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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평화전망대 1층 통일염원소에 붙어 있는 어떤 학생의 '통일 염원' 쪽지 |
ⓒ 정만진 |
| "포스터 그리기 귀찮고, 글짓기 하기 귀찮으니까 얼른 통일하세요!"
재미있는 말이다. 강화평화전망대 1층의 통일염원소에 붙은 어떤 학생의 쪽지가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이 학생의 촌철살인에는 분단이 곧 질곡이 되는 우리 사회의 문제가 날카롭게 지적되어 있다. 통일이 이루어지면 이 학생에게도 '분단 극복' 주제의 포스터 그리기와 글짓기 하는 번거로움은 사라질 것이다.
그래서 2층 전시관에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통일'과 '통일 그 후...'라는 게시물이 붙어 있다. 북한에 매장되어 있는 금, 아연, 철 등 핵심 광물 20종의 잠재 가치가 약 7000조 원에 이른다는 내용이 보인다. 북한은 젊은 인구가 많아 고령화 심화로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될 남한 사회의 당면 문제를 해소해 줄 것이라는 설명도 보인다. 부산- 서울-평양- 블라디보스토크- 파리- 런던으로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는 세계 경제의 대동맥이 되고, 나아가 지구촌 최대의 프로젝트가 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도 가슴벅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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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 평화 전망대 |
ⓒ 정만진 |
| 강화평화전망대 최고의 자랑거리는 이곳이 휴전선 일대 수많은 전망대 중 유일하게 바다를 가로질러 북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삭풍(朔風)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明月)은 눈 속에 찬데 만리변성(萬里邊城)에 일장검(一長劍) 짚고 서서 긴 파람 큰 한소리에 거칠 것이 없에라"라는 김종서의 호기가에 나오는 표현을 빌면, 눈앞에 아무런 방해물도 없이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는 훌륭한 전망대가 바로 강화평화전망대이다.
강화평화전망대는 찾아가는 길에도 훌륭한 교육자료가 배어 있다. 어느 쪽에서 접근하든 전망대에 가려면 무장 군인들의 검문을 받아야 한다. 총을 든 무장 군인들은 신분증을 보자면서 차에서 내리라고 요구한다. 이 과정을 무사히 통과해야 평화전망대로 갈 수 있다. 게다가 바닷가에는 높은 철조망 철책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이런 풍경을 보면서 자란 아이들이 과연 남한에 몇이나 될까? 강화평화전망대는 가는 길만으로도 멋진 통일교육 자료가 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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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화도의 철조망 |
ⓒ 정만진 |
| 화문석문화관, 절대 놓치지 말고 찾아야
무릇 여행은 먼 곳을 먼저 방문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까운 답사지를 찾아야 한다. 그래야 중요한 곳을 빠뜨리지 않을 수 있고, 시간 배정을 하기에도 좋다. 또 가까운 곳은 비록 오늘 찾지 못했다 하더라도 뒷날 재방문 계획을 세우기 쉽다.
강화도 최북단 답사지 평화전망대를 둘러본 답사자가 내려오는 길에 꼭 찾아야 할 곳은 어디일까? 바로 강화화문석문화관이다. 강화군 송해면 630-1번지에 있는 화문석문화관은 '강화도 대표 상품' 화문석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준다. 짚풀과 인간, 왕골의 재배와 가공, 왕골공예 제작과정, 화문석 사용 문화, 무형문화재 작품 전시, 화문석 활용 전통공예품 전시는 물론, 왕골공예 체험학습장과 화문석 체험학습장까지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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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문석문화관 안에 전시 중인 작품 중 하나. |
ⓒ 강화화문석문화관 |
| 강화화문석은 우리나라 유일의 왕골 공예품이다. 역사는 고려 중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몽고 항쟁기에 39년 동안이나 고려의 수도가 되었던 곳이 강화도이기 때문이다. 당시 강화도 주민들은 왕실과 관료들을 위해 최상의 자리를 제작해야 했다. 그것이 곧 최고의 기술을 쌓는 계기가 되었다.
화문석문화관을 둘러본 뒤 남쪽으로 내려오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청동기 시대 고인돌들이 곳곳에서 답사자를 기다리고 있다. '곳곳에서'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만큼 강화도에 고인돌이 많다는 뜻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고인돌이 부지기수로 많다. 문화재청과 서울대박물관이 1999년에 공동으로 펴낸 <한국 지석묘유적 종합조사연구>는 세계 6만 여 고인돌 중 약 4만 기가 남한에 있고, 약 2만 기가 북한에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본래 고인돌은 우리나라 중에서도 대구에 가장 많아서 해방 전후만 해도 약 3천여 기가 분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구의 고인돌들은 건설과 도시화 과정에서 대부분 파괴되어 버렸고, 고창, 화순, 강화에만 비교적 온전하게 남게 되었다. 그 결과 고창, 화순, 강화 이 세 곳의 고인돌들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강화 고인돌들은 섬 북부에 자리잡고 있다. 평화전망대가 있는 양사면 교산리, 화문석문화관이 있는 송해면 아래 하점면의 부근리, 점골, 신삼리, 삼거리, 고천리와 강화읍의 대산리가 대표적 고인돌 유적지다. 강화도 고인돌들이 북방식이니 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어떤 지역이 고조선의 영역 범위 내였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역사적 증거물이 되는 북방식 고인돌을 답사하려면, 통일이 되기 이전까지는 무조건 강화도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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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골 고인돌 |
ⓒ 정만진 |
| 이곳저곳 고인돌들을 보고난 뒤 남쪽으로 더 내려오면 강화읍에 닿는다. 읍은 강화도 북부의 남단, 중부의 북단에 해당되는 지역이다. 읍내의 대표 답사지는 고려궁지로, 39년 고려 수도의 흔적이 짙게 배어 있는 곳이다. 읍내에는 그 외에도 대한성공회 강화성당, 강화향교, 연무당 옛터, 강화산성, 김상용 비 등의 답사지가 있다. 물론 갑곶돈대와 갑곶순교성지도 행정구역상 강화 읍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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