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웰빙) 열풍과 한류 바람을 타고 승승장구하던 전통주와 막걸리 업계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내수 부진과 수출 급감이란 이중고에 빠졌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7월부터는 까다롭기로 소문난 식품위생법 안전·시설 기준이 적용될 예정이어서 영세 전통주·막걸리 제조업체의 퇴출이 잇따를 것으로 우려된다.
◆전통주 업계 초비상=최근 전통주 업계의 눈과 귀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움직임에 쏠려 있다. 국세청으로부터 주류 안전관리 업무를 넘겨받은 식약처가 전통주 업계에 선전포고를 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국무회의를 통과한 식품위생법 시행령은 주세법상 모든 주류제조면허자를 식품제조·가공업 영업자에 포함시켰다. 민속주·지역특산주를 빚는 영세 전통주 제조업체도 엄격한 위생 기준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주류는 주세법을 통해서만 관리되면서 식품위생법의 관리 대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한국전통주진흥협회 관계자는 “식품위생법 기준에 맞는 설비를 갖추려면 수천·수억원이 든다”며 “전통주 산업이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발단은 201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세청과 식약처는 먹거리 안전성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국세청이 갖고 있던 주류 안전관리 업무를 식약처로 넘기는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후 식약처는 주류제조업을 다른 식품제조업과 같은 방식으로 관리하는 내용의 식품위생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했다. 그러자 전통주 진흥 업무를 담당하는 농림축산식품부가 “현실을 무시한 처사”라며 제동을 걸고 나왔다. 결국 국무총리실 중재로 새 규정을 2013년 7월부터 시행하되 기존 전통주 업체에 대해서는 적용을 2년 유예하기로 했다.
지난해 말 식약처는 주류업체의 세부 시설기준을 담은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을 내놨다. 시행규칙은 양조장을 축산폐수·화학물질·오염물질 시설과 거리를 두도록 했다. 주위에 축사가 있는 주류업체는 시설을 옮기거나 문을 닫아야 하는 갈림길에 선 것이다.
농식품부는 새 기준이 전통주 산업을 위축시킬 것으로 보고 연매출 1억원 이하 영세 전통주 업체엔 별도의 특혜조항을 만들어달라는 입장을 올 1월 식약처에 전달했다. 박성우 농식품부 식품산업진흥과장은 “국내 전통주 제조업체 540곳 중 연매출이 1억원을 넘는 곳은 절반이 채 안 된다”며 “전통 방식의 양조장은 개보수하더라도 식약처 기준을 도저히 맞출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한달 뒤 농식품부에 “2년간의 유예기간을 뒀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통보했다. 황성휘 식약처 주류안전관리태스크포스 과장은 “전통주 제조방법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위생적 안전관리는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전통주 업계가 새 기준을 따를 수 있도록 맞춤형 기술지도를 펴겠다”고 했다.
전통주 제조업계는 초상집 분위기다. 2년의 유예기간은 퇴출 시기를 늦출 뿐 기존 시설을 개선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강환구 참살이탁주 대표는 “전통주나 막걸리는 제조 비법뿐만 아니라 시설도 소중한 문화 자산”이라며 “이런 특수성이 반영되도록 별도의 시설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농식품가공팀 연구사는 “지역특산주를 처음 허용할 때 면적 기준이 10㎡였다”며 “이런 영세업체들이 무슨 수로 식약처 시설기준을 따르겠느냐”고 했다. 그는 “대부분의 양조장이 나무로 만든 술 입국(개량누룩) 시설을 사용하는데, 식품위생법은 소독 가능한 시설을 요구한다”며 “결국 재질을 바꾸거나 별도의 습도조절 설비를 갖춰야 하는 부담이 따른다”고 덧붙였다.
◆흔들리는 막걸리 산업=막걸리 산업도 깊은 시름에 빠졌다. 내수와 수출이 동반 부진에 빠졌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막걸리 내수 출고량은 39만3354㎘로 1년 전에 견줘 3.6% 감소했다. 감소 비율은 크지 않지만 2008년 이후 큰 인기를 누리며 지속하던 큰 폭의 증가세가 처음으로 꺾였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실제 2011년 막걸리 내수 출고량은 2008년보다 3배가량 많았다.
한류의 첨병 역할을 하던 막걸리 수출은 더 심각하다. 2011년 3만5530㎘(5273만달러)이던 수출물량은 지난해 2만1196㎘(3689만달러)로 무려 40%나 줄었다. 올 들어서도 상황은 악화일로다. 4월 말 현재 막걸리 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59%(금액 기준) 급감했다. 농식품부는 수출 물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본 시장에서 막걸리의 인기가 시들해졌고, 엔저 영향으로 수출 경쟁력이 약화되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막걸리 제조업계는 막걸리 소비와 수출을 늘리기 위한 대책이 하루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막걸리 원료로 쓰이는 쌀을 값싸게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청길 금정산성토산주 대표는 “지난해 1㎏당 300원이던 원료 쌀 가격이 올해는 1000원까지 올라 채산성이 크게 악화됐다”며 “원료 쌀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 모든 대책에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일본 오사카에서 막걸리·와인 매장 7개를 운영하는 이여영 월향 대표는 “와인 판매점은 업체 등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지만 막걸리는 국가나 업체 어느 곳에서도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며 “판매점이 막걸리를 많이 팔아야 제조업체도 잘될 수 있는 만큼 판매점에 대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에 편중된 막걸리 수출 시장을 중국 등으로 다변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행히 중국으로의 수출 여건은 크게 개선됐다. 그동안 중국은 ‘1㎖당 세균 50마리 이하’라는 위생조건을 내걸어 생막걸리의 수입을 사실상 막아왔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으로 지난해 8월 이 조건은 삭제돼 올 2월부터는 수출이 이뤄지고 있다. 문제는 독주를 선호하는 중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어떠한 홍보 전략을 구사하느냐 하는 것이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신규·유망 해외시장의 수요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중국에서 열리는 식품박람회 참가 등 다양한 홍보마케팅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