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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수목사의 "소제" 1.고운가루 2편
우리의 생각을 무너뜨려야
얼마전에 우리는 사천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예배당을 빌리려다가 적당한 건물도 별로 없고 해서 시골에 터가 넓은 집을 하나 샀어요. 그 집을 사서 마굿간을 개조하여 잠시 예배당으로 썼거든요. 물론 주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으니까 아주 성경적인 셈이지요. 그런데 사천에도 예배당을 짓기로 해서 형제들이 어느 날 파워셔블(굴삭기)을 가져왔습니다.
파워셔블이 '둘..둘..'하고 소리를 내면서 그 큰 삽으로 그냥 기왓장을 비롯해 유리창과 기둥을 때려 부수고, 그 위를 밟아 뭉개버렸습니다. 그 집이 그래도 쓸만한 집이었기에, 저는 마굿간만 부숴뜨리는 줄 알았더니 깨끗한 안방도 부수고 건넌방도 부수고, 심지어 수도도 부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집 뒤편에 상추와 쑥갓을 심어 놓은 참 좋은 밭이 있었는데, 그것도 엉망으로 만들었어요.
다 뒤집어 엎어 버렸지요.
그런 뒤에 그 곳에다가 붉은 벽돌로 된 4층 예배당을 멋지게 지었습니다. 여러분, 새 예배당을 지을 때 안방은 놔두고 옛날에 있던 집 가운데서 변소간과 마굿간만 부수는 것이 아니라 하나도 남김없이 다 부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방은 정말 반듯하게 생겼는데 참 아깝더라고요. 유리창도 끼운지 얼마 안되는 것 같고 새로 천장 수리도 하고 도배도 한 집인데, 파워셔블은 그걸 몰라 주더라고요. 그냥 둘 둘 둘 둘 굴러가면서 '딱' 치니까, '와지직' 하면서 무너지더라고요. 그래야 그 곳에 좋은 새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단이 하나님의 뜻과 전혀 다른 생각의 집을 우리 마음속에 지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그 집에서 살아욌습니다.
밀알의 껍질이 벗겨져서 고운가루가 되듯이, 우리 속의 좋은 생각, 부정한 생각, 정직한 생각, 음란한 생각 어느 것 할 것 없이 다 부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난 이 부분은 깨끗한데..."하는 것이 있습니까?
예 깨끗해도 육에서 나온 것은 육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이미 사단의 계획에 의해 오염이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껍질이 벗겨져서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합니다. 고운 가루가 되었을 때, 반죽을 할 수 있고, 그것으로 네모난 빵을 만들 수도 있으며, 세모난 빵을 만들수도 있고, 둥근 빵을 만들고 싶으면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물이 되고, 하나님이 흠향하시는 제물이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우리 인간의 육에서 나오는 생각을 조금 잘 다듬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나쁜 생각을 좀 덜하고, 술을 좀 덜 마시고, 담배를 좀 덜 피우고, 노름을 좀 덜하는 방향으로 우리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에 맞추어 나가려고 합니다. 마치 초라한 초가집을 그냥 놔두고는, 빌딩의 설계도를 앞에 두고 초가집을 빌딩으로 만들기 위해서 벽돌을 한 장 더 쌓았다가 떼었다가, 슬레이트를 한 장 더 올렸다가 떼었다가, 유리창을 한 장 끼웠다가 다시 떼었다가 하는 그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의 신앙생활과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16:24)
이사야 55장에 보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가 그 생각을 '고칠'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왜 '버리라'고 하셨겠습니까? 고쳐서 될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구원 받으려면 우리의 생각을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송두리째 벗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왜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었을 때, 이미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정반대되는 생각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사단의 영에 이끌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 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거듭났습니까?'하고 물어보면, 사람들이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어요. 죄사함 받으라고 하면 왜 이단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내고 주일을 지키고 착한 일을 하라'는 이야기를 하면 참 좋아하는데, '하나님앞에서 죄사함을 받고 거듭나라.'고 하면 왜 그렇게 싫어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그렇게 가르치는 줄 아십니까?
한번은 귀신 들린 어떤 젊은 아가씨가 저희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제가 그 아가씨와 오랫동안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것은, 안타갑게도 그 아가씨는 늘 자기 속에 있는 어떤 신의 이끌림을 받아 왔는데, 그 귀신을 예수님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디는 것 이었습니다. 다른 형제들하고도 이야기를 많이 했지만, 그때마다 '내 안에 예수님이 말씀하시는데, 무슨 소리냐?'하고 물리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만나서 조용히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가씨는 죄 사함을 받았느냐? 정말 아가씨 자신의 마음을 꺽어 본 적이 있느냐? 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죄가 있다'는 거예요'
'죄있는 사람 속에 어떻게 하나님의 성령이 거할 수 있느냐? 그것은 사단이 아니냐?' 하며 성경을 펴놓고 이야기 하니까, 할 말이 없거든요. '아가씨 속에 있는 영은 주님이 아니라, 사단의 영이다. 그 말을 따르면 아가씨는 미쳐 버린다.'고 하니까, 제가 목사니까 마지못해 '그렇다'고 하면서도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태도가 역력히 보이더라고요.
사단의 무기인 육신의 욕구
여러분, 사단이 우리를 속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무기가 하나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이 뱀을 저주할 때 뱀에게 '너는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고 하셨습니다. '흙'은 우리 '육신'을 의미하거든요. 사단은 우리 육체를 그의 양식으로 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 육체를 밥으로 여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육체를 위하는 것처럼, 우리 자신을 위하는 것처럼 하는 것은 사단이 하는 역사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우리를 미워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아무것도 안 될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무너져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우리 마음 속에 세워집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받고 육신의 욕구도 채워준다는 말은 사기입니다.
사기! 육신의 욕구를 채우면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해야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자기 육체의 욕구를 만족시켜 가면서 예수님을 따를 수 엇다는 것입니다. 참 많은 사람들이 지옥으로 가고 있는데, 그들이 왜 지옥에 갑니가? 사단이 육체를 부추겨 주는 그것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자, 냉정하게 생각해 봅시다. 저희 교회에 와서. '이 교회에는 사랑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사랑은 없어도 예수님은 계신다.'고 하거든요.
저는 '누구든지 저희 교회에 와서 한 달만 있으면 예수님게서 일하시는 것을 분명히 보게 된다.'라고 자주 이야기합니다.
어제 저희 교회에서 오전예배를 드렸는데, '한 해 동안 주님께서 정말 인간적으로 불가능한 일들을 참 많이 이루어 주셨다.'는 사실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또, 지금도 저희 교회에 참 많은 문제가 있지만 주님께서 해결해 주실 줄을 확실하게 믿기 때문에, 우리는 염려하지 않고 주님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속에 살아서 일하고 계십니다. 주일 날 설교를 하려고 강단에서 앞을 내려다보면 형제 자매들의 얼굴이 보이는데, 저는 그 한 사람 한 사람 속에 주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단에 설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얼마나 강하게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그러한 주님의 역사는 우리 마음의 욕구가 다 채워진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정말 신령한 세계를 사모하고 영원한 천국을 원하신다면, 그 나라는 절대로 육체의 소욕과 겸하여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육체의 소욕과 영적인 욕구를 같이 채워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육체의 욕구만을 채워줄 뿐 영적인 부분은 전혀 채워주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속고 있어서 그러한 것들을 영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다른 교회에 있다가 저희 교회로 온 사람들 중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면서도 굉장히 교만한 마음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마음이 높아 질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그럽니다.
성경을 제대로 아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자기 딴에는 신앙 생활을 잘 했다고 하지만, 성경을 알고 성경에 맞게 신앙 생활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덮어놓고 믿는 게 무슨 신앙 생활입니까? 제가 물어 보거든요. '당신, 율법에 대하여 잘 아느냐?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 제사를 어떻게 지내느냐? 물어보면 편견만 늘어놓지 아무것도 몰라요.
목사님들을 만나. '속죄제사 드리는법을 아느냐?'고 물어보거든요. 몰라요. '번제 드리는 법을 아느냐?' 모른다고요. 그러면 소제를 아느냐? 몰라요. 화목제는? 몰라요. 속건제는? 더 몰라요. '그런게 있었나?'하고 되묻는 거예요.
'유월절을 어떻게 지키느냐? 칠칠절은 어떻게 지키느냐? 대속죄일이 몇 월 몇 일이냐? 몰라요. 몰라. 그냥 십계명 하나만 알면 다 아는줄 알아요. 십계명 하나 알면 신앙 생활 잘하는 것이고, 주기도문, 사도신경만 외우면 신앙 생활 잘할 것 같으면, 성경이 이렇게 두거워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습니까?
성경이 왜 이렇게 두껍습니까? 십계명, 사도신경 다 넣어도 한 페이지면 충분한데, 성경은 이천 페이지 가량의 분량입니다. 그 까닭은, 인간이 교만하니까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 아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때 아이들이 건성으로 들으면 다시 부릅니다.
"아버지가 너에게 뭘 어떻게 하라고 말하드냐? 자세히 이야기 해봐라." 어물어물 하면, " 너, 아버지가 하는 말을 정확히 모르면서 어떻게 아버지께 순종할 수 있겠어? 다시 들어. 첫째는...., 둘째는....이렇게 해!"
그리고 조금 후에 다시 돌아와,
"너, 그거 했느냐?"
"예"
"이것 했느냐?"
"예"
확인해 보거든요. 하나님께서 연세가 많아 신구약 66권을 통해서 우리에게 잔소리 하시느라 성경이 두꺼워 진 줄 아십니까?
도대체 성경을 알아야 하나님 마음을 알지요.
할 말이 없으면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될 텐데, '이단들은 막 파고든다,'라고 해요.
이단 아닌 사람은 성경을 덮어놓고 믿습니까? 그러면 구약시대, 신약시대 사람들은 전부 다 이단이겠네요. 성경을 풀어 자세히 이야기 하니까 사도 바울도 이단입니까?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사단에게 속고 있는 사람들
사단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서 지워 버리려고 합니다. 오늘 날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참 많이 있지요.
그런데 사람들의 마음에는 말씀이 없습니다. 자기 육신의 욕구만 가득 차 있을 뿐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주일을 잘 지키고, 십일조 잘 내고, 새벽 기도 잘하고, 봉사 잘 하면 일등 교인이 되지요? 그렇지요? 그렇게 하면 다 구원받아 천국 갑니까? 그런데 그것은 다 기록해도 성경 한 페이지 분량도 안됩니다. 천국 가는 방법. 제 일은 주일 날 교회에 나와라. 제 이는 십일조를 떼먹지 말아라. 제 삼은 뭐 해라. 그렇게 하면 다 되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말씀이 필요합니까? 성경에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은, 여러분의 마음의 모습을 이야기해 주기 위함입니다. 우리 마음에 응어리져 있는 것들, 죄악으로 두려워하고 있는 것들, 그러한 것들을 하나하나 드러내어 풀어줄 수 있도록 마음의 세계를 이야기 하다 보니 성경이 두꺼워 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꾸로 알든 바로 알든 어쨋든 성경은 알아야 하고, 성경은 읽어야 하고, 깨달아야 하고, 성경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배당 짓는데 열심이고, 사람 모으는 데 열심이고, 무슨 봉사를 하는데 열심이며, 기독교인들이 사회적으로 계몽을 하거나 자선 바자회 등의 일은 잘 합니다. 그러나 자기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누가 그렇게 가르칩니까? 사단입니다. 사단! 그런 일들은 아무리 위대해 보여도 하나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레위기 2장에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참된 제사 속에는, '고운 가루'라는 말이 들어 있습니다. 언제 여러분의 껍질이 벗겨지고 언제 여러분의 생각이 부서졌습니까? 언제 여러분의 주관이 깨어졌습니까? 언제 여러분의 옳다고 주장하는 사실들이 고운 가루처럼 부서져 버렸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소를 잡아 제사를 드리거나 집을 팔아 주님 앞에 바친다 하더라도 그 일은 하나님께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입니다.
레위기 1장에서는, 번제를 통하여 하나님의 받으시는 제물이 되기 위하여 우리 자신이 송두리째 불 타야 한다고 했고, 레위기 2장에서는 소제를 통하여 우리 자신이 고운 가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장은 구원 받기 위한 우리 마음의 상태를 이야기한다면, 2장은 구원 받은 후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받으실 귀한 제물이 되기 위한 우리의 마음의 태도들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떤사람들은 우리 교회에는 무식한 사람들만 모여서 섞일 수 없다고 하고, 또 다른 사람들은 우리 교회에는 젊은 사람들만 모여서 섞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자기 자신의 색채가 그대로 남아있고, 자기라는 덩어리가 깨어지지 아니하고 벗겨지지 아니한 상태에서 볼 때는 그렇게 보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보기에는 자신이 고상하고 아름답고 귀해 보여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덩어리들 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거친 가루를 채로 치면 그냥 채 위에 남아 있는 알갱이와 같습니다. 위에서만 데굴데굴 놀지 밑으로 흘러내려가서 빵을 만드는 고운 가루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교회를 나와도 여전히 덩어리로 남아있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구원받았어. 그러나 자식은 내가 키워야 돼.'
'나는 구원받았지만 결혼 만은 내 생각대로 할 거야.'
그렇게 하십시오. 누가 말립니까? '나는 구원받았지만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 했다가는 망할 것 같아. 목사님 말을 듣더라도 지혜롭게 들어야 돼.' 그런 사람들은 참 지혜롭게 사단에게 속고 있는 사람입니다.
욕망이 버려진 후 찾아오는 하나님의 축복
저는 목회를 하면서 주님 앞에 참 감사한 간증이 있습니다.
전에는 제가 구원을 받고 주님을 섬겨도, 하나님의 일도 하지만 제 자신의 만족도 얻으려는 그런 생각들이 항상 제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사가 되어도 남들에게 욕을 얻어먹지 아니하고 존경받는 목사, 훌륭하고 유명한 목사가 되려는 욕망들이 항상 제 마음에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유명한 목사들의 설교를 읽어보고 그 다음에 제가 한번 해 보기도 하고, 그리고 제 나름대로 헬라어도 배우고 히브리어도 배우려고 해 봤습니다. 남들이 다 잠잘 때 밤에 일어나서 헬라어 사전을 갖다 놓고, 서툰 말로 '에클레시아' 어쩌고...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한 것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목사가 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것이 잘못된 일입니다.
그 때 저희들 교회에는 다툼이 끊이지 않았고, 교회에 잘 나오는 사람도 제가 심방을 가면 그 후에 안 나왔습니다. 한 사람이 구원받으면 한 사람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늘 그랬어요. 어느 날 주님께서 저를 깨뜨리고 계신 것을 느낄수 있었습니다. 저는 어떤 때는, '하나님, 해도 해도 정말 너무합니다. 왜 제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합니까?'하고 한탄도 하고 원망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참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마치 부모가 추운 겨울에 아이의 얇은 옷을 벗기고는 더 두꺼운 옷을 입히듯이, 하나님께서 제 손에 쥐고 있는 귀한 것을 빼앗을 때마다 제가 상상치 못했던 귀한 것으로 제 손에 들려주시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도 모르고 제가 쥐고 있는 마음의 욕망, 그것만을 향해 달려갔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참 가난하게 만들면서 물질에 대한 욕망을 헌신짝처럼 벗어버리게 하셨고, 그 마음이 제 마음에 이루어 진 뒤에 생각지않게 주님이 물질로 저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 후 방송설교도 허락해 주셨고 신앙서적도 내게 하셨으며, 수양관도 짓게 하셨고, 교회도 개척하게 하셨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물질을 제게 허락해 주셨습니다.
여러분, 저는 남들에게 존경받는 목사가 되고자, 속은 형편없어도 겉으론 점잖게 보이려고 애를 써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무익한 일이며, '주님이 보실때 어떠하냐?' 하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 동안 인간들에게 가식적으로 보여왔던 삶들을 벗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하나님께서 저를 높이시고,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것을 이끌고 계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 제가 쥐고 있는 것들은 제가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 손에 들려 준 것이기 때문에, 제가 지키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어 참 편안하고 자유롭습니다. 때때로 제 계획대로 안 될 때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저의 삶을 이끌고 계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 뜻대로 안되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걸 확실하게 믿기 때문에, 제 뜻대로 안 될 때도 무릎을 꿇고 감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 마음의 위치가 옮겨지게 되었습니다.
결론을 말씀 드리자면, 전에 제 욕망에 사로잡혀 살던 때와 제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사랑하는 주님께서 저를 이끌어 주실 때의 삶은 너무너무 다릅니다. 그 땐 제 마음대로 안되면 인간적인 방법을 하려고 애를 썼고, 그래도 안되면 원망하기도 했고, 미워하기도 했으며, 거짓말도 했습니다. 이젠 제가 전혀 그렇게 할 필요가 없는 것은, 제가 하고 있는 이 모든 일이 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들을 이루어 가고 계시다는 사실을 너무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슬픈 일을 당해도 원망하지 않고 있으면, 그것이 귀한 은혜로 바뀌어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깨뜨리고 계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에게 기대를 두지 않고 자기 자신이 노력해서 자신의 삶을 신앙 안으로 이끌어 보려고 애쓰는 사람들, 술을 끊고 담배를 끊으려는 사람들, 자신이 목회를 잘하려고 하거나 자신이 설교를 잘 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은 자신의 뜻을 세우려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든지 가에 하나님께 기대를 두지 않거나 하나님을 바라지 않는다면, 자기 자신이 하고 있는 동안에는 여러분은 그것 때문에 고통을 당할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자신이 부서져 가루가 되어, 자기가 이루려 하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생각이 자기 생각과 같아진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구태어 이루려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그것을 이루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100살이 되어 아들을 낳게 되었습니다. 그 때까지 그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아들을 주신다는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아들을 낳으려고 발버둥 쳐 보았지만,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이스마엘을 낳은 일이 그러했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약속을 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자기가 아들을 낳으려고 애를 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자기 아내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아들을 낳게 하실 줄 알았기 때문에, 굳이 애를 쓸 필요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100세나 되어 낳은 아들을 잡아 죽여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을때 에도, 그 아들로 말미암아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낳을 줄을 알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마음에 기쁨과 자유를 누릴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레위기 2장의 소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하나님이 하나의 밀알이 껍질이 벗겨지고 깨어져서 그냥 가루가 아닌 고운가루가 되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형제는, '직장에 가면 교회에 너무 빠졌다고 하고, 교회에 오면 하나도 안 깨졌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자매는 ' 이 만큼 깨어졌으면 됐지,'하는데, 바로 그 생각까지 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깨뜨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 쓰시기 전에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그를 깨뜨리셨고, 바울을 들어 쓰시기 전에 그렇게 하셨고, 야곱을 그렇게 하셨고, 요셉을 들어 쓰시기 전에 감옥까지 내려 보내서 충분히 깨뜨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저녁에 여러분을, 또 저를 깨뜨리고 계십니다. 은혜와 말씀으로, 또 그의 사랑으로 우리 자신이 깨어지고 부서져, 정말 고운가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마음껏 역사하실 수 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박옥수목사의 '소제' 기름 편으로 넘어가겠습니다....