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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일지맥(낙동/아구지맥) 스크랩 안일지맥 02 (주미재~신림재)
조은산 추천 0 조회 79 13.11.25 09:3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안일지맥 2구간

 

 

2013. 6. 30 (일)

산길 : 주미재~신림고개

사람 : 조진대님부부, 이희중, 조은산

거리 : 12.8km

 

 

 

구간거리

주미재~0.8~샛재~2.5~안일왕산~3.0~흥륜사임도~2.4~아구산~4.1~신림고개 / 12.8km

 

접근 : 대광천삼거리~주미재 접근 1.7km 20분

탈출 : 신림고개~대흥리 탈출 2.9km 35분

 

Cartographic Length = 21.3km Total Time: 09:10

(헛질 1km, 16분 포함)

 

 

 

02(주미재~신림재).gpx

 

 

 

 

 

 

 

 

어제는 삿갓봉 외에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도 없었으나 오늘은 지맥 최고봉 안일왕산에 아구산까지 등장을 한다. 지맥에 안일왕산(812m)보다 더 높은 봉우리야 여럿 있지만 이름을 가진 봉우리 기준으로 그렇다는 얘기이고, 아구지맥에서 안일지맥으로 바꾸게 된 연유는 이미 알려진 대로이나 막상 두 산을 오르고 보니 산세 또한 안일왕산이 훨씬 나아 보였다. 안일왕산 관련 글을 삼척시립박물관에서 퍼 왔다는 최중교님의 글을 리바이블로 퍼왔다.

 

 

 

잃어버린 왕국-실직국 [출처:삼척시립 박물관]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 이곳 동해안에는 강릉지역의 예국(濊國), 삼척지역의 실직국(悉直國), 울진지역의 파조국(波朝國) 또는 파단국(波但國)이란 군장국가가 공존해 있었는데, 이들 세 나라를 통칭하여 창해삼국(滄海三國)이라 합니다.

창해삼국은 신라 백제 고구려와 같은 국가의 기틀을 갖춘 나라가 아니고, 소집단이 모여 한 지역에서 세력을 형성한 무리사회적 군장국가로서 당시 한반도 내에는 그러한 군장국가가 130여 개나 있었습니다.

철기시대를 맞아 다량의 청동제 및 철제무기를 소유한 이들 세 나라는 영역확장을 위한 전쟁을 하게 되고, 기원 후 50년경이 되면 마침내 삼척의 실직국이 울진의 파조국을 침공하여 합병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10년 후 실직국은 강릉의 예국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되고, 당시 실직국의 안일왕(安逸王)은 울진으로 피난하여 산성을 쌓고 방비를 하였습니다. 이 산성은 안일왕이 피난 와서 축조한 성(城)이라 하여 "안일왕산성"이라 부르는데 경북 울진군 서면 소광리에 가면 지금도 정상부에 산성의 형태가 잘 남아있습니다.

 

 

 

 

대동여지도의  안일왕산

 

 

 

 

안일왕산에 대해서는 삼척시(박물관)의 공식적인 설명이 있으니 그런줄로 이해를 하고, 아구산에 대해서는 순전히 내 생각인 ‘조은생각’을 말해보면

 

 

아구산(峨口山)

주민들의 구전에 의하면 물고기 아귀의 입같이 생겼다고 하여 어구산(魚口山)에서 아구산 또는 악구산으로 불려졌다 한다.(울진군 유래)

 

물고기 입은 대부분 다 그렇게 생겼는데 왜 하필이면 아구인가? 아구 입은 특별한가?

아귀는 못생겼다. 맛도 없어 그물에 걸리면 곧바로 내던졌고, 이 때 텀벙 소리가 난다고 해서 ‘물텀벙’이라 불렀단다. 아구찜의 원조격인 마산 인근에 있는 산이라면 또 한가닥 이해가 되기도 하겠다만 동해안 지방에서는 쳐다보지도 않고 천대받는 물고기가 아귀였고, 또 한자로는 餓鬼라 쓰는데 이는 입은 크나 목구멍이 좁아 아무리 쳐먹어도 삼키지 못한다는 불교 용어에서 비롯된 것이고,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는 아귀를 낚시를 하는 물고기라는 의미의 '조사어(釣絲魚)'로 이름지어 졌다고 한다.

 

 

조선지형도를 보면 금산 위쪽에 현재의 아시고개에 岳厚峙가 있는데(アオヂ 악오치?), 이를 보면 더욱 아구는 아닌거 같은 심증이 든다. 흔히 산 친구를 뜻하는 岳友에서 악우산 > 아구산으로 바뀌지나 않았는지 의심(!)해 본적이 있는데, 조선지형도에는 아구산을 카다카나로 ‘アコ-サン’이라 표기했다. 발음은 아고산. 아구라면 ‘アク’로 표현 할 수도 있는데 말이다. 우리 지형도의 峨口山 표기는 누가 쓴 건지 몰라도 우리말 발음에 맞는 한자를 찾다보니 그리 된거라 보더라도, 이것을 물고기 아귀에 갖다 댄 거나, 울진에서 보면 아구의 입처럼 생겼다는 유래의 근거는 수긍이 안되는 것이다. 오히려 악우나 악후에서 근거를 찾음이 더 타당하겠다. 신림리에 있는 용천사의 절 이름 [악구산 용천사]를 보더라도 아구산은 아닌 것이다.

 

 

 

 

 

오늘 구간 마루금이 애매한데가 두 군데 있다. 갔다 온 후에야 애매할 일도 아니지만 지도를 펴놓고 선을 긋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첫 번째가 아구산을 한 시간 가량 지나 헬기장이 있는 ×425봉이고, 두 번째가 울진409 삼각점이 있는 363.7봉을 지난 내리막이다. 내 GPS에 모든 지맥 트랙이 다 들어있지만 이것이 수정전의 옛것이라, 미리 검토를 하고 수정을 한다고 했는데 첫 번째 지점은 용케 맞춰 나갔으나, 두 번째 지점에서는 도무지 길을 못 찾겠는거라. 현장에서 대충 맞겠지 하며 진행하며 들어갔다 나온게 1km에 16분이다. 말하자면 근래 드물게 대형사고를 친 것이라 하겠다. 다른데 같으면 원위치까지 할 것 없이 그대로 질러가면서 복귀를 했겠지만 여기는 질러 갈 수도 없이 오롯이 되돌아 나와야 하는 그런 곳이다. △363.7봉에서 내려와 임도를 만나고 ×270봉으로 가는 조은 길 따라 가면 아니되옵니다~...

 

 

 

어제의 전철(!)을 피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시작하기로 했다. 일찍 자니 자연히 일찍 일어나게 된다. 03시에 일어나 압력솥에 불붙여 밥을 짓고, 04시 주위가 뿌옇게 필 무렵 모두가 밖으로 나온다. 밥은 도시락에 싸넣고 어제 먹다 남은 닭죽으로 아침을 먹으니 목에 걸리지도 않고 잘 넘어간다.

 

주변정리를 하고 차를 신림고개쪽으로 올리다가 임도 사정을 알 수 없고 대광천에 빨리 가야한다는 압박에 대흥리 마을 어귀에다 고문님 차를 대놓고 내 차로 소광리로 넘어간다. -신림고개 끝까지 차를 올려도 되었다.

 

소광리 계곡길은 어제 한번 올라갔다가 내려왔음에도 한없이 길게 느껴진다. 내비도 길 포장상태를 고려했음인지 실제보다 30분이나 시간을 더 계산하더라. 대광천 삼거리 직전에 어제 댔던 곳 조금 못 미쳐 왼쪽에 축사인지 창고인지 들어가는 길 옆 밭쪽으로 적당한 공간이 있어 차를 살짝 대놨다.

 

 

 

 

05:35 대광천삼거리

05:55 주미재

06:23 샛재

07:45 대왕송

08:07 안일왕산

09:31 △519.3m

09:42 흥륜사 임도

10:30 헬기장

11:05 645m (기상관측시설)

11:27 아구산

12:37 ×425

13:27 △363.7m

13:38 용천사 임도

14:05 송전철탑

14:15 신림재

14:50 대흥리

 

 

 

삼거리 (정면은 금강송관리사, 우측 다리 건너로 주미재)

 

 

 

 

대광천삼거리

어제 내려왔던 곳이다.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힌건 아니지만 혹시나 알 수 있나. 우리가 온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순찰을 돌지. 발바닥 땀이 나게 서둘러 올라갔다. 뒤에서 우리를 따라 오는 듯이 꽥꽥거리는 산돼지 소리가 계속 들려 여러번 뒤돌아 봤다. 희중아우가 더 큰 소리로 괴성을 질러대니 더 이상 들리지 않는다. 속세나 산이나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법이다.

 

 

 

 

찬물내기로 가는 임도 차단기

 

 

 

주미재

 

 

주미재 (585m)

차단기에서 1.6km에 19분 걸렸다. 도둑놈 제발 저린다고 금방이라도 순찰차가 나타날거 같아 얼른 올라붙는다. 들머리는 절개지 우측 꽉 찬 숲을 헤치고 들어가니 숨어있던 길이 나온다. 샛재까지는 그들의 나와바리라 아직 안심을 못한다. 샛재와의 사이에 660쯤 되는 봉에서 한차례 숨고르기를 한다.

 

 

 

샛재

 

 

샛재 (586m)

사람이나 지나다닐 좁은 고갯길이지만, 소광리에 버스가 들어오기 이전 소광리 사람들이 울진에 나갈 때는 이 길로 다녔다 한다. 소광리에 버스가 들어온게 80년대 초반이라 하니 그리 먼 시절도 아니다. 불영사계곡 36번 국도까지 나가면 봉화에서 넘어오는 버스가 있었지만 국도까지 나가는 것도 일이고, 당시는 버스비 몇푼도 쉬이 쓰지 못하던 시절이라 샛재를 넘어 걸어 다녔단다. 지금도 울진에서 소광리행 버스는 하루에 두 번(08:05, 15:20)있다.

 

지금에야 우리같은 산꾼이나 금강송탐방객 외에는 찾을 사람 없는 길이지만, 그 옛날 보부상은 물론이고 소광리 주민들의 고락과 애환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고개 샛재다. 울진에 나간 서방님을 기다리는 소광리 아낙이 목을 빼고 애를 태운 사연도 있었을 꺼라. [두천↔소광] 방향과 거리를 표시한 금강숲길 이정표가 있고 우측 아래 성황당이 보인다.

 

 

鳥嶺城隍祠 편액이 걸린 작은 사당. 문을 살짝 열어보니 안에 조령성황신위(鳥嶺城隍神位)’라 쓴 위패가 모셔져 있고 벽면에는 글씨 빼꼭하게 새겨진 액자가 여럿 걸려있다. 안에 함부로 들어서기도 그렇고 순찰도 걱정이 되어 얼른 사진만 몇장 찍고 올라갔다.

(참조 : 디지탈울진문화 http://uljin.grandculture.net/Contents/Index?dataType=0202)

 

 

샛재에 얽힌사연

옛날, 소금과 간고등어 등 해산물을 짊어진 보부상 선질꾼(바지겟꾼)들이 경북 울진에서 봉화까지 가면서 넘게 되는 열 두 개의 고개, 즉, 십이령[十二嶺]중 가장 높은 고개가 바로 이곳 샛재란다.

두천리에 세워진 “울진내성행상불망비”가 당시의 옛길임을 뒷받침한다.

 

신목으로는 제당 동쪽에 있는 높이 20m의 들미나무가 있고, 제당 둘레에는 파손된 기와와 돌로 나지막한 돌담을 쌓았다. 제당에서 찬물내기로 넘어가는 고갯마루 아래에 보부상이나 선질꾼들이 지나며 돌을 던져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돌무지가 남아 있다. 인근의 안일왕산성과 관련하여 안일왕이 성을 쌓기 위해 돌을 나르던 곳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제당 주변에 1842년에 세운 '이광전영세불망비(李光筌永世不忘碑)’가 세워져 있다. 샛재 성황사와 함께 이 불망비는 샛재가 주요 교통로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울진내성행상불망비(蔚珍乃城行商不忘碑)

옛날 보부상 단체들의 우두머리인 접장과 반수를 지낸 정한조와 권재만의 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정한조와 권재만은 모두 봉화 내성 출신으로, 울진과 봉화를 오가며 어류와 소금, 해조류 등을 쪽지게에 지고 가서 물물교환으로 팔았던 상인들의 상거래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들의 공을 잊지 못한 상인들이 은공을 기념하고자 조선 고종 27년(1890) 경에 이 비를 세웠다.

 

 

 

 

 

지도를 보면 찬물내기 위쪽 두천리와의 경계지점에 ‘十二嶺’ 표기가 있다. 지도를 아무리 봐도 고개가 아닌 물길인데 지명표기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울진에서는 십이령을 특정한 지명이 아닌 열 두 고개로 설명을 한다.

 

십이령재 또는 십이령티라고도 일컬어진다. 즉, 죽변 흥부장터에서 출발하여 쇠치재-세고개재-바릿재-샛재-너삼밭재-저진터재-새넓재(적은넓재)-큰넓재-고채비재-맷재-배나들재-노릇재 12고개를 넘어 소천·춘양 내성장을 보기 위해 200여 리를 2~3일 걸려 걷게 된다.  새넓재가 현재의 낙동정맥 한나무재다. 1974년 국도36번 영주-울진이 개통 되고부터 십이령 고갯길은 점차 사람의 발길로 부터 멀어졌다.

 

 

 

성황당에 샛재를 鳥嶺이라 표기한 것도, 원래는 ‘사이’를 뜻하는 새재, 사잇재, 샛재로 부르다가 현판을 달 때 한자로 쓰면서 새 鳥를 들이 댄 것이라. 만약에 영어로 현판을 걸었다면 'Bird Hill'로 쓰는 꼴이다. 샛재는 한자로 쓰든 영어로 쓰든 [샛재] 발음이 나도록 해야 하는데 말이다. 백두대간 조령 역시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샛재성황당

 

 

 

 

10여분 오른 첫봉에서 주저앉는다. 어제에 연이은 산행이라 피로감도 있긴 하지만 아직 7시도 안된 시각이라 다른 날 같으면 이제 눈 뜨고 일어날 시각 아닌가. 난제였던 들머리 통과가 무사 해결되었고 남은 거리도 얼마되지 않으므로 서두를 일도 없다. 어쨌든 오늘은 멀리 가기위해 쉬는게 아니라 쉬기 위해 가는 듯 한 산행이다.

 

 

 

×722봉 오름길 금강송 가지에 산님들 힘내시라는 준희님의 응원메세지가 걸려있다. 북으로 먼데까지 조망이 열린다. 722봉에 올라 또 쉰다. 20분 걷고 10분 휴식이다.

 

 

722봉

 

 

722봉에서 남동방으로 내려가다가 북동으로 방향이 바뀌는 약800봉. 남쪽으로 세덕산(×741)이 분기하는 봉우리다. 다 오르기 전 어깨쯤에서  왼편 사면으로 질러가는 길이 뚜렷하다. 곧장 올라가시는 선두대장님과 고문님을 불러 샛길로 유도를 했는데 뒤에 오던 희중아우는 평소 스타일대로 곧장 올라간다. 오늘 우리 산행이 지한테는 너무 갑갑했던 모양이라.

 

800봉을 옆꾸리찌르기로 질러가 한참을 가는데 희중아우 뒤에서 헐떡거리며 따라온다. 800봉에 올라 계속 진행, 봉우리 두 개나 더 넘고 보니 아니더라고. 우측 건너로 높은 봉우리 두 개가 보인다. 저기까지 갔다왔단 말이지, 부지런도 하다. 기왕에 세덕산까지 갔다올꺼 아이가?  여기서 세덕산은 6.7km 거리라, 갔다오기엔 너어무 멀어요...

 

 

 

대왕송

 

 

 

대왕송 (778m)

안일왕산 정상 300m 전이다. 왼쪽(북)이 급한 벼랑을 이루면서 조망이 트이더니 바로 앞에 거대한 소나무가 나타난다. 둘레는 사람 서너명이 둘러야 손이 닿겠고 높이는 20m쯤 될까? 미인송처럼 곧게 자란게 아니라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며 여러가지를 뻗어 냈다. 참말로 물건이다 싶다가 이내 생각을 다시 잡았다. 신비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이다.

 

저 아래 금강송관리소 앞에 오백년송과 가늠해 봐도 족히 두 배는 될듯하다. 천년의 세월동안 이 언덕에서 비비람 폭풍한설을 온몸으로 맞으며 버텼다니. 굽어지고 휘어져 용트림 하는 듯한 가지들은 그 세월의 풍상을 이겨낸 기상이다. 백두대간, 구정맥에 이런 소나무 본 적이 있던가.

 

보호막이나 안내판 하나 없지만 이미 인간의 관리영역을 벗어난 듯 보인다. 이리보고 저리보고 하면서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봤다. 안일왕소나무, 왕소나무 하다가 대왕소나무로 낙찰을 봤는데, 잠시 후에 만난 울진사람들이 그게 ‘대왕송’이란다. 이만하면 나도 작명소 하나 내도 될랑가 몰라.

 

또, 어제 오늘 본 소나무중에 최고라 했더니, 군이나 당국에서는 거리가 너무 멀고 접근이 어려워 상품화(?)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이 대왕송이야말로 울진군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고도 남을 순진짜오리지날울트라프리미엄급 금강송이 틀림없다.

 

 

 

대왕송에 붙은 벽진이공

 

 

 

 

 

 

 

 

 

 

 

 

대왕송에서 4분 올라가면 지형도의 ×812 봉이다. 내가 가진 지형도에 표기는 없지만 안일왕산이라. GPS화면을 최대로 키워놓고 지형도의 ‘×’ 표기지점인 첫봉에 올랐다. 가지를 밀쳐내며 겨우 올라서니 바위만 비쭉 나와 있을 뿐 아무것도 없다. 여기가 아닌가? 두리번거리니 희중아우가 산성이 있다고 퍼뜩 오란다.

 

“헐~ 여기가 아닌가벼...”

지형도를 크게 확대해 보면 ×812의 ‘×’지점이 아니고 50m 우측 면경계선이 정상이다. 그 사이에 실직국(悉直國)의 성곽이 남아있다.

 

 

실직국의 산성

 

 

 

안일왕산(安逸王山 818.1m △죽변22)

성곽도 그렇고 정상부도 마찬가지로 북으로는 천길 벼랑이라 성을 쌓지 않더라도 도무지 침공은 불가해 보인다. 그런만큼 조망도 뛰어나다. 응봉산에서 북으로 이어지는 경북도계 산줄기와 아래로는 구수골 깊은 골짜기가 내려다보이고,  왼편 멀리로는 어제 아침 출발한 낙동정맥 삿갓봉도 가늠이 된다.

 

 

 

안일왕산 지명이 고시된 히스토리를 보면,

2007.01.09 최중교님이 아구지맥 답사 후(산행기) “역사에서 사라진 산, 안일왕산(安逸王山)”을 지적

2011.10.10 박성태선생님이 울진군에 지명제정신청 민원접수

2012.03.23 울진군의 무반응에 박성태님 재차 독촉

2012.10.29 국토지리원 지명고시

 

 

국토지리정보원 고시 제2012-1268호(2012.10.29)                                                                 국토지리정보원장

행정구역

지명종류

경도

위도

제정지명

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소광리 산11

129-14-54.67360

37-00-17.96620

안일왕산

 

 

 

어찌보면, 최중교님이 직접 나섰어야 할 일을 나이많은 어르신이 대신 한 결과이긴 하다만, 그런 사연을 찾아내어 이를 지적하는 그런 예리한 판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 최중교님과 박성태 선배님께 다시한번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또한 이런 분들을 가까이 알고 있다는데 큰 자부심을 느낀다.

 

 

안일왕산 정상

 

 

 

구수골

 

 

 

 

넓지않은 정상부에는 2등삼각점이 있고, 어느 산악회 이름이 적힌 ‘수고하셨습니다. 안일왕산’ 팻말이 놓였다. 이름을 찾은 기념으로 제대로 된 정상석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 희중아우가 자빠진 스텐깃봉을 바로 세우려 하는데 전에는 태극기라도 걸려 있었던 모양이다.

 

 

동쪽으로 내려가면 그늘사초가 깔린 길이다. 오늘구간 최고봉을 지났으니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을까? 우측에 문패없는 묘를 지나고 한참을 내려간다.

 

 

 

 

 

 

송이움막

큰 기복없는 전반적인 내림길로 30분 단위로 끊으며 쉰다. 두 번째 쉴자리를 찾을 즈음 왼편으로 푸른 막사가 보인다. 폐헬기장터였던지 편편한 공터에 나무를 엮어 움막을 지어놨다. 좀 낡긴 했다만 두어달 후면 사람이 입주하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여기로 쉽게 지나가지도 못하겠다.

 

조금 더 가서 북서쪽 흥륜사방향으로 능선이 분기하는 봉우리에 앉아 20분간 쉬었다. 쉬면서 아까부터 울리던 전화벨 소리가 신경이 쓰여 전화를 열어보니 음성메세지가 들어와 있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니 음성을 남긴 것이다.

 

“아, 아, 여보시오. 구오치리 차주 되지요? 시골에서는 차를 아무데나 대면 견인 찍힙니다. 시골에는 작업을 하기 때문에... 빨리 빼주세요오~~~ 빨리요”

 

닝기리, 이 먼 소리고? 견인을 한단 소린가, 도끼로 찍겠다는 말이가?

아무 상관없는 묵밭 구석에다 다 확인하고 대놨는데 뭘 어쩐단 말이고...?

 

그렇다고 그대로 냅둘 수도 없어 전화를 눌렀다. 점잖게 이야기를 하고 이해를 구하니 별일 아닌 듯 알았다 한다. 낯선 차가 자기 밭에 대여 있으니 혹시나 도둑놈인가 싶어서 확인하러 했던 모양이다.

“쯧, 이 동네는 여느 시골과는 인심이나 생각이 다르구만...”

 

 

 

 

 

519.3m (△울진404)

봉우리 같지도 않은 숲속에 삼각점이 있다. 준희님 팻말 옆에 리본이 여럿 걸렸는데 전부 내가 아는 부산사람들이네. 삼각점을 지나고는 다시 내림길이다. 이쪽 능선에는 금강송이 다소 덜하고 덩치 작은 소나무가 많다. 사모님 이를 두고 ‘오합지졸송’이란다. 장군송이 있으니 쫄병송도 있어야 되겠재. 11시방향 나무 위로 보이는게 아구산인가.

 

 

 

 

 

  

 

 

 

흥륜사 임도

 

 

 

 

임도 (448m)

북쪽 흥륜사로 연결이 되는 임도다. 우리가 나온쪽으로 [산림유전자보호구역 입산금지] 간판이 있는걸 보니 여기까지 금강송지역인가 보다. [기상관측장비]가 있다는 팻말 옆으로 올라간다.

 

기상관측장비는 헬기장 다음의 1시간 거리의 약650봉에 있는데 여기서부터 광케이블이 매설 되어 있다. 남동쪽으로  울진읍, 서면, 북면이 갈라지는 삼면봉을 향한 오름길은 우측으로 빙 돌아간다. 당연히 마루금에서 벗어나지만 수북하게 쌓여있는 벌목 덤불을 보니 조은길 놔두고 오로지 마루금 찾을 일은 없어 보인다.

 

 

 

우측으로 돌아 삼면봉과 ×612봉 중간 안부에 오르니 바람이 시원해 저절로 엉덩이가 내려앉는다. 남쪽 612봉 능선을 따라 서면과 울진읍의 경계가 갈리니,  여기서 서면과 이별하고 울진읍으로 들어가게 된다. 10분으로는 부족해 15분 머무르다가 일어나면 길은 계속에 사면으로 평평하게 이어진다. 둘레길처럼 길게 이어지다가 가선대부강릉박공을 지나고 우측에 질퍽한 늪지대가 보인다. 고문님 물이라도 보충하려 살펴보지만 마시기엔 부적합 판정이다.

 

 

헬기장 한켠에서 점심

 

 

헬기장

광케이블이 매설된 길을 따라 오르면 제대로 관리된 넓은 헬기장이 있다. 한쪽 그늘에 자리잡고 점심을 먹는다. 시간이야 이르지만 꼭두새벽에 죽 한그릇 먹었으니 배가 안 고프겠나. 점심시간 30분이다.

 

헬기장에서 우측 옆길도 좋아 보이나 그 길은 지형도의 장구령으로 가겠다는 판단이고, 능선을 택해 올라간다. 마루금 따라 광케이블을 매설하면서 길을 냈는지 여유가 있다.

 

 

기상관측장비

 

 

645m

산불감시 카메라와 기상관측시설이 있는 봉우리다. 철책 울타리 안에 통신탑과 태양광 발전판이 보이고, 앞쪽에 삼각점 같은게 박혀있는데 지리원의 삼각점은 아니다.

645봉을 넘고도 광케이블 매설은 계속된다. 내렸다가 다시 오르고를 두어번 한 다음 굵직한 바윗돌이 나오더니 아구산 정상이다.

 

 

 

아구산(峨口山 652.9m △울진301)

준희님 팻말과 삼각점 외에는 볼 것도 없고 햇볕이 뜨거워 앉을 수도 없어 그대로 넘어가니 북으로 이어지는 다음봉이 앉아 쉬기에 더 적당하다. 앞쪽에서 사람소리가 들리길래 반가운 마음에 뛰어 와보니 참외 껍질만 남아있다. 아구산에서 내려가면서 북면과도 이별이다. 이제 온전히 울진읍 영역으로 들어간다.

   

 

 

 

 

 

 

 

 

 

 

헬기장 (594m)

통째 시멘트로 덮은 헬기장. 공구리가 열을 받아 더 뜨겁다. 얼른 지나간다. 내려가면 영양남공 묘를 지나고 산길은 왼쪽으로 급하게 꺾이는데 여기 일대의 굵은 소나무들 대부분이 아랫부분이 깎인 채 속살이 보인다. 송진 채취 흔적이다. 언제적 상처인지 잘린 부위에 새로 난 껍질 두께가 아주 두껍다. 예전에 송진에서 기름을 뽑아 썼던 시절이 있었다. 소나무에서 뽑은 기름을 송유(松油)라 한다.

 

 

 

 

 

 

 

바닥에 솔방울이 무수하다. 비탈길에서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구름쇠 역할을 하여 발이 쭉 미끌리기도 한다. 이 많은 솔방울에서 각각 씨가 나오고 전부가 나무로 자라난다면 완전히 소나무 밀림이 되겠네.

 

북으로 내려가던 유순한 능선에서 지맥이 갑자기 우측 숲으로 들어간다. 잘 살피지 않으면 그대로 내려갈 장면이다. 우측으로 틀어 들어가니 움막 흔적이 있다. 뼈대는 내려앉았고 아궁이는 남아있다. 저 앞에 봉우리는 뾰족 솟아 있는데 길은 자꾸만 아래로 내려간다.

 

남쪽 대흥리의 검피팟골에서 올라온 희미한 안부를 지나 다시 오름길이다. ×425봉 오름인데, 중간쯤 오르고는 왼쪽 사면으로 길이 나있다. 한 발이 천근이라 마루금이고 지맥이고 만사가 귀찮은 지경이니 얼마나 반가운 길인지 모르겠다.

  

 

 

이틀간 유일하게 만난 사람들

 

 

 

×425봉을 사면으로 돌아 나가니 그늘에 사람들이 앉아 있다. 아까 아구산에서 소리를 들었던 그 사람들인데 울진에 사는 젊은이들이다. 우리같은 맥꾼도 아닌 젊은이들이 오늘같이 뜨거운 날 산에 오른게 대견하기도 하다. 10여분 이야기 나누며 쉬었다.

 

여기서 보는 아구산이 아구입인지 몰라도 하여튼 물고기 입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도 그렇다하니 그리 보이지 또 다른걸 갖다 대면 또 그런 그림이다.

 

 

아구산...  아구입 처럼 보이나?...  우측 뒤 뾰족한 봉이 안일왕산.

 

 

 

여기서 예전에 작성된 트랙은 ×425봉을 넘어 남동쪽이지만 그건 잘못된 것이고 바로 앞 헬기장을 지나 다음봉에서 남동쪽이 맞다. 고문님과 희중아우가 그리(×425) 가려는걸 돌려 세웠다. 헬기장을 지나 다음봉에서 우측인데 덤불로 막혀 길이 없다. 조금 후퇴해 길을 따라 내려가니 마루금 한칸 옆 능선이 되는데 살짝 넘어가니 복귀가 된다. 그래도 이정도면 어긋난 것도 아니라.

 

남동방향으로 곧게 한참 가는 능선은 키 큰 나무가 없어 완전히 햇볕에 노출이 된다. 관을 쓴 집사밀양박공 묘를 지나고는 더 넓은 길이다. 집사님댁 위세가 당당한 모양이라 묘 앞 상석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고 생명이니...’

 

 

 

 

 

 

동해바다

 

 

 

 

집사 밀양박공

 

 

 

 

 

고문님 머리에 스팀이 나온다~

 

 

 

 

 

 

 

 

 

363.7m (△울진409)

삼각점은 길에서 왼편으로 살짝 벗어나 있다. 삼각점 찍고 되돌아 나와 급하게 50m 가량 내려선 후 경사가 완만해 진다. 여기가 주의지점이라. 왼쪽을 살핀다고 살폈지만 흔적도 없고 들어갈 만한데도 없어 계속 내려가다보니 임도가 지나간다.

 

 

용천사 임도

 

 

지금은 알바중입니다...

 

 

 

용천사 임도

북쪽 용천사에서 남쪽 대흥리로 연결되는 임도인데, 이미 내 GPS는 마루금에서 서쪽으로 100m 가량 벗어난걸로 표시된다. 그런데, 마주 들어가는 길이 좋다. 좋아도 너무 좋은거라. 고문님이 앞에서 무조건 따라 오란다. 아니라고 부를 자신도 없는 것이 억지로 불러놓고는 틀리게 되면 그 감당을 우야노?

 

조은길 따라 올라가니 왼편에 함석으로 만든 작은 창고가 있고, 한 2분 더 가니 제법 형색을 갖춘 사람이 살만한 함석집이 나온다. 문은 잠겼지만 방에다 부엌에는 아궁이까지 있다. 이 집까지 와서야 고문님이 아니라는 판단을 하시고 왼쪽으로 접근을 시도해 보지만, 건너갈 만한 골이 아니다. 빠꾸 오라이다.

 

용천사 임도 (again)

트랙에서 갈라진거는 더 위쪽이지만, 임도를 따라 붙기로 하자. 동으로 100m 가량 임도를 따라 넘어가니 작은 골을 지나고 마루금을 찾았다. 그렇다고 뚜렷한 흔적이 있는것도 아니지만 나무를 헤치고 들어가니 없던 리본들이 하나씩 보인다.

 

 

알바의 흔적

 

 

되돌아 온 용천사 임도

 

 

 

 

송전철탑

280쯤 되는 봉우리. 비탈에 송전철탑이 있고 정상에는 묘가 있는 듯 길은 우측으로 꺾인다. 넓은 수렛길은 철탑길이다. 신림임도 직전에 마지막 휴식을 가진다.

 

 

 

신림재(250m)

대흥리에서 신림리로 넘어가는 고개니 신림재라 하자. 고개에서 북쪽 용천사는 2.3km, 남쪽 대흥리는 2.8km다. 조금 멀지만 우리는 차량회수가 쉬운 대흥리로 택했다. 아침에는 길 상태를 의심했다만 의외로 길은 양호하다. 아까 만난 울진 젊은이들 말로는 예전에 버스가 넘어 다닌 길이란다.

 

 

 

 

신림재

 

 

 

 

대흥리

 

 

 

대흥리(97m)

2.8km 임도를 35분 걸려 내려왔다. 다음번에는 고개 정상까지 차를 들이밀면 되겠다는 확신을 갖고. 소광리로 가기 전에 어제 묵었던 대흥교 아래로 가 목욕부터 했다.

 

 

소광리

소광리로 가서 내 차를 회수하는데, 혹시나 아까 전화한 양반을 만날까 싶었지만 아무도 없고 내 차도 멀쩡하다. 조용히 차를 빼 도망치듯 소광리를 빠져 나왔다.

 

 

망양정

신경수선배님이 산행을 마치고 죽변에서 울진으로 넘어 오신다길래 망양정에 자리를 잡았다. 고문님은 소광리에서 바로 답운치로 넘어가시면 수월한데, 신경수님 픽업하러 울진으로 도로 들어가는 것이다. 금장지맥 끝지점인 망양정 아래 망양횟집. 세숫대야만한 큰 그릇에 해물칼국수가 나오는데 얼마나 맛있는지 세 그릇이나 퍼 먹었다.

 

 

   

신경수님, 조진대님, 선두대장님

 

 

 

 

해물칼국수 - 가리비에 조개 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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