기맥이라 하면서 종주의 열풍에 휘말리기도 하고,
하여튼 표지기 하나없는 청정구간의 한강기맥은 찾아가는 고생으로 이 후의 종주 패턴에 비해 많은
구간으로 끝났지만 참으로 보람있었던 마루금 잇기였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재미를 붙이며 2001년 낙동정맥을 산가사 식구들과 어우러져 종주하니 아무래도 빠른 운행은
이어지지않고 마음 내키는대로 움직여진다
그렇듯 하나의 능선을 끝내면 다시 어느 능선으로 달려가는게 아니라 몇 달 딴짓(?)하다가 다시
다른 능선을 이어가고 뭐 그런식이었고 그 때까지도 나머지 정맥에 대한 환상은 없었다
◁백두대간의 진부령 上 낙동정맥의 어느 구간 中 호남정맥 안양산과 무등산을 뒤로하고 下▷
2002년 3월 10일 망덕포구에서 호남정맥 산행을 처음 시작할 때도 그냥 긴 능선이니 한번 해보자
뭐 그런식으로 산행에 들어가는데 호남정맥서부터 승합차로 같이 움직이던 산가사 다른 멤버들과의
갈등이 서서히 표출된다 ,,, 이제서야 추억의 후일담으로 이야기 할수있지만서두,
이 해 5월26일 존재산의 군부대 통과가 안되어 울창한 원시림을 뚫으며 고생한 산행에다가 서서히
괴롭히는 호남정맥 특유의 가시넝쿨들에 서서히 진력을 내기 시작하던 멤버들은 6월9일 삼수마을로
하산 후 당분간 가시넝쿨이 사라질 때까지 호남정맥을 멈추자고 했던건 표면적 으로는 가시덤블이
원인이었지만 거리문제가 있었던것은 순진하게도 나중에 알았다
그걸 진작 알았으면 몇 달을 쉬지않고 결국은 홀로산행으로 들어갈 것을 그대로 그 때 실행
했을터였다,
거리 문제 또한 내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있었던 문제였다
내 욕심대로라면 더 멀리 가고싶지만 일행들을 배려해서 양이 차지않은 거리로 구간을 끊는 것에 대한
양보가 엄청 이루어졌음에도 반대로 더 짧았으면 하는 희망들,
9월8일 부터 다시 재개되지만 결국은 홀로산행으로 굳어지게 되면서 오히려 그 것으로 인한 멤버들의
인간적인 결속은 더 굳어지는 계기가되고 나는 되도록이면 월 2회의 정맥산행으로 들어가는데
그 때서야 서서히 정맥 바이러스(?)가 체내에 깊이 침투하는 계기가된다
화순 인근부터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최대한 저렴하게 최대한 빠르게 접근하는 나름대로의 방법도
슬 ~~슬 터득해지고, 좋은 구간이 나타나면 어쩌다가 같이하는 산행도 이루어지고,
2003년 6월 1일 대전의 곰발톱 아우가 동행해준 호남정맥 졸업과 동시에 금남호남정맥의 종주가
이루어지고, 3구간만에 다시 백두대간의 영취산으로 오르는 금남호남정맥 졸업 후 어차피 3정맥의
분기점에 섰으니 금남정맥도 하자 ,,, 뭐 이런식으로 금남정맥도 시작한다
◁한북정맥의 마지막 장명산 上 호남정맥 토끼재에서 약식 시산제 中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 下▷
2003년 6월 22일 요즘 이 곳 ok메인 산행기에 많은 팬들을 가지고있는 전주의 산죽님의 연락으로
야간열차로 전주에 내려서 3정맥 분기점에서 금남정맥을 시작하려던 접근방법에 산죽님이 손수
차량으로 출발지까지 태워다주고 본인은 전주로 돌아가서 당일산행을을 들어간 아주 고마운 사연도
가지고있다 그 해 가을 산죽님의 안내로 구봉-운장산 같이하는 산행도 이루어지는 계기와 인연도
맺는다
금남정맥이야 말로 수도권 사람들이 일부 구간 빼고는 평소 거의 잘 가지지않는 그런 산들을 이어가는
매력도 있고 별 탈없이 진행되는데 첫 구간과 대둔산 구간에서 역시 대전의 곰발톱 아우님이
동행해주는 즐거움도 있었고, 대전을 깃점으로 서울로 올라올 땐 대충산사의 강산에 역시 대전의
그리매님들과 만나서 한 잔의 추억을 그리는 그런 것들도 기억된다
2003년 9월 14일 7구간으로 금남정맥을 졸업한 후 내 산행후기에는
"그리고 아무 감흥도 없었다
정말이지 나에게 있어 그냥 내 산행의 연장이었지 뭐 특별히 하나의 정맥을 완주했다고 해서 특별한
감흥은 없었기 때문이다 ,,,ㅎㅎㅎ빨리 내려가서 소주 한잔 했으면 하는 생각뿐이었다
한 두어달 동안 오지의 단풍산행이라든가 오지능선 이어가기등에 재미를 붙이다가 11월 9일 약간의
쌀랑한 날씨속에 김포의 문수산을 시작으로 한남정맥 산행에 들어가는데 정말이지 도시의 팽창으로
망가져버린 우리의 마루금에 가슴아파한 구간이들이 거의 이어지지 않았나 싶다
유난히도 추웠던 그 해 겨울의 한남정맥종주때는 개인적으로 여러가지 추억이 깃든 그런 해다
작년 2월29일 칠장산에서 한남정맥을 끝내고 칠장사를 거쳐서 죽산으로 이동 후 죽산의 기사식당에서
공기밥 두 그릇에 소주 두 어병 마시고 나름대로 완주를 자축하고,
뭐 매번 내 산행은 그런식이었는데 이 때부터 내가 왜! 이런산행에 얽매어 스스로를 옭아매고
자유스럽지 못한 산행을 하는가로 회의도 들고 고민도 하기도한다
◁금남정맥의 대둔산에서 바라본 바랑산 월성봉 上 금남정맥이 백마강으로 사라지는 구두레나루 下▷
◁한남정맥 시작한 김포 문수산에서 바라본 강화대교 上 한남, 금북, 한남금북 3정맥 분기점 칠장산 下▷
그러나 어떡하랴 이제 얼마 진행치 않으면 그래도 나같은 사람도 1대간9정맥을 완주하는 것을,
3월 한달 다른 산행으로 일관하다가 다시 금북의 마루금으로 붙기 시작하면서 행보는 빨라진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준비성없이 항상 움직이다보니 빗속의 2구간은 밭과 구릉지대에서 아무 것도
보이지않으니 그냥 중도 포기하면서 한 구간이 더 늘어나는 게기도 되는데 솔직히 조금만 선답자들의
발자취를 챙기기라도 했더라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산행이 끝나면 여전히 또 그런건 내 천성이기도하다
3구간 너구리 구출사건은 얼마전 전천후님이 언급하기도 했던 것이고 하루종일 비 내리는 장마철의
구간에서 탄약창 부대 철조망을 어둠속에서 지나면서 초병들과의 몇 번의 조우,
금남정맥과 금북정맥은 거의 당일산행으로 이루어 지는데 금북정맥 경우 예산 아산 공주 천안 인근을
지날 때는 KTX를 이용함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한 당일산행으로도 상당히 빠르게 접근하는 그런
편리함도 맛보며 작년 11월14일 금북졸업과 한남금북의 연결 산행으로 이어진다
여전히 정맥의 재미보다는 나름대로 인적없는 오지능선 홀로산행이 즐거움은 더 하지만 어떡하랴
이왕 이렇게 진행한거 마무리는 지어야지 않겠는가!!!
낙남정맥이야말로 금년에 시작해서 금년안에 끝내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생각만 했었지 계획도 없었고
한남금북정맥도 마치지않은 2월20일 엉겹결에 캐이님의 손에 이끌려 지형도도 없이 갑자기 높은산님
일행들의 낙남 첫 구간에 동참하게 되지만 이후는 역시 홀로산행이다
3월26일 한남금북을 졸업하고 낙남의 1/5만 지형도도 구입하고 마루금도 그으며 일정도 생각하며
종주에 들어가게되고 그렇게 이번 산행까지 마치게 된 것이다
◁금북정맥 시작, 上 3구간 너구리 구출 사건,中 한남금북정맥이 백두대간과 만나는 속리산 下 ▷
◁낙동정맥의 시작 신어산 上 진달래가 한창인 천주산 下▷
영신봉을 향하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다보니 지리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 산행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마자막 낙남졸업과 더불어 다시 지리산의 품으로 안기게 되노라고,
산행 후 인월 중군마을의 들꽃산장에 들려서 몇 사람들과 술잔을 나누다가 합류한 부산 산사의
조은산님과 태백님 왈,
"헹님요 지리서 출발했다가 지리로 돌아올거 뭐 할라꼬 조선팔도를 다 헤집고 다녔다가 왔능교? (^_^)
이유야 어찌되었건 내 평소 산행패턴과는 전혀 어울리지않는 거북이 걸음으로 1-9를 마친다
감동도 감흥도 없다는 못된 속아지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사실이 그런 것 어떡하랴
그냥 명치 끝에 뭔가가 걸려서 답답하던 것이 잘듣는 소화제 하나로 쑥 체증이 내려간 그런 기분은
확실 하지만 누구도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며 내 카페에 살며시 글을 올려 놓았더니 여기 저기서
축하의 인사 글들을 올려주시는 모든분들을 보면 세상에 비밀이 없는 것이고 축하도 받고,
감동도 짜내서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본다
1-9 완주 했다고 달라지는게 뭐 있겠는가
나는 다시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아직도 청정함을 유지하고있는 오지능선을 달려갈 것이고
거기에서 내 산행의 만족감을 마음 껏 누릴 것이다
그러고보니 잘 찾아보면 아직도 청정함을 유지하고있는 능선으로 달려갈 곳이 많은 이 시대에
살고있는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그러고보니 정말로 오랜만에 내일 밤 산가사 멤버들과 즐기는 계곡산행으로 들어가는군,
합실골을 들어갈까? 가마소게곡을 들어갈까, 맨날 어느곳을 헤메이고 다닐까 고민하는 재미도 이렇듯
쏠 쏠 한줄은 누가알까? 아차! 그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산으로 헤메이고 다니게해준,
그리고 다니는데 협조를 아끼지 않은 마누라 디게 고마워 ~~~~~ ~~~~~~~~~~~~~~~~~~~~~~~ -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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