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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경 벌레들 원문보기 글쓴이: 성경 벌레
남편이 아내를 귀중히 여겨야 할 이유 |
참 고 성 경 구 절 | |
1 |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
창 1:26 |
2 |
하나님이 서로 돕는 배필로 주신 자이기 때문에 |
창 2:28-24 |
동등한 인격을 소유한 자이기 때문에 |
창 2:22-24 | |
4 |
하나님이 두 사람 사이를 증거하셨기 때문에 |
말 2:14.15 |
5 |
하나님을 위한 동역자 이기 때문에 |
롬 16:3,4 |
6 |
남자보다 연약하기 때문에 |
벧전 3:7 |
7 |
함께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받을 자이기 때문에 |
벧전 3:7 |
성서교재 간행사/⌜그랜드종합 성경주석⌟ No16 p 388
2주-(화) 찬송 : (새)400장, 463장
■ 창세기 32: 1∼36:43 역대기상 1:28∼2:2 : 천사와의 씨름
☞ 줄거리
밧단 아람을 떠난 야곱은 가족에게 자기의 귀향 소식을 알렸습니다. 그때에 형 에서는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야곱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습니다. 야곱은 그 소식을 듣고 두려워서 재산과 가족을 먼저 보내고 얍복 강에 홀로 남았습니다. 그는 밤새 얍복 강에 머무르면서 고민을 하다가 천사를 만나 씨름을 하고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천사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바꾸라고 지시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야곱은 축복받은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그는 다음 날 아침에 하나님의 은혜로 형 에서와 화해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자신이 서원했던 벧엘로 가지 않고 숙곳으로 가서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런 그는 그곳에서 딸이 강간을 당하는 재난을 당하고, 가나안 주민과 전쟁에 휘말리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여호와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지시를 듣고 마침내 모든 우상을 버리고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경배를 드렸습니다. 그 후에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죽고 말았으며, 잠시 후에 아버지 이삭도 죽고 말았습니다. 이에 야곱은 형 에서와 함께 사이좋게 아버지 아식을 장사지냈습니다.
“야곱이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32:24)
에서의 환심을 사서 화해를 이루려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가자, 야곱은 더 치밀한 전략으로 에서와의 만남을 준비합니다(32:160-23). 그것은 한쪽으로는 에서의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더 치밀한 전략을 구사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시도가 수포로 돌아가자 하나님께 언약을 내세우며 간절히 애원하던 야곱이 또다시 자신의 잔꾀를 의지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야곱의 이러한 모습은 그가 아직도 얼마나 더 연단을 받아야 하고 변화해야 하는가를 보여 줍니다. 또한 에서를 속인 과거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야곱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의 방법으로 하나님을 앞서가며 저지른 실수들이 얼마나 아픈 결과를 가져오는가에 대한 경고도 들려줍니다. 나는 두려움과 낙담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합니까? 아니면 또다시 하나님을 제쳐두고 인간적인 전략들을 구사합니까?
이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다루시기 시작합니다. 얍복 나루터에서 천사의 모습으로 나타나 야곱과 씨름합니다. 이 일은 야곱이 혼자 있는 밤에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성품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야곱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과의 씨름을 통한 변화가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서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에서를 상대로 씨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상대로 씨름하는 것이었습니다(32:24-32). 이 씨름으로 인해 야곱은 평생 다리를 저는 장애를 얻었으나, 그 성품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는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이 주어졌습니다.무엇이 더 우선적인가, 무엇이 더 근본적인 문제인가를 분별하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다른 사람이나 환경을 탓하지는 않습니까?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변화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깨닫고 있습니까?
-두란노 서원/「생명의 삶, 말씀해설」, 2005, 03, 11 -
미국의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비록 소아마비 장애인으로 불편하게 걸어 다니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매일 기도하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살았습니다.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었을 때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1944년 6월6일 연합군은 아이젠하워 사령관의 총지휘하에 대규모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전개했습니다. 프랑스의 북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노르망디 해안은 험한 절벽이었고 상륙작전 전날 밤은 폭우 안개 등으로 도저히 작전을 수행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접한 지도자들은 이 중요한 작전의 성공을 위해 각각 하나님께 기도하기로 합의하고 기도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루스벨트 대통령도, 영국의 처칠 수상도, 아이젠하워 사령관도 모두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특히 루스벨트 대통령은 집무실에서 17시간이나 꼼짝하지 않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믿음의 기도를 들은 하나님은 결국 이 상륙작전이 승리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태복음 7:7)고 약속하고 있다
-고수철 목사/흑석동제일교회 담임목사-
2주-(수) 찬송 : (새)382장, 432장
■ 창세기 37: 1∼41: 57 꿈과 해몽
☞ 줄거리
약속된 땅으로 돌아온 후에 야곱은 12아들 중에서 특히 요셉을 편애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은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말년에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아들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기회를 만들어 요셉을 잡아두었다가, 애굽으로 가던 대상들에게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의 옷에 피를 묻혀서 아버지 야곱에게 가져갔습니다. 야곱은 그 옷을 보고 야곱이 맹수에게 찢겨죽었다고 생각하고 크게 슬퍼했습니다. 수십 년 전에 자기 아버지를 속였던 야곱은 똑같이 자기 자녀들에게 속임을 당했습니다.
그 때에 유다는 우여곡절 속에 자기 며느리 다말과 동침하여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애굽에 도착한 요셉은 보디발에게 팔려 그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해 후에 그 집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2년 동안 감옥에 갇혀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은 요셉을 바로 앞에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때가 되자 하나님은 바로가 꿈을 꾸게 만들고, 요셉을 통해서 그 꿈을 해석하게 하셨습니다. 이로 인해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을 잘 다스려서 풍년이 든 동안에 많은 곡식을 저장해 두었습니다.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지 않고 잊었더라”(40:21-23)
요셉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나 거기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고관들의 꿈을 해석해 줄 기회를 얻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꿈꾸는 자 곧 꿈을 이루어 가는 자는 타인의 꿈을 밝혀 주고 성취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요셉을 형통케 하셨을 뿐 아니라 타인의 꿈을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8절). 하나님이 주신 꿈으로 인해 타인의 비전과 장래 일을 조망하고 그의 마음을 이끌어 주는 능력을 갖게 된 것입니다. 이 능력으로 말미암아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줍니다. 그 꿈은 술 맡은 관원장이 다시 복직될 것과 떡 굽는 관원장이 곧 죽음에 처하게 될 것을 보여 주는 꿈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을 통해서 미래를 아는 것을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의 뜻을 이뤄 가시는 방법으로 꿈을 사용하셨습니다.
우리가 고난 자체로 인해 낙심하지 않고 고난 중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감당할 때, 그 고난은 오히려 승리의 기포제가 될 것입니다.
요셉의 해석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되고 떡 굽는 관원장은 죽임을 당했습니다(21-22절). 요셉은 이 사건을 통해 그의 꿈 해몽 능력, 곧 미래 예측 능력을 분명히 입증해 보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능력을 가지고 술 맡은 관원장에게 큰 은혜를 끼쳤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능력과 은혜에도 불구하고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어버리고 맙니다(23절).
이 말씀은 우리가 그 능력과 성실성을 입증하고 사람들을 선대하여 은혜를 베풀더라도 그 결과가 즉시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그러나 이 막연한 인내의 시간에도 우리는 낙심치 말고 굳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
-프리셉트/「묵상하는 사람들, 메시지」,2005. 07. 06-
1920년 무렵, 덴마크에 경제공황이 닥쳐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건축업계는 공황을 이기지 못하고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목공소를 운영하고 있었는데 그는 건축업계가 붕괴되자 다른 일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장난감 공장으로 업종을 바꾸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장난감 공장이 불에 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실망하지 않고 전부터 하던 조그만 플라스틱 장난감 만드는 일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 사업은 의외로 크게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업이 날로 성장하여 오늘날은 연간 매출액이 10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회사가 ‘레고’라는 이름의 장난감 회사입니다. 많은 실패를 당하였으나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여 마침내 세계적인 장난감 회사로 성공하게 되었습니다.
-아가페/하천덕 편저,「키워드로 불러보는 설교 예화」p 45-
2 주-(목) 찬송 : (새)84장, 96장
■ 창 42: 1∼45:28 애굽의 히브리인 총리
☞ 줄거리
마침내 온 땅에 심한 기근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은 요셉이 저장한 곡식으로 흉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 가나안에도 흉년이 들어서 요셉의 형제들은 곡식을 사기 위해서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때에 요셉은 애굽의 식량을 주관하는 총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요셉은 자기 형들이 곡식을 사러 온 것을 보고 그들의 마음을 알아보기 위해서 그들을 첩자로 몰았습니다. 계속해서 곤경에 빠지게 된 형제들은 자신들이 전에 요셉에게 한 일을 기억하고, 자신들이 그 형벌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그 동안 요셉이 생각날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받아왔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을 몇 번 시험해보고 그들이 자기 동생 베냐민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형제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고, 형제들에게 아버지와 모든 가족을 애굽으로 모셔오라고 지시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서 먼저 자기를 애굽에 보내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일을 위해서 요셉을 애굽에 보내셨으며, 항상 요셉과 함께 동행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환난을 당하는 성도들에게 큰 위로를 주는 메시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대답하지 못하더라.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45:3-5)
그리스도인은 인격과 신앙으로 사람을 살려야 합니다. 요셉은 형들의 회개, 가족의 생명 보호, 애굽과 주변국을 기근으로부터 구원하는데 귀하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요셉은 고결한 인격을 가졌습니다. 자신의 청춘을 빼앗아갔던 형들을 용서하고 돌보는 마음은 우리의 눈시울을 적시게 합니다. 그는 형들의 회개를 위해서 오랜 시간을 두고 준비하였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러기에 형들의 회개를 확인하였을 때 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방성대곡하였고, 급기야는 형들과 입 맞추고 얼싸안고 울었습니다. 그는 원수 같은 형들을 사랑하였기에 회개하도록 도왔고, 회개하였을 때 모든 것을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하고, 그들을 가슴으로 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을 돌보는 책임을 지겠다고 말합니다(11). 요셉은 형들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형들의 장래를 돌보아 줄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애굽의 총리로서 막강한 권력과 힘을 가지고 있지만, 70여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돌아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자청해서 돌보겠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던 사람들을 용서하고 돌아본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인 인격은 용서와 돌봄에 있습니다. 우리는 서로 용서하지 못하고 다투고 싸우는 세상에서 용서와 돌봄의 인격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요셉은 믿음의 연단을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아버지 야곱에게서 신앙의 기초를 쌓았다면, 노예로 팔려 보디발의 집에서, 감옥에서 수년 동안 믿음의 연단을 받았습니다. 그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괴롭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디에서나 하나님께 원망하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믿음의 눈으로 현실의 상황을 바라보니까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음으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5,8)고백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신앙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앙의 바탕에서 고결한 인격도 형성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우주와 인간 역사를 섭리하시며, 나의 삶을 섭리하고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현재 자신이 처한 환경이나 형편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니까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고 어떤 경우에도 낙심치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처지에서 성실과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실과 믿음으로서 하나님의 섭리에 쓰임 받으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용서할 수 없었던 사람을 용서하신 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할 수 있을까요?
-기독대학인회(ESF),/ 「일용할 양식, 말씀 묵상」, 2007. 4. 18-
인도 선교사로 활약하던 선교사 스탠리 존슨 박사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는데, 그의 앞에 피골이 상접한 젊은 청년이 자리에 앉습니다.
피차 인사를 나누며 자기는 목사인 것을 알렸습니다. 스탠리 존슨 박사는 청년에게 "어디를 가느냐"고 길을 물었습니다.
그 청년이 자기의 신분을 밝히는데 그는 부자 집 외아들로 고이 자라다가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나쁜 일을 많이 하고 나중에는 형무소에서 징역을 사는 전과자가 되고 패륜아가 되어 아버지의 진노를 사서 집에서 추방을 받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그래도 자식을 사랑하여 노잣돈을 주머니에 넣어주면서 "아버지의 진노가 풀릴 때까지 나가있으라"고 했습니다.
이 청년은 아버지에게 보복할 결심으로 멋지게 살아 보리라고 갖은 노력을 했으나 무서운 타락 생활은 계속되고 몸은 병들어 쇠약해져서 피골이 상접하고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도리가 없음을 알고 자기 어머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써서 호소를 해 보기로 작정을 하고 지금 자기의 기막힌 처지를 편지로 쓰고 아버지의 용서를 한번만 더 요청해 달라고 사정을 하면서 "만일 아버지가 용서해 주신다면 우리 집 뒤에 있는 배나무 가지에다 흰 헝겁을 하나 걸어 놓으면 그것이 아버지의 용서의 표식으로 알고 집에 들어가 착실한 아들 노릇을 하겠지만 만일 용서해 주시지 않는 다면 자살해버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며 칠 날 기차를 타고 갈 것이며 흰 헝겁이 보이면 집으로 가고 아니면 그 다음에 강다리에 투신자살을 하겠습니다" 고 편지를 보내놓고 오늘이 약속한 날이라 고향에 가는 길이라고 하면서 "목사님 내 집 뒤에 배나무를 쳐다보아 주십시오. 나는 차마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고 애원했습니다.
존슨 목사는 청년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차가 도착하여 존슨 목사는 그 집 뒤 배나무를 쳐다보았다. 흰 옷감들이 가지가지 나무에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청년에게 알리면서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그 청년은 눈에 눈물이 나며 얼굴에 생기가 나면서 목사님도 함께 집으로 가자고 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청년은 어머니에게 "어찌하여 가지에 하나만 매달리 않고 가지가지에 흰 옷감을 매달았느냐"고 물으니 어머니의 대답이 아버지의 용서하심을 듣고 한 가지에다 흰 헝겁을 매달고 와서 밤에 생각해보니 바람이 불어서 그 헝겁이 보이지 않으면 자살할까 두려워서 홑이불을 갈기갈기 찢어서 가지가지에 매어 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때 청년은 비로소 어머니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면서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어서 예수 잘 믿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잘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스탠리 존슨 목사의 선교 역사에 있는 실화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 하나님 앞으로 안심하고 나갑니다. 그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서연구사 /기독교 문장 대백과사전 16권 692쪽--
2주 -(금) 찬송 : (새)360장. 402장
■ 창세기 46: 1∼50 :26 애굽 땅의 하나님 백성들
☞ 줄거리
마침내 야곱의 가족은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왕의 허락을 받아 애굽에서 가장 비옥한 고센 땅에 머무를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풍년 기간 동안에 저장해 놓은 곡식으로 7년 동안의 흉년을 지혜롭게 대처해나갔습니다. 그때에 요셉은 이스라엘 뿐 아니라 온 세상의 구주였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나이가 들게 되자, 두 아들을 데리고 찾아가서 문안을 드렸습니다. 그때에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 후에 야곱은 자신이 죽을 때가 된 것을 알고, 12아들에게 축복해 주었습니다. 그 후에 야곱은 세상을 떠났고, 요셉은 아버지를 가나안에 장사지냈습니다. 야곱이 죽게 되자 요셉의 형들은 보복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으며 따라서 형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안심시켰습니다. 그는 형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치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나이다"(창50:20). 요셉은 영적으로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일어났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어떤 재난이 닥쳐와도 성급하게 판단하여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해야 합니다.
“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창48:15,16)
야곱은 일반적인 원칙을 깨고 요셉의 둘째 아들 에브라임에게 축복의 우선순위를 두어 그에게 안수함으로 장자 권을 계승시킵니다.
본문은 야곱이 요셉의 아들들에게 축복의 안수를 베푸는 장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때 야곱과 요셉 사이에 작은 실랑이가 벌어집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자신의 아들들을 축복하는 것을 돕기 위해 오른손과 왼손의 방향에 맞게 각각 아들들을 세웁니다(13절). 하지만 야곱은 일부러 팔을 어긋 맞겨 얹어 축복의 순서를 바꾸려고 합니다(14절). 요셉은 이러한 상황을 기뻐하지 않았고(17절), 아버지에게 항의합니다(18절).이에 야곱은 에브라임이 므낫세보다 큰 민족이 될 것을 예언하면서 축복합니다(19-20절).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의 방법과 계산법이 우리의 상식을 초월한다는 진리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사 55:8)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우리 생각의 범주 안에 제한시키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나게 될 때 그 판단을 유보하고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포도원 품꾼의 비유(마 20:1-16)에 등장하는 품꾼들처럼 “내 것을 가지고 내 마음대로 못한단 말이냐? 내 너그러움이 네 비위에 거슬리느냐?”(현대인의 성경-마 20:15)라고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야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날 때부터 지금까지 함께 하셨고, 우리를 죽음과 악에서 구원하셨으며, 앞으로의 모든 삶에 함께 하시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삶의 어려운 지경에 놓여 있을지라도 늘 주님께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계획과 사랑으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고 위로와 새 힘을 얻으시길 소망합니다.
-프리셉트/「묵상하는 사람들, 메시지」,2005. 07. 29 -
더운 여름 오후에, 나무 그늘 아래에서 네명의 청년이 수박을 깨서 실컷 먹고 배가 빵빵했습니다. 모두들 나무 아래 누워서 시원한 바람을 쐬며 세월 가는 줄 몰랐습니다.
한 청년이 “저 위에 달린 것 호두 아니야? 하나님도 쩨쩨하시지, 기왕이면 수박만 하게 만드셨어야지 작으니 먹을 게 있나!”하며 불평을 하자 모두 공감했습니다.
스르르 잠이 들었는데 한 차례 회오리바람이 불더니 후두 하나가 떨어져 청년의 콧잔등을 깼습니다. 벌떡 일어나 코를 만져보니 약간의 코피가 묻어나오고 옆에는 호두가 늠름하게 있었습니다. 조금 전에 한 말이 생각나서 얼른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호두를 작게 창조하셨음을 감사합니다. 만약 수박덩이 만했다면 나는 즉사했을 겁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우리는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잠언에는 심지어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다’니 우리가 할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이방 바벨론을 들어 선민 이스라엘을 치신 하나님의 섭리. 다 이해 못해도 주어진 현실을 수용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복이며 하나님이 그의 마음을 알아 주십니다.
억지로 하나님을 거스려 살려는 삶은 피곤하게 마련입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도서 출판 누가/신현주 목사,「예화 철학」) p 92-
2주-토) 찬송:(새)333장, 381장/ (새)342장, 395장
◇ 이번 주 읽은 성경 요약 및 못 읽은 부분 읽고 한 주간 생활 묵상하며 가정 예배드리기
◈ 주제 : 인간 창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설계도(창2:18-25)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
오늘 본문은 표면적으로 하나님이 아담에게 아내를 주신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의 이면에는 하나님의 인간 구원 계획 및 인간이 구원 얻는 방법 등 구원론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 돕는 배필 (18-20)
18절에 보면 하나님은 아담이 배필의 필요성을 느끼기 이전에 이미 그것을 아시고, 그를 위해 배필을 지으실 계획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는 분이시며, 이미 그것을 위해 준비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지으신 각종 들짐승과 새들을 아담에게로 보내어 이름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그에 대한 소유권을 나타내는 행위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직접 피조물의 이름을 짓지 않으시고 아담에게 위임하신 것은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배필을 지어 주시기 전에, 짐승들의 이름을 짓게 하신 또 하나의 이유는 모든 짐승에게 암수가 있음을 보면서 자신의 배필 없음을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20).
이처럼 하나님은 먼저 무엇이 필요한지 스스로 깨닫게 하시고, 그 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므로, 기뻐하며 그것을 소중히 여기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간절한 기도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진실로 무언가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음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둘이 한 몸이 될찌니(21-25)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그의 배필을 만들어 주었습니다(21). 아담의 몸에서 희생을 지불케 하므로, 그 아내가 생기게 한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그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므로 교회가 성립될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아담은 이렇게 해서 얻은 아내를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는 이처럼 밀접한 것입니다. 한편 24절에는 온전한 결혼에 대한 3대 원리가 나옵니다. 그것은, 첫째 책임을 지닌 성숙한 존재로서 부모로부터 떠나는 ‘독립성’이며, 두 번째는 동등한 두 인격체와 인격체가 만나는 ‘연합 성’이며, 세 번째는 두 몸이 사랑으로 온전히 하나 되는 ‘합일성’입니다. 이렇게 완전한 사랑에는 어떠한 부끄러움도 없었습니다.
-「GT, 세계를 품는 경건의 시간, 2004, .01 .07」/ GTM-
세상에 이혼을 생각해보지 않은 부부가 어디 있으랴
하루라도 보지 않으면 못 살 것 같던 날들 흘러가고 고민하던 사랑의 고백과 열정 모두 식어가고, 일상의 반복되는 습관에 의해 사랑을 말하면서 근사해 보이는 다른 부부들 보면서, 때로는 후회하고 때로는 옛사랑을 생각하면서 관습에 충실한 여자가 현모양처고 돈 많이 벌어오는 남자가 능력 있는 남자라고 누가 정해놓았는지..
서로 그 틀에 맞춰지지 않는 상대방을 못 마땅해 하고 자신을 괴로워하면서, 그러나 다른 사람을 사랑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 귀찮고 번거롭고 어느새 마음도 몸도 늙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아 헤어지자 작정하고 아이들에게 누구하고 살 거냐고 물어보면 열 번 모두 엄마 아빠랑 같이 살겠다는 아이들 때문에 눈물 짓고, 비싼 옷 입고 주렁주렁 보석 달고 나타나는 친구. 비싼 차와 풍경 좋은 별장 갖고 명함 내미는 친구. 까마득한 날 흘러가도 융자받은 돈 갚기 바빠 내 집 마련 멀 것 같고... 한숨 푹푹 쉬며 애고 내 팔자야 노래를 불러도...
어느 날 몸살감기라도 호되게 앓다보면 빗길에 달려가 약 사오는 사람은 그래도 지겨운 아내... 지겨운 남편인 걸...
가난해도 좋으니 저 사람 옆에서 살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하루를 살고 헤어져도 저 사람의 배필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날들이 있었기에..
시든 꽃 한 송이 굳은 케익 한 조각에 대한 추억이 있었기에..
첫 아이 낳던 날 함께 흘리던 눈물이 있었기에..
부모 상(喪) 같이 치르고 무덤 속에서도 같이 눕자고 말하던 날들이 있었기에..
헤어짐을 꿈꾸지 않아도 결국 죽음에 의해 헤어질 수밖에 없는 날이 있을 것이기에..
어느 햇살 좋은 날 드문드문 돋기 시작한 하얀 머리카락을 바라보다 다가가 살며시 말하고 싶을 것 같아 그래도 나밖에 없노라고..그래도 너밖에 없노라고..
- 아름다운 가정 , 2005/02/21
어느 날 성남 예비군 훈련장에서 결혼한 사람들에게 중대장이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자기 혼자 일을 결정하지 않고 아내 말을 듣는 사람은 오른쪽 의자에 않으십시오.” 그러니까 예비군 350명 중에 단 한 명만 남겨 놓고 다 오른쪽 의자에 앉았습니다. 그때 왼쪽에 혼자 않아 있는 사람에게 중대장이 말했습니다. “어떻게 아내를 잡으셨습니까? 왼쪽에 당당하게 혼자 있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그때 그가 말했습니다. “제 아내가 사람 많은데 가면 큰일 난다고 하잖아요.”
요새 각 가정마다 아내의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남편들이 아내 말을 잘 듣습니다. 그래도 성경은 아내에게 “순복하라!”고 합니다. 열등해서 순복하라는 말이 아니라 죄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와 같이 순복하라는 말입니다(벧전 2). 그리스도는 하나님보다 열등하시기에 순복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우주적인 뜻과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서 순복하신 것입니다. 그처럼 아내가 남편보다 열등해서 남편에게 순복하라는 것이 아니라 가정의 승리와 평안을 위해서 순복하라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순복하는 것은 열등해서가 아니라 남편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아담에게 하와를 주실 때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각 가정에 돕는 천사를 보내주었는데 그 천사가 바로 아내입니다. 남편이 아내를 보고 “아내는 하나님이 보낸 천사구나”하고 깨닫고, 아내 역시 스스로 자기 가정을 위해 하나님이 보낸 천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내의 매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돕는 자세 속에 있습니다. 아내의 교양과 능력은 무엇입니까? 그것도 역시 돕는 모습 속에 있습니다. 재테크를 잘하고, 말을 잘하고, 사회적인 능력이 있어야 아내가 위대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의 믿음을 도와주고, 또 자녀를 도와서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을 보이고, 가정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천사의 모습을 할 때 아내는 위대해집니다.
아내가 가정에서 남편에게 순복하려고 할 때 어떤 모습으로 순복해야 할까요? 성경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순복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권면합니다(벧전 3:1). 대개 믿지 않는 남편들은 아내의 말이 아닌 아내의 행동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어떤 아내는 남편을 구원해보겠다고 시간이 있으면 남편에게 설교합니다. 유명한 목사의 설교를 들어도 꿈쩍하지 않는 남편이 아내의 설교로 움직일까요? 아내의 설교는 오히려 역효과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가르치려는 말만 들으면 “또 설교한다!”라고 거부반응을 보입니다. 자기 혼자 감격해서 아무 때나 설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설교자가 되기보다 순복하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남편은 아내의 순복하는 모습에 감격합니다. 속으로 아내를 존경하고 인정합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감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정결함을 느낍니다. 결국 아내의 사랑과 교양과 고결함에 압도되어 남편은 아내를 따라 교회에 나옵니다. 그것이 남편을 이끄는 가장 소중한 방법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아내가 남편보다 성격이 강하고 말을 잘해서 남편을 항상 이깁니다. 그러면 남편은 패배감에 젖어서 사회에서 패배자의 모습으로 살 가능성이 커집니다. 가정에서 남편을 물로 만들면 사회에서도 물처럼 됩니다. 말로 남편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십시오. 설교하면 더 완고해지니까 스스로 실망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저렇게 고집을 부려!” 왜 고집을 부릴까요? 가깝고 편하기 때문에 더 고집을 부리는 것입니다.
사이가 가까울수록 설교하는 말은 오히려 잘 통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말보다 감동이 필요하고, 순복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어떤 아내는 믿지 않는 남편을 구원한다고 남편 들으라고 남편 앞에서 기독교 방송도 크게 틀고 열심히 기도도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는 남편이 아예 집에도 안 들어오려고 합니다. 그런 방법은 남편을 구원하는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진실한 사랑을 통해 아내의 매력을 보여줄 때 남편은 그때야 주님 앞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 이한규목사(분당 사랑의 교회) 2009.01.12 가정칼럼(8)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저희 두 사람을 자녀로 택하시고 오늘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이제 저희가 하나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기를 원합니다. 이 길에서 하나님께 가는 그 날까지 저의 사랑하는 아내에게 격려와 도전을 줄 수 있는 자가 되게 하시고 저의 아내 또한 저에게 그런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여서 허물이 많은 지금의 모습입니다. 참으로 제자의 부부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저희의 부족함을 채우시고 준비시키시고 훈련시켜 주시옵소서.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마땅히 드려야 할 그때에 주저함 없이 바울처럼 내어 드리게 하소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저희 삶을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앞에 어려움이 닥칠 때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런 일들을 풀어 나아가게 하시고 사람의 방법을 찾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허물 많은 자에게 신실한 아내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남은 날 동안 하나님이 주신 아내를 아껴주고 오늘 품은 이 마음들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 만이 저희의 기업이 되십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도 예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