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지맥 2구간
2012. 11. 11. (일)
산길 : 이어니재(충혼탑)~웅천천
사람 : 조진대님부부, 육덕, 이희중, 조은산
거리 : 13.0km
구간거리
이어니재~5.8~서해안고속도로~6.3~통달산~0.9~웅천천 / 계 13.0km
Cartographic Length = 16.4km Total Time: 05:00
02(이어니재~웅천천).gpx
비암리 마을회관에서 꿀 같은 숙면을 했다. 저녁밥 먹고는 할 일이 있나. 거의 열 시간은 잤지 싶다. 옆에서 찝쩍대는(!) 마누라도 없으니 완전히 저 세상까지 갔다 온 기분이라. 침낭 말아 넣고 침투 흔적 지우고 밖으로 나오니 비로소 비가 오는줄 알겠더라. 텐트 지키느라 빗소리 바람소리에 시달린 육덕님께는 미안한 생각이 든다만...
어젯밤 늦게부터 내린 비는 소강상태에 드는 듯도 하다. 내리다 말다가, 내려도 그리 많지 않아 맞을만하게 내린다. 시락국 뎁혀 아침을 먹고, 점심 때 쯤 마친다는 계산에 점심밥은 챙기지 않았다. 비가 오는 관계로 사모님은 산행을 접고 온전한 택배기사로 나선다.
상다리가 휘청거린다
밤새 비가 좀 왔능가보네...
이어니재로 이동해 산행 채비를 하는데, 새로 산 ‘우비신’을 등산화에 덧씌웠다. 실전 테스트를 하는 셈인데 결과는 그런대로 만족했다. 윗 덮개부분(갑피)이 약한 감이 있어 우리같이 가시밭길 헤치는 지맥꾼에게는 다소 무리다만 일반적인 산행에는 쓸만한 물건이라는 평가다. 그리 많은 비를 맞은거는 아니지만, 발목으로 물이 타고 내리지 않았고 신발 물론 젖지 않았다.
우비신
08:00 이어니재
08:09 ×224
08:30 시멘트길 임도
08:51 △275.1m
09:52 ×246
10:20 ×198
10:41 △173.5m
10:58 서해안고속도로
11:20 20전투비행단 울타리 끝지점
11:41 찝차부대
11:50 전투기
12:26 통달산
12:57 607번 아스팔트 도로
13:00 장안마을(소황리)
이어니재
이어니재 출발
[만세보령지킴터] 간판 옆 철계단으로 올라가면 상수도 저수장인지 울타리를 쳐놨다. 울타리 옆으로 올라가면 ×224봉인데, 준희님 팻말은 [223m]로 되어 있다.
이어니굴 (웅천읍 지명유래)
'두루니' 北東쪽으로 長項線(장항선) 列車(열차)의 굴이 있는데 이굴을 「이어니굴」이라고 부른다. 굴의 길이는 約 (약) 500m나 되는 긴 굴로서 1931年에 뚫은 굴이다.
지형도의 ×224봉
임도 건너편의 △275.1봉
능선길은 엉망진창이다.
시멘트길 임도
왼쪽 아래 두명제에서 올라 온 시멘트길이다. 건너편 들머리는 우측 아래에 산으로 올라가는 수렛길이 있는데, 그 길은 여산송공묘에서 끝이고, 그 뒤로는 다시 엉망진창... 어거는 길이 아니므니다~!!
옆으로 돌고, 수구리고, 긁히고, 받히고...
275.1m (△보령452)
준희님 팻말은 높은 나뭇가지에 달려있어 쳐다보지 않으면 못본다.
×162봉 직전에 곧장 올라가는 길도 있고, 왼쪽으로 질러가는 길이 더 선명하다. 올라가는게 맞는데 편하게 가려는 생각에 왼쪽 길로 들었다가 더 고생했다. 조은길은 묘에서 끝이고 마루금과 제법 벌어져 우측으로 치고 올라갔다.
양지뜸에서 곡촌으로 넘어가는 짤록한 안부인 두루니고개에서 마루금에 복귀했다. 계속해 길 흔적은 있지만 자빠진 나무가 능선을 뒤덮다시피 해 제대로 진행이 안된다.
×246봉에 오르니 바람이 불어 재치는게 가히 돌풍이다.
능선 왼편으로 움막이 보여 내려가봤다. 양철로 덮어 놓은 참호 형태다. 움막 뒤쪽으로 선명한 길이 있어 더 내려갔더니 이번엔 지붕이 덮힌 움막이 있는데 여기는 전기도 들어오는가 보다. 움막을 지나 뚜렷한 길은 구룡리로 내려가는 길이고, 마루금은 움막 뒤 능선이다. 움막쪽으로 내려오면 안되는 것인데, 억지로 쑤시며 올라가다가 또 여러군데 긁힌다
움막 1호
움막 2호
×198
×198봉을 내려서다가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 바위 뒤에 잠시 대피했다가 간다. 능선에는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바람이 불어대지만, 몇 발짝만 내려서면 잠잠하다. 남쪽 비탈의 나무들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용두해수욕장
173.5m (△서천404)
준희님 팻말이 땅에 떨어져 있어 이를 높은 나뭇가지에 새로 매달았다.
팻말 보수
文廟直員 茂松尹公(문묘직원 무송윤공) 配恭人 潘南朴氏(공인 반남박씨)
文廟(문묘)는 공자를 받드는 사당이다. 조선시대 향교에 문묘를 관리하는 자를 두었고, 일제시대 때에도 조선총독부 칙령으로 문묘를 관리하는 직원을 두었다. 조선시대 관직품계상 어디에 해당하는지는 찾지 못했다. 부인 호명 恭人(공인)은 정5품에 해당하는 관직의 처를 말하는 바, 그리 짐작할 뿐이다.
이 묘의 위치를 지도에서 보면 '무공부원군아적비' 근처이고, 아랫쪽에도 '애국지사 송재윤선생 유택'이라 표기되어 있는걸 보니, 이쪽 비탈이 명당인 모양이라.
무송윤씨 문중묘
서해안고속도로 옆
606번도로
서해안고속도로 무창포IC에서 무창포 해수욕장으로 들어가는 2차선도로다. 건너편에 진등식당이 있는데 간판은 보신탕이다. 왼쪽 언덕 위 고개가 마루금이 아닌가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사모님은 그 고개(성황당고개)에서 우릴 기다렸단다.
바로 오른쪽으로 서해안고속도로가 고가다리로 지나가고 그 아래를 보면 과연 여기가 마루금이 맞나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개발로 인해 지형이 변한 것이라, 너무 따지지 말자.
여기서부터 우리는 또 차로 이동한다. 고속도로 아래를 통과하여, 진등삼거리에서 직진은 무창포해수욕장이고, 지맥 마루금은 무창포해수욕장쪽으로 300m 직진해서 왼쪽 산길로 들게되나 우리는 좌회전해서 지맥 왼쪽으로 내려가는 607번 도로를 타고 소황교회 지나 독산사거리에서 다시 좌회전한다.
차 타고 지맥~
여기까지 차타고 왔다
황골마을 [웅천파견대] 간판에서 우측 길로 들어가면 마을을 벗어나면서 군부대 울타리가 나온다. 울타리 왼쪽길로 끝까지 가면 울타리가 끝나고 산으로 들어가는 임도가 있다. 여기까지 차에 얹혀왔다. 5.3km를 순식간에 이동했다.
울타리 안쪽은 공군제20전투비행단인데 그 안에 농사를 짓는 논이 보인다. 저 농사는 누가 짓는건지...
차에서 내려 두 발로...
수렛길을 따라 들어가면 묘가 나오고 더 이상 길은 보이지 않는다. 정면은 원형 철조망이 가로막아 멀리 우회를 할까 하다가 철조망 통과를 강행했다. 고무다라이 하나 주워 철조망에 얹어 밟고 들어갔다.
통덕랑
철조망을 넘어 들어가니 멀쩡한 묘가 있고 通德郞광주안공, 配恭人한산이씨 비석이다. 통덕랑은 현재의 사무관쯤 되는 벼슬이다만, 울타리 안쪽에 있으니 어떻게 다니는지 모르겠다.
울창한 대나무숲을 뚫지 못하고 우측으로 우회했다.
찝차부대
대나무숲을 우측으로 피하고 가시덤불을 요리조리 피하며 방향맞춰 나아가니 문득 시커멓게 녹이 쓴 짚차 대열을 만난다. 10여대도 더 되어 보이는 군용 짚차가 한 줄로 길게 마치 행군을 하다가 그대로 멈춘 듯한 대열을 이루며 오랜 세월속에 타이어 부분은 땅에 묻힌채다. 엔진룸을 뚫고 자란 소나무가 지난 세월을 말하는 듯하다.
츙셩~!
전투기
10여분 후 이번에는 전투기를 만난다. 하늘에서 떨어졌나, 비상착륙 한건가 싶어 살펴보니 바퀴 아래 사각의 시멘트 받침이 있는걸로 봐서 전시를 했던 모양인데 그대로 두고 부대가 철수한 건지 모를 일이다. 비행기에 올라앉아 폼을 잡으며 사진도 찍고 잠시나마 동심으로 돌아갔다.
지맥하면서 비행기도 다 타보고, 촌놈 출세했다.
위로 올라가면 철제 전봇대가 있는데 꼭대기에 비행기 모형이 얹혀있다. 희미한 길은 능선으로 곧장 오르지 않고 우측 사면으로 비스듬히 올라간다.
비행기 모형의 안테나
통달산 접근로
통달산 (183m)
능선에 올라서고 원형 가시철조망을 따라가다가 통달산에 오르면 정면이 훤히 트이면서 묘터다. 정점에 있는 향나무에 준희님 팻말이 숨어있고, 우측 아래 삼각점이 내동댕이쳐진 걸 고문님이 찾아냈다. 현 지형도에 삼각점 표기가 없는걸로 봐서 이 삼각점은 용도폐기된 모양이다.
삼각점 발굴 요원
통달산 정상부
대동여지도에 표기된 通達山인데 25000지형도에는 涌達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자를 옮겨 쓰면서 책받침변(辶)이 삼수변(氵)으로 바뀌어 통달이 용달로 둔갑을 하고 말았다. 한심한 국토지리원...
신증동국여지승람, 여지도서에 수록되어 있고, 서해안에 우뚝 솟아 산에 올라가면 사면이 잘 보이며 사통오달된 산이라 하여 통달산이라 이름 붙였다.
지형도의 통달산
5만 지형도에는 통달산이, 2만5천에는 용달산이다
묘 아래 아스팔트가 깔린 임도는 지맥과 반대방향인 왼편으로 내려간다. 우측으로 내려가면 지도상 통달산성인데 토성이었던지 둑의 모양은 남았으나 대나무가 빽빽해 능선을 따를 수가 없다. 우측으로 내려가다가 잡목이 너무 심해 왼쪽으로 둑을 넘어오니 희미한 길 흔적이 있다.
강릉최공묘에서 행장을 수습하고 내려가니 아래쪽에도 강릉최공이다. 박성태님의 마루금은 우측에 보이는 봉우리 하나 더 넘어 장안마을로 내려서는 형태다만 더 이상 잡목에 치댈 엄두가 안나 그대로 도로로 내려갔다.
강릉최공
졸업선물 수여식
장안마을(소황리)
607번 아스팔트 도로에 내려서고, 우측으로 돌아가면 군부대 정문을 지나 장안마을이다. 여기서 성주지맥을 끝낸다. 택배기사(사모님)이 정찰해 놓은대로 부사방조제를 지나 홍원항으로 넘어갔다.
장안마을
홍원항은 서천군이다.
횟집 창밖으로 통달산이 보인다
홍원항으로 가는 길에 춘장대 해수욕장을 지나가는데, 춘장대라는 이름이 궁금하여 찾아보니...
대토지 소유자 민완기씨가 이곳에 서너개의 방갈로를 만들고 자신의 호(號)인 춘장(春長)을 따서 춘장대라고 명명한 것이 유래되어 춘장대 해수욕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카시아 숲이 길게 우거진 모습을 따서 만들었다는 춘장대(椿長臺)도 무시 못 할 의미 있는 명칭이다. 사실 1983년경부터 군청에서는 椿長臺라는 명칭을 사용하다 1996년경부터 春長臺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민완기씨와 서천과의 관계변화에 기인한 명칭의 변천으로 풀이되고 있다.
춘장대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전에는 마을에서는 백이 또는 평원, 뒷개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춘장대라는 명칭이 토지소유주 한 개인의 호에서 유래되어 지금까지 사용하게 되고 있다면 군민이 생각해볼 문제이다. 물론 서천읍 사곡리 일부를 오창동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오창렬씨 소유의 서림농장이 있었던 것에서 기인하였다. 또한 대하로 유명한 홍성 남당은 실학자 한원진이 은거하였던 곳으로 그의 호 남당에서 연유된 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